수학의 감각 - 지극히 인문학적인 수학 이야기
박병하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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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세상을 기술하는 언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창조 설화들이 사실은 인간이 수학을 깨우쳐가는 과정의 메타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창조 설화들은 모두 신이 무에서 '자신(나)'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초의 분별. 무와 나를 구별하는 것. 그것은 0에서 1로 나아가는 수학의 위대한 첫걸음과 닮아 있지 않은가?


현대 수학자들은 수학이 철학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철학자들이 수학에 보내왔던 애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소크라테스는 혼이 살아있는 인간이 되려면 수학을 공부해야 하며 진정한 지도자를 양성하려면 수학 공부를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트는 수학이야말로 진정한 이성의 학문이라고 했다. 근대 수학의 토대를 쌓은건 누구인가? 어느 대단한 수학자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자(philosopher), 끊임없이 회의하고 회의했던 르네 데카르트 였다. Cogito Ergo Sum!


과거에 수학은 철학과 명확히 구분되는 학문이 아니었다. 당시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일을 모두 철학의 범주로 넣었던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직업이 세분화 되지 않았던 전근대의 한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한 논리로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에게 연역의 정수인 수학이 생소했을까? 그들은 수학적 사고가 아니라 그냥 사고를 했다. 사고 자체가 수학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 수많은 일들이 각자 전문성의 기치를 걸고 세분화된 탓에 우리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수학자, 아니 그냥 생각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다. 제가 문과라서 수학이 참 약합니다. 철학과 출신이 어떻게 수학을 이해하겠어요? 놀라운 일이다. 우리 스스로 두 개의 영역을 구분한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너무 요원해 보인다. 수학은 끔찍한 공식과 추상화된 기호가 난무하는 괴물이 되버렸다. 그런가하면 철학은 가장 단순한 진실을 가능한 복잡한 언어로 기술하는 뒤틀린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수학의 감각>은 수학이 그저 생각하는 방식 중 하나였던 시절로 우리를 돌아가게 한다. <수학의 감각>은 수학이 내포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호도하지도, 수학이 가진 전문성을 뽐내지도 않는다. 이 책엔 제곱과 제곱근, 우리를 괴롭혔던 식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사고를 돕는 도구로써 기능할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영에서 하나를 분별하고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을 연역하듯, 사고는 충분히 단순화된 형식으로 치환되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수학적 사고란 진정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동안 우리가 받아왔던 수학 교육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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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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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다이아몬드에게 관심이 생긴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난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설적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가재미 눈을 뜨고 보는 나이기에 <총, 균, 쇠>의 저자는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다.


<사피엔스>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역사와 생물학, 역사와 과학이 결합된 새로운 서술법. 국가나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 그 자체를 냉정하게 해부하는 과감한 시도. 인간이 언제나 역사의 주체임을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던 나에게 철저한 객체로 존재하는 인간은 인식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라리는 그 책에서 자신이 <총, 균, 쇠>에 빚을 졌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내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총, 균, 쇠>는 여름 휴가철에 들고갈 수 있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읽을 때도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연달아 두 번씩 정독했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도 선뜻 손을 내밀 수 없는 모호한 관계가 나와 제러드 다이아몬드 사이에 유지되어왔다. 그러던 중 바로 이 책을 만난 것이다.


<나와 세계>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완벽한 입문서다. 원래 이 책은 저자가 로마 루이스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곱번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글은 구어체로 기술되어 쉽게 쉽게 읽히고 내용은 교양 수업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 이 세계가 직면한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석하는 틀을 명확히 제공하여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게다가 이 책은 아주 얇고 싸기까지 하다.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이다. 그는 그 이유를 지리적, 제도적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서구 사람들이 익숙하게 제기해왔던 민족적 특성은 인간이 제도와 환경의 산물임을 밝힘으로써 일축된다.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는 현상을 구조적으로 해석한 뒤 책은 중국이라는 라이징 스타를 실례로 들어 이 해석의 틀을 실전배치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흥망이 오로지 지리와 제도의 복합으로만 결정될까?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과거에 좋은 제도를 이미 확립한 국가라면 그 발전은 영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개인이나 국가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제시하는 역사적 사례는 시시각각 위기에 직면하는 우리에게 그것을 돌파해 나갈 일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결국 역사란 인간과 환경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며, 이 상호작용의 형태와 내용에 따라 어떤 국가는 성장하고 어떤 국가는 붕괴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강의에 이르러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몇가지로 나눠 제시하지만 이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철저히 외면해왔던 것들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마지막에 이르러 출발선을 제시한다. 그는 강의실 문을 열며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시간임을 알린다. 그는 큰 소리로 독려한 뒤 주춤대는 우리를 놔둔 채 운동화 끈을 여미고 강의실 밖으로 달려나간다. 끝이 곧 시작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세계는, 비로소 나와 세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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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어떻게 일할 것인가 - 기하급수 기업을 만드는 비즈니스 혁신 전략
전성철 외 지음 / 리더스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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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책들은 왜 하나같이 별로인지 모르겠다. 구한말에 잠들었다 21세기에 눈을 뜬 아저씨들에게 현대 세계를 유람시켜주는 책인 것 같다. 구체적 방법은 하나도 없이 사례와 현상만을 얄팍하게 늘어놓는데 일종의 강의 원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자들이 기업 교육을 기획하는 사람들이라 그 포맷에 완전히 인이 박힌 것 같다. 강의에서 Deep한 토론을 벌일 수는 없으니까, 참신한 생각과 주장은 버리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들의 성공 사례를 팜플렛처럼 펼쳐놓는다.


이런 책이 별로인 이유는 저자들이 독자로 규정하는 집단에서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책과 강의도 유용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권자로 일하고 있으니 이 회사의 전략은 나름 탁월하다. 나도 나이면 들면 이런 얘기에 혹하게 될까?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주제들을 언급하지만 말 그대로 언급에 그치기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요약하면 세상이 급변하고 있으니 당신의 회사도 그 속도에 맞춰 '트랜스포메이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 시킨 이건희 회상의 신경영 선언이 인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들의 설득 방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공포와 희망, 그리고 해결책. 첫번째 단계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여기서 삐끗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최강의 육식 공룡이라도 안전하지 않다. 위협이 같은 공룡이 아니라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이라면 내가 지구에서 가장 센 동물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있겠는가? 다음 단계는 운석 충돌 후에도 살아남은 공룡들의 적응기를 보여주며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손 쉬운 해결책은 마치 그 내용의 부실함을 숨기려는 듯 재빠르게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뭐지? 뭐지? 방금 나타난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사라진 진리의 흔적을 찾아 우르르 달려나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적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강력한 '거버넌스'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이 책의 독자와 목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거버넌스는 특정 집단이 변화를 주도하는(주로 최고 의결기관 혹은 Boss) 전형적 탑다운 방식을 벗어나 소속 구성원들 혹은 이해당사자들간의 협치로 이뤄지는 정책 결정 방식을 뜻하지만 말만 그럴듯하지 이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버넌스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이 당선만되면 본분을 망각하고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협치를 강조하지만 거버넌스도 각 부서의 엘리트들을 소수로 차출하여 구성한다는 점에서 결국 협력 기관이 아닌 권력 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생각해보라 그 똑똑한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거버넌스는 진리의 심판관이 될 수 밖에 없다. 거버넌스가 내린 결정은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조직에 강제로 이식된다. 이 방법이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이유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론을 효과적으로 무시할 수 있고(겉으로 보기엔 이해당사자들의 협치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니까 보스는 뒤로 물러서 너희들이 결정한 사안 아니니? 라고 되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변화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역시 폭탄주 문화에 익숙하고 토론을 귀찮게 여기는 아저씨들인 걸까? 


4차 산업혁명을 찬양하면서도 아직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이나 그 유명한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실에 향수를 느끼는 걸까? 이런 교육이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나 팀장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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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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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냉소와 비아냥의 천재다. <넛셸>이후 그를 완전히 신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솔라>는 그 다짐이 무너지지 않으리란 걸 확신하게 만들어줬다. 열기대신 차가운 냉소와 회의로 이글대는 태양. 제목에서부터 골수 회의주의자의 존경할만한 악취미가 느껴진다.


주인공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다. 결혼을 네번했고 그때마다 본인의 외도로 이혼을 했다. 네번째 결혼은 만만치 않았는데 마이클의 외도를 눈치 챈 아내가 당당히 맞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질투심에 휩싸인다. 뭐? 지금까지 자신이 상처줬던 모든 여자들의 마음에서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는 이 남자는 아내의 외도남을 찾아가 그 부도덕함을 훈계하려 한다. 마이클이 얻어낸 건 외도남의 속죄대신 눈이 번쩍이는 주먹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마이클은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가까스로 위기를 탈출한다.


어느날 해외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마이클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목욕 가운을 걸치고 침대에 앉아 있는 - 그 속은 분명 나체였던 젊은 연구원을 발견한다. 마이클은 아내에게 그 연구원을 딱 한 번 소개해준 적이 있다. 더 파렴치한 외도로 아내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리라 계획했던 마이클 비어드의 전쟁은 이 대목에 이르러 그야말로 대패를 하고 만다. 한때는 천재라 불렸던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하지만 이제 걷기도 힘든 돼지로 늙어버린 남자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마이클에게 달려오던 젊은이가 카펫을 밟고 미끄러져 유리 탁자에 빅뱅을 일으킨 순간 그의 머릿속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마이클 비어드에겐 두 개의 사실이 있다. 하나는 아내의 외도남이 자기 집 침실에서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침실에 자신을 때린 또 다른 외도남의 흔적이 가득하다는 것. 노벨상을 수상한 천재 과학자 마이클 비어드는 이 두 개의 사실을 융합해 하나의 복수를 만든다.


<솔라>는 태양열을 이용해 에너지 혁명을 일으키려는 한 물리학자의 삶을 그리지만 과학 소설은 전혀 아니다. 소설에는 태양보다 더 들끓는 추한 욕망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마이클은 아내의 외도남이자 죽은 연구원의 연구자료를 훔쳐 에너지 혁명의 싹을 틔웠음에도 그것이 100% 순수한 자신의 연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솔라>는 천재적인 희극배우가 비극의 밧줄 위를 외발 자전거로 달리는 듯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절대적 비극을 향해 치닫지만 천재적 희극 배우의 우스꽝스런 연기가 우리로 하여금 그 사실을 잊게 만든다. 도대체 얼마나 인간 본성에 회의적이어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를 이토록 회의적으로 만든 건 도대체 어떤 사건과 경험일까? 이언 매큐언은 내가 걷는 길의 끝에 서 있는 거대한 산같다. 나는 감히 그 산을 오르려하지만 아직 그 밑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긍정적 태도와 행복한 말들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믿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나는 오히려 비관주의자만이, 인간의 선한 본성을 단 한톨도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만이 이 세상에서 찰나나마 구원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뒤틀리지 않은, 고귀한 생각의 그들은 악으로 들끓는 이 세상에 매번 배신감만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인간은 선하다는 맥없는 자위일 뿐이다. 하지만 그 반대에 서 있는 우리는, 뒤틀린 괴물이라 손가락질 받는 우리는, 바로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악으로 들끓는 이 세상에 찰나처럼 스쳐지나가는 선의 불씨에도 기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선한 행동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일이라면 우리가 왜 거기에 감사를 표해야 할까? 나는 인간이 본디 악하다고 믿기에 가뭄에 콩나듯 보여주는 그들의 선의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이 세상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건, 오직 회의주의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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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노히 1 - 시무룩 고양이
큐라이스 지음, 손나영 옮김 / 재미주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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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했다. 농담이 아니다. 10년전만 해도 고양이는 애완동물의 세계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단지마다 그득 그득 들어찬 길고양이들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길고양이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도대체 뭘 훔쳤갔다는건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 요망한 동물을 도둑 고양이라고 불렀다.


야생의 왕. 너구리가 흔하지 않은 도심에서 고양이는 생태계의 정점으로 군림했고 높은 번식률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변화가 시작된걸까? 강아지들이 따뜻한 안방에 누워 안이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고양이는 야생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기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인터넷과 SNS 각종 커뮤니티를 점령한 고양이 사진들을 보라. 캐릭터 상품에서부터(그 유명한 헬로 키티는 사실 고양이가 아니다. 헬로 키티는 영국 출신의 소녀로 불쪽에 나 있는 수염은 수염이 아니라 소녀의 솜털이다. 못 믿겠으면 캐릭터를 만든 회사의 소개를 읽어보라) 책, 드라마, 영화, 고양이가 나오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의심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명심하라. 오늘날 돈을 벌고 싶다면 당신은 고양이를 그려야 한다. 날리는 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아무리 모래를 갈아 줘도 풍기는 그 끔찍한 오줌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종이에, 열쇠 고리에, 화면에 나온 고양이 만큼은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1인 노동가구가 늘어날수록 손이 덜 가는 고양이는 더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의 억만장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라잇 나우, 고양이의 세계로 뛰어들어라.


"인생은 언제나 흐림 뒤 맑음" 시무룩한 표정이 매력터지는 애잔보스 고양이 네코노히의 '석세스' 도전기. SNS와 대형 커뮤니티를 뒤집어 놓은, 지금 가장 힙한 네컷 만화!


위 띠지의 설명처럼 만화는 시무룩 고양이 네코노히의 거듭되는 실패담을 다룬다. 거대 서사에 질렸거나 거기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일상 생활의 소소한 실패담은 잔잔한 공감을 일으킨다. 이렇게 대단치 않은 이야기가 SNS와 대형 커뮤니티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복잡하고 짜증나는 세상이 주는 피로감때문일 것이다. 이 피로감때문에 현대인은 점점 더 세상과 괴리되고 있다. 현존하는 문제에 맞서기 보다는 눈을 돌리고 피하는 것이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끈을 끊고 몸을 말아 내 삶을 단단히 안아쥔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폭넓게 유통될 수록,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고 믿을수록 인간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타인, 그리고 세상과 소통 없는 고립된 삶을 살거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얘기는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짜증이나니 오늘은 그만하자. 어차피 목적이 다른 책. 인생이라는 것도 강약약 중간 약약 리듬이 있는 거니까, 항상 진지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뚱보에 딱히 귀여운 상도 아니고 사람으로 따지자면 중년의 아저씨 같은 고양이지만 독특한 작화와 색, 거기에 맞는 행동의 조합으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은 언제나 흐림 뒤 맑음"이라는데,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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