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상상 - 데모당 당수 이은탁의 좌파보고서
이은탁 지음 / 디스커버리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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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不穩)의 온(穩)이 지닌 뜻이 편안하다, 평온하다, 그대로 두다, 움직이지 않다, 확실하다 등등이다. 불온이라 하니 이와 반대임을 잘 알겠다. 편안함에 물들지 않고 고여있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움직이고, 굳어져서 확실하게 보이는 것을 깨뜨려 일어서서 옳지 않다! 외치자고.

 

사람들은 무언가 일을 벌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분쟁을 만드는게, 싸우는게 번거롭고 귀찮은 모양이다.

 

재작년 가을, (판)소리 공부를 해보겠다고 문예회관에 강좌신청을 했다. 접수기간이 지났는데도 받아주어 그 달 말부터 시작했는데 예상대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다.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한 가운데 붙박이로 앉으시는 분이 성악 목소리로 아주 우렁차게-커다란 성량, 그것도 괜찮다.- 소리 선생님이 한번 불러주실 때 같이 부르는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처음 듣는 노래여서 잘 모르겠구만 맞게 부르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소리라는 것이 으레 선생님이 한 대목씩 들려주면 그것을 따라 부르는 방식인데 선생님이랑 동시에 불러 선생님 소리(그 분보다 작은 목소리로 부르시는)를 막아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나이도 꽤 자신(드신) 분이고 여기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이니 또 그때까지만 해도 한 두번 들어봄 직한 소리들이어서 넘어갔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고 모르는 노래들을 새롭게 배우게 되니 앞서 가는 그분 목소리가 방해되기 시작했다. 소리 선생에게 바라는 강습 방향이 나와 맞지 않기도 해-호흡을 배우고자 왔는데- 결국은 그 분기를 끝으로 그만두었다. 다음 분기 강습비를 내놓고 나중으로 미뤄두고서.

 

동네 마실을 다니노라면 광역시답지 않은 시골분위기가 물씬 나서 논과 밭이 널려있는 이 곳이 운치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보니 찬찬히 걸으며 한 곡조 불러재끼는 것이다. 단가라 해도 '사철가' 는 꽤 길어 한 곡을 다 부르려면 5분이 넘게 걸려 다 부르고 나면 숨이 차서 헉헉댄다. 산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 듣고 따라 부르고 혼자 부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소리 생각이 간절해 다시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같이 소리 공부할 때 알게 된 언니와 그 언니 소개로 몇 번 만난 언니에게 다시 소리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다시 하고 싶은데 그 성악 아저씨가 방해되어 직접 말해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해야겠다고 까지 말했더니, 별 문제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굴러들어 온 돌이 왜 일을 만드느냐.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배운다. 니가 뭔데 찬물을 끼얹느냐. 여긴 취미로 하려는 사람만 하는 곳이다. 진지하게 배우겠다는 너같은 애가 올 곳이 못 된다. 얼마 되지도 않는 비용을 지불하고 뭘 바라느냐. 나이 드신 분인데 존중해줘야지. 등등. 다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꼰대가 싫어 죽어도(?)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나에겐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으로 여기지 않는다. 불합리한 상황을 그저 참는게 미덕인가. 카톡창이 터지도록

얘기들을 쏟아냈다가 싸우는 것도 지쳐 다시 소리 배우는 거 그만두기로 했다. 이럴 때 이 책의 저자 이은탁 같은 싸움꾼(?)이랑 같이 가 한바탕 뒤집어 놓고 오기라도 하면 성에 찰 듯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꼭 우리 선배들 얘기같아 낯설지 않다. 우리 선배들도 이 사람 만큼 철처히, 끝까지 실천하지는 못했는데 정말 징하네, 이 사람. 신념을 위해 온 몸을 던진다는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몸부터 먼저 들이미는 것. 나처럼 말만 앞서고 좀체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겐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진짜?', '계속?' 하고 되물어 볼 만큼 믿기지 않는다. 보통 사람처럼 장가가서 아이 낳고 살아왔다는 것도 이상해 보이고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꾸려왔을까 궁금해 미치겠다. 저자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우리 선배는 마누라-내 친구다. 지금도 친구 주위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내가 소개해 둘이 만난 것도 아니건만. 학교도 다른 내 친구가 휴학해 만날 우리 동아리방에 놀러왔다가 둘이 눈 맞은 게 내 탓이냐고.-가 빡세게 선배랑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있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밥 빌어먹고 또한 집회도, 시위도 빠짐없이 해내고 있는갑다. 그게 가능한가?

 

또 하나 신기했던 것이 30년을 싸워 온 기억이 책 한 권을 만들어 낼 만큼 선명하다는 거다. 그 급박한 상황마다 기록을 남긴 것인지,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것인지. 그렇다 해도 수십 년 전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우리 동아리 사람들도 모여서 똑같은 옛날 일을 떠올려도 제 각각 기억이 다른데. 그만큼 주체적으로 살아왔다는 증거일테지만.

 

목숨 바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이 함께 싸워왔기에 우리 현대사 속에서 지금까지 이뤄낸 민주화-아직 갈 길이 멀지만-가 가능했음을 안다. 그래, 연대만이 살 길이지. 나 혼자 잘 사는게 미덕이라 믿게 만드는 자본주의에 넋을 빼앗겨 잊고 있었는데 기억해 내자고. 그 어려운 박근혜 탄핵도 이뤄낸 우리잖아. 블루클럽으로 귀두머리(?) 하러 가자던 동무의 말처럼 "우리,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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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20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진지하게 배우고 싶을 때 samadhi님과 같은 상황이면 정말 기운빠지겠어요..

samadhi(眞我) 2017-03-20 21:05   좋아요 1 | URL
댓글이 자꾸 지워지네요. 북플 가끔 말썽이더라구요.
그러니까요. 취미라 해도 제대로 배워 익혀야 할 것 아닙니까. 취미라고 그냥 대충 배우면 돼. 라는 인식도 그렇지만. 다들 뒤에선 그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소리라서 사라지는 특성 때문에 다들 녹음하거든요. 근데 그 사람 목소리만 들려요ㅠㅜ

그 사람에게 몇 번 얘기를 했는데도 여전히 고치지 않는 것을 보니 고집이 보통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것인데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럴거면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에 울컥 했지요.

yureka01 2017-03-2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도 배운다는 것에서 가볍게 취미라는 것도 배움이 쉬울리는 없겟지요....^^.

samadhi(眞我) 2017-03-20 21:19   좋아요 1 | URL
다 처음 하는 거니까 익숙지 않아 더 어렵더라구요. 뭐든 대충 배우는 게 성미에 안 맞아서. 단순히 성질이 급해서 탈인 것일 수도 있구요.

책한엄마 2017-03-2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저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빠지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불의에 바른 소리를 내 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이한 사람이 아니고 당당히 자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회가 되길 빌어봅니다.

samadhi(眞我) 2017-03-20 23:03   좋아요 1 | URL
저는 어딜가나 쌈닭이라 욕 처먹(?)고 삽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소리 들어가면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