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후를 찾아요 - 사라진 오후를 찾아 떠난 카피라이터의 반짝이는 시간들
박솔미 / 빌리버튼 / 2017년 9월
평점 :
책장을 넘기는 줄도 모르고 읽고 있는데, 벌써 마지막 장이라니.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지금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내 마음과 생각을 들킨 느낌이랄까, 내 생활을 담은
느낌이랄까.
같은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전공이라서가 아니라, 딸을 가진 같은
엄마이기 때문도 아니며, 남편이 같은 직업이기 때문도 아니다. 심심한 무채색 옷을 좋아하고, 가슴 속에 샌님 하나쯤 키우고 있는 공통점 때문도
아닌데.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 조건들이 나와 딱 맞아떨어져서 내가 마치 써내려간 것처럼
빠져들었나보다.
저자인 박솔미 카피라이터와 나는 10년이라는 간극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상황과 환경들은 너무 비슷해서 놀랄 지경이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까지.
(다행(?)인 건지, 우리 아버지는 삼국지를 읽으셨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
책은, 잊고 지낸 '오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뭔가에
몰두하느라 '오후'를 놓치고 있던 사람들에게 오후의 한가로움과 그때 느낀 생각들을 전하고 있다. 특히 세계 12개의 도시에서 경험한 '오후'의
시간들을 덤덤하게 적고 있다.
그렇다고 그 흔한 여행기도 아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계속 느껴지는 건, 글이 참 좋다는 것. 멋져 보이기 위해 어렵게 쓰지도 않았고, 뭔가 있어보이기 위해 아는 '척'을 하지 않아 읽기가
좋았다. 어쩐지 카피라이터 업무도 굉장히 잘 해내고 있을 듯하다. 서른 하나에 이런 필력이라면, 내 나이쯤이면 몇 권의 책을 더 낸 작가가 되어
있을 수 있겠다, 싶다.
그 많은 도시 중 작가가 애정을 갖고
소개한 '시라카와고'라는 일본의 시골마을은 나도 꼭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방금 작가의 인터뷰도 보았는데, 이 곳이 가장 추천할 만한
여행지라고 한다. 겨울이 되면 눈에 푹 둘러싸인 마을. ㅅ 형태로 볏짚 지붕을 한 서른 가구의 소박한 마을. 조용하고 온 세상이 평화로운 그
오후를 나도 직접 느껴보고 싶다.
책을 보는 내내 놀랐다.
어떻게 '오후'라는 걸 생각했을까. 나의 오늘 오후는 어땠을까. 나의 가장 좋았던 오후는 언제였을까. 앞으로 나의 오후는 어떻게 될까. 작가의
말대로, 항상 오후는 나를 향해 인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컴퓨터에 코를 박고 뭔가를 두드리고 있거나, 쓸데 없이 공허한 인터넷 기사를 누르고
있었겠지. 내가 가장 다정해지는, 편안해지는 시간은 언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를 함께 흥얼거린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구나. 돌이 지난 딸에게 주고 싶어서 쓴 글이라고 하는 이 책.
엄마의 마음이 참 곱고 따뜻하다. 누군가 요즘 괜찮은 책을 골라달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해주고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