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
김나리 지음 / 책나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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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는 SNS에서 진행했던 책나물출판사의 표지선정 이벤트에 참여해 내가 투표한 표지디자인으로 출간된 책이라 더욱 반갑다.

검은색 바탕에 앞 표지에는 흰색 점액에 빠진 알록달록한 제목 글자들이 박혀 있고, 책등에는 알록달록 글자가 그대로 쓰여 있고, 뒤표지에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의 곡선이 자유롭게 그려져 있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그 알록달록 무지개색의 의미를 알겠지만, 처음에는 전혀 모른채 무작정 읽었다. 눈치빠른 독자들은 이 부분만 읽어도 이 책의 성향을 눈치챘으리라.

1. 나를 이루어준 세계

부모님의 불화로 할머니댁을 시작으로, 여러 친척집을 전전하고 수시로 전학을 해야했던 우울한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2. 내가 만난 세계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저자는 과 팀원들이 과제를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행태에 참을 수 없어서 학교를 휴학하고 독일로 떠났다. 그후로 16년간 그곳에서 살게될 줄 몰랐단다. 여고 시절 자신의 성정체성이 '레즈비언'임을 알았고, 독일에서 만난 파트너와 결혼까지 했다. 저자 나리씨는 아이를 원했지만 상황히 여의치 않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3. 내가 만들고 싶었던 세계

독일 현지에서 영화를 만들던 저자는 한국에 들어와 미디어 스타트업을 위한 영상프로그램 제작을 시작으로 방송국에서 일했다. 이후 미디어 업체 대표가 된 저자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에 대한 입장을 소셜미디어에 쓴 글은 기사로도 보도됐단다.

4. 내가 만나는 세상Ⅰ

회사 폐업 후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인생 이모작을 위한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지게차 면허증을. 이 부분에서 나는 특히 저자가 멋져 보였다. 그 흔한 승용차 운전도 못하는 내 처지와 비교되어. 또한 저자가 자신 집 근처에서 코로나 영향으로 일용직마저 잃어서 고시원에서 쫓겨난 장기 빈곤 상태였던 52세 여성을 진심으로 도우려했던 사연을 소개한다. 자신의 설득에도 끝내 자신의 보금자리 주변을 떠나지 못했던 중년의 노숙 아주머니는 저자의 우려와 달리 다행히 고시원 화재의 피해자 신세를 면했다.

5. 내가 만나는 세상Ⅱ

독일에서 결혼했던 저자는 파트너와 이혼 절차를 시작했다. 무려 3년 후에야 마침내 이혼에 성공했다고. 한때 부부였던 레즈비언 부부는 서로의 전처가 되었다.



6. 내 세상이 된 사람

새로 만난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했다고 전하는 저자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 피앙세의 가족없이 동성혼을 올리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결혼 이후 각자의 취향에 맞게 집도 꾸미고, 일도 하며 도보 10분 거리에 따로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이 부분이 이 책 내용 중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결혼하고 나서 꼭 한 집에 붙어 살지 않아도 서로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며 근거리에서 따로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무엇보다, 매일같이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할 것처럼 사랑할 거다."(본문 p.332)라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그녀의 현재의 행복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것, 지극히 평범한 통과의례인 이 일이 이 땅의 '퀴어(queer,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 김나리씨는 자신의 삶으로 이야기한다. 저자처럼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용기있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님의 피앙세처럼 원가족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힐 수 없는 퀴어들도 꽤 많은 것이다.

저자는 성소수자이지만 세상 일에 관심도 많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세상에는 불의에 맞서 정의롭게 싸우기는커녕 눈 앞의 불의에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면서도, 소위 '정상적'이라 우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감히 누가 누굴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던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처럼, 성소수자도 지구별에 사는 한 구성원이다.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이 책은 이 땅의 성소수자들에게 세상밖으로 나오라고, 용기 내라고 독려하는 듯하다.

우리 삶의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Carpe diem(카르페 디엠)!

본 서평은 책나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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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할 결심 - 단단한 나를 만드는 28가지 멘탈 관리법
박한평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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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SNS를 통해 매일 수십만 명의 마음을 글로 위로하고 있는 박한평님이 쓴 자기계발서이다. 이미 <<새벽이 문제야, 항상>>, <<노래를 듣다가 네 생각이 나서>>, <<감정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만>>을 펴낸 바 있다.


 

 

총 네 부분으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기-승-전-결의 형태는 아니지만, '나를 제대로 알아서,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관계'속에서의 나를 올바로 규정짓는 연습을 하며, 결국 나를 사랑하라'는 전개로 나아간다. 또한 나처럼 평소 책에 메모하거나 책장을 접는 행위로 책을 훼손하는 일을 극도로 꺼리는 독자들을 배려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본문에 저자가 직접 뽑은 핵심문장에 밑줄과 색을 입혀 눈에 띨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게다가 필사도 필요없도록 소주제 꼭지마다 요약한 내용을 기록해두었다. 읽고 나서도 내용 정리가 힘든 사람이나 발췌독을 하는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배려가 돋보이는 기획이다.


Part1, 당신도 당신에 대해 모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불안과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자존감'의 성장이 시작된다고 한다.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이 알아듣도록 전달'하는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가면을 쓰는 일'도 필요하니, 가급적 가면을 벗어도 되는 관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한편, 예민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예민한 사람들은 사람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 능숙한 '섬세한 사람'이며,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력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라고 위로한다.

두려움과 열등감으로 타인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기 위한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며, 직접 만들어 낸 결과에 책임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이번 장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 사항은 '스스로를 존중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Part2, 무너진 것은 다시 세우면 됩니다

이번 장에서는,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완벽주의가 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면, 결과만 추구하는 시선에 과정의 즐거움을 섞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각자의 보폭이 따로 있으므로, 처음부터 너무 많은 성과를 기대하거나 빨리 마무리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꼼꼼하게'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다 보면 조금씩 아무렇지 않아진다. 때로는 '척'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취향을 만들고 구체화하는 과정은 혼자 충분히 소화해야만 단단해지고, 그 단단해진 마음을 통해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Part3,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가까울수록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서는 그 경계를 침범하지 않도록 신경쓸 것'을 강조한다. 또한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좋아하려고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당신의 매력을 키우고 발산하라고 조언한다.

'사과'가 화두로 등장한 이 시대에, 저자는 진정성 없는 '습관적 사과'를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진정한 사고는 갈등을 봉합하고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대화로서 관계 개선을 꾀해야 함을 강조하는 다수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경청'의 중요성을 이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잘 말하는 것 이상으로 잘 듣는 게 중요하고, 잘 듣는 것 이상으로 관찰하기와 침묵하기가 중요하다."(본문 p.166)라고.

역시 관계 개선과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한 정석은 '거리두기'와 '경청'이다.



Part4, 나를 사랑하는 중입니다.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당신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으니, 하루하루 쌓아 올리고 작은 행복을 경험하며,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하라고 권한다. "'인생의 밀도'를 높여가는 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다."(본문 p.201)고 강조하며.

노력하는 중 자주 주저 앉는 나와 같이 지구력이 부족한 독자들에게, "그만두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 계속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더 자주 해내게 된다."(본문 p.209)고 독려한다.

지치지 않고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이루고 싶은 목표를 잘게 쪼개 매일 해낼 수 있는 단위의 습관으로 만들어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장의 마지막 꼭지이자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번아웃'에 관련된 이야기로 저자는 심신이 지친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마무리한다. "당신의 마음이 쉽게 지치고, 번아웃에 빠지고,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 쉼을 적절히 부여하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실천부터 하나씩 다시 쌓아 올리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은 실천하는 힘입니다."(본문 p.231)라고.


이 책은 포켓북 사이즈보다는 살짝 크지만 내 기준으로 한 손에 잡히는 핸드북 사이즈다. 부담스럽지 않은 총 237면에, 매 장마다 그려넣은 삽화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 '쉼'의 역할을 한다.

이미 브런치스토리에서 조회수 30만을 기록했고, 2022년 화제의 신간이었다고 하니, 이미 많은 독자들의 손을 거쳐 갔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도서임에도 심리에세이와도 같은 '나를 사랑할 결심'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내용도 심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을 절제하고, 인내하며 희생하라'는 다수의 자기계발서의 강한 어조와는 달리 힘들면 잠깐씩 쉬어 가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기 보다는 불필요한 관계 유지를 위해 감정소모를 하지 말고 자신만의 보폭과 속도로 뚜벅뚜벅 나아가라고 위로한다. 대신 힘들다고 무작정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작은 단위로 쪼개어 성취감을 맛보고, 그 성취감을 기억하며 꾸준하게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이야기지만 번아웃이나 잦은 실패로 지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잃은 독자들이라면 우선 이 책을 읽으며 힘을 내어보시라. 분명 '그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라는 결심이 설 것이다.

본 서평은 상상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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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이 나를 만들었다 - 아픈 만큼 단단해지고 있기에 당신의 모든 날은 헛되지 않다
김신일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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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68면 분량의 이 책은 웬만한 독서력을 지닌 사람들의 경우, 집중해서 읽기 시작하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포켓북 사이즈의 에세이이다.

각 장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춰 총 4장으로 구성한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 일기처럼 소소하게 기록한 감정의 씨줄과 날줄이 알알이 박혀 있다.

게다가 면지에는 시인의 이름도 아닐 듯한 독특한 친필 사인이 된 채 도착한 책은 나에게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조금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어지는 서문에서 작가가 지독한 가난과 가정 불화, 그로 인한 방황과 급기야 고등학교 때 얻은 마음의 병으로 오랫동안 심리상담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다 힘들게 전문대 졸업 이후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했으나 코로나로 그마저도 힘들어 많이 지쳐 있었다고. 그러나 직업상담사 관련 업종에 취업하여 월급으로 온라인 쇼핑몰 때 대출받았던 대출금을 2년 반만에 상환하며 취업 전 이미 진단받았던 병도 완치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있어 독자인 나도 덩달아 작가의 고통이 경감된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시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전할 땐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종종 배우자와의 격한 대립이 들 때마다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저자의 아픔을 읽고 나니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 봄,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계절'에서는 우울할 땐 식물을 키워보라는 조언이 눈에 띈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꽃과 식물은 우리에게 기분이나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집의 공기정화를 원하신다면 식물을 키워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볼 때마다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 계절이 변하면서 여전히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을 보며 뿌듯해질 것입니다. 사랑처럼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얻게 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본문 p.49)라고.

'2장-여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을 알차게 보내다'편에서는, 주변의 힘든 사람에게 진심어린 한 마디를 건네보라고 조언한다. "'힘들었겠다, 불안했구나, 속상했겠다, 서운했구나.'와 같이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고 한 마디 건네는 것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한다면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합니다. 할 수 있다면 공감도 해주고 위로를 건네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본문 p.103)라고.

내가 작년에 읽었던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란 책에서도, "자살로 사별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고인과 사별한 가족, 친지나 친구의 곁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듯, 힘들 때는 가까운 사람의 진심어린 위로가 위로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3장-가을,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편에서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 연애하셨는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한 지금은 행복한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 것인지. 지금은 후회가 없는지."(본문 p.125-126)라고 독자에게 묻는다. 마침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후회되는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구구절절 나의 연애와 결혼생활을 적어 작가에게 답장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4장-겨울, 가끔 넘어질 때도 다시 일어나 단단해지는 성장의 시간'편에서는,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시기가 있고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는 시기가 있고 성숙해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야 보세요."(본문 p.153)라고 조언한다.

그렇다.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평범축에도 들지 못하는 비루한 깜냥의 사람이다. K방송사의 프로그램 <동행>도 울고 갈 지난한 가난과의 분투, 유치원은 다닌 적도 없는 우리 남매. 초중고교생 시절엔 그 흔한 학원 한 번 다닐 수 없었고, 대학도 소위 지잡대(지방의 이름없는 잡스런 대학)를 나와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덜컥 이 정글과 같은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럼에도 내 코가 석자인 주제에 철없는 이상주의자였던 나는 인권변호사가 되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신림동 고시촌 원룸에 틀어박혀 하루 열 시간 이상 책에 고개를 쳐박고 수험서와 씨름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이후의 결혼, 육아로 이어진 삶의 순간들도 나에겐 순탄치 않았고,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그러나 꿋꿋하게 약처방 대신 독서와 글쓰기로 치유의 시간들을 가졌다. 지금은 아이의 사춘기, 남편의 오춘기, 나의 갱년기의 터널을 함께 지나고 있다. 

어두운 감정도 애써 지우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보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신의 어두운 감정들을 좋은 사람과 나누고 위로도 받으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짧지만 저자의 아팠던 청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아픔의 정도를 비교해 보시라. 어쩌면 여러분의 아픔은 어쩌면 그리 큰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 힘내자. 모든 계절이 당신을 만들 수 있도록.

본 서평은 김신일 작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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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세계 술 기행 - 양조장과 축제장, 명주의 고향을 찾아 떠나다
허시명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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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막걸리학교를 열어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술 평론가, 여행작가인 허시명님이 쓴 술 테마 여행을 기록한 도서이다.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간의 해독능력으로 주종을 가리지 않는 애주가이다 보니 읽기 전부터 흥분되었다.

'양조장과 축제장, 명주의 고향을 찾아 떠나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총 4장으로 나누어 주제별 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1장-술의 묘리를 보다

허준의 『동의보감』과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 기술한 하는 술에 대한 정의와 체계적 분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 술의 전통을 살피려면, 중국과 일본의 술 문화를 살피면서 한국적인 특징을 포착해 내야 한다."(본문 p.19)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래서 그런지 본문 중 일본과 중국의 술에 대한 소개와 설명에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쌀'이라는 주식으로 술을 빚는다는 유사성이 있고, 중국은 '고량高梁'(수수)이 중심이 된 바이주가 대세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 몽골이 한반도 침략시 전래되었다는 소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몽골에 방문했다는 저자는 몽골의 전통주 '아이락'과 '아르히'를 소개한다.

"몽골의 전통술로는 '아이락aиpar, airag'과 '아르히apxи'가 있다. 아이락은 동물의 젖으로 만든 발효주인데 흔히 마유주로 통한다. 그런데 꼭 마유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소, 양, 염소, 야크, 낙타의 젖을 사용하기도 한다."(본문 p.24)고 소개한다.

이어 유럽의 두 국가, 벨기에의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와 수도원 양조시설을 소개하고, 헝가리의 매년 4월 스프링 페스티벌 기간 '한국의 날 행사'에 한국 술 시음 홍보회 때 우리나라를 대표한 술을 선보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후 중국 왕희지와 그가 사랑한 소흥 난정의 유상곡수처, 소흥주를 소개하고, 일본 탁주인 도부로쿠와 도부로쿠 1호 제조장인 호호에미소의 사토 겐이치로씨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제2장-술로 뭉치다

중국의 소수민족, '묘족'이 사는 '구이저우성 천호 묘족 마을'의 신비한 손님 환영 문화를 소개한다. "술 석 잔을 받지 않으면 이 마을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이를 두고 저자는 "마을 사람들은 환영의 뜻이라지만, 손님으로서는 기선을 제압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을 손님의 마음과 몸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묘족 주민들의 전략이 분명했다."(본문 p.99)고 썼다. 그러니 술을 못 마시거나 술이 약한 사람은 절대 이 마을 관광은 꿈도 꾸지 마시라.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이고 세계 최고의 술 축제로 꼽히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 해마다 9월 셋째 주 토요일에 시작하여 10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16리 동안 진행되는데, 200년을 바라보는 전통을 지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가 막걸리학교에서 세계 술 기행단을 꾸리고 여행길에 나선 이중 '생명보험 취소 여행'을 온 은퇴교사의 특별한 제자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 기간 중 '시간 엄수'를 외치던 이 은퇴교사는 이 날 만난 30대 제자를 위해 자신의 지갑에 들어있는 현금을 모두 털어주었다는 것.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살면서 그러한 은사님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다시 한번 다짐한 순간이다. 그리고 독일의 작은 마을 바이센브룬의 맥주 박물관 소개와 맥주 빚는 체험 이야기를 통해 "단맛과 쓴맛, 구수한 맛과 곡물 향과 홉 향을 얻기 위해 단계별로 체계화된 공법이 맥주의 지나 온 역사를 보여 주고 있었다." (본문 p.126)고 쓰고 있다.

이후 세계 2위의 생산 제조장으로 성장한 칭다오의 맥주 제조장 내 맥주 박물관과 비주얼은 흡사 오줌 같아서 끔찍한 봉지에 포장해주는 원장 맥주-양조장에서 살균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 있는 상태의 신선한 맥주-를 소개한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내 평생 봉지에 담아 빨대를 끼워 파는 맥주는 못 마실 것 같다. 게다가 얼마전 뉴스를 통해 보도된 '맥주공장에 소변 보는 직원 영상'이 평생 뇌리에서 잊혀질 것 같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칭다오 맥주 등 중국산 맥주들은 아무래도 손이 안 갈 것 같다.

뒤이은 일본 니가타현의 사케노진 축제를 소개한다. 해마다 3월 두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고. "니가타 사케의 큰 특징은 단맛이나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끈적거리지 않고 담백한 맛을 추구한다는 점"(본문 p.147)이라고 하니 사케를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은 축제 티켓 예매 후 방문하시길.

제3장-술을 따라 흘러가다

황금빛 라거의 고향인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을 소개한다. "필스너는 필제너라고도 부르는데, 필제너는 '필젠(체코어로 플젠Plzen, 독일어로 Pilsen)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뜻한다."(본문 p.165)고. 언젠가 세계 맥주 묶음판매할 때 한번 사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을 계기로 한 번 더 사서 음미하며 마셔봐야겠다. 원조 라거의 맛을.

이어 중국 증류주의 대명사인 바이주, 그 중에서도 바이주이자 고량주로서 중국의 국주國酒로 꼽히는 '마오타이주'를 소개한다. "마오타이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에 기여한 개국공신의 자취를 담고 잇어서 감히 다른 양조장의 술들이 얕잡아 보거나,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본문 p.174)고.

다음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뱀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들었던 소문같은 얘기를 책 속 문장으로도 만날 수 있었다. "뱀술은 빨대로 마셔야 한다. 빨대를 목젖 가까이 대고 잇몸에 술이 묻지 않게 마시는 거다."(본문 p.195) 또한 오키나와 소주인 아와모리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아와모리는 흑국균Aspergillus Awamori을 파종하여 배양한 검은 쌀누룩을 쓰는 게 큰 특징이며, 소주나 보드카처럼 무색투명하기 때문에 칵테일 베이스로도 많이 사용된다고.

이어서 중국 윈난성의 이상향 마을 샹그릴라의 알코올 도수 50도 이상의 칭커 비아주를 소개한다. 또한 저자는 그들의 술 마시기 전 독특한 관행도 부연한다. "샹그릴라 사람들은 술을 마시기 전에 치르는 관행 하나가 있다. 술잔을 받으면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약지에 술을 젹서 튕긴다. 한번은 하늘을 향해, 또 한 번은 땅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은 마주 앉은 사람을 향해 튕긴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을 하늘에 고하고, 땅에 고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첫 잔을 들이켠다. 술자리마다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기원하는 것이다."(본문 p.211)

이렇게 매 술자리 전 숭고한 의식을 치르며 술을 마시게 되면 과음도 피하고 주사(酒邪)도 감히 못 부릴 것 같다.

다음의 두 꼭지는 서양편이다. 첫 번째는 한국계 미국인 대니얼 리가 웨스트 32가에서 'WEST32'소주를 만들게 된 계기와 양조장인 '뉴욕 클리프턴 파크 내 양키증류소'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로는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두 명과의 우연한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와 아우구스티노 수도원 지하에서 파는 복비어Bock-beer를 소개한다. "복비어Bock-beer는 도수가 높고 영양이 풍부한, 수도사들의 음료였다. 맥주를 끼니가 아니라 음료로 분류했기 때문에 금식기간에도 마실 수 있었다."(본문 p.229)고. 저자는,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물이 오염되어 병이 전염되는 줄 몰랐던 시절에 물을 끓여서 만들었던 맥주는 전염병을 피할 수 있는 생명수 였다는 말도 전한다.

이번 장의 마지막도 일본이 장식했다. 가고시마의 흑초와 고구마 소주를 소개한다. "술의 종착역은 식초다.'초醋'의 한자어를 살펴보면 '술 주酒'를 뜻하는 변에 '저녁 석昔'이 붙어 있다. 술의 저녁, 술이 저물면 식초가 된다. 초산균은 알코올을 영양분으로 삼아 초산을 만든다. 그래서 술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좋은 식초도 나온다."(본문 p.231)라고 부연하며.

제4장-술로 누리다

먼저,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젊은 디자이너 테리의 초대를 받아 그의 아파트에서 열리는 '막걸리 파티'에 참석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자는 젊은 뉴요커의 파티에서는 음식에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한다.

일본 사케의 제일가는 동네로 고베의 나다를 방문하여 여러 주조장들을 둘러보았다. 그곳들은 "좋은 술맛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오랜 전통과 역사를 유지해 온 결과라는 것을 전시관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본문 p.251)고 전한다. 최근에는 세태에 따라 변하고 살아남기 위해 도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고 부연한다.

다음은 중국 저장성의 소흥에서 유명한 소흥주와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함형주점에 대한 소개를 늘어놓는다. 1894년에 창업했다는 함형주점은 1991년 작가 노신(1881~1936)의 소설 「쿵이지孔乙已」와 함께 '쿵이지' 동상도 세워져 소흥주와 더불어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전한다.

재차 일본 규수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를 소개한다. 일본에서는 곡물로 만들어진 쌀 소주, 보리소주, 메밀 소주보다도 고구마로 빚은 고구마소주의 인기가 높아 시장점유율도 높다고 한다.

이어서 맥주를 배우러 슬로베니아로 간 지인 H와 함께 이스탄불 브루펍의 페일 에일을 점유하여 슬로베니아의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을 소개한다. 또한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와인이 센 나라라고.

대망의 마지막 꼭지는 타이완 타이베이 가족여행 중, 옛 1914년 민간 회사로 방양사라는 주창이 창업해 노홍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한다. 가족들과 따로 술기행을 이어 간 작가는 "방양사 주창이 2007년 '화산1914창의문화원구'로 탈바꿈하게 되고, 시민들의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다.(본문 p.296)"고 전하며, 술에 쓰이는 홍국을 보관하는 홍국관에서 지역 특산물로 황금주가 노홍주를 팔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곳에서 "술은 개인이 만드는 게 아니라 국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등식이 있기에, 양조장이 공원이 되고 마을 장터도 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시민이나 작가들의 의견이 시혜가 아니라 투쟁과 시위의 과정을 거쳐 화산 1914 공원이 만들어진 점도 무척 인상적이었다."(본문 p.301)고 맺는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떠난 술기행의 여정을 따라 가는 내내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동·서양을 교차로 소개하는 각 장의 내용에서 동양은 주로 쌀을 주재료로한 곡주가 전통주로 자리를 잡은 반면 몽골은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젖을 발효시켜 마유주라는 독특한 술을 가정에서도 흔히 제조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적게는 3,000번 이상, 많게는 1만 5천번이나 저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술 한 병에 담기는지 새삼 느꼈다. 또 조선 시대나 유럽에서 페스트 발병 당시 약재로도 쓰이고, 생명수로도 쓰였다 하니 술도 적당히 잘 마시면 건강에 이로운 측면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현대 의학계에서는 술 한 잔도 해로우니 마시지 말라고도 하는데, 기분 좋은 사람과 즐거운 술자리는 마음의 병,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도 소개한 허준의 『동의보감』 탕액편 제1권 곡부穀部에서 술을 명쾌하게 묘사한 내용을 보면, "성질이 아주 뜨겁고, 맛은 쓰고 달고 매우며, 독이 있다. 주로 약 기운을 운행시키고 온갖 사기邪氣와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애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피부를 윤기 있게 한다. 우울함을 없애며, 화나게 하고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게 한다. 오랫동안 마시면 정신이 상하고 수명이 줄어든다. 몹시 추워도 바다는 얼더라도 술은 얼지 않으니 온갖 사물 중에 술이 가장 뜨거운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마시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그것은 술에 독기가 있기 때문이다."(본문 p.17)라는 기록처럼 말이다.

술을 사랑하는 애주가 여러분! 허시명 작가님의 세계 곳곳의 이색 술 축제와 다채로운 술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궁금하신 분은 QR코드를 꼭 눌러보시길...

본 서평은 상상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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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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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2011. 12. 23.~2012.08.17. 동안 방송되었던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당시 다큐멘터리가 6부작으로 기획되었으며 최고 시청률 14.3%까지 찍은 히트작이었다. 책을 읽으며 '다시 보기'해도 좋겠다.

이 책의 저자 '나이라 데 그라시아'는 생물학자로서, 생물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하와이의 외딴 섬을, 남극 사모아 제도, 베링해 캘리포니아 먼바다에서 6년 동안 현장 연구자로 일하며 경험한 일들을 꾸준히 글로 남겼다고. 현재 뉴질랜드 웰링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번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는 그가 살 첫 책으로, 자연 속에서 발로 뛰는 학자로 살아온 저자가 가장 가까운 다른 육지가 1,000킬로미터쯤 떨어진 남극에서 매일 펭귄을 관찰하며 보낸 5개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떠올린 것들을 담은 회고록이다"라고 앞 책날개에서 소개하고 있듯, 남극연구기지에서 펭귄들을 관찰하며 생태적 특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료 연구원들과의 일상, 자신의 선배에 해당할 남극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탐험가나 항해자의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어 자연/과학분야 도서임에도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유화로 표현된 남극 설원과 펭귄, 물개 등과 하나된 저자의 모습이 담긴 표지는 앞, 뒤가 잘리지 않고 연결되어 광활한 남극의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총 4부에서는 10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5개월의 연구기간동안 계절볂놔를 담고 있다. 북반구인 우리나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는 남반구 끝인 남극이니 계절의 순서가 다를 걸 알면서도 막상 책으로 일상을 들여다보니 낯설게 느껴지기도.

저자는 프롤로그 부분에서 "매일 밖으로 나가서 동물들을 측정하고, 그 수를 세고, 포획하고, 풀어주고, 추적하고 기록했다. 내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관찰이었다."(p.16)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1부, 봄 : 알을 낳기 시작하다

시레프곶의 모니터링팀의 저자 포함 다섯 명의 구성원 소개와 1982년에 출범한 CCAMLR, 즉 남극 해양 생물 자원 보존위원회에 대한 설명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CCAMLR에서 실시하는 생태계 모니터링 프로그램의 목표는 두 가지다. 남극 주변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파악하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어업으로 생긴 변화와 환경 변화로 생긴 변화를 구분하는 것이다."(본문 p.27)라고. 과거에는 장기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어업의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기후 변화가 CCAMLR의 생태계 모니터링에서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기후위기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펭귄을 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하긴 하지만, 물개와 고래의 무분별한 포획 사례를 고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일화로 저자가 펭귄을 들어서 옮기는 순간 맞았던 사례를 소개한다. "펭귄은 살집이 두툼하고 수영으로 다져진 매끈한 근육이 발달한 동물이다. 엄청 민첩하기도 해서, 일단 때리기 시작하면 진짜 말도 못 하게 아팠다. 특히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때 쓰는 가슴 근육으로 마구 때려대면 그땐 더 심했다. 추운 날씨 탓에 굳어버린 손에 펭귄이 날개로 후려치는 날카로운 통증이 더해지면 무척 아파서 잠시 동안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본문 p.90)라고.

2부, 여름 : 알을 깨고 나오다

11월말부터 시작되는 여름이 되자 "땅을 덮었던 눈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사우스셰틀랜드 제도는 매년 여름철 몇 달간 얼음이 얼지 않은 땅에 쌓였던 눈이 전부 녹는다. 1년 주기로 물과 눈, 얼음이 순환하는 과정의 한 단계다."(본문 p.111)라고 소개한다.

펭귄들을 알을 품느라 먹이를 먹지 못해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데다 새끼가 부화하면 먹일 입이 둘이나 늘어나므로 바다에 다녀오는 횟수가 더욱 늘어났다고. 그와 더불어 부화가 절정에 이르자 저자의 할 일도 급속히 늘어났다고 전한다. 펭귄 몸에 무선 추적 발신기 부착 후, 육지에 있는지 물가에 있는지를 기록하기, 펭귄이 먹이를 구하러 군집을 떠나 있었던 시간도 기록하기 등.

눈 녹은 산 정상에 앉아 있는 동안 저자는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오래된 질문에 그 질문에 답을 찾게 만드는 과학의 힘을 생각했다. 이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과학과 젊음의 공통점은 무지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본문 p.169)라는 생각들을 했다고 전한다.

위대한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영장류가 진화한 생물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며 숙연해진다. 늘 생태적 환경을 연구하며 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니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들었나 보다.

3부, 늦여름 : 무리 짓기에 들어가다

이번 편에서는, "부화 후 4주 정도가 지나면 부모 펭귄은 더 이상 둥지에서 새끼를 지키지 않고 군집에 새끼들만 남겨두는데, 이를 크레슈creche(새끼들의 '무리 짓기'를 의미한다)라고 한다. 크레슈 단계가 지나면 새끼의 몸에는 육지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보송보송한 털 대신 바다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진짜 깃털이 자라기 시작한다."(본문 p.189-190)고 설명하여 펭귄의 부화 이후, 새끼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생태적 특성을 기술하고 있다. 해가 바뀌어 1월 초, 저자의 캠프에 새로운 연구원 두 명과 추가 식량이 도착했다고 소개하며, 외부인들과의 접촉은 곧 바이러스, 세균과의 접촉을 의미했다"(본문 p.171)는 대목에서 'COVID-19'바이러스를 의미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어류의 내이 일부를 구성하는 작고 둥근 뼈인 이석은 어류에서 연골이 아닌 유일한 진짜 뼈라는데, 펭귄이 물고기를 먹으면 소라가 끝난 후에도 이석이 펭귄 몸에 남아 있다고. 그러므로 "이석은 바닷새의 식생활과 바다의 광범위한 생활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다."(본문 p.211)라고 설명한다. 또한, "생물종의 여러 하위종 중에서도 개체 수가 극소수인 하위 집단은 대부분 유전적 다양성인 보존되어 있다. 생물이 가진 다양한 유전자는 그 생물종의 회복력에 중요한 기능을 하므로, 그러한 다양성은 남극물개가 기후 변화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열쇠가 될수도 있다."(본문 p.224)고 전제한 후 저자는 시레프곶의 물개 하렘과의 추격전 일화를 소개한다.

또한 이번 편의 마지막은 연구 현장의 팀 구서원간의 성폭행 사례 비율을 들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기도 한다. "연구현장은 활기와 마법 같은 일들이 가득하고 영감을 일깨우는 곳이지만, 무엇보다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본문 p.239)라고.

4부, 가을 : 바다로 나가다

2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가을이 되자 식재료가 바닥나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나도 읽었던 책인 앨 프리드 랜싱Alfred Lansing의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끈 탐험대가 겪은 2년간의 혹독한 시련이 상세히 나와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소박한 우리 창고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물개 지방이나 펭귄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고 20세기 초에 장기간 탐험을 떠나던 사람들의 주식이었다는, 말린 고기와 지방을 섞어 납작한 사각형으로 만든 '페미컨pemican'만 먹고 살지 않아도 되니까."(본문 p.285)라며 위안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3월초가 되어 연구 시즌이 후반으로 넘어가는 기준은 "과학의 종료", 즉 데이터 수집이 모두 종료되는 때다. 그 즈음부터는 하루 종일 캠프를 닫을 준비를 한다고.

이번 편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해서 저자는 결론처럼 '남극과 우리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연결지어 서술한다.

"우리는 남극을 통해 기후 변화의 영향을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기후 변화도 먼 과거부터 먼 미래까지 길게 보고 인간의 생활 경계를 넘어선 곳까지 두루 살펴야 하는 문제다. 인간이 만든 체계와 서로서로 연결된 지구 생태계의 각 부분을 전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기후 변화 또한 남극처럼, 인간은 국가와 통치권의 범위를 넘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 중 하나이고 지구는 우리가 생활하고, 숨 쉬고,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집이라는 통합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본문 p.359)라고.

사흘 전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서울 6.6배' 세계 최대 남극 빙산이 하루 5km씩 빠르게 이동한다"는 보도 내용을 들었다. 순간 이 책 속 펭귄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다만 리포트의 말미에 "그러나 전문가들은 빙산이 반드시 주변 생태계에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빙산 얼음 속 미네랄 먼지들은 바다에 녹아 들어가면서 해양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유기 생물의 먹이가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연 현상은 이처럼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거대 빙산의 빠른 이동이 초래할 여러 생태 변화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통섭적 학문 연구의 대가이자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신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중략)생명이 날 것으로 퍼덕이는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언젠가 남극에 갈 용기가 난다면, 내 여행 가방에 이 책을 반드시 넣어 갈 것이다. 과학자가 생생히 보여주는 남극의 삶이 매 순간 짜릿하고 놀라운 이 책을 독자들에게 자신있게 권한다."라는 추천사로 이미 그 진가는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분야 도서라면 무조건 어렵다는 편견으로 기피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편독을 멈추고 이 책으로 과학분야도서에 입문하라.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것처럼 느리지만 힘찬 한걸음을 떼 보시라.

본 서평은 푸른숲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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