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의 세계 술 기행 - 양조장과 축제장, 명주의 고향을 찾아 떠나다
허시명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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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막걸리학교를 열어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술 평론가, 여행작가인 허시명님이 쓴 술 테마 여행을 기록한 도서이다.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간의 해독능력으로 주종을 가리지 않는 애주가이다 보니 읽기 전부터 흥분되었다.

'양조장과 축제장, 명주의 고향을 찾아 떠나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총 4장으로 나누어 주제별 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1장-술의 묘리를 보다

허준의 『동의보감』과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 기술한 하는 술에 대한 정의와 체계적 분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 술의 전통을 살피려면, 중국과 일본의 술 문화를 살피면서 한국적인 특징을 포착해 내야 한다."(본문 p.19)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래서 그런지 본문 중 일본과 중국의 술에 대한 소개와 설명에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쌀'이라는 주식으로 술을 빚는다는 유사성이 있고, 중국은 '고량高梁'(수수)이 중심이 된 바이주가 대세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 몽골이 한반도 침략시 전래되었다는 소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몽골에 방문했다는 저자는 몽골의 전통주 '아이락'과 '아르히'를 소개한다.

"몽골의 전통술로는 '아이락aиpar, airag'과 '아르히apxи'가 있다. 아이락은 동물의 젖으로 만든 발효주인데 흔히 마유주로 통한다. 그런데 꼭 마유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소, 양, 염소, 야크, 낙타의 젖을 사용하기도 한다."(본문 p.24)고 소개한다.

이어 유럽의 두 국가, 벨기에의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와 수도원 양조시설을 소개하고, 헝가리의 매년 4월 스프링 페스티벌 기간 '한국의 날 행사'에 한국 술 시음 홍보회 때 우리나라를 대표한 술을 선보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후 중국 왕희지와 그가 사랑한 소흥 난정의 유상곡수처, 소흥주를 소개하고, 일본 탁주인 도부로쿠와 도부로쿠 1호 제조장인 호호에미소의 사토 겐이치로씨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제2장-술로 뭉치다

중국의 소수민족, '묘족'이 사는 '구이저우성 천호 묘족 마을'의 신비한 손님 환영 문화를 소개한다. "술 석 잔을 받지 않으면 이 마을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이를 두고 저자는 "마을 사람들은 환영의 뜻이라지만, 손님으로서는 기선을 제압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을 손님의 마음과 몸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묘족 주민들의 전략이 분명했다."(본문 p.99)고 썼다. 그러니 술을 못 마시거나 술이 약한 사람은 절대 이 마을 관광은 꿈도 꾸지 마시라.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이고 세계 최고의 술 축제로 꼽히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 해마다 9월 셋째 주 토요일에 시작하여 10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16리 동안 진행되는데, 200년을 바라보는 전통을 지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가 막걸리학교에서 세계 술 기행단을 꾸리고 여행길에 나선 이중 '생명보험 취소 여행'을 온 은퇴교사의 특별한 제자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 기간 중 '시간 엄수'를 외치던 이 은퇴교사는 이 날 만난 30대 제자를 위해 자신의 지갑에 들어있는 현금을 모두 털어주었다는 것.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살면서 그러한 은사님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다시 한번 다짐한 순간이다. 그리고 독일의 작은 마을 바이센브룬의 맥주 박물관 소개와 맥주 빚는 체험 이야기를 통해 "단맛과 쓴맛, 구수한 맛과 곡물 향과 홉 향을 얻기 위해 단계별로 체계화된 공법이 맥주의 지나 온 역사를 보여 주고 있었다." (본문 p.126)고 쓰고 있다.

이후 세계 2위의 생산 제조장으로 성장한 칭다오의 맥주 제조장 내 맥주 박물관과 비주얼은 흡사 오줌 같아서 끔찍한 봉지에 포장해주는 원장 맥주-양조장에서 살균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 있는 상태의 신선한 맥주-를 소개한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내 평생 봉지에 담아 빨대를 끼워 파는 맥주는 못 마실 것 같다. 게다가 얼마전 뉴스를 통해 보도된 '맥주공장에 소변 보는 직원 영상'이 평생 뇌리에서 잊혀질 것 같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칭다오 맥주 등 중국산 맥주들은 아무래도 손이 안 갈 것 같다.

뒤이은 일본 니가타현의 사케노진 축제를 소개한다. 해마다 3월 두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고. "니가타 사케의 큰 특징은 단맛이나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끈적거리지 않고 담백한 맛을 추구한다는 점"(본문 p.147)이라고 하니 사케를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은 축제 티켓 예매 후 방문하시길.

제3장-술을 따라 흘러가다

황금빛 라거의 고향인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을 소개한다. "필스너는 필제너라고도 부르는데, 필제너는 '필젠(체코어로 플젠Plzen, 독일어로 Pilsen)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뜻한다."(본문 p.165)고. 언젠가 세계 맥주 묶음판매할 때 한번 사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을 계기로 한 번 더 사서 음미하며 마셔봐야겠다. 원조 라거의 맛을.

이어 중국 증류주의 대명사인 바이주, 그 중에서도 바이주이자 고량주로서 중국의 국주國酒로 꼽히는 '마오타이주'를 소개한다. "마오타이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에 기여한 개국공신의 자취를 담고 잇어서 감히 다른 양조장의 술들이 얕잡아 보거나,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본문 p.174)고.

다음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뱀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들었던 소문같은 얘기를 책 속 문장으로도 만날 수 있었다. "뱀술은 빨대로 마셔야 한다. 빨대를 목젖 가까이 대고 잇몸에 술이 묻지 않게 마시는 거다."(본문 p.195) 또한 오키나와 소주인 아와모리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아와모리는 흑국균Aspergillus Awamori을 파종하여 배양한 검은 쌀누룩을 쓰는 게 큰 특징이며, 소주나 보드카처럼 무색투명하기 때문에 칵테일 베이스로도 많이 사용된다고.

이어서 중국 윈난성의 이상향 마을 샹그릴라의 알코올 도수 50도 이상의 칭커 비아주를 소개한다. 또한 저자는 그들의 술 마시기 전 독특한 관행도 부연한다. "샹그릴라 사람들은 술을 마시기 전에 치르는 관행 하나가 있다. 술잔을 받으면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약지에 술을 젹서 튕긴다. 한번은 하늘을 향해, 또 한 번은 땅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은 마주 앉은 사람을 향해 튕긴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을 하늘에 고하고, 땅에 고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첫 잔을 들이켠다. 술자리마다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기원하는 것이다."(본문 p.211)

이렇게 매 술자리 전 숭고한 의식을 치르며 술을 마시게 되면 과음도 피하고 주사(酒邪)도 감히 못 부릴 것 같다.

다음의 두 꼭지는 서양편이다. 첫 번째는 한국계 미국인 대니얼 리가 웨스트 32가에서 'WEST32'소주를 만들게 된 계기와 양조장인 '뉴욕 클리프턴 파크 내 양키증류소'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로는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두 명과의 우연한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와 아우구스티노 수도원 지하에서 파는 복비어Bock-beer를 소개한다. "복비어Bock-beer는 도수가 높고 영양이 풍부한, 수도사들의 음료였다. 맥주를 끼니가 아니라 음료로 분류했기 때문에 금식기간에도 마실 수 있었다."(본문 p.229)고. 저자는,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물이 오염되어 병이 전염되는 줄 몰랐던 시절에 물을 끓여서 만들었던 맥주는 전염병을 피할 수 있는 생명수 였다는 말도 전한다.

이번 장의 마지막도 일본이 장식했다. 가고시마의 흑초와 고구마 소주를 소개한다. "술의 종착역은 식초다.'초醋'의 한자어를 살펴보면 '술 주酒'를 뜻하는 변에 '저녁 석昔'이 붙어 있다. 술의 저녁, 술이 저물면 식초가 된다. 초산균은 알코올을 영양분으로 삼아 초산을 만든다. 그래서 술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좋은 식초도 나온다."(본문 p.231)라고 부연하며.

제4장-술로 누리다

먼저,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젊은 디자이너 테리의 초대를 받아 그의 아파트에서 열리는 '막걸리 파티'에 참석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자는 젊은 뉴요커의 파티에서는 음식에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한다.

일본 사케의 제일가는 동네로 고베의 나다를 방문하여 여러 주조장들을 둘러보았다. 그곳들은 "좋은 술맛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오랜 전통과 역사를 유지해 온 결과라는 것을 전시관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본문 p.251)고 전한다. 최근에는 세태에 따라 변하고 살아남기 위해 도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고 부연한다.

다음은 중국 저장성의 소흥에서 유명한 소흥주와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함형주점에 대한 소개를 늘어놓는다. 1894년에 창업했다는 함형주점은 1991년 작가 노신(1881~1936)의 소설 「쿵이지孔乙已」와 함께 '쿵이지' 동상도 세워져 소흥주와 더불어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전한다.

재차 일본 규수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를 소개한다. 일본에서는 곡물로 만들어진 쌀 소주, 보리소주, 메밀 소주보다도 고구마로 빚은 고구마소주의 인기가 높아 시장점유율도 높다고 한다.

이어서 맥주를 배우러 슬로베니아로 간 지인 H와 함께 이스탄불 브루펍의 페일 에일을 점유하여 슬로베니아의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을 소개한다. 또한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와인이 센 나라라고.

대망의 마지막 꼭지는 타이완 타이베이 가족여행 중, 옛 1914년 민간 회사로 방양사라는 주창이 창업해 노홍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한다. 가족들과 따로 술기행을 이어 간 작가는 "방양사 주창이 2007년 '화산1914창의문화원구'로 탈바꿈하게 되고, 시민들의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다.(본문 p.296)"고 전하며, 술에 쓰이는 홍국을 보관하는 홍국관에서 지역 특산물로 황금주가 노홍주를 팔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곳에서 "술은 개인이 만드는 게 아니라 국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등식이 있기에, 양조장이 공원이 되고 마을 장터도 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시민이나 작가들의 의견이 시혜가 아니라 투쟁과 시위의 과정을 거쳐 화산 1914 공원이 만들어진 점도 무척 인상적이었다."(본문 p.301)고 맺는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떠난 술기행의 여정을 따라 가는 내내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동·서양을 교차로 소개하는 각 장의 내용에서 동양은 주로 쌀을 주재료로한 곡주가 전통주로 자리를 잡은 반면 몽골은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젖을 발효시켜 마유주라는 독특한 술을 가정에서도 흔히 제조하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적게는 3,000번 이상, 많게는 1만 5천번이나 저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술 한 병에 담기는지 새삼 느꼈다. 또 조선 시대나 유럽에서 페스트 발병 당시 약재로도 쓰이고, 생명수로도 쓰였다 하니 술도 적당히 잘 마시면 건강에 이로운 측면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현대 의학계에서는 술 한 잔도 해로우니 마시지 말라고도 하는데, 기분 좋은 사람과 즐거운 술자리는 마음의 병,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도 소개한 허준의 『동의보감』 탕액편 제1권 곡부穀部에서 술을 명쾌하게 묘사한 내용을 보면, "성질이 아주 뜨겁고, 맛은 쓰고 달고 매우며, 독이 있다. 주로 약 기운을 운행시키고 온갖 사기邪氣와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애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피부를 윤기 있게 한다. 우울함을 없애며, 화나게 하고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게 한다. 오랫동안 마시면 정신이 상하고 수명이 줄어든다. 몹시 추워도 바다는 얼더라도 술은 얼지 않으니 온갖 사물 중에 술이 가장 뜨거운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마시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그것은 술에 독기가 있기 때문이다."(본문 p.17)라는 기록처럼 말이다.

술을 사랑하는 애주가 여러분! 허시명 작가님의 세계 곳곳의 이색 술 축제와 다채로운 술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궁금하신 분은 QR코드를 꼭 눌러보시길...

본 서평은 상상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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