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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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2011. 12. 23.~2012.08.17. 동안 방송되었던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당시 다큐멘터리가 6부작으로 기획되었으며 최고 시청률 14.3%까지 찍은 히트작이었다. 책을 읽으며 '다시 보기'해도 좋겠다.

이 책의 저자 '나이라 데 그라시아'는 생물학자로서, 생물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하와이의 외딴 섬을, 남극 사모아 제도, 베링해 캘리포니아 먼바다에서 6년 동안 현장 연구자로 일하며 경험한 일들을 꾸준히 글로 남겼다고. 현재 뉴질랜드 웰링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번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는 그가 살 첫 책으로, 자연 속에서 발로 뛰는 학자로 살아온 저자가 가장 가까운 다른 육지가 1,000킬로미터쯤 떨어진 남극에서 매일 펭귄을 관찰하며 보낸 5개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떠올린 것들을 담은 회고록이다"라고 앞 책날개에서 소개하고 있듯, 남극연구기지에서 펭귄들을 관찰하며 생태적 특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료 연구원들과의 일상, 자신의 선배에 해당할 남극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탐험가나 항해자의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어 자연/과학분야 도서임에도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유화로 표현된 남극 설원과 펭귄, 물개 등과 하나된 저자의 모습이 담긴 표지는 앞, 뒤가 잘리지 않고 연결되어 광활한 남극의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총 4부에서는 10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5개월의 연구기간동안 계절볂놔를 담고 있다. 북반구인 우리나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는 남반구 끝인 남극이니 계절의 순서가 다를 걸 알면서도 막상 책으로 일상을 들여다보니 낯설게 느껴지기도.

저자는 프롤로그 부분에서 "매일 밖으로 나가서 동물들을 측정하고, 그 수를 세고, 포획하고, 풀어주고, 추적하고 기록했다. 내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관찰이었다."(p.16)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1부, 봄 : 알을 낳기 시작하다

시레프곶의 모니터링팀의 저자 포함 다섯 명의 구성원 소개와 1982년에 출범한 CCAMLR, 즉 남극 해양 생물 자원 보존위원회에 대한 설명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CCAMLR에서 실시하는 생태계 모니터링 프로그램의 목표는 두 가지다. 남극 주변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파악하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어업으로 생긴 변화와 환경 변화로 생긴 변화를 구분하는 것이다."(본문 p.27)라고. 과거에는 장기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어업의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기후 변화가 CCAMLR의 생태계 모니터링에서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기후위기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펭귄을 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하긴 하지만, 물개와 고래의 무분별한 포획 사례를 고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일화로 저자가 펭귄을 들어서 옮기는 순간 맞았던 사례를 소개한다. "펭귄은 살집이 두툼하고 수영으로 다져진 매끈한 근육이 발달한 동물이다. 엄청 민첩하기도 해서, 일단 때리기 시작하면 진짜 말도 못 하게 아팠다. 특히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때 쓰는 가슴 근육으로 마구 때려대면 그땐 더 심했다. 추운 날씨 탓에 굳어버린 손에 펭귄이 날개로 후려치는 날카로운 통증이 더해지면 무척 아파서 잠시 동안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본문 p.90)라고.

2부, 여름 : 알을 깨고 나오다

11월말부터 시작되는 여름이 되자 "땅을 덮었던 눈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사우스셰틀랜드 제도는 매년 여름철 몇 달간 얼음이 얼지 않은 땅에 쌓였던 눈이 전부 녹는다. 1년 주기로 물과 눈, 얼음이 순환하는 과정의 한 단계다."(본문 p.111)라고 소개한다.

펭귄들을 알을 품느라 먹이를 먹지 못해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데다 새끼가 부화하면 먹일 입이 둘이나 늘어나므로 바다에 다녀오는 횟수가 더욱 늘어났다고. 그와 더불어 부화가 절정에 이르자 저자의 할 일도 급속히 늘어났다고 전한다. 펭귄 몸에 무선 추적 발신기 부착 후, 육지에 있는지 물가에 있는지를 기록하기, 펭귄이 먹이를 구하러 군집을 떠나 있었던 시간도 기록하기 등.

눈 녹은 산 정상에 앉아 있는 동안 저자는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오래된 질문에 그 질문에 답을 찾게 만드는 과학의 힘을 생각했다. 이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과학과 젊음의 공통점은 무지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본문 p.169)라는 생각들을 했다고 전한다.

위대한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영장류가 진화한 생물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며 숙연해진다. 늘 생태적 환경을 연구하며 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니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들었나 보다.

3부, 늦여름 : 무리 짓기에 들어가다

이번 편에서는, "부화 후 4주 정도가 지나면 부모 펭귄은 더 이상 둥지에서 새끼를 지키지 않고 군집에 새끼들만 남겨두는데, 이를 크레슈creche(새끼들의 '무리 짓기'를 의미한다)라고 한다. 크레슈 단계가 지나면 새끼의 몸에는 육지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보송보송한 털 대신 바다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진짜 깃털이 자라기 시작한다."(본문 p.189-190)고 설명하여 펭귄의 부화 이후, 새끼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생태적 특성을 기술하고 있다. 해가 바뀌어 1월 초, 저자의 캠프에 새로운 연구원 두 명과 추가 식량이 도착했다고 소개하며, 외부인들과의 접촉은 곧 바이러스, 세균과의 접촉을 의미했다"(본문 p.171)는 대목에서 'COVID-19'바이러스를 의미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어류의 내이 일부를 구성하는 작고 둥근 뼈인 이석은 어류에서 연골이 아닌 유일한 진짜 뼈라는데, 펭귄이 물고기를 먹으면 소라가 끝난 후에도 이석이 펭귄 몸에 남아 있다고. 그러므로 "이석은 바닷새의 식생활과 바다의 광범위한 생활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다."(본문 p.211)라고 설명한다. 또한, "생물종의 여러 하위종 중에서도 개체 수가 극소수인 하위 집단은 대부분 유전적 다양성인 보존되어 있다. 생물이 가진 다양한 유전자는 그 생물종의 회복력에 중요한 기능을 하므로, 그러한 다양성은 남극물개가 기후 변화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열쇠가 될수도 있다."(본문 p.224)고 전제한 후 저자는 시레프곶의 물개 하렘과의 추격전 일화를 소개한다.

또한 이번 편의 마지막은 연구 현장의 팀 구서원간의 성폭행 사례 비율을 들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기도 한다. "연구현장은 활기와 마법 같은 일들이 가득하고 영감을 일깨우는 곳이지만, 무엇보다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본문 p.239)라고.

4부, 가을 : 바다로 나가다

2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가을이 되자 식재료가 바닥나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나도 읽었던 책인 앨 프리드 랜싱Alfred Lansing의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끈 탐험대가 겪은 2년간의 혹독한 시련이 상세히 나와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소박한 우리 창고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물개 지방이나 펭귄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고 20세기 초에 장기간 탐험을 떠나던 사람들의 주식이었다는, 말린 고기와 지방을 섞어 납작한 사각형으로 만든 '페미컨pemican'만 먹고 살지 않아도 되니까."(본문 p.285)라며 위안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3월초가 되어 연구 시즌이 후반으로 넘어가는 기준은 "과학의 종료", 즉 데이터 수집이 모두 종료되는 때다. 그 즈음부터는 하루 종일 캠프를 닫을 준비를 한다고.

이번 편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해서 저자는 결론처럼 '남극과 우리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연결지어 서술한다.

"우리는 남극을 통해 기후 변화의 영향을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기후 변화도 먼 과거부터 먼 미래까지 길게 보고 인간의 생활 경계를 넘어선 곳까지 두루 살펴야 하는 문제다. 인간이 만든 체계와 서로서로 연결된 지구 생태계의 각 부분을 전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기후 변화 또한 남극처럼, 인간은 국가와 통치권의 범위를 넘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 중 하나이고 지구는 우리가 생활하고, 숨 쉬고,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집이라는 통합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본문 p.359)라고.

사흘 전쯤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서울 6.6배' 세계 최대 남극 빙산이 하루 5km씩 빠르게 이동한다"는 보도 내용을 들었다. 순간 이 책 속 펭귄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다만 리포트의 말미에 "그러나 전문가들은 빙산이 반드시 주변 생태계에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빙산 얼음 속 미네랄 먼지들은 바다에 녹아 들어가면서 해양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유기 생물의 먹이가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연 현상은 이처럼 어느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거대 빙산의 빠른 이동이 초래할 여러 생태 변화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통섭적 학문 연구의 대가이자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신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의 "(…중략)생명이 날 것으로 퍼덕이는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언젠가 남극에 갈 용기가 난다면, 내 여행 가방에 이 책을 반드시 넣어 갈 것이다. 과학자가 생생히 보여주는 남극의 삶이 매 순간 짜릿하고 놀라운 이 책을 독자들에게 자신있게 권한다."라는 추천사로 이미 그 진가는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과학분야 도서라면 무조건 어렵다는 편견으로 기피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편독을 멈추고 이 책으로 과학분야도서에 입문하라. 펭귄이 뒤뚱뒤뚱 걷는 것처럼 느리지만 힘찬 한걸음을 떼 보시라.

본 서평은 푸른숲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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