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 삶을 지키는 나만의 방패 어른의 무기 시리즈 1
부아c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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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일정한 단체나 기관에 딸림. 또는 그 딸린 곳'이라고 한다. 또한 '소속감'은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러니 소속이 없다면 소속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터.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기질적으로 꼭 '소속'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통일감, 일체감 같은 단어에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잠깐씩이지만 직장 생활도 하려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과 소소한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더 열정적으로 독서와 글쓰기에 빠지다 보니 독서모임에도 하나둘 참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만 2년 전부터 '커뮤니티'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나와 같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 『회사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이 책의 저자, 부아 c 님은 '누적 조회 수 800만 화제의 네이버 블로그 운영자'다. 5년 동안 거의 매일 블로그에 부와 삶에 관한 글을 써 오고 있다고. 대기업에 다니며 임원을 꿈꾸던 직장인이 어느 날 허리 디스크와 공황장애로 '건강을 잃고 나서야' "회사에서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난 7월, 『아빠와 딸, 조용히 서재로 숨다』(친절한 기훈씨, 미다스북스, 2025)의 저자 '친절한 기훈씨'의 북토크에 갔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었다. 온몸을 불사르며 열심히 일하다 어느 날 출근길에 현관에서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 신세를 진 후에야 퇴사를 결심하게 된 사연이었다. 나만 힘들고 뭔가 정도(正道)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찾아보면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총 176쪽 분량의 포켓북 사이즈인 이 책은 한 손에 들어오며 큰 외투 주머니에는 쏙 들어가서 만원 버스나 전철에서도 언제든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꺼내지 않아도 손쉽게 꺼내 읽기에 좋다. 평소 독서력이 탄탄한 독자의 경우에는 2시간 이내에도 완독이 가능할 듯하다. 총 3장에서 '회사 생활의 고충과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한 이야기로 몰입감을 높여줘 술술 읽힌다.


이 책은 어쩌면 짜임새 있는 2박 3일 워크숍 강의 자료로 쓸 수도 있는 한 편의 묵직한 PPT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목도 직관적이고 '삶을 지키는 나만의 방패'라는 부제도 퇴사 이후의 막막함이 두려워 천근만근한 하루하루를 버티는 많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더는 버티는 삶을 살지 마라" 또는 "무작정 퇴사하지 말고 퇴사 이후의 삶을 꼼꼼하게 계획하라"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는 주제로, 현실이 너무 힘들다며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곳 6가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와닿았다.

1. 술을 자주 마신다

2. 주말에 잠만 잔다

3. 주식 투자(단타)를 한다

4. 이민을 꿈꾼다

5. 밤늦도록 영상을 본다

6. 회사를 그만둔다

본문 p, 93-96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은 '2장, 회사는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라는 장의 두 번째 이야기, '대기업 직장인의 퇴장 시나리오'였다. 만 50세인 나의 배우자가 처한 현실과 매우 유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미 한 번의 대량 해고의 희생양이 됐던 터였다. 현재 직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기업 종사자다. 저자는 "일반 대기업 직장인들은 40대가 되면서 하나둘씩 회사에서 밀려납니다. 저도 그런 케이스고 제 주변에 동기, 선후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p.74)라는 말로 포문을 열고는 '회사에서 밀려나는 5단계 과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1단계. 승진에서 누락되기 시작한다

2단계. 후배가 상사가 된다

3단계. 낮은 고과를 받기 시작한다

4단계. 업무와 근무지가 바뀐다

5단계.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본문 p.75-78

위 과정의 5단계 중, "대부분 3단계나 4단계에서 회사를 나오는데, 5단계까지 가는 사람도 있고, 보통 5단계가 되면 회사는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사용합니다."(p.78)라는 부연 설명을 통해 다시 한번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마 전 배우자가 겪은 일이고 아직까지 진행 중인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회사로부터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당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었으니, 아프겠지만 신랑에게도 읽어보기를 권해야겠다. 어쩌면 화를 낼 수도 있다. 내가 맞벌이로서 가계에 보탬을 줄 수 있다면 지금과 달리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을 텐데, 나의 무능함 때문일 수도 있기에.

에밀 아자르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에서도 주인공 '모모(모하메드)'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고통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젠장, 다들 그러려고 결혼을 하는 거래요."라고. 그렇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든 고통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은 정답이 없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이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혹시 지금 회사 생활이 힘들어 퇴사를 결심한 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시라. 퇴사를 결정하기 전 최소한 퇴사 이후에 주어지는 '시간·장소·관계 선택의 자유'를 누릴 경제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명심하자. "자유에도 준비가 필요하고, 책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p.164)

본 서평은 '블랙피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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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 삶을 지키는 나만의 방패 어른의 무기 시리즈 1
부아c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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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직관적이고 ‘삶을 지키는 나만의 방패‘라는 부제도 퇴사 이후의 막막함이 두려워 천근만근한 하루하루를 버티는 많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더는 버티는 삶을 살지 마라" 또는 "무작정 퇴사하지 말고 퇴사 이후의 삶을 꼼꼼하게 계획하라"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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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핑계는 천문학이야 - 일상의 모든 이유가 우주로 통하는 천문대장의 별별 기록
조승현 지음 / 애플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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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조승현 님은 책날개에서 "별빛이 흐드러진 곳에서 나고 자라 천문학을 전공했다."고 밝히며, 현재는 '구리어린이천문대'의 대장이라고 소개한다. 아이들에게는 '쪼쪼샘'으로 불리우며 어린이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친다고.

"글은 우주와 일상을 연결하는 또다른 망원경이다."라고 한 작가에게 "아이들은 우주"란다. "언제나 새로움과 경이로움으로 넘쳐나는, 설레는 우주."

작가님의 친필 사인본은 언제나 영광스럽다. "우주에 살아가는 멋진 사람에게-"라는 사인글을 적어 보내주셨다. 속표지를 지나 저자에게 보내는 힘찬 응원의 추천사 페이지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에 "우리가 본 별들처럼, 우주의 한 편에서, 우리의 삶도 계속 반짝이기를."이라는 문구가 이미 마음을 설레게 한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목차에서, 천문학 전공자로서 여러 경험을 중심으로 '별을 제대로 보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는 최대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설명해 두었다. 특히 내지는 비코팅지를 사용한 듯 한데도 적재적소에 실려있는 사진은 독자로 하여금 절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는 감성을 자극한다.

1장, 천문학으로 허세부리기

본문 내용 중, 글쓰기를 좀 더 잘하려고 최신식 고급 장비까지 갖추는 대목에서 나와 동질감이 느껴져 "그렇지!"라는 탄성과 함께 절로 잇몸 만개하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커피 머신과 모카포트를 동시에 소유하고, 일터에서는 윈도우 노트북을, 집에서는 맥북을 사용한다. 지속적으로 버리고 최소한만 소유하려는 미니멀리스트와는 정반대다. 무언가를 구매하고 소비하는 순간, 나는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소비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것을 얻으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신선한 경험을 위해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것이라고 뻔뻔하게 핑계를 대본다. 자고 일어날 떄마다 머리도 한 움큼씩 빠지는 주제에 틀린 말이 없다는 옛말도 외쳐본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됩니다!

본문 pp. 68-69

지당하신 말씀이다. 나도 무언가 해보려고 하는데 필요한 물품이 없으면 짜증부터 난다. 급히 인쇄를 해야 하는데, 토너가 '매우 부족'하고, 펜으로 노트에 필사를 하는데 틀린 글자를 감추어 줄 수정테이프가 없을 때와 같은 경우다. 정작 분노의 대상은 갑자기 부족하거나 없어진 물품이 아니라 미리 재고 파악을 해두지 않은 '나'여야 하는데도 말이다.

2장, 천문학으로 핑계대기

이번 장에서는 우주 입장에서 보자면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지만, 각자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의미있는 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 "아이들이 우주"라던 저자의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와닿았다.

별이 태어나는 곳이 성운도, 별이 수천억 개 군집한 은하는 별똥별 앞에서는 그저 마른 자질이 된다. 빛을 잃고 누군가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밤하늘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배운다. 천문학적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 꼭 마음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게 되는 데는 이유도 중요하고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저 예뻐서일 때가 더욱 강력하다. 빛을 내며 떨어지는 모래 알갱이가 수억 배 더 큰 별들보다 환영받는 것처럼.

본문 p. 109

그렇다. 그냥 내 눈에 예쁘면 남들이 뭐라 해도 예쁜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으면 그 여정은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이 정한 기준에 따르지 말고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며 살면 된다는 것.


3장, 천문학으로 위로하기

천문대 강사인 저자는, 저녁에 일을 해서 주로 밤 12시에 퇴근을 한단다. 피곤할 법도 한데 야심한 시각의 고요가 좋다는 저자는 '다큐멘터리 <지구의 밤>시리즈'를 인상 깊게 본 생생한 장면을 별처럼 아름다운 표현으로 묘사했는데, 공포의 스산함이 낭만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해가 붉은 빛을 뿌리며 땅 아래로 사라지자 곧장 어둠이 찾아온다. 손톱만큼이라도 빛을 뿜던 달마저 사라지자 포식자들이 몸을 펴기 시작한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 사냥감들이 의지해야 할 것은 초감각뿐이다. 불만감이 생존의 무기인 것이다. 귀를 쫑긋 세워 듣고, 발바닥에 전해지는 진동을 느낀다. 포식자의 걸음이 가까워져 온다. 이질적이게도 그 위로는 수천 개의 별들이 쏟아질 듯 하늘에 매달려 있다.

본문 pp. 176-177

4장, 천문대장의 요일들

천문대 직원들의 정기적인 해외 연수와 개인적으로 별을 찾아 떠났던 이야기와 인간의 우주 탐사에 대한 무한 인간의 노력 등을 소개하였다. 이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천문학 연구에 대해 소신을 밝힌 부분이 인상적이다.

천문학은 '국방'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방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다. 남과 북은 휴전 이후 한 번도 전면전을 벌인 적이 없지만, 군비 지출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예산의 약 10%가 국방 예산으로 쓰일 정도다. 언제라도 수백 발의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발로도 지구를 전멸시킬 수 있는 소행성에 대해서는 몹시 관대하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우주의 재앙에게만 갖고 있다. 당장 탱크를 살 돈으로 망원경을 사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극히 일부의 비용이라도 전 지구적인 재앙과 위험을 인식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인류의 과학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화성에 가는 일은, 더 나아가 우주를 탐구하는 일은 지구를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지구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 험난한 여정의 일환으로, 바퀴 여섯 개 달린 로봇이 화성으로 향했다.

본문 pp. 240-241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 정부의 이공계 예산 삭감 문제를 비판하는 듯 보인다. 저자의 말처럼 한 국가의 국력은 역시 막강한 군사력으로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의 군사력은 과거처럼 단순히 총,칼로 무장한 강인한 군인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첨단 무기 및 장비도 필수다. 이 중 미리 적(국)의 움직임을 파악할 첨단 장비들이 천문학 기술 분야인가 보다. 문과생인 나로서는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모쪼록 다음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이 국력"임을 깨달아 이공계 분야 연구원들의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라본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동안 '올빼미형'인간으로 쌓았던 내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미라클 모닝'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새벽에 일어나고 있으나 다시 잠드는 날도 많아 문득문득 회의가 들었었는데, 참 와닿았다.

때때로 성실이란 어려운 순간을 버텨 내야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마침 같은 순간 말이다. (중략)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을 수도 있지만, 늦게까지 벌레를 잡는 새도 꽤 배부르게 살고 있지 않을까?"

본문 p. 184

맞다. 어릴 적 근면과 나태의 전형적 인물로 비교되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개미도 그저 모으기만 하고 쓸 줄 모르다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결국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였을수도 있고, 열심히 노래만 하던 베짱이는 그 재능을 알아봐 준 기획사를 만나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여러분도 자신이 꼭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자책하진 마시길. 나도 아들을 좀 더 기다려 주어야겠다. 아직은 얼만큼 화려하고 튼튼한지 모르는 날개를 접고 있는 나비일수도 있으니.

본 서평은 애플북스 출판사와 조승현 작가님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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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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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쇄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이번 책은 특별히 내게 더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암'이라는 완치가 불투명한 질환에 걸린 신경외과 의사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를 대략 8년 전쯤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는 책날개에 저자인 폴 칼라니티가 이번 책은 면지에 작가소개와 추천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100쇄 기념 한정판은 별지로 책날개가 없어 훨씬 보관에도 편리하다. 또한 이중 커버없이 출간되어 도서관에서도 실물 그대로 만날 수 있겠다. 도서관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내가 자주 찾는 도서관은 대체로 겉싸개 표지가 있는 양장본의 경우 겉표지를 벗긴 상태로 서가에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저자는 문학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인간 생물학 학위 과정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단다. 평소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본문 p. 52)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건 8년 전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8년 전 그의 이야기를 처음 읽고 서명을 썼을 때의 열정과 에너지가 식어버린 내가 변했을 뿐, 당시에는 지금처럼 서평 응모를 많이 하지도 그만큼 당첨율도 낮았다. 게다가 그때는 아이가 초등생이어서 주로 그림책 서평단 활동을 할 때여서 지금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책을 읽고 쓸 수 있었다. 책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하면서도 그저 내게 그 일들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뿌듯함도 느꼈다.

이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도 뿌듯함을 넘어 신경외과 전문의로서의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폐암 투병 중에도 급한 불만 꺼가며 환자들을 돌보며 수술과 처치를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부러웠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심취한 영문학도이면서도 아버지, 삼촌, 형이 모두 의사일 정도로 의학도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결국 의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다니, 말 그대로 '창의융합형 인재가 아닌가. 나는 좌, 우뇌가 심각하게 불균형인지 간단한 수식(數式)만 봐도 어지러운데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유형이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가 공저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제목처럼, '뇌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한 존재가 아닐까.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삶이라기엔 너무 열정적, 헌신적으로 살다간 닥터 폴. 의사로서 지녀야 할 삶의 태도를 기술한 부분은 이 땅의 모든 의사들의 엄중한 일상의 무게가 느껴져 숙연해졌다.

p.141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 봄부터 '의료개혁'이란 명목하에 갑자기전국의 의과대학 정원을 2천 명 늘려야 한다'는 무리한 정책을 추진했다. 전공의들은 총파업을 선언하고 미온적인 정부의 협상 태도에 결국 집단적으로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이후 진료를 제때 못 받는 사례가 점차 늘어가더니 급기야 응급실을 전전하다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환자도 다수 발생했다. 그렇게 각자가 건강을 챙기며 살얼음판을 버텨가던 계절을 지나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 속 날짜들을 아쉬워하던 12월 3일, 대한민국의 통치자는 헌법상 부여된 국군통수권을 '자신만의 이상 국가' 건설'을 꿈꾸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스스로 헌법상 내란죄의 우두머리가 되어 군을 동원했다. 서울 한복판 국회의사당에 탱크와 장갑차, 헬기가 나타났다. 심지어 '포고령'이라는 문서의 마지막 항목에는 "의료 현장으로 미복귀한 의료진들에 대해서는 처단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다. 국회의결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긴 했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확정 판결로 '탄핵 선고'가 된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도 극우 지지층에 기대어 내란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폴이 우리나라 의사였다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뭐라고 할 것인가.

신경외과 의사이기도 하면서 폐암환자였던 닥터 폴은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본문 p.198)라고 말했다.

그렇다. 의사가 환자를 위한다고 그저 희망 섞인 말로 병의 진행경과를 속인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떠나가는 비극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이 책의 서평을 쓰며, 첫 느낌이 주는 강렬함을 잊을 수 없어 자꾸 '자기표절'의 유혹을 느꼈다. 8년 전 내가 썼던 서평을 차용하고 싶었던 것.

그럼에도 표절이 아닌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콘셉트의 뒷표지에 기재된, 시인이자 의사인 마종기님의 추천사는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습관적으로 속독을 하지만 이 책만은 도저히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아껴 좋은 작품만 골라 읽는 사려 깊은 분에게 이 책을 조용히, 그러나 정성스럽게 추천한다."


이번 100쇄 기념 한정판은 이중 커버없이 출간되어 도서관에서도 실물 그대로 만날 수 있겠다. 도서관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내가 자주 찾는 도서관은 대체로 겉싸개 표지가 있는 양장본의 경우 겉표지를 벗긴 상태로 서가에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이 죽을만큼 힘들다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어보시라. 이 책의 닥터 폴처럼 중병에 걸리면 어떨지 생각해보시라.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

본 서평은 흐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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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흔의 생존 쓰기 -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글쓰기의 힘
변한다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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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다'라는 필명부터 강한 의욕을 드러내는 저자는, <낀 세대 생존법>(공저),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에 이에 세 번째 '생존' 시리즈인 <불안한 마흔의 생존 쓰기>로 돌아왔다. 직전 작품인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는 내가 주력하고 있는 글쓰기 분야인 '서평'을 엮은 에세이다.


이번 책은 '꾸준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작가에겐 실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전체 구성은 전작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와 상당 부분이 유사하다고 느꼈다. '생존 시리즈'여서 저자의 필살기를 공개하려다 보니 그랬으리라. 앞표지 하단에 쓰여 있듯, '읽고 쓰며 변화하다'라는 주제에 부합한 글이다.


많은 글쓰기 비법을 풀어낸 도서들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총 4장에 걸쳐 독자에게 술술 읽히는 글을 지치지 않고 써내려갈 수 있는 요령을 풀어 냈다.

속지의 싸인펜으로 흘려 쓴 사인은 출간이 익숙한 기성 작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실제 저자보다 조금 더 나이 든-전작에서 이미 대충 셈을 해봤기에-나는 고작 POD출판으로 공저 시집 두 권 출간한 게 전부다. 카피처럼 인상적인 한 문장. "깜깜하고 어지러운 세상, 나로 오롯이 서는 법 '쓰기'". 이미 이 책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다.

본문에 인용된 도입부의 문장들도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작가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장치다.아무리 잘 쓰여진 책들도 특별히 눈이 번쩍 뜨이고 자꾸 입 속으로 되뇌는 구절이 있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직장생활 중 든 감정을 적은 문장인 듯한데, "대안 없는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책임질 일이 없는 비판은 너무 쉽습니다."(본문 p.140).
비단 직장 내에서만 적용되는 문장이겠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 전반에 이러한 평가와 비판은 흔하다. 방송 토론에 나와서 서로 상대편만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정치인들의 입, 암울한 경제 지표를 들이대며 대안 없는 평가만 늘어놓는 경제 전문가들을 그동안 숱하게 봐왔다. 저자는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라며, "결국 글쓰기는 정도와 선을 지키며 배려와 소통을 중요시하는 일입니다."(본문 p.141)라고 강조한다. 독자의 생각과 고민을 반영하여 명확한 표현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독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단다.

내겐 한없이 어렵기만 한-고치기 쉽지 않다-'문장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아무래도 메모하여 부적처럼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 두고 주문처럼 외웠다가 글 쓸 때마다 적용해야겠다.이 책을 읽고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별도로 글상자 편집의 '글쓰기 노하우'가 아닌 '습관'과 '루틴'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그동안 '그냥 습관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루틴'이라는 영어 표현을 왜 쓰지?'라고 생각했던 내게 '무식함'을 일깨워 주었다.

p. 219 언제부터인가 습관보다 자주 쓰이는 말, 바로 루틴. 여러분은 습관과 루틴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반복적이라는 공통된 분모가 있지만, 그 차이는 바로 '의도'에 있습니다. 습관은 알람 없이도 오전 6시에 자동으로 눈을 뜨는 것을 의미하고, 루틴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경우, 습관보다는 루틴이 더 적합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새벽 기상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매일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뜨면서도 '습관'이라고 우겼는데, 지금 보니 '루틴'이었던 것이다. 글쓰기는 루틴 조차 지키지 못햇다. 이미 지난 12월 중순부터 온라인 글쓰기 100일 챌린지의 새로운 기수 활동이 시작되었는데도 아직 매일 글쓰기 루틴을 지키지 못하고 방황 중이다.

작가가 '필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언급한 내용은 감히 필력 운운하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글쓰기는 내 생각의 발견을 손으로 한 자 한 자 옮기는 과정입니다. 필력을 갖는 것은 어쩌면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 한 자 한 자 옮기는 과정입니다. 필력을 갖는 것은 어쩌면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 말문이 터지는 과정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정도는 없지만, 지름길 또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간을 내어 공들여야 하고, 그 노력을 당연한 상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본문 p.226)라는 것.

이 책은 술술 읽히지만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제법 묵직하다. 저자가 강조하듯, 나는 '간절함'이 없어서 영감도 잘 안 떠오르는 것일까? '브런지 작가' 승인을 받고나서 설레는 마음에 습관처럼 올리던 글을, 이제 브런치스토리팀의 독촉을 받고서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책의 부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글쓰기의 힘'이 필요한 글쟁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 휘리릭 읽으면서도 잠깐씩 시선을 멈추고 곱씹게 되는 '변한다' 작가의 글맛을 느껴 보시길. 따로 본문 속 인용 도서들을 부록편으로 구분해 실어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운대로 '책 속의 책'을 읽는 기분으로 메모해두고 찾아 읽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본 서평은 '변한다' 작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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