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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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금정연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난폭한 독서>(마음산책, 2015)를 읽으면서 였다. 서평으로 책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후 그의 또다른 작품이 궁금해서 찾아 읽은 책이 <書書飛行서서비행>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직접 쓰고, 번역도 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숨 쉬듯 매일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의 근력을 기르자'는 주제를 담은 금정연 작가의 일기이다. 작가는 겸손하게 '일기日記'라고 하였으나, 내가 느끼기엔 '독서일기'라고 칭하고 싶다. 매 꼭지마다 낯선 작가들의 일기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고교독서평설》의 새로운 연제 제안에, 한 달에 한 번 일기를 공개하는 형식으로 2년 동안 완성한 원고라고 한다. 구체적인 원고 완성 과정까지 친절하게 공유해주었다. "매달 초 나는 내가 지난달에 쓴 일기(그때그때 다르지만 대충 원고지 800매에서 1,500매 사이)를 훑어보며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을 골랐다. 그렇게 200~300매 내외의 일기를 추린 다음, 그것을 다시 살피며 하나의 원고로 묶을 수 있을 만한 조각들을 엮어 25매 내외의 원고를 만들었고, 여기에 같은 달에 남이 쓴 일기의 일부를 넣었다.(내 생일이 있던 달만 제외하고, 그때 나는 다른 작가들이 자기 생일에 쓴 일기를 찾아 인용했다.). 짜잔, 완성!"(p. 6)이라고.

작가는 일기에서 딸 나윤의 이야기가 8할을 차지하는 딸바보다. 나머지 분량은 원고 마감일에 쫓겨 괴로운 심경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게다가 작가가 일찍 잠들지 못하는 번민을 토로한 부분에서는 올빼미족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나와 어쩌면 그리 같은 생각을 하는지, 나도 모르게 "맞아. 나도 그래"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잠을 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적당한 시간에 자러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초조함과 불안과 아쉬움, 뭐 그런 것들 때문이다. 오늘이 만족스럽고 내일이 기대되고, 이렇질 않으니 선뜻 자러 갈 수가 없는 거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으로 자러 가고, 눈을 뜨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본문 p. 211-212)라고.

나도 그렇다. 매일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오늘이라도 늦게까지 깨어서 그날의 과제를 다 마쳐야겠다는 자기 반성이 밀려와 도저히 일찍 잠들 수 없는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전세계 유명 작가들도 글쓰기의 고통을 토로하는 내용의 일기를 많이 썼나 보다. '겨울'로 시작하는 목차상 이어지는 봄에 소개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에서 실비아는 "1959년 3월 9일 월요일에, "글쓰기 이외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소망. 유일한 직업으로 작가를 택하는 건 불가능하다. 너무 메마르고, 너무 자주 고갈이 찾아온다."(본문 p. 64)라고 썼다고. 작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실비아는 어느 날, "한꺼번에 다 하겠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게 겁나는 일이다. 소설이 그렇듯. 시험이 그렇듯. 하지만 한 시간씩, 매일 하루씩 해 나가다 보면, 삶도 가능해진다."(본문 p. 66)고 하여 매일 꾸준하게 한 시간씩이라도 꾸준히 쓰다 보면 삶이 된다고 강조한다. 금정연 작가도 매일 뭐라도 쓴 일기가 책 한 권의 원고가 되었음을 제목과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인용문과 관련하여 출판사가 저작권 보호에 힘썼음을 당당히 밝히고 있어 신뢰할 만하다.

20대 때, 30대 때 마음이 동할 때마다 일기를 쓰곤 했었다. 학창시절에 지겹도록 선생님께 검사 맡기 위한 일기가 아닌 나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진짜 일기' 말이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의 김신지 작가도 자신의 책에서 일기를 써오신 어르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기록이 그분의 인생이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 금 작가님께 시샘이 발동했다. 일기를 이렇게 폼나게 쓰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나같은 평범한 글쟁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일기를 쓰란 말인가. 이미 유명 작가니까 일기만 써도 책 출간을 해주지, 나 같은 일반인이 일기를 써 모았다며 원고랍시고 출판사에 투고를 한들 선뜻 출판제의를 해올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술술 읽힌다. SNS 하나쯤 이용하시는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이제부터는 일기도 정성스럽게 꾸준히 올려보자. 혹시 아는가. 이미 명성을 쌓은 작가보다 조금은 어설픈 듯하지만 진솔함이 담뿍 느껴지는 글을 인정해주는 출판사를 만날지.

본 서평은 북트리거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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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안쪽 - 속 깊은 자연과 불후의 예술, 그리고 다정한 삶을 만나는
노중훈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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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삼성에서 보름 남짓, 여행신문에서 2년 반 정도'의 직장생활을 경험한 이후 줄곧 여행작가로 살고 있다는 노종훈님이 쓴 책이다. 2014년 11월부터 MBC라디오의 주말 프로그램인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2월부터 KBS춘천방송총국에서 제작하는 <이스트라이프 시즌2>의 진행도 맡고 있다고.

제목과 딱 들어맞는 표지는 아마 본문 초반부에 소개된 '독일 블랙포레스트'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저자는 총 319쪽의 내용에서 끊임없이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며 읽게 만든다. 여행도서들의 특성상 시각적 요소인 사진과 그 여행지에서 느낀 작가의 감흥을 간접적으로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은 사진과 함께 지어낸 문장들에 순수 우리말로 당시의 생생한 감성을 전하고 있다. 눈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고 입으로 발음해보면서 새로운 어휘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총 4부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대륙을 오가며 풍경과 예술,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단순한 여행일지를 한 단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뒤표지에 자주 협업한 '노중훈은 여행 그 자체다'라는 박찬일 음식평론가의 추천사가 인상적이다.


'1부-압도의 풍경'편에서는, 주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경관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구아수 폭포'는 포르투갈어로 쓰는 브라질과 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 및 파라과이의 접경지대에 자리한다. 그중 백미인 '악마의 목구멍'도 소개하는데, 그 명칭 때문일까. 폭포의 물줄기가 장엄하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진다.

또한 각종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미국 유타주 남동쪽 끄트머리의 모뉴먼트 밸리는 "황량하고 장엄했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2008년 대지진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백과 두보를 떠올리게 하는 두보초당과 유비와 제갈공명을 만나는 사당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석불인 러산대불 등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쓰촨은 매운 맛 요리가 발달했다고 한다.

이 부의 마지막은 타이타닉의 비극을 간직한 도시로, 희생자 121명이 영면하고 있는 페어뷰 공동묘지가 있는 핼리팩스와 몸길이가 30~60ft인 혹등고래의 출연이 잦은 펀디Fundy만의 아나폴리스Annapolis 유역 서쪽의 딕비를 소개하고 있다. 고래의 꼬리만 보아도 녀석의 거대한 체구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2부-느림의 풍경'편은, '명상'의 나라 인도의 케랄라Kerala주의 여러 도시를 소개한다. 동ㆍ서양이 갈마들었다는 코치Kochi를 비롯하여, 케랄라 남쪽 끄트머리의 휴양지 코발람Kovalam까지. 기원전 600년 경부터 내려오는 힌두교의 전통 치료법인 아유르베다를 체험했을 때는 몸 전체의 세포들이 하나씩 깨어나는 느낌이었다고 전한다. 다음은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에서의 9일간의 여정을 소개한다. 몰타Malta섬의 해안가 도시 슬리에마Sliema를 시작으로 현 수도인 발레타Valletta를 조목조목 둘러 보고, 어촌 마사슬록Marsaxlokk을 거쳐 서북쪽의 뽀빠이 빌리지Popeye Village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고. 또한 두 번째로 큰 섬인 고조Gozo와 가장 작은 섬인 코미노Comino의 "세밀한 표정과 장쾌한 풍경"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에메랄드 빛'이라는 상투적 표현 대신 저자는 "몰타 섬에서는 고조섬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 위에서 바라본 지중해는 더할 나위 없이 푸르러서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본문 p.114)라고 표현했다. 이어서 동유럽 국가 중 슬로베니아의 여정 중 '블레드 섬'이 특히 인상적인데,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모마리아승천성당'을 위한 무대"라고. 세계 각지의 행복하게 게으른 여행자들이 모여든다는 '피란'의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뒷모습도 여유로워 보였다. 내륙국 코소보와 아드리아해를 서쪽에 두른 알바니아는 민족과 언어가 같지만 자연환경에서 대차게 갈린다고 소개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도시로서의 변모를 갖춘 발칸 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로마시대 원형극장을 언급한다. 발칸 반도의 총성이 다시는 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이 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셰이셀은 115개의 섬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세이셸은 1498년부터 프랑스인이 정착해 살았고,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탓에 프랑스어와 영어도 통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세이셸 전반에 걸친 '혼성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인 '크레올Creole'어가 주로 쓰인다. 크레올은 사실 서인도제도에 정착한 유럽인의 후속 혹은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을 뜻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국립공원인 발레 드 메이에는 오직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코코 드 메르'Coco de Mer(바다의 코코넛)' 나무가 6,000여 그루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한다. 수나무 열매는 남자 생식기관을, 암나무 열매는 여자 엉덩이를 닮았다. 열매의 무게가 무려 25kg에 육박한다고. 실제 사진으로 보면 정말 실감난다.

'3부-예술의 풍경'편은 역시, 예술하면 유럽인가 보다.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의 각 예술도시를 소개한다. 먼저, 2,0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발렌시아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가 세상의 빛을 보면서 관광객 유입이 늘어 서비스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다음은 네덜란드 버금의 도시이자 유럽 최대의 무역항인 로테르담을 소개한다. '다시 만들어진 도시, 환골탈태의 도시, 상전벽해의 도시'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1940년, 6일간 이어진 독일 나치의 공습으로 도시의 80%가 폐허로 변한 로테르담의 전후 복구는 복원이 아니라 창조에 가까웠다고. 이어서 우리에게는 퍽 생소한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의 마르케Marche를 소개한다. 그중 중요도시 우르비노Urbino는 성모화의 대가 '라파엘로Raffaello'의 고향이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짝 꽃을 피운 도시라고.

프랑스는 역시 여행에서 예술과 와인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든 것 같다. 먼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에서는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폴 세잔Paul Cezanne'이 일생을 보낸 도시, 엑상프로방스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 관련 있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중 하나로 선정된 '루르마랭'을 소개한다. 또 고흐가 한 해동안 지내며 최후의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생레미드프로방스의 생폴드모졸Saint Paul-de-Mausole을 소개한다. 이어서 와인의 메카, 아키텐을 소개한다.

'4부-사람의 풍경'편에서는,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버마로 더 익숙한 미얀마에서 삼가는 마음으로 불교의 나라를 순례했다는 저자는 "미얀마 사람들의 가공되지 않은 삶의 풍경이었다."(본문 p.241)고 세계 최고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여정을 풀어내고 있다. 미얀마의 수도를 역임했던 양곤과 그로부터 약 80km거리에 있는 바고의 관광지를 돌아보았다. 다음은 9,5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레벤트 협곡 일대와 래프팅과 트레킹 명소로 알려진 다렌데Darende의 토흐마Tohma협곡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전설이 서린 샨리우르파 도처를 둘러 본 동선을 소개했다. 이어서 '내전', '인종청소'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맨처음으로 떠오르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Pistina에는 국민들의 약 90%이상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상황에서 도시 한복판에 10년의 공기를 들여 도시 한복판에 '마더테레사성당'이 굳건하게 서 있다고 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그라차니차Grancanica 수도원을 소개한다. 이 국가를 표현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코소보에는 '적도 재워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내 집 찾아온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는 환대의 정서가 강하다. 심지어 이런 표현도 있다. '내 집의 소유주는 첫째가 선이고, 둘째가 손님이며, 셋째가 나 자신이다'라고. 이 외에 예로부터 뛰어난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히는 자코바도 코소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다음으로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카페와 시장과 디자인을 질료삼아 이어지는 여유로운 일정을 소개한다. 건물 하단부에서 최고층에 이르기까지 90도로 뒤틀려 있어 꽈배기를 연상시키는 '칼라트라바'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부의 마지막 꼭지인 그리스의 3대 관광지 산토리니, 낙소스, 아테네를 소개하는 여정이다. '사람의 땅'이라는 소주제로 '신들의 나라'를 소개하는 반어적 기법이 백미다. "가보니 제우스를 비롯한 신화 속 제후들이 그리스 관광자산의 거의 모든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마음 밭에 밟혀드는 것은 초인간적인 신들이 아니라 지표면에 두 발 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영위하는 지루한 일상이었다. 그리스도 결국 사람의 땅이었다."(본문 p.303)라고 표현한 것이다.


많은 여행작가들이 단순히 풍경만을 열거하는 소개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장엄하고 다채로운 경관에 녹여내어 표현한다. 각각의 결이 다른 그들의 발자취를 보며 에세이스트로서 한 분야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 만난 노중훈 작가는 '풍경의 안쪽'이라는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 겉보기에서 보여지는 외관만이 아닌 풍경 속에 담겨진 역사, 문화 생활상을 풀어냈다. 여느 여행도서보다 좀 더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어휘사전을 들춰보며 의미를 되새겨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하고 있다.

최근 각종 이색적인 독서법의 유행과 더불어 '필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필사 모임들도 활발하게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풍경의 안쪽>의 여러 문장들도 필사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예를 들면, 북유럽 오로라를 마주한 심경을 "하들하들한 밤안개와 총총한 별들이 힘을 합쳐 내뿜는 광채 때문에 쉼 없이 옷깃을 파고드는 높바람 속에서도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3층 테라스를 벗어날 수 없었다."(본문 p.30)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기저기 주옥같은 문장들을 소금처럼 흩뿌려 놓았다. 그러고보면 상상출판사의 작가 섭외력도 대단한 것 같다. 나의 어줍잖은 수준이긴 하지만, 글쓰기에 관심있는 문장 수집가라면 꼭 한 번 책 속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필사하며, '나도 언젠가는 저자보다 더 아름답고 가슴에 남는 문장을 만들거야.'라는 결기도 다져보자.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던 유명 시인의 말처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독자들의 시선이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가슴떨림을 느낄 수 있도록.

본 서평은 상상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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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수학 - 어느 사랑의 방정식
권미애 지음 / 궁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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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미애님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무 한소'라는 필명으로도 활동중인 현직 수학강사이다. 새벽 기상과 독서 모임 참여, 글쓰기 루틴을 삼 년째 실천중이라고 한다. 뭐든 습관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하시다 과거에 앓으셨던 각막 궤양이 재발하는 일까지 있으셨다고 하니 한번 뵌 적도 없지만 마음이 쓰였다. 아무리 좋은 습관도 결국은 건강을 잃으면 꾸준히 하기 힘드니 작가님도 나도 건강관리 잘 해야겠다.

친히 내게 SNS DM으로 서평도 의뢰해주시고, 친필 사인본 도서도 보내주셔서 영광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은 국판(가로 148mm, 세로 210mm)형 크기에 총 168면으로 이루어진 이루어진 에세이다. 수학의 여러 식으로 삶의 다양한 '관계'를 풀어내고 있다. 총 4장으로 나누어, '나'와 '가족', '사회적 역할', '삶에서 맺게 된 사회적 관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1. 완전수의 탄생

정말 부끄럽게도 완전수와 우애수, 이런 개념을 이 책에서 처음 본 것 같다. 학창시절, 아무리 애를 써도-물론 임계점 근처까지만 노력한 탓이겠지만-도통 성적이 오르지 않던 지긋지긋한 수학이었기에 기초적인 개념조차 기억에서 말끔히 지워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우애수'의 개념을 "평행하든 교차하든 항상 서로 마주하고 함께 움직인다는 우애수는 존재하는 두 수의 쌍에서 어느 한 수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마주하는 다른 한 수가 된다."(본문 p. 30-31)고 설명한다. 또 "우애수가 전하는 수학의 말은 '아름다움을 창조한 관계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고도 저자는 이야기한다.

어린왕자에 나온 '길들이기'와 관련한 내용을 소개하며, '길들이기'는 종속도 독립도 아닌 관계 맺기이고, '특별함으로 스며듦'이라는 말로도 정의한다.

2. 노릇이라는 좌표

비단 이 책의 저자뿐이겠는가. 대한민국 40대 중후반의 K장녀들에게 해당될지 모르는 '~노릇'으로 규정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나는 딸 노릇, 아내 노릇, 며느리 노릇, 친인척 노릇 등 집안에서 많은 '노릇'을 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압력과 압박으로 때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이 노릇을 잘하는 기본이 경쟁력이라는 사실은 나를 힘들고 슬프게 했지만,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었다."(본문 p. 54)라고.

이 부분은 나 뿐만 아니라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 또래의 여성들도 공감할 것이다. 나도 어쩌면 이 모든 노릇을 다하기 위해 지금껏 그토록 숨 막히는 의무감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3. 해물칼국수의 항등식

저자는 <노인과 바다>를 읽고 '신념'을 떠올렸다. 청색치를 잡은 낚싯줄을 놓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이번 장에서는 완전수에서 떠올린 메시지는 '균형'이라고 일러준다. "자연과 일상에 녹아있는 수 중에서 완전수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완전함과 완벽함이 느껴진다. 수학에서 완전수는 자신을 제외한 양의 약수의 합으로 표현되는 양의 정수를 말한다. 가장 작은 완전수는 6(1+2+3)이다. 다음으로 28(1+2+4+7+14)이 있다. 스스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약수들의 합으로 자신을 창조해내는 완전수가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일상과 내가 이루는 평행, 바로 '균형'이다. 나는 프레임 안에서 비워내고 동시에 프레임 바깥에서 채워나가는 신념을 완전수로부터 배웠다."(본문 p. 111)라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평생 살면서 '균형'을 잡기 힘든 나로서는, '수학을 좀 더 잘했으면 뇌를 지금보다 균형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꼬인 위치로 바라본 세상

'수학이 곧 자연이자 자연법칙'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다양한 다항함수들의 기울기로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직선과 곡선의 어우러짐이 곧 우리 삶이자 자연'이라는 것이다."(본문 p. 141)라고 수학으로 우리 삶을 관조한다. 또한 올바른 나이듦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우르고 있어서 40대 후반에 선 나는 그간의 삶과 앞으로 남은 삶을 떠올리게 했다.

p. 150 늙는다는 건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경이로운 익어감이자 사회 소외계층으로 살아가는 쓸쓸함이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에서는 화려하고 건강하며 찬란하게 존재한다. 나이를 제대로 먹으려면 육체와 감정 모두 바르게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이렇게 흡수된 영양소가 몸 곳곳으로 이동해야 제대로 익어갈 수 있다. 살면서 고독은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고독은 내가 익어가는 과정에서 즐기고 아껴야 할 인생의 요소이다. 삶이라는 집합 안에 익어감이 포함되어 있다면, 고독은 익어감 안에 들어 있는 원소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멋지게 즐기면 된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풀고 나서'에서 평소 글쓰기 습관을 지켜가는 마음가짐과 책출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여러 결의 감정과 흩어진 마음을 정돈해서 표현하려고 글을 썼다. 글쓰기를 포기하면 내면이 도망갈까,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내 시간이 사라질까 두려워 멈출 수 없었다.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다. 마치 불문율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서 퍼지고, 처음의 모습을 참지 못하고 분해되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정답도 없고 길을 찾는 네비게이션도 없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통해 매일 비슷하게 시작하는 하루하루를 날짜로 순간으로 특별한 기억으로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었다."라고.

이 부분은 아직 종이책은커녕 전자책 출간도 못한 나로서는 우러러보이는 문장들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읽어낸 표현. 수학의 수식과 그래프, 도형 점·선·면을 분석하는 눈으로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구축해가며 수학적 개념을 '관계의 조화', '사회적 역할', '균형'같은 삶의 화두를 풀어내는 저자의 통찰력이 상당하다.

작년 『문과남자의 과학 공부』를 출간한 유시민 작가나 2011년과 2015년 각각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통섭의 식탁』의 저자 최재천 교수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잘 버무린 이 책으로 통합적 사고체계의 과정을 배워보자.

본 서평은 권미애 작가님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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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두콩달 - 365일 질리지 않는 두부, 콩나물, 달걀 요리 레시피
이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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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거창한 요리 레시피 북은 이제 그만!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 매일 밥상 차림 고민하는 혼밥족부터 주부들까지 이 한 권의 책으로 간단하면서 영양만점 반찬으로 집밥 잘 챙겨 먹자.

이 책에서는 앞표지를 장식한 두부구이 외에도 두부로 만들 수 있는 건강한 두부 요리 54가지와 콩나물국과 무침 외에도 맛있는 콩나물 요리 40가지, 달걀 프라이와 말이, 찜 정도만 알고 있는 만만한 달걀 요리 55가지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고만고만한 요리를 뭐 책으로까지 엮었을까 싶지만 너무 간단하고 흔해서 소홀하기 쉬운 요리들이지만, 살짝만 힘을 더하면 맛도 좋고 격식을 갖춘 것 같아 밥상을 차리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흐뭇할 것 같다.

이 간단하지만 한국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식재료를 빛나게 해 주신 이미경 요리연구가님은 경기도 양평에서 텃밭을 가꾸며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에 다섯 가지 과정을 넘기지 않고 잦은 양념을 배재한 심플하고 건강한 음식'을 연구하는 분이시다.

과한 양념으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잃게 만드는 레시피도 많은데, 자연의 맛을 지키면서 비교적 간단한 요리 과정으로 요리를 완성할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어, 무늬만 20년차 주부인 나같은 요리젬병인 사람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또한 두부, 콩나물, 달걀의 영양 분석과 두부와 콩나물을 집에서 만들거나 길러 먹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예전 부모님이 기르셨던 콩나물 생각도 나고 정겨웠다. 두콩달만으로 밋밋할 수 있는 식탁을 채워 줄 사계절 식재료 달력을 제시해주고 있어 제철 밥상을 다양하게 차려낼 수 있도록 도왔다.

가장 중요한 계량법을 목차 다음에 바로 실어주고 있으니 알맞은 계량으로 기껏 준비한 요리의 맛을 잘 지켜내보자. 게다가 이 책에서 언급한 기본 양념도 과감하게 소개해주어 마트 방문시 동일 제품을 구매하여 이왕이면 요리의 완성도를 더해 보자.

지금까지 익숙해서 두콩달 식재료로 대충 해먹었던 분들, 시시한 식재료라 기피했던 분들은 이번 기회에 장보기 필수 품목인 두부, 콩나물, 달걀을 이용해서 가성비 좋은 영양 만점 집밥 한 상 차려 보시길...

본 서평은 상상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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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예술의 역사 4 : 바로크 예술 만화 예술의 역사 4
페드로 시푸엔테스 지음, 강민지 옮김 / 원더박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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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성기와 몰락기를 다룬 내용을 시작으로 흑사병 창궐과 이런 황폐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한 '후안 데 발데스 레일(Juan de Valdes)'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벨기에 출신의 이름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명화들을 여러 지면을 활용해 설명한다. 그리고 내게는 낯선 이름인 '벨라스케스'라는 화가를 마네는 '화가중의 화가'로 칭송하기까지 했다고.

뒤이어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France Hals)',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차례로 소개되면 끝이 난다.

이 책은 작가 소개가 뒷표지에 등장한다는 점도 구성상의 특징 중 하나이다.

지은이 '페드로 시푸엔테스'는 스페인 카스테욘주 부리아나의 중학교 사회과 교사이다.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 교육 목적으로 여러 만화를 그려 학생들과 동료 교사로부터 호응을 얻었다고. 이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화 예술의 역사' 초기 버전을 냈는데, 이것이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둬 정식 출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여러 편의 교양 만화를 그리고 쓴 공로로 국가교육발전상, 발렌시아 우수교재상, 발렌시아 우수교사상 등을 수상했다.

이러한 교사들이 많아야 아이들도 사회와 역사에 관심을 가질텐데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인 대한민국 여건상 참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어린이 도서들을 중심 '컴퓨터 코딩'부터 '역사'까지 학습만화가 많이 출간되어 있어서 평소 독서를 꺼리는 친구들도 열심히 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만화라고 할지라도 구성과 내용이 탄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좋은 책을 좋은 말로 소개해주시고, 저자와 독자의 풍부한 교감을 이끌어 내고자 노력 중인 강민지 번역가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좋은 번역이 저자의 선한 의도와 맞닿아 있어야 독자에게도 그 의도가 잘 전달될 것이기에.

본 서평은 원더박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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