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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출장)을 마무리하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기 전에 비싼 보석상으로 가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금액을 지출하였다. 통장 잔고는 카드승인이 거부되는 바람에 어차피 보석상에서 다시 확인해야 했는데 다행히 잔고는 넉넉했고 1회 승인한도를 넘은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몇 번이나 쪼개서 카드를 긁고 그러다 1일 한도까지 넘어버려서 또 다른카드까지 긁으며... 열심히 카드를 긁는 점원들에게 ˝나처럼 불쌍한 손님 본 적 있니?˝ 물었더니 꺄르르 웃는다. 정말 모든 것을 탈탈 털어내듯 계좌를 긁고 긁어 결제를 마쳤다.

내가 구매한 보석은 이 년 전에 여행을 마무리할즈음 한 공항 면세점에서 우연히 본 것인데 그 때엔 가격에 깜짝 놀라 뒤도 안 돌아보고 상점을 나섰다. 반년, 아껴쓰면 일 년도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않길래, 그래 남자도 몇 달 지나면 잊혀지는데 2년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보석이라면 사는 게 맞다 싶어서 과감히 질렀다. 혼수을 미리 한다고 생각했다. 그 보석에 어울리는 반지도 같이 사며 ˝이거 남자꺼도 나와요?˝ ˝주문하면 가능해요! 남자친구것도 사려구요?˝ ˝No lo tengo todavia... 아니 아직은 없어요.˝ 대답하며 혼자 웃겨서 키득거리고 웃었다. 사실 혼수를 미리 한다는 것은 절반의 자기합리화이고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란 올지도 모를 미래에 희망이나 기대를 품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충실하고 싶다는 것. 남자는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 보석은 내내 내 옆에 있어줄 것이다. 

난 사실 티파니랑 까르띠에로 결혼반지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 결혼반지 디자인이 전 세계 보그와 바자에 전면으로 광고된다는 건 끔찍한 일인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같은 인간이 산,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한 명품 보석이란 것은 사실 비효율 비합리적 구매의 전형적 예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어 보석을 팔아치워야 하는 순간에 저 보석이 과연 얼마의 값어치를 할지? 까르띠에 러브링이마 트리니티링 같은 `보편적인` 보석이 투자의 측면에선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나는 샤넬과 까르띠에에 돈을 쓰는 것은 정말 의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삼십세 여성으로 자라버린 탓에 그냥 무명의 명품에 어마어마한 돈을 써버렸다. 무명의 명품이라니! 어쨌든 앞으로 저 보석을 팔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닥치지 않기만 한다면 뭔 상관이랴. 축난 잔고를 채우기 위해 다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빈 잔고를 꼭 다 채우고 눈여겨 본 목걸이까지 사러 다시 오자고. 계좌정리를 하면 바뀐 잔고 앞자리수가 크게 다가오겠지만 어쨌든 오늘까진 무척 행복하였다. 소비의 즐거움은 짧고 확실하다는 명확한 성분표를 가지고 있는데 내 경험상 보석은 옷이나 가방보다는 확실히 더 긴 행복을 보장한다. 이 즐거움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겠다. 


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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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글이 있어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의 비공개 일기.

저때 쓴 돈의 액수는 장사하며 잔고가 위험할때마다 생각났다.

내가 저 돈을 썼다니...

하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비싸고 관리하기 힘들어 밖에 하고 나간 적은 5번 미만.

하지만 나는 가끔 화장대 앞에서 혼자 저 팔찌와 반지를 껴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이미 저 보석값 만큼의 만족감은 충분히 누린 것 같다. 


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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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3-29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50만원짜리 가방을 사지 못하고 절절 매고 있었는데, 역시 질러야겠어요. 불끈!

LAYLA 2017-03-30 01:19   좋아요 0 | URL
저도 196만원 짜리 사고 싶어서 쳐다보고만 있어요..이번에 돈 많이 벌어서 살거에요 진짜로..ㅠㅠ

2017-03-29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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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0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0 0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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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0 0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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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7-03-2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제 톨보이 스피커를 못사고 있었는데 용기를 얻었습니다. ㅋㅋ

LAYLA 2017-03-30 01:22   좋아요 0 | URL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17-03-30 1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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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1 0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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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트위터 앱을 스마트폰에서 삭제했다. 원래 운영중인 봇이 잘 돌아가나 모니터링 할 겸 사람들 피드 브라우징만 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가랑비에도 옷이 젖듯 그렇게 브라우징만 해도 하루 1시간은 금방 간다. 지난 회사 들어가고 업무에 필요해 트위터 계정을 만든지 어언 5-6년 된거 같은데 이렇게 어떤 결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트위터 사용을 중단한 것은 처음이다. 보통 인터넷 사용이 여의치 않은 외국 어딘가로 들어가면서 간헐적 트위터 사용 중단을 하기는 했었건만... 트위터 사용 중단을 결심한 이유는 앞서 말한 시간누수의 문제도 있지만 문득 나는 더 많은 의견을 보고 더 많은 세상을 알기 위해 사용한다고 믿는 이 트위터란 매체가 오히려 나의 세상을 좁히고 있지는 않은가 의문이 생겨서이다. 방백을 위해서도 관객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나르시스트적 속성을 파고든 트위터란 매체에는 정말로 박학다식한 사람이 많고 관심을 기울여 생각할 만한 많은 이슈거리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또 많은 트위터 유저들은 자신이 '닝겐'들과 다르다며 트위터리안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도 공고히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남들과는 아주 다르다고 믿는 모님이 늘 하는 이야기가 트위터에서 돌고 돈 이야기 뿐인것을 보고 저 사람의 세상은 트위터 속의 세상으로 한정되어 있구나 싶었다. 물론 그냥 동네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보단 트위터 속의 세상이 더 넓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제 이 세상은 바다처럼 넓고 실제 세상에 비한다면 트위터란 큰 연못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트위터에서 쏟아지는 정보와 담론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것도 좇아가기 힘들어 헉헉대다 보면 실제 세상의 넓이 따위에는 관심을 잃어버리게 되는거 아닐까. 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안 그래도 좁은 내 세상 더 좁히고 싶지 않다는 위기감에 트위터 앱을 삭제하였고 그 이후로 별다른 문제 없이 트위터 없이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트위터 중단의 작은 성공을 자축하며 기타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소하게 쏟는 시간도 줄여보았는데 이 역시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인터넷 사용을 줄이니 한국사회의 negativity로 부터 적게 노출되고 그만큼 내 심신이 덜 피곤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솔직함을 푼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너무나 많은 부정적 에너지를 쏟아낸다. 회사욕 남자(여자)욕 부모욕 금수저욕 헬조선욕 등등 등등 등등등등등. 내가 조금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부정적 에너지에 노출되는건 별로 좋은 딜이 아닌거 같단 판단이다. 부디 이 결심이 의지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오래 지속되길 바랄 뿐. 


새해가 되고 이런저런 거창한 목표를 생각하다가 하루에 싼마오의 책 한장씩 필사를 해보기로 하였다. 싼마오의 문장은 단순한 토막토막 단문들이라 문장력이 강화된다거나 하는 기대하지 않았고 너무 쉬워 훌훌 읽혀버리는 그녀의 문장들을 좀 더 깊이있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사는 한 번도 해본적 없는데 손으로 쓰면 좀 잘 들어오겠지 싶어서. 그리고 이 역시 꽤 효과가 있었다. 그냥 읽어버릴때는 음 자유로운 영혼이구나 싶었던 그녀의 삶이 필사를 하면서 보니 정말 거짓없이 자유로운 영혼이었음이 잘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는 네셔널 지오그라피를 보고 사막과 사랑에 빠지는데 사막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더니 주변 사람 모두 그녀를 만류하고 혹은 비웃었다. 오직 한 사람의 친구만이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먼저 사막으로 건너가 일자리를 잡고 그녀에게 사막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 된 스페인 남자 호세이다. 싼마오는 이렇게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 친구가 사랑을 위해 사막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나는 하늘끝 땅끝까지 한평생 그와 함께 떠돌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보통의 결혼 특히나 그 당시의 결혼은 여자에게 속박일 수밖에 없었을텐데 싼마오는 지혜롭게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에게 부족한 현실적인 면을 채워주는 남자를 신랑감으로 택한다. 그리고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에도 저 남자와 행복하게 살겠다느니 안락한 가정을 꾸리겠다느니 하는 평범한 말을 하지 않고 '하늘끝 땅끝까지 한평생 그와 함께 떠돌겠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작위적으로 꾸며내려해도 꾸며낼 수 없는 말 아닐까. 삶은 나의 첫사랑, 세상은 나의 연인이라고 말하는 싼마오. 트위터도 끊고 인터넷도 안하고 강추위에 바깥 출입은 극도로 자제한 채 이런 글이나 필사하고 있으니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자유란 몰까. 생각해 본다. 세상의 negativity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진정 자유롭게 살다간 이의 아름다운 인생을 보며 감응하고. 이것도 좋은 일상이지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자유란 도대체 무엇일까.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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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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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0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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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의 사하라 사막 생활기(신혼여행기) '사하라 이야기'가 2018년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란 소식을 듣고 너무나 신이 나서 책을 사러 알라딘에 접속했다. 국내에 출판된 싼마오의 책은 모두 사서 본가 어딘가에 있지만 서울에서 읽을 책도 사둬야겠다 싶어 접속한 것이었는데 두둥. 모든 책이 품절이다. 지난 10월 이후 입고 되지 않는 것을 보니 출판사가 문을 닫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수가 없다. 원래 1인 출판사라 이런 상황이 두려웠는데 드디어 그 날이 오고 만 것인가 ...ㅠㅠ 잽싸게 중고서점을 검색했지만 알라딘 중고는 하나도 없고, 혹시나 들른 강남 yes24 중고서점에서 사하라 이야기 한 권을 구할 수 있었다. 다른 책들도 다 구하고 싶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선방이라 해야할듯. 


집에 와서 오랜만에 다시 쭈욱 책을 보는데 어머나. 원래도 좋은 번역이라 생각했었지만 다시 봐도 참 좋은 번역이고,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출판하는 1인 출판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번역자가 바로 그 1인 출판사 사장님이시고, 겨우 서른셋의 나이에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내고 번역자의 글을 쓰셨단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제가 오랫동안 팬이었습니다. 사장님. 막내집게는 내가 애정을 가진 단 하나의 출판사였다. 


세상이 정말 좋은 것들에게 1등의 자리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경험해 왔지만 이런 일을 또 접하니 마음이 막 착찹해지는 것. 싼마오의 수필은 국내에 출판된 에세이 모두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한 좋은 책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대형 출판사에서 나왔더라면 달랐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이 책이 요즘 트렌디한 표지와 얇은 두께로 출시되는 일본 여류 작가들의 에세이들 보다 9.5배쯤 낫다는 것에는 그렇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다나베 세이코 여사라 할지라도 에세이의 영역에서는 싼마오의 압승인 것이다. 레베루가 달라버려...! 나 같은 소수의 독자들에게 깊고 진한 사랑을 받았다지만 살아남는 것이 미덕인 이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2달째 재입고 되지 않는 싼 마오의 책들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세상은 좋은 걸 몰라주고, 나는 운 좋게 좋은 걸 알아봤지만, 나 같은 사람이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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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0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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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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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1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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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4 0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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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엔 실연당한 친구의 집으로 갔다. 갑자기 밥 먹으러 오라기에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구나 싶어 찬바람을 뚫고 친구의 한옥집으로. 등유곤로를 놓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은 친구의 집은 손님이 온다며 바닥도 절절 끓게 보일러를 돌려두어서 무척이나 훈훈했다. 전구가 하나 나갔다며, 은은한 노란 빛으로 감싸인 서촌의 작은 한옥집. 이런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면 겨울도 나쁘지 않구나 싶을 정도로. 친구가 해준 밥을 먹고 친구가 일본에서 사온 고급 양갱을 디저트로 먹고 친구가 새로 산 몇달치 월급의 오디오로 김추자의 레코드를 들으며 바닥에 뒹굴거리니 귀가 녹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어버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엉덩이를 떼기가 어려웠다. 친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뭐 견뎌야지 어쩌겠어." 나이가 있어서 지난 상처들이 있어서 상대가 너무 소중해서 얼마나 그는 얼마나 소중하게 그녀를 대했던가. 소중했던 만큼 깨어진 그 날이 더 날카로울 거 같아서 내 마음도 아팠지만 그는 정말로 꾸욱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썸 한 달만 타다가 깨어진 애들도 죽겠다고 그래요. 나 아파 죽겠다고 난리를 친다구요. 그런데..." 그런데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란 말이었는데 그래도 아무말이 없다. 그렇다면...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이야기를 했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 살림 이야기(무선 청소기를 일렉트로룩스 신상으로 살 것인가 다이슨으로 살 것인가), 비수기 우리의 시간을 어찌 보낼 것인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밥벌이 방편, 85년 신촌 그랜드 백화점 꼭대기에서 했던 들국화 투어 콘서트, 야 이 엘피판은 너보다 나이가 더 많잖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보고 싶은 사람과 오랜 전화 통화를 하였다. 그 사이 마음이 변한건가 나 혼자 초조하였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그대로인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5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나 함께 갔던 찻집에 들렀다 하였다. 이제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곳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었다. 별로 기억나는 대화의 내용은 없다. 그런데도 새벽 4시 반까지 끊어지는 전화를 몇 번이나 다시 연결하여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 마음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별볼일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이어가게 하는 맹목적인 애정의 힘. 전화를 끊을 즈음에 그 사람의 농담섞인 냉소에 내가 "넌 못됐어. 그런데 나한텐 잘해줘."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넌 착한데 나한테만 못되게 굴잖아." 라고 답했다. 우리는 조심스럽다. 아주 조심스럽다. 잘 웃지 않고 말도 잘 하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나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확인한다. 실망스런 디저트를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히 먹는 나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즐거워 보이지 않잖아." 라고 할 때라던지. 


오늘 물건 대금을 파운드로 송금하러 갔더니 트럼프 덕분에 환율이 올라 은행 직원이 내 계좌에서 돈을 빼며 "파운드가 이리 비쌌나요?" 라고 하였다. 더 일찍 송금하지 못한 나의 탓이지 싶어 얼마나 손해를 보았나는 두드려 보지도 않았다. 나는 트럼프의 승리에 분노하고 힐러리가 여성이라서 진 것이라고 씩씩거리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트럼프는 미국이니 힐러리와 경합이라도 한 것이지 한국이었음 지지율 60-70%로 당선될 사람 아닌가? 한국에서 자칭 진보니 노빠니 페미니스트니 하는 사람들 중 외노자를 혐오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페미니스트라고 나서는 젊은 여성들이 매매혼이나 성매매, 성폭행 등의 이슈를 근거로 동남 아시아 출신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적개심을 품고 있는지 보면 클린턴 저리가라 수준이다. 남의 일이니 이성이 작동하지 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외노자 척결하겠다 외치는 후보에게 큰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자기안의 혐오는 보지 못하고 다른 나라 정치에 선비질 하는 걸 보면 참 어이가 없다. 힐러리의 승리를 여성의 패배라고 편협하게 해석하는 것도 별로 와닿지 않는다.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는 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창으로만 세상을 본다며 그것역시 또 하나의 도그마 아닐까. 힐러리의 패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고 그녀의 성별은 하나의 이유일 뿐이다. 힐러리에게 좆만 달렸어도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란 말...그건 힐러리에게도 모욕일거 같은데 또 남의 일이니 사람들은 참 말을 쉽게 한다. 너에게 좆이 달렸으면 니 인생이 180도 달라졌을거 같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일은 집안 대청소를 하고 커버레터를 업데이트 하고 저녁은 친구의 아이 돌잔치에 갈 것이다. 부지런해야 하는 하루. 추위 때문에 몸이 힘들지만 하루하루 견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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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6-11-1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의 글을 10년도 더 전에, 그러니까 라일라님 고딩때부터 봐 왔는데요. 글도 사람도 매년 매년 gorgeous 해진다고 느껴요.(페루였던가요? 나쁜 녀석 엉덩이 걷어차 준 페이퍼는 프린트해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런 글 모아서 책 내세요!)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어디 휩쓸리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을 갖추고, 삶을 즐기고 그런 모습들이 보기 좋습니다. 마치 성장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도 있고요. 멋져요!


LAYLA 2016-11-13 00:52   좋아요 0 | URL
제가 알라딘을 떠나지 못하는 건 이렇게 늘 부둥부둥 해주시는 고슴도치 이웃님 때문이에요. 말미잘님이 그려주신 제 모습에 너무도 부족한 저이지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잘님의 애정에 부응하여~~~~♥
 

요즘 왜 이렇게 갖고 싶은게 많은지 모르겠다.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면 돈의 흐름이 예상되니 할부라도 긁겠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으니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는 정신적인 압박감이 물욕을 더더욱 부추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딱히 사치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본적인 삶을 돌보는 부분이라 생각하는데도 돈이 엄청나게 든다. 


우선 지멋대로 재부팅을 반복하는 저 휴대폰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입주할때부터 아파트에 달려있는 오랑캐 같은, 근본없이 못생긴 저 주방 식탁등도 갈고 싶다. 이젠 흔하고 흔하다지만 루이스 풀센의 등으로 달고 싶은데 직구를 해서 단다고 해도 등값이며 인건비며 돈백은 쉽게 깨지겠지. 한남동 가면 인테리어 편집샵 여기저기 색깔색깔 달린 그 흔하디 흔한 루이스 풀센을 부엌에 걸고 싶어서 나는 2016년 신년 목표로까지 부엌등 갈기를 내걸었었다. 물론 돈뿐 아니라 그걸 해치울 의지와 노력과 패기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목표였지만 돈에 쪼들리며 2016년이 막바지로 치닫는 지금 생각해보니 - 사실 돈이 아주 넉넉했더라면 의지와 노력과 패기 그 모든게 다 뭐 필요있었을까 650유로 주고 직구할 필요도 없이 관세내느라 우체국 갈 필요도 없이 ph5의 긴 전깃줄을 한국식 낮은 아파트 천장에 맞게 자를 줄 아는 솜씨좋은 기술자 찾느라 품 팔일 없이 그냥 한남동에서 190만원인가 250만원인가 카드 긁으면 그만인 것을.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커튼. 입주한지 어언 몇년인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미니멀리스트와 레이지니스트의 경계 어딘가에서 방황하며 커튼과 블라인드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이 아파트에 살아왔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지나가다 눈에 들어온 커튼 가게에 들어가 견적을 받으니 거실 빼고 방4개 커튼 견적이 156만원인가 그렇다. 내가 원하는 암막으로 하려면 지금 선택한 고급원단 뒤에 암막원단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건 방 하나당 14만원이 더 든단다. 그래서 커튼 값으로 최소 150만원의 지출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갖고 싶어 몇 달이나 눈 앞에 아른거리는 발렌시아가의 가방이 150-200만원 또 역시나 눈 앞에 아른거리는 귀걸이는 50만원... 이것들은 언제나 가장 후순위로 밀려있지만 가장 또 강렬하게 바라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내년 아빠의 환갑을 맞이해 무얼할까 생각하다 가족 초상화를 작가에게 의뢰해 그림으로 남기고 싶단 생각을 하였는데 보통 작가들의 그림 사이즈에 따른 가격만 생각해도 최소 300은-500이니 거기에 우리 가족을 그려달라고 의뢰하고 이리 해달라 저리 해달라 구는 값까지 치면 돈은 더 많이 필요하겠지. 정말 이렇게나 창의적이고 예술적으로 돈쓸생각을 하는 나란 인간! 


10월에 친구들과 홍콩에 가자고 티케팅을 한 것이 8월이었는데 여자친구들과 같이 가는 여행이라고 하니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돈 쓸 생각부터 했다. 비싼 애프터눈 티를 마셔야 하고 비싼 음식점에 가야 하고 제일 전망이 좋다는 호텔에 묵으며 수영도 해야 하며...그리고 그렇게 돈 쓸 궁리를 하자 갑자기 장사에 더 열성적으로 매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기세로 물건을 팔았고 이번달에는 장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 매출도 올렸다. 그런데 왜 내 주머니에 남는 돈은 없는 것인가? 장사의 세상이여...(장사가 커지고 물건 굴리는 규모가 늘어나니 번만큼 재고를 더 들여야 했다) 아빠가 사업을 해서 이십년을 그리 견뎠다. 지금도 엄마는 당시를 돌이키며 직원들 월급날이며 각종 거래처 결제날 다가오면 통장이 빵꾸나는거 아닌가 마음이 졸여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말인지 이제 알겠다. 절절이 알겠다. 직원 월급도 없이 나 하나 장사 굴리는 것도 이리 숨이 콱콱 막히는데 엄마는 그걸 20년 했으니...  나는 돈만 잘 벌면 세상만사 복세편살하며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품위유지 느긋히 하면서. 근데 벌어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번 것보다 더 바라고 그렇게 돈돈 바라는 마음으로 복세편살 품위유지는 불가능하다. 내 장사라 신경이 예민해 잠을 못 자고 견디다 잠병이 나기도 하였다. 어디서나 널부러져 자기로 유명했던 나 같은 인간이 잠을 못자 병이 나다니! 그래서 어제도 예민한 신경으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도 싫지만 이것 역시 내가 바라던 그런 삶은 아니다. 이렇게 가봐야 정말 뻔한 인생일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물론 장사를 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학교나 직장에서 배우지 못했던 많은 것을 몸으로 배워서 너무나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했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떤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홍콩 여행가서 실컷 웃고 오면 좀 리프레쉬가 될까? 내가 장사를 하며 뿌듯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직접 돈이 오가는 '남의 돈 먹는' 일을 하면서도 다툼을 벌인 적이 없고 인간에 대한 냉소치가 더 심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사 생활하면서 인간을 뭣같이 보게 되어 내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팠고 그것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서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욱씬하기도 하였다. 왜 우리는 그렇게 일당 십만원되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서로를 미워해야 했을까요. 그런 일이 싫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일이 싫어서 장사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늘 최선의 태도와 진심과 예의로 대했다. 그리고 정말로 다행히 나는 내 예의에 똑같이 예의로 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 고가라 대부분의 고객이 30대 이상 고수입의 여성이라는 점도 있으리라. 그렇다 하여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장사를 해왔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이것이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였다. 내 선에서 인간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이 장점을 지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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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4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6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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