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에게 고한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0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9.0






 제법 화끈한 제목의 이 소설은 기대대로 화끈하게 시작됐다. 유괴 사건을 수사 지휘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희생자가 나오자 유족들과 매스컴의 집중 포격을 받는 주인공이 버럭하는 것에서 예견된 비극, 그 비극이 낳은 주인공의 증오심이 어떻게 치닫게 될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던 소설이다. 그렇다 보니 63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고군분투만큼이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또 있던가?

 매스컴의 질타를 받고 조직에서 좌천당하고 유족에게 범인만큼이나 씻을 수 없는 상처까지 안긴 주인공 마키시마, 온갖 감정을 뒤안은 채 살아가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유괴 사건과 비슷한 성질의 사건, 더 나아가 극악무도한 남아 유괴 살해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함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그 범인이 방송국에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짐승과도 같은 행보를 일삼는다.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정신 나간 내용,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쓸 수 없는 장난스럽고 유치한 사상. 이른바 극장형 범죄로 하여금 세상의 반응을 즐기는 범인에게 맞서 과거에 매스컴에 노출된 적이 있는 마키시마는 '극장형 수사'를 펼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TV 보도국과 반목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잡고 수사를 펼쳐나가는 전개가 신선했고 그와 동시에 범인만이 아니라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 둘러싸여 철저하게 고독해진 주인공의 활약이 그 무엇보다도 기대됐던 소설이다. 자신의 실수와 더불어 경찰 조직의 정치적 입장에 맞물려 나락으로 떨어진 걸 반면교사 삼은 마키시마가 이번엔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무척이나 주목됐다. 그 과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과연...?

 기대했던 만큼 후반부가 지루해서 많이 아쉬웠다.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은 드는데 그게 너무나 서서했다. 분량이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선 자유로울 수 있어도 이렇게 느리게 진행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아무래도 매스컴에 관해 묘사한답시고 우에쿠사와 스기무라의 이야길 집어넣은 게 원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마키시마의 수사에 어떤 식으로든 훼방을 놓아 극의 긴장을 불어넣긴 했지만 다소 어정쩡했다. 작품이 풍성하게 보이는 역할은 해줬으나 본문과 따로 놓는 감이 없지않아 있어 점점 몰입을 방해할 뿐이었다.


 마키시마의 언론 플레이와 함정 수사는 그래도 볼만 했지만 긴 분량을 할애해가면서 읽어온 것치곤 의외로 싱겁게 잡히는 범인을 보노라니 김세기도 했다. 중간중간 분명 긴장감을 조성됐고 또 분노를 요하는 부분 또한 있었지만 정작 잡혀버린 범인은 그 인상이 너무나 흐릿해서... 마키시마의 말마따나 그런 흐릿한 인상의 범인이라서 더 무시무시했던 것이려나?

 아무튼 약간 지지부진한 감은 있지만 자신을 괴롭힌 감정의 편린들을 거의 원만히 떨쳐버려 개운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막판에 신파 비슷한 사족이 격하게 사건 속에 개입돼서 좀 질릴 법도 했는데 주인공이 속죄를 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이끌어냈기에 그리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실패한 정치가가 책임을 지던가? 지지 않지. 그리고 정말 유능하다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야.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경영자는 어떻지? 그가 만약 유능하다면 회사를 떠난 바로 다음 날, 다른 회사의 중역으로 스카우드될 거야. 자네는 그걸 책임졌다고 할 수 있겠나? 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 - 174~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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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도둑
매튜 딕스 지음, 노은정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9.9







 이사카 코타로는 어느 작품에선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순 있어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성추행을 저지를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같은 범죄자라 할지라도 범죄의 성질이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는 갈리는 법. 반면에 같은 종류의 범죄임에도 범인의 가치관이나 행적에 따라 평가가 극명히 갈리는 경우도 있다. 돈 없는 사람들이 쉽게 도둑질을 범하는 걸 보면 어째 좀스럽게 느껴지다가도 도둑질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얘길 들으면 내가 다 기분이 착잡해지며 홍길동이나 괴도 뤼팽 같은 의적을 보면 현실에 이런 도둑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 생각이 또 달라진다.

 의적. 사전을 뒤져보니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로운 도적이라고 한다. 탐관오리 운운하는 걸 보니 옛날부터 이런 도둑이 몇 있었는가 보다. 어쨌든 도둑질이고 범죄임엔 틀림없지만, 의적이란 단어를 들으면 도둑질에는 분명 다른 범죄에서는 풍기지 않는 매력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싶다. 반드시 도둑이 될 것이라고 부르짖는 사람은 없지만 도둑의 행적이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도둑들>이 이를 어느 정도 반증하리라. - 듯하다. 굳이 의적에 한하지 않더라도 뉴스에서 접하는 기상천외한 도둑들을 보면 순수한 마음에서 대단하다고 감탄하지 않던가? 물론 그 감탄 뒤에는 저 머리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이라고 혀를 차곤 해도 말이다.

 

 가끔 집을 정리하다 보면 어떤 물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착각을 했던가 하며 넘기곤 한다. 그런 착상에서 떠오른 게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마틴이다. 마틴은 아주 특별한 도둑 이 작품의 원제는 <Something missing>이다. 원제나 우리나라 제목이나 거기서 거기다. - 으로 치밀하면서도 무해無害에 가까운 도둑질을 행사한다. 마틴은 현장에 15분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흔적은 알게 모르게 남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틴이 훔치는 물건의 성격상 절대로 그 흔적이 들춰질 일은 없다.

 마틴이 훔치는 물건은 가령 예를 들면, 냉장고에 넣어 놓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홈쇼핑 음식이나 두루마리 휴지 몇 개나 서랍장 구석에 있는 오래된 접시 같은 것들이다. 있었는지 아예 인식도 못하는 물건이나 설령 없어진 걸 알았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만한 것들, 그 이전에 설마 이런 걸 누가 훔칠까 싶은 것들마틴은 이 맹점을 파고들어 자그마치 9년이란 시간 동안 완전 범죄를 성사시킨 프로 중의 프로다.

 

 저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훔침에 있어 어쩜 그렇게 치밀하고 만전을 기하는지 읽고 있으면 한심스럽다가도 푹 빠져든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도둑질임에도 불구하고 무지 진지하고 또 스릴 있게 해내고 있어 허투루 읽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고로 이 작품의 스릴로 말할 것 같으면 홍길동, 뤼팽을 읽는 것에서부터 PS2 게임 <슬라이 쿠퍼>를 플레이하는 재미에 비견될 정도로, 독자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로망 또한 겸비하고 있었다.

 도대체 마틴은 왜 이런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규칙적인 도둑인 마틴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 어떤 사건을 통해 충동에 가까운 심정으로 도둑이 된 마틴은 그 유별난 가치관 덕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도둑질을 수행해냈다. 그렇게 자신의 기술에 익숙해지는 한편 지나치게 고독한 직업(?)의 특성상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마틴은 어느 날 전에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화장실에서 작업하다 고객 마틴은 자신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을 고객이라 부른다. 이 고객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척 까다로운데 여기서부터 빵터지고 시작된다. - 의 칫솔을 실수로 뚜껑 열린 변기에다 떨어뜨려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대수일까 싶지만 마틴에겐 더없이 중대한 사고였다. 자신의 완전 범죄를 위한다면 그냥 칫솔을 털고 원래 자리에 놓는 게 상책일 것이다. 하지만 결벽증에 가까운 위생 관념과 더불어 마틴이 고객에 대해 품고 있던 일종의 인간적인 존중은 그로 하여금 차마 균 덩어리 칫솔이 고객의 입에 들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칫솔을 처분했다간 고객이 의심을 품을지 모를 일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이 고객과 가졌던 지금까지의 관계를 청산해야만 한다.

 결국 마틴은 자신이 변기에 떨어뜨린 칫솔과 똑같은 모델의 칫솔을 사오기로 했고 우여곡절 끝에 똑같은 모델의 칫솔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칫솔을 칫솔 꽂이에 넣었으니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주인이 집에 벌컥 들어온다. 양심과 도둑질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갈등했던 마틴은 일단 소파 뒤에 숨으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다 뜻밖에 고객의 고민을 엿듣게 된다.

 

 보기보다 대단한 경지에 달한 소설이었다. 마틴처럼 선과 악이 분명치 않은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은 자칫 잘못했다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애매해질지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보면 마틴 같은 도둑이 우리 집에도 좀 와줬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단연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주인공이 도둑임에도 하는 행동들이 자극적이기는 커녕 웃음을 유발하고 그러면서도 스릴이 있었다. 또 마틴이 우연히 고객의 고민을 듣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개입해 행복을 선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낱 도둑에 불과했던 마틴이 자연스럽게 선행을 베푸는 전개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도 행복을 찾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양심과 도덕적 가치관을 우선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쾌감을 간접 체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제법 교훈적이었다.

 읽는 내내 작중에서 마틴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정신적 고양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인물에 대한 몰입과 더불어 마틴과 같은 안티 히어로의 떳떳하지 못한 입지를 명쾌하게 짚어내 이래저래 감상할 부분이 다분했다. 어떻게 보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가올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p.s 혹시 <바쿠만>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아시로기 콤비의 만화 <P.C.P>를 읽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상의 만화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

마틴은 제아무리 값진 고가의 모포를 손에 넣었을 때도, 한 송이 장미꽃과,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지나치게 번번이 잊어버리는 남자가 직접 손으로 쓴 카드를 보았을 때보다 더 흐뭇하지는 않았다. - 225p




네 불법적인 활동을 탈세라고 생각하자. 알았지? 그런 건 눈감아 줄 수 있다. 단 네가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3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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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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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 모순된 말 같지만 추구하는 소설가가 의외로 많다 보니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라고 감상을 풀어내는 것은 마치 내 어휘력이 폭넓지 못하다고 시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다고 꼭 감상을 풀어내야겠다. 다름 아닌 그런 이야기를 짓기로 아주 일가견이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 있는 쇠락한 시골 마을 도마자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무코다 야스히코 - 이하 야스히코로 적음 - 가 귀촌한 아들 가즈마사를 바라보며 착잡해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통념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들의 귀촌을 가장 반길만한 사람이 바로 부모일 같은데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단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종을 달리 하는 시골 소설의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 깡촌에는 앞날 따윈 없다. 그러니 내 자식들은 도시에서 승승장구하면 좋겠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시골에 돌아와서 이발사를 하겠다고? 혹시 도시의 직장생활에 지쳐서 고향으로 도망친 거 아냐? 그렇다면 웃기지 말라 그래!' 라는 게 야스히코의 심정이다. 사람들은 야스히코가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로 인해 삿포로에서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의 이발소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야스히코는 도시의 직장 생활에 나가 떨어져 시골의 이발사로 살아가는 스스로를 열등감 안에 가두고 있다.

 그 열등감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지만 간혹 자다가도 벌떡 일으켜 세울 만큼 겉잡을 수 없이 찾아오곤 하는데 아들의 귀촌으로 완전히 고개를 쳐들고 만다. 이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신의 이발소에서 일하는 한편 이발소 옆의 빈 창고를 카페로 탈바꿈 시켜 수입을 올리겠다는 꿈같은 소리만 해대는 아들을 보면 헛웃음이 다 나온다. 또 자신의 아들을 비롯하여 마을을 재건하고자 하는 청년들이나 파견 관료의 행동들이 어째 못미덥고 탁상 행정처럼만 보이니 어떻게 한소리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무코다 이발소>는 몇 번이고 재건에 실패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식상한듯 색다른 이야기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나같은 경우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시골하면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낡아빠진 이미지들만 떠오르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골이나 시골 사람들의 현주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당장 그들도 나와 같이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나랑 별반 다르지 않게 희로애락을 느끼며 앞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시골의 삶에 일종의 열등감을 품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익숙하리만큼 낯설었고 낯설면서도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익히 들어왔건만 새겨듣진 않았던 시골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며 나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나같은 사람이 이제와 걱정한들 도마자와는 이미 우스겟소리로 '몰락한 배'라고 불릴 만큼 쇠락해버렸다. 과거엔 탄광 도시로 번성했다지만 주요 산업이 침체하자 사람들이 떠났고 어떻게 재건하고자 이것저것 시도하며 새로운 시설도 짓고 그랬지만 지금은 휑뎅그렁한 건물들이 늘어선 을씨년스런 마을이 됐다. 이런 와중에 젊은이들이 굳이 귀촌해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 저의가 가히 의심될 정도로 덧없게만 보인다는 것이 야스히코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 열등감이랄지 패색감이랄지 하여튼 비관적인 시선은 거두어질 길이 없다.


 야스히코를 화자로 세운 도마자와의 이야기 6편을 통해 다양한 시골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젊은이의 귀촌을 바라보는 부모의 착잡한 마음, 독거 노인, 외국인 신부, 도시에서 돌아온 고향 사람에 관한 추문이나 영화 촬영기, 마을 출신 범죄자 등 각양각색의 이야기 갈래와 그에 따른 인간 군상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처음 이 책의 기본 줄거리만 읽었을 때는 그저 무난해 빠진 이야기일 것 같았는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화자인 야스히코도 제법 진중한 성격이라 사건에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음에도 이상하게 빠져든다.

 나는 이러한 가독성의 근원을 앞서 언급한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작풍과 더불어 오쿠다 히데오의 진정성과 통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안 그런 작가가 어딨겠냐만은 -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작가는 수준 미달... 말을 아끼겠다 - 오쿠다 히데오는 간결하게 핵심을 잘 짚어낸다. 그래서 도마자와나 도마자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마냥 불쌍하지도 않고 마냥 절망적이지도 않고 마냥 걱정되지도 않고 마냥 무관심하지도 않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종을 달리 하는 시골 소설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시골을 단순히 세대 갈등이 극심한 지역으로 단정짓거나 도시 생활에 대한 염원이 있는 젊은이들이 사는 곳으로 과장하지 않고 남들이 쇠락했다고 하든 아니든지 간에 차마 두고 볼 수만은 없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낯설지 않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야스히코의 시선을 통한 도마자와를 보면 도대체 우리가 갖곤 하는 시골의 이미지가 어쩌다 생겼고, 그 전에 도시와 시골이라는 극심히 차이나는 두 이미지가 왜 구분지어졌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시골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과 이질감을 없애는 점, 그리고 쇠락해가는 수많은 마을을 재건하는 것은 탁상 행정이 아니며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준 덕에 어째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신기하게도 단 한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는 내 모습을 그리게 됐는데, 정말 톡톡한 매력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뭐 조금은 반한 것도 있지만. 그래 봐야 일시적인 오락이지. 인구 적은 동네에서 늘 똑같은 얼굴끼리 지내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 여자에게 반하는 감정도 그렇지.

(중략)그런 것까지 다 알면서 어쩌다 몇 년에 한 번,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오니까 다들 넋을 잃고 한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런 거 아니겠어. - 213 ~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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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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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5






 나는 거만한 사람, 특히 예술계에서 거만한 사람을 무지 싫어한다. 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이 싫음의 근원은 <비정상회담>에서 배우 조민기 씨가 한 말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취미(예술)는 윤활유지, 삶을 돌아가게 만드는 휘발유가 아니다.


 취미와 예술을 치환해서 풀어낸 건 순전히 내 마음이다. 그렇다. 나는 예술이란 영역 자체가 삶의 본질과는 무관한 일종의 취미의 영역 안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자칫하면 굉장히 위험하고 삭막한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생각을 순순히 버리지 못하고 굳이 말로 꺼내야겠는 데에는 예술이 삶보다 상위의 개념이라 착각하는 치들 때문이다. 그들의 예술적 재능으로 하여금 다른 주변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갑으로 군림하려는 치들의 속셈에 도저히 이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예술적 재능이 아무리 대단한들 누군가의 삶보다 대단치 않으므로.


 그런 치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굉장히 많은 것 같다. 굳이 예술적 재능이 아니더라도 돈이나 권력, 나이 같은 것으로 비슷한 짓거리를 범하는 치들이 있듯이. 이번에 읽은 <가마타 행진곡>에서도 내가 싫어해 마지않는 유형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안하무인에다가 독선적이고 실로 권위적인 긴짱이라는 인물이 말이다.

 긴짱의 권력은 확고부동하다. 잘 생기고 매력적이고 추종하는 이들도 많은 명실상부한 영화판의 스타다. 그를 반증하듯 긴짱은 영화에 대한 열정도 있고 저 나름대로 영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몸소 실천하기도 한다. 그게 다소 한없이 그릇됐을지라도 자신의 이상과 목표를 자발적 추종자들을 움직여 성취해내는 행동력 또한 갖추고 있다.


 여기서 이 자발적 추종자라 함은 상당히 위험하면서도 아주 익숙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스턴트를 긴짱의 지시로 하게 되는 야스, 긴짱에게 버림받았으면서 긴짱을 바라보는 고나쓰의 시선 같은 걸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내 개인적으론 긴짱이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고 천하의 X놈이라서 특히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아무튼 그들을 비롯해 다른 영화판 사람들도 긴짱을 향해 맹목적인 헌신을 하고 앉았는데 정말이지 대가 없는 충성이라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한없이 발랄한 작풍의 이면에 도사리는 것들은 무시무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역자가 후기에서 이 무시무시함을 잘 정리해줬다. 1982년의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작품이 당시의 시대상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가를. 지금도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지만 -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인물에 대한 무비판적 숭배를 정말 세련된 블랙 유머로 꼬집은 작품이라는 내용이었다. 작품에서 비치는 것처럼 강자나 약자나 모두 한심하게 보이는 상황,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 상황 속에 놓여있었다는 전제가 너무도 와닿았다.


 오늘 아침부터 실망스런 뉴스를 접하고 보니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와닿았다. 읽을 때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는데 곱씹으니 더욱 화가 난다. 나오키상은 정말 괜히 받는 게 아니며 이토록 시대를 풍자했으니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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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오츠이치 지음, 이연승 옮김, 이와이 슌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8.2






 제작년에 정말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인 <하나와 앨리스:살인사건>이 소설로도 나왔다. 그것도 오츠이치가 소설화했는데 이거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하나와 앨리스가 처음 만났을 때 둘 사이를 휘감고 있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상당히 독특한 구성의 작품으로 추리/미스터리 장르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제법 흥미진진했던 영화였는데 그게 오츠이치가 소설화한다니 기대가 됐다.

 글쎄, 무슨 연유에선지 소설은 영화보다 흡입력이 떨어지는 구석이 있었는데 - 영화는 극장에서 두 번 봤다. - 내용이 몇몇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똑같아서 이미 뒷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반작용인 듯하다. 아무래도 똑같은 얘길 보자니 굳이 읽을 필요는 없었구나 싶은데 반대로 소설로 먼저 접했더라면 영화를 반드시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 같다. 오츠이치가 못 썼다기 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구현될지 진짜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싶다.


 http://blog.naver.com/jimesking/220380497414


 원작인 영화 포스팅도 썼었다. 책에 대한 감상도 영화와 거의 비슷한데 그게 개인적으로 아쉬었다. 오츠이치가 그래도 자기만의 해석을 할 줄 알았고 실제로 어느 정도 손댄 부분도 있지만 크게 눈의 띄는 부분도 아니라서 약간 시큰둥했다. 분량도 너무 짧거니와 전체적으로 가볍게 작성됐는데 원작의 이면 등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것을 원했더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영상과 활자는 표현법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보였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의 캐릭터 묘사가 더 와닿았다. 시점 전환이니 감정 묘사니 하는 기교가 등장해도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그를 월등히 능가하는 경우도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어쩌면 영화가 너무 레전드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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