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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ㅣ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평점 :
최신 휴대폰의 카메라는 1억 2천만의 화소를 가졌다고 한다. 이로서 두 눈이 볼 수 있는 세상의 입자는 더 작아진 셈이 되겠고, 우리는 더욱 더 꽉 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다. 세상에 발전하고 업데이트 되지 않는 것은 나 뿐인 것 같은 요즘, 잠시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시집을 들었다. 이영재 시인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다.
스스로의 고독한 시기를 거치며 세상을 바라보는 재기발랄한 시선을 담은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사회의 흐름에 대한 씁쓸한 서사로 그 특유의 느낌을 완성 시킨다. 단어와 단어를 잇는 묘한 전개에서 느껴지는 시적 긴장감은 조금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그 사이의 여운을 음미하는 시간을 거치다 보면 너무 빠른 세상에 발 맞추느라 놓쳐왔던 것들에 대한 시인의 관찰을 엿볼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한계였으면 해서
선을 긋는다 촘촘히, 다시 계단이잖아 어쩔 수 없으니까
얼마나 더
까마득해지려나
-어쩌면 조금은 굉장한 슬픔
국어라는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국어를 사랑했지만, 시의 단어 하나를 해석하고 행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식의 공부는 영 불편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모두에게 다른 정의로 해석 되듯, 시를 읽어내릴 때에는 그저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보다는 읽어내리는 독자의 마음을 적용시키는 것이 조금 더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영재 시인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에서는 그 독자의 마음이 조금 더 확대되어, 우리가 속한 사회에 비춰보이는 듯 하다. 시인은 스스로의 고뇌를 담아 내기도,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어떤 떫음을 쏟아내기도 한다. 필자 또한, 시인의 연필 끝에서 느껴지는 소용돌이에서 자주 길을 잃는 듯 했다. 그리고 이영재 시인의 마지막 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어쩌면 모르는 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는 문장이었다.
배워온 대로, 두려움을 인내할 줄 안다
…
젊어서,
젊음이 소모되지 않아서 오랜 교육으로 축조된 희망과 기대가 아직 소모되지 않아서
-청사진 중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어 열어보고 닫길 반복하는 지금.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그저 그러 안아 버려야 한다는 용기와 사랑이 아닐까. 손끝에서 수만가지의 정보가 피어 나는 2020년의 2월, 이유를 찾는 것 또한 또다른 회피의 방법 이었다 는 것을 깨달았다.
착각하면서, 솔직해진다 솔직하다는 말이 얼마나 솔직하지 않은 말인지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은 되고 만다
되는 것들에 굳이 관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고
또 생각하면서
-암묵 중에서
여느 시집이 그렇듯, 시집의 제목은 어느 시의 제목일 줄 알았다. 마지막 시인의 말을 모두 읽었는데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라는 시를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아 목차를 되돌아 보았더니 시인은 그런 시를 쓰지 않았다. 이 모든 시는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고, 시가 되어온 과정이고, 세상이 되어온 과정 속에 부유하는 속삭임일지도. 그러니, 눈이 길어지는 이 겨울 밤. 조금 씁쓸한 느낌을 그저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