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소비는 없다
김현호 지음 / 부크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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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튜버는 지금이 단군이래 돈벌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할 만큼, 수십만가지의 물건이 세상에 쏟아져나오고 소비자는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자본을 풀기 위한 나름의 기준을 세운다. 초록창에 검색 한 번 했을 뿐인데 어느 홈페이지의 어느 사이트를 가도 그와 관련된 물건들의 광고가 걸려있는 빅데이터는 마치 나만을 위한 지니처럼 보인다. #현명한소비 와 #윤리적소비, 나름의 명확한 잣대를 들이미는 소비 기준 부터 #Flex 라고 불리는 그저 과시를 위한 소비도 만만치 않다. 어엿한 #호모콘수무스 로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우리. 구매를 위한 기준 마련에 조금은 지쳐있다면 현직 MD 가 인터넷 창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어내린 이 책을 통해 왜 내 장바구니는 좀처럼 비워지지 않는지를 근본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우리의 장바구니를 박터지게 채워넣게 만든 김현호 MD의 [우연한 소비는 없다]이다.



각자의 시기마다, 꽂히는 분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는 화장품이 그랬다. 자칭 타칭 #코덕 으로 살며 온갖 로드샵의 화장품을 끌어 모으고, 여행 가는 친구의 인터넷 면세를 빌려 백화점 화장품을 모으며 1인칭으로서의 #스트레스풀기 라는 기준을 만족시켰고 3인칭으로서의 #뷰티잘알 이라는 타이틀에도 만족을 얻었다. 대게 그렇듯, 소비란 채워지는 부분이 있으면 비워지는 반대쪽이 있기 마련이라 비싼 돈 주고 사놔봐야 화장대 장식품으로밖에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들을 보며 후회도 했더랬다. 하지만 인터넷 창을 켜면 무섭게 달려드는 #신상컬러 의 습격. #세상아래같은립스틱은없다 는 신의 전언같은 문구에 또다시 터져가는 장바구니를 보며 생각했다.


나 신들린거 아냐?



이 과정에서 매장 앞에서 최초의 '어머 저건 사야돼' 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바로 썸네일의 역할이다.


MD의 썸네일 -엄지손톱 만한 게 뭐라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의 질문을 던져 준 장본인이 물건의 뒤에서 요로코롬 새침하게 써내린 [우연한 소비는 없다]는다양한 인용으로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MD(Merchandiser a.k.a 뭐든지 다한다.) 를 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에는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가, 소비를 부추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본인의 통장도 구멍이 나버렸다는 이야기에서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인용되었다. CJ 쇼핑에서 유난히 심장이 빠르게 뛰던 일은 대기업의 횡포여서가 아니었나 보다. 취향이 똑 떨어지는 이렇게 배운 사람이 물건을 팔아대니, 카드 긁는 일이 자꾸 즐거워져버렸잖아.



플로베르의 생각을 좀 더 훔쳐봤다.


같은 물건을 취급하지만 조금은 다른 특별한 물건이 되게끔 하는 일,


바로 MD의 일이라고.


같은 물건의 다른 삶을 만드는 일이 바로 우리네 MD의 일이다.


MD의 꽃점 - 같은 물건의 다른 삶


취향이야 각설하고, 업으로서의 MD의 삶의 진행과 함께 흘러가는 글의 방향은 시원하고 깔끔하다. 직업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구구절절 피곤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애환을 털어놓는 듯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직업의 전반에 대해, 소비 행태를 부추기는 행위에 대해 듣는 모든 책의 이야기가 패션쇼의 백스테이지를 보는 듯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꾸며내는 자기 소개서의 제품 버전과 같아 재미있다.


책의 초반에는 기대와 다른 소박한 이야기들에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회사 생활을 읽으며 몇달 전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잊은 채 이런 회사 라면 괜찮을지도.. 라는 모옷된 생각도 들었더랬다. 치열하지만 공감가는 이야기, 낯설지만 결국 내 장바구니 뒤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비 세포들의 움직임같은 스토리가 더욱 좋았던 책이다. 저자 김현수님의 유쾌한 통찰과 일상에 녹아드는 소비 이야기를 마치다 보면,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의 친구 신용카드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너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잖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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