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1. 신간평가단 활동 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인지자본주의, 조정환>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장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때 생각도 나고 리포트 내는 심정으로 리뷰를 작성했다. 처음엔 이렇게 어려운 책을 추천한 평가단 분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책 덮고 나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읽었다고 리뷰까지 쓰지도 못했을 터이다. 불운이 행운으로 바뀐 우연적 필연이었다.
<강남좌파, 강준만>
평가단 책으로 리뷰쓴 것 중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고 내용상 비판을 많이 했던 것 같아 미안한 책 중 하나이다. 강남과 좌파에 대해 논리를 연결해보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시의 적절한 경험이었다.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 중에 적어도 강남좌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 이택광>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약간의 실망은 있었지만 나는 이 책을 시작으로 <문화로 먹고살기>, <아이콘>, <닥치고 정치>, <직설>같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식의 비평집을 시작으로 사회 및 문화, 정치 비평 서적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할까. 한수 배운 게 있다면 동전 뒤집기와 뫼비우스 띠처럼 생각하기가 될 것 같다.
2.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 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기억에 남는 책과 좋은 책의 경계가 참 애매하다. 좋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책도 있었기 때문에. 이 항목 때문에 위의 기억에 남는 책은 (크게 좋지는 않은 채로)기억에만 남는 책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건 기억에 남는 작품과 좋은 작가를 분류해 질문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식의 분류로 인해 ‘좋은’의 사회적 해석이 마치 작품성이나 수준이 높은 책을 뜻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본 듯하다. 김어준 식으로 답하면 이 질문은 후진 질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질문을 위한 질문, 어떤 통계적 평가를 위한 질문. 그러나 나는 질문을 하는 위치가 아닌 답을 하는 입장이므로 좋다는 기준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일단 좋았는데 그 직관을 논리로 정리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사실 이 작업이 썩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
‘좋은’ 책의 기준을 크게 도움의 정도와 재미의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그러면서도 얼마나 흥미로왔는가. 확실히 인문서적은 몰랐던 것들을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천천히 알아가는 재미는 쏠쏠한 듯 하다.
1. 사르트르와 까뮈 '우정과 투쟁 - 로널드 애런슨
두 사람의 우정과 투쟁을 지켜보는 시간이 흥미진진했다.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많이도 유익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방인>을 다시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뒤에 실린 사르트르의 칼같은 해설도 나는 참 아프게 느껴졌다. 아직도 뇌리에 각인된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다.
2. 언어의 감옥에서 - 서경식
어느 재일 지식인의 논리가 아름답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논리의 아름다움이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리뷰쓸 때 살짝 설레기 까지 했고 다 쓰고 나서 무언가 내 논리의 틀을 깨부순 느낌도 들었다.
3. 아렌트 읽기 -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말로만 듣던 아렌트에 대해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요약해서 공부한 느낌이 들었다. 아렌트의 제자인 저자는 이 책이 단순한 평전이 아닌 독창적인 문학의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로 의미있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다른 아렌트 서적을 선물받기도 했다.
4.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유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말빨뿐 아니라 글빨도 수준급이었다. 학문적으로 의미있는 서적이었다.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답하는 글이 아니고 스스로 배워왔고 알아왔던 국가를 유시민식으로 정리했다는 의미가 호감으로 다가왔다.
5. 직설 - 한홍구, 서해성
MB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집약해서 정리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것들과 투쟁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다는 확인도 하게 되었다. 또 서해성이라는 구라문학의 선두주자도 알게 되어 그의 뼛속 구라로 두어번 감동 먹었다는 기억도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덧붙임 )
3.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 맘 대로 나쁜 책
<불안의 시대, 기디언 래치먼>
제목의 아우라에 제대로 낚인 책이다. 미국의 흑심과 서구의 시각을 정리한 책이라는 의미성만 빼면 불쾌하기까지 한 책. 나는 이 책을 추천한 과오로 인해 다음부턴 될 수 있으면 서점가서 책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
저자의 콜렉션이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책이다. 편집의 악덕만 발현한 책. 러셀 모르는 독자가 보기엔 러셀의 수준을 하향조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이 책을 계기로 모음집의 유혹에서 좀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까.
그동안 평가단을 하면서 힘들었다고 느낀 건 거의 약으로 돌아오는 결과를 얻었다. 인문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사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콕 집어서 맘에 드는 한사람의 글만 읽는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ㅋ) 이걸 그다지 고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그렇다면 이번 평가단 할 때도 부디 내 맘에 드는 분이(?) 나타나주길 기대하는 쪽으로 물타기를 하게 된다. 나도 이웃 분들의 리뷰를 애써 찾아 읽어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남의 글을 진심으로 꼼꼼히 읽어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수고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길고도 지루한 내 리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어려운 책의 리뷰를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작성하는 건 어려운 말로 빈칸을 채우기 보다 사실 어렵다. 엊그제인가 강심장에서 조혜련이 뜻밖에도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나름대로 느낀 것을 강의하는 장면을 보았다. 인문 MD왈, 그 프로 덕에 책 주문이 늘었다고 하더라. (나도 평가단 책으로 추천은 했는데 다른 분들이 관심이 없는 통에 선택될 확률은 없다 ㅠ) 조혜련은 그 책을 가지고 쉽고 재미나게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법을 강의했는데 정말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수준이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한비야와의 개인적 만남과 책과의 연계성, 개인적인 의견까지 아주 좋았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내 리뷰를 읽어 본 사람은 그 책을 읽어본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내 리뷰를 읽었기에 더 그 책이 궁금해지는 효과를 얻었으면 한다. ‘좋은 서평이 좋은 책을 살린다’는 말이 꼭 안 좋은 책도 좋게 말하라는 뜻은 아닐 게다. 나는 아직 좋은 리뷰는 어떤 리뷰인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건 그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진심을 다해 적는 것이 역시 진심을 전달하기 쉽다는 쪽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가지 아쉬운 건 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많은 추천을 받아보았지만 쌩쓰투는 거의 평가단 책이 아닌 책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평가이니 객관성 면에서 그다지 호응도가 높은 건 아닌 듯하다. 더욱더 평가단 책은 리뷰로만 이해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리뷰를 대충쓰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많이 읽고 또 책 읽었다는 글을 많이 쓸수록 책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책에 대해 또 맘껏 떠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 행복하다. 9기 활동은 그렇게 많은 행복을 주며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허망하게 사라진 것만은 아니라는 뜻으로 이 페이퍼를 남겨본다.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 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직면할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수 있다.
-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