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영광(?)스럽게도 9기에 이어 10기 인문평가단 활동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웃분이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문을 읽어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동감아닌 통감을 했다. 한달에 두권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들 동안 소설만으로는 할수 없었던 영역의 고민들을 할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당연히 소설을 읽어야 소설을 쓸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소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소설을 쓰려면 소설 읽는 것을 중단해야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내가 소설을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지만 사실 내가 소설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에 멈춘 상태였다.
어느날 아침 나는 이제 소설을 쓰고 싶다에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무지막지한 믿음 하나로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역시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확인해가면서. 그래서인지 이번 평가단 활동은 처음 인문활동보다는 조금은 여유를 가질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한다.(어쨋든 시작은 했으니까 ㅋ) 짜집기식의 정치서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내 중심을 잡아줄 책들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바이다. 이상한 논리다.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을 안읽는다는. 그러기 위해 인문을 택하였다는.
1. 맹신자들 ( 에릭 호퍼 지음|이민아 옮김, 궁리 ).........................사회과학>사회사상
세상은 한 번도 우리에게 신념을 요구한 적 없지만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맹신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에 선배따라 다단계회사의 설명회에 불려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어디를 보아도 멀쩡하고 똑똑해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같은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창궐한 집단 속에서 가치는 종교에 다름 없었다. 성공을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기 보다는 같은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듯했다. 이 책이 궁금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광신 현상의 심리적 요인’과 ‘대중운동의 본질’을 추적했다는 것이다. 맹신이라는 단어에 필요이상의 과다, 긍정 너머의 부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대중운동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동기와 심리, 내면을 통해 대중운동의 올바른 역할수행을 주장하고 있다.
“ 특히 군대, 증오, 설득과 강압, 지식인, 소수자 등을 논하는 호퍼의 혜안은 아주 빛난다. 호퍼는 마지막 장에서 대중운동의 발단과 성숙기까지를 살피며, 대중운동이 제대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 유형의 사람이 발전 단계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운동의 토대를 닦는 것은 지식인, 대중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대중운동을 굳건히 다지는 것은 실천적인 행동가라야 한다고. 나치즘이 재앙으로 끝난 것은 히틀러라는 광신적 지도자가 성숙기까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좋은 지도자, 나쁜 지도자를 예로 들며 궁극에 유익한 대중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이한건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 에릭 호퍼(Hoffer·1902~1983)가 '맹신자들'(원제:The True Believer)을 집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1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금광 및 부두 노동자, 웨이터등을 전전하며 노동자 시절에 이 책을 발표했다. 이론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나치즘과 파시즘, 스탈린의 전체주의의 폐해를 목격한 후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좋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피가 끓는 신빈곤층"이 맹신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무너진 중산층 출신 빈민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적절한 충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제대로 무너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일련의 사회현상은 마치 쓰나미처럼 신념에 호소한다. 이것이 집단의식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불평불만은 문제가 시정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가장 신랄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시정을 바래서가 아닌 불평을 위한 불만에 너무나 익숙하다. 마치 불평만이 우리를 연대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언론에서의 평도 좋은 평인데 그건 아마도 진보든 보수든 대중운동에 대한 필요성 이전에 그것을 행하려는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에 대한 공감때문인 듯하다.
2.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강신주, 동녘 )...................................인문학>교양인문
솔직히 요즘 시 읽는 일이 내겐 즐겁지 않다. 언제부턴지 시는 인문보다 어려워졌고 시를 통해 철학을 발견하고 싶지 않은 나는 시를 외면해온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니 이 책도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고 작년에 출간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처럼 선택하기 맘 편한 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괴로움이라 고백하는 편이 내겐 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때 다루지 못했던 시인중 문정희, 고정희, 김행숙 등 여성 시인들과 백석, 신동엽, 이성복, 김정환, 허연 등을 다룬다고 한다. 전편을 읽지 못하고 속편을 읽는 부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다 대답하는 시인이 문정희님인데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성의 문화를 문정희님으로 대변하고 있다. 어떤 책에 끌리는 이유는 이처럼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이 가을을 기꺼이 시 읽는 괴로움으로 채워놓고 싶은 이유가 알고 보면 사소한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진실. 또 하나 대중철학자로 불리는 강신주 저자가 항상 학문이 아닌 우리 삶에 오랫동안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읽지 않고도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진다. 진실의 사실화, 이것이 추천 이유다
“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적 유사성은 바로 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3.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 백영미 옮김, 판미동......................과학>정신과학
이 책은 아주 흥미롭다. 영적담론을 과학으로 펼쳐내 보인 책이다. 정신과학에 대한 서적은 최초의지만큼이나 이해도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 나를 만나다>를 비롯한 의식지도의 다양한 개념의 출발점이 된 책이고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완성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는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몸이 유해한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약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근육테스트법’을 통해 우리 몸의 다양한 반응을 관찰했다. 의식지도는 20년에 걸쳐, 모든 연령대와 성격 유형을 망라하는 각계각층의 피험자 수천 명에 대한 수백만 건의 테스트를 근거로 한 개념인 것이다.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로 대표되는 힘을 따르느냐 무감정,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으로 표현되는 위력을 따르느냐에 따라 사회, 문화, 정치 분야에서 우리가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위력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은 폭력, 전쟁, 죽음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했다. 즉, 힘과 위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숨어 있는 결정자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위력과 힘을 구분함으로써 ‘본인의 이익에 영합하고자 하는 정치인과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리의 의식 수준을 끌어내리는 예술 작품과 보기만 해도 의식 수준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예술 작품을 구분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고 말한다. 긍정과 부정을 가르는 기준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듯하다. 살아가는데 있어 철학은 과학을 보완하고 과학은 철학을 증명하는 일의 반복이 결국 생의 의미를 진화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선택의 과학 (리드 몬터규 지음 |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인문학>뇌과학
이 책을 덮고 나면 인간이란 별스런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과 우리 뇌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 것 같았다. 저자의 연구결과를 훑어보니 결국 인간은 ‘다음 단계’라는 목표를 위해 죽음도 단식도 테러도 가능하다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 말한다. ‘다음 단계’라는 생각이 일종의 보상신호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보상신호가 우리 신경계의 내적구조를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이 결국 다음 단계라는 보상신호에 의해 반복되는 학습이며 이것을 다양하게 재배치하는 과정이 곧 선택하는 패턴이 되며 그 선택의 종류에 따라 얼마든지 자살이나 분신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어떤 사람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은 생의 시간과 비례하는 것 같아도 나이들수록 사실 그 어떤 선택에도 놀라지 않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이것이 더 궁금해진 독자였다. 막연히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게 하는 뇌구조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 수준에서 나는 생각을 멈추곤 했는데 이 생각하는 과정을 뇌과학으로 체계화한 것에 대한 인문서적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 책의 원제는 '왜 이 책을 고르지?(Why choose this book?)'이다. "당신의 인생이란 이 책을 고른 것과 같은 선택의 순간 수십억 가지가 합쳐진 것에 불과하다"는 도발적 선언이다. 선택의 과학적 과정,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그 보편적 원리를 찾는 최신 신경과학 실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
이 과정을 이해하면 무엇을 선택하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 같다. 살다보면 의외로 똑똑한 여자들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남자를 택하곤 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녀들의 선택은 단지 과학적인 작용이었고 고로 그녀들의 인생은 상당히 과학적인 삶이었다는 사실을.
5. 자아폭발(스티브 테일러 지음 | 우태영 옮김, 다른세상)...............역사>고고학/인류학
언론의 소개를 보았을 때 이 책은 역사적이면서 철학적이면서 또한 심리학적인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책은 방대한 사유와 그 깊이에 비해 자칫 막연하고 허탈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책 덮고 난후 저자와 같은 의문만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안보고 가진 의문보다는 다 읽고 난 후의 의문이 낫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추천하고픈 이유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지난 6천년 동안 인류가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 바깥이 아닌 우리 내부로 쟁점화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자아폭발’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자아폭발 이후가 곧 타락이라 규정한다. 그러므로 인류는 진보가 아닌 퇴보의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병리적 현상은 가부장제, 남녀불평등, 인종차별, 물질주의 같은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모든 진화의 산물들이다. 나는 사실 인간의 죄의식을 유발하는 인문서적들을 선호하지 않지만 내가 궁금한 건 문제의식을 통찰하는 관점이다. 알고 있는 역사과 알려진 사건이지만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 테일러는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아폭발” 이전, 즉 선사시대의 인류는 우리보다 훨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으며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고대 인류의 삶은 “자아폭발” 이후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삶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흔적은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메리카 인디언, 오스트리아 애버리진을 비롯한 원주민 집단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원주민 집단은 결코 “미개한” 존재가 아니다.“
“ 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원주민은 이미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라는 무계급사회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프랑스대혁명, 미국 헌법 기초에 깔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폭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썩 기분좋은 결말은 아닐 것이나 분명 인정하기 어려운 일만은 아닐 터이다. 타락이 진화의 다른 말인 것을 우리는 알고서도 침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덧붙임)
현재 10월 신간들을 추천하라는 안내 페이퍼는 올라오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대부분 신규로 선정된 평가단 분들이 벌써 추천 페이퍼를 작성하고 계시는 듯하다)
9월 말에 10기 평가단 발표가 있었고 바로 10월 달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연휴를 맞아 일정이 늦추어 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달 평가단 마지막 도서들도 선정공지만 뜬채로 아직 배달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정이 꼬이는 것 같아 짜증은 나지만 늘 그렇듯 운영측은 턱없이 바쁠 것이므로 속좁은 내가 이해하기로 한다.
어짜피 작성해야 할 페이퍼였고 안내페이퍼 공지없이도 이렇게 추천은 가능하다.
하지만 월례조회때 선생님없이 우리반 줄선 것 같은 기분은 든다.
그리고, 2만원 넘어가는 서적들은 (눈물을 머금고 양심상? )제외했다.(정가는 2만원 넘어도 알라딘에서의 가격으로 결정)
사실 인문서적은 소설, 에세이보다 조금 비싼 편이다.
지난 평가단 활동때 <인지자본주의>같이 두껍고 비싼책을 받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런데 책이 비쌀 경우 더 전문적인 내용일 경우가 많아 그 책이 지지를 많이 받아도 선택될 확률이 적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비싼 책은 평가의 목적이 아니라 소장의 목적으로 추천을 한다는 소리도 들려와 스스로 좋은 책이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클릭을 망설이게 되더라는 것.
내 스스로는 될만한 책 위주로 추천을 하지 말고 서점도 가보고 직접 확인을 해보고
한계를 인정한 상황내에서 최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해 책을 선택하려 노력은 한다.
그런데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출판사의 수락여부와 평가수용의 의지임을 인식하다보니
나 좋다고 책을 선뜻 추천하기는 힘들다 말하고 싶다.(그렇담 과연 이렇게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 큰 의미일까? 하는 딜레마에 당연히 봉착하게 된다)
잔머리 굴리는 사람을 가장 혐오하지만 위의 페이퍼는 할수 없이 그러한 잔머리의 결과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