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중전과 문학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5년만에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책이 출간되기 전에 내가 모니터링을 한 책이기 때문이다. 보통 말미에 모니터링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는데, 지금 들춰보니 내 이름이 빠져 있더라. 이유는 너무 오래 돼서 잘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넣어 달라고 말해야 하나. 5년 전 일을 헤집어서 그러기엔 너무 귀찮네 그래.
나의 제발트 읽기 프로젝트 네 번째 책으로 <공중전과 문학>을 골랐다. 모니터링하고 받은 책이 분명 어디 있을텐데, 집안을 모두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읽고 싶을 때 나타나지 않는 걸까. <토성의 고리>도 사서 다 읽고 나니 어디선가 불쑥 등장하더라만.
제발트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을 상대로 한 연합군, 특히 영국 공군의 지역폭격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된 대규모 공중 폭격전의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영국이 실시한 대규모 폭격은 전쟁을 조속하게 끝내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전쟁을 수행 중이던 독일 시민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선전전에 해당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그렇게 막대한 전쟁 비용과 인원(폭격수 60/100명 꼴로 사망)을 동원해서 실시한 공중전이 독일 시민들의 전쟁의지를 꺾지도, 산업 생산 피해도 미미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군이 정말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면, 나치의 유능한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가 지적한 대로 교통요충지나 정유시설, 연료설비, 볼베어링공장 같은 전쟁물자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전략목표를 대상으로 정교하고 선별적인 폭격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압도적인 독일군의 블리츠크리크(전격전)로 유례없는 패배를 기록한 영국군은 사실상 대항할 수단이 전무했다. 온갖 기괴한 작전 구상들이 나온 끝에 도출된 결론이 바로 공중전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한 공중전이 사실상 적국에게 크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비싼 기회비용을 들여 생산한 엄청난 수량의 폭탄을 썩힐 수는 없었다. 그 결과 불행한 다수 독일 민간인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 전문가들이 선전한 대로 “가학적인 테러 공격”이나 “야만적인 깡패짓”이라는 문구들이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1943년 7월 마지막 주에 수행된 고모라 작전에 목표였던 함부르크에서 벌어진 대규모 살상에 대한 기록들을 공개한다. 미국 제8공군의 지원을 받은 영국 공군은 연속적으로 1만 톤 달하는 화염폭탄과 파쇄폭탄의 비를 함부르크에 퍼부어댔고, 함부르크 시내를 강타한 화염 폭풍은 도시에 살던 인명과 유서 깊은 건축물들을 그야말로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서로 뒤엉켜 불타 버린 시신들에 대한 제발트의 서술은 너무 끔찍해서 차마 읽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45쪽에 등장하는 사진이 고모라 작전이 만든 비극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발트는 비판의 화살을 다수의 독일 지식인들에게도 돌리고 있다. 전쟁 중에 저질러진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원죄 때문에 연합군이 실시한 부당한 폭격에 대해서도 전후 독일 지식인들을 비롯한 문학인들도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고, 의식적 저지와 회피 혹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충분히 시대상황을 고려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이었다. 승전국들의 점령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만한 발언들은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자기검열이 작동한 것일까.
물론 우리에게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널리 알려진 하인리히 뵐(<천사는 침묵했다> 오래 전에 국내에 출간됐지만 절판된 상태다), 한스 에리히 노사크(<늦어도 11월에는> 문학동네), 헤르만 카자크, 아르노 슈미트, 페터 드 멘델스존(대부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이다) 같은 소수의 양심적 작가들과 무명의 인사들이 남긴 기록이 있지만 너무나 빈약했고 산재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저술한다. 한 마디로 말해 제 2의 과거 청산 작업 중에 모두에게 완전한 침묵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과 어쩌면 이렇게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주류 수구언론들에서 연일 적폐청산에 대한 존재하지도 않는 피로감을 호소하며 지난 9년간의 악몽을 뒤로 하고, 미래로 달려 나가자는 주장과 꼭 맞아 떨어지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침묵하는 다수는 미래에 벌어질 범죄의 공동정범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전과 문학> 세 번째 장에서는 취리히 강연과 지면을 통해 제발트의 연합군 공중전에 관한 비판이 공개된 뒤 쏟아진 다양한 비난의 일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영국식 표현이 담긴 문장을 문제 삼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칭찬과 비난으로 범벅이 된 편지는 또 어떤가. 어디서나 지엽적인 문제들을 본래 어젠다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이탈해서 중점으로 삼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또 어떤 글들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서투르고 과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도 했다. 저자는 문학가이면서 동시에 역사가를 능가하는 그런 철두철미한 역사가의 정신으로 자신이 접한 사료들을 대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름슈타트에서 온 H박사의 글은 정말 구제불능의 황당무계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연합군의 지역폭격이 독일 민족을 말살시키려는 해외 유대인들의 음모론에서 비롯되었다는 해괴한 주장이다. 실제 나치 치하를 체험한 것도 아닌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점이 극히 우려스럽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도 이런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은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정예 독일군들이 루프트바페의 공중폭격으로 4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스탈린그라드 시민들을 살상됐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고모라 작전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의 사진을 보고 환호작약하는 연합군 병사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것처럼 내게는 들렸다.
책의 후반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 알프레트 안더쉬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오로지 제발트의 비판에 의하면, 사상적으로는 극우파 선배 에른스트 윙거를 추종했고 문학적으로는 토마스 만을 뛰어 넘고 싶어했던 성공과 유명세를 쫓는 협잡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국내에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예전에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라는 9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 출간되었는데 구해 두기는 했으나 미처 읽어 보지는 못했다. 독일 '문학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일찍이 그의 글에 대해 “거짓말과 키치의 밥맛 떨어지는 조합”이라는 혹평을 내렸다.
제발트의 분석에 따르면 원래 공산당 출신이었던 안더쉬는 몇 달 간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거쳐 제국에 봉사하는 신실한 인간으로 개조되었다. 유대인 출신 부인과의 결혼도 제국문예부의 회원이 되기 위해 이혼으로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베허마흐트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아르노 전선에서 1944년 6월 미군의 전쟁포로가 되어 미국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제발트는 안더쉬의 초기작부터 말년에 발표한 그의 주목할 만한 모든 작품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좌파에서 우파로, 다시 좌파로 재전향하며 오락가락하는 안더쉬의 삶을 관통하는 성공과 유명세를 향한 출세욕을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읽어야 하는 제발트의 책들은 두 권이 남았다. 그 중의 하나인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현기증. 감정들>은 이미 읽었지만 다음달에 다시 읽을 계획이다. 그나저나 문학동네에서 5년 전부터 제발트 선집으로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 <캄포 산토>는 과연 언제나 출간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