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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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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노르웨이 출신 작가 요 네스뵈의 책 <스노우맨>을 보았을 때, 우선 그 두께에 놀랐다.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처럼 스피드가 나지 않아 두 번째로 놀랐고, 본 궤도에 들어서자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놀랐다. 엄청난 속도로 이 책이 팔린다는 광고에 조금 허풍에 섞여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 오후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 읽으면서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근래 읽은 장르소설 중에 가히 최고다. 스칸디범죄소설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지 명징하게 알 수 있었다.

 

오슬로 경찰청에 근무하는 안티히어로적인 색깔이 농후한 해리 홀레 반장을 주인공으로 삼은 시리즈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스노우맨>이 상륙했다. 연쇄살인범과 알코올 중독 마초 형사의 대결을 그린 <스노우맨>은 문득 몇 년 전에 몰두했던 제프리 린제이 원작 미드에 나오는 싸이코패스 주인공 덱스터 모건을 연상시킨다. <덱스터>의 첫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 아이스 트럭 킬러처럼 스노우맨도 살인 현장에서 특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눈사람을 만드는 방식으로.

 

덱스터 모건이 철저하게 음지에서 선(?)을 추구하는 시리얼 킬러였다면, 우리의 주인공 해리 홀레 반장은 그의 직책이 말해주듯 양지에서 뛰는 형사다. 괴물과 싸우다 보면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 버린다고 했던가. 그런 통속적 정의에 해리 홀레는 안성맞춤인 캐릭터다. 이제는 닳을 대로 닳은 장르소설 독자를 위해 작가 요 네스뵈는 한층 자극적이면서도 핑핑 돌아가는 두뇌회전을 요구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우선 오래 전 사건을 빌미로 <스노우맨>이 현재진행형이지만 오래 전에 태동된 사건이라는 암시를 슬쩍 내빛친다. 단순해 보이는 부녀자 실종사건이 끔찍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시리즈물이다 보니 전작에서 파트너 형사를 잃은 해리 반장의 이야기가 가끔 등장해서, 반장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도대체 전 에피소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리뷰의 제목으로 삼은 삼단 콤보 트위스트는 헛다리짚기라는 호러/추리소설의 클리세이를 이용한 독자 낚기다. 독자보다 한 수 위인 요 네스뵈는 능수능란하게 독자를

 

공교롭게도 요즘 스웨덴 작가와 노르웨이 작가 그러니까 잘 접할 수 없는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작가들의 책을 연달아 읽다 보니 문득 황량한 북구의 냉랭한 기운을 느끼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로 치자면 <13일의 금요일> 스타일의 날것 그대로의 우악스러운 공포가 아니라, 말끔하게 재단된 북유럽 특유의 질서와 추위, 청결한 백색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공포서사가 매력적이다. 소설의 복잡한 알레고리는 계속해서 멀어지는 기억 때문에 소설의 앞부분에서 결정적인 무언가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치환된다. 나같이 우둔한 독자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정답이 나오기 전에 계속해서 이미 읽었던 부분을 재독하는 수밖에.

 

장르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공식인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범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모든 이들을 범인의 범주에 넣고 차근차근 추리해본다. 이거야말로 장르소설을 읽는 최고의 재미가 아니던가. 아무리 말이 안되는 가정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해리 홀레는 독자에게 당당하게 주문한다. 물론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 작가가 슬쩍슬쩍 비쳐준 사소해 보이는 단서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수완 좋은 작가는 여러 겹의 층위로 내러티브를 멋지게 포장해서 독자를 골려 먹는다. 하긴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게다가 앞으로 남은 페이지를 보라구. 요 네스뵈의 첫 만남에서 범인을 지목해낼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장르소설 팬이 아닐까 싶다.

 

요 네스뵈는 냉정하면서도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춘 시리얼 킬러와 일과 술독에 빠진 열혈형사와의 대결 구도를 축으로 우리의 동양식 사고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는 노르웨이식 가족관계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어쩌면 <스노우맨>에서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솜씨 좋은 연쇄살인범과의 대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점이 바로 동물세계 바다표범에 비유하는 전통적 가족의 편린으로 대변되는 위태로운 외줄타기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범인 체포와 사건 해결에 투자하는 고독한 늑대 해리 반장에게 과거의 동거녀 라켈과 그녀의 아들 올레그는 감정의 잉여처럼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그의 맞수 스노우맨이 해리 반장의 이 약한 고리를 놓칠 리가 없다, 모자의 위기는 그래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노르웨이의 오슬로, 베르겐 그리고 트론헤임 같은 지명들이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일반화된 브랜드조차도 주석이 없으면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거리 이름으로 대변되는 장소의 낯섬도 작가가 치밀하게 준비한 플롯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독자가 이 복잡한 지명과 장소에 익숙해지는 순간, 소설의 전개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앞으로 튀어 나간다.

 

<스노우맨> 한 편만으로 완전히 요 네스뵈의 팬이 되어 버렸다.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그의 다른 작품이 나왔나 하고 검색해 봤지만 아쉽게도 올해 출간된 <팬텀>까지 해서 모두 9편의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7번째 작품인 <스노우맨>이 유일했다. 곧 출간될 8번째 작품 <레오파드>는 물론이고, 미국 출신 거장 마틴 스코시즈가 메가폰을 잡을 영화판 <스노우맨>도 무척 기대가 된다. 다만, 모쪼록 미국산이 아닌 노르웨이산으로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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