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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소설 예상대로 재밌다.

어제 책을 받아 들었다. 택배 봉투를 벗기는 순간, 소설에 등장하는 고구레빌라의 당당한 거주자 존(개)의 일러스트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 뒤로는 이 연작소설의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세 명이 주르륵 앉아 있다. 막 읽기 시작한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그 후>를 미루고 바로 독서삼매로 뛰어들었다. 재밌을 거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런 작품이었다.

도쿄도 신주쿠에서 출발하는 오다큐 라인의 남쪽에 있는 세타가야다이타 부근의 허름한 목조 건물 고구레빌라가 이 재미난 연작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독자에게 친근한 지명이라면 확실히 공감대를 빨리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세타가야다이타를 찾아보았으니까 말이다.

연작소설의 스타트는 꽃가게에서 일하는 마유와 아키오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이자 마유의 전 애인 나미키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첫사랑인 마유를 남겨 두고 3년 동안이나 전 세계를 주유하며 사진 찍는 일에 정신이 팔렸다가 돌아와 보니, 마유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나미키의 뻔뻔함에 질려 버렸다. 일본 사람들은 타인에게 민폐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한다고 하던데, 다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주책맞은 일흔 살 노인네 고구레 영감은 시한부 삶을 친구를 찾았다가 죽기 전에 섹스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그만 강한 자극을 받는다. 고구레는 50년 이상을 같이 산 와이프에게 섹스 타령을 했다가 타박만 받는다. 금지된 욕망은 언제나 일탈적으로 흐르기 마련, 고구레는 자신의 빌라를 드나드는 마유의 남친 아키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욕구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한다. 허허, 이거 점입가경일세! 결국 고령자 전용 서비스를 담당하는 아가씨를 부른 고구레, 현장에서 반찬을 들고 찾아온 아내에게 발각될 위기에 내몰린다. 과연 우리의 노장 고구레 씨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 7개의 연작소설 중에서 최고는 바로 위층에 사는 간자키의 아래층 여대생 엿보기에 대한 보고서 <구멍>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간자키는 어느 날 고구레빌라가 허술한 판자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아래층 여대생 미쓰코를 엿보는 재미를 시작한다. 간자키는 새로운 삶을 위해 시작한 공부마저 포기하고, 남자 1호, 2호 그리고 3호와 번갈아 가며 연애하는 미쓰코의 삶을 엿보는 ‘피핑 탐(peeping Tom)’으로 변신한다. 이제는 미쓰코보다 더 그녀의 삶을 잘 알게 된 간자키는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고구레빌라가 건재하기를 소원한다. 잘하는 짓이다!

각각의 연작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다른 연작에서는 대뜸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비상한다. <고구레빌라 연애소동>은 도저히 우리네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을 텔레비전을 통해 만나는 것과 유사한 즐거움을 날것 그대로 우리에게 던져준다. 만날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이 드라마처럼 즐겁다면 우리가 뭣 때문에 드라마에 그렇게 열광하는가 말이다. 내 삶이 드라마보다 훨씬 재밌는데 말이다.

<고구레빌라 연애소동>은 짐짓 얌전한 척 하지만, 안에서는 ‘간헐천처럼 솟구쳐 운석처럼 쏟아진 욕망’의 고갱이를 짚는다. 말하기 부끄러운 노년의 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고, 막장 드라마의 전형인 삼각관계 때문에 시작된 기묘한 동거, 그 연쇄작용으로 튕겨 나온 남자가 불륜과 바람을 맛으로 식별해 내는 여자에게 얹혀살면서 방세로 섹스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쓸데없는 고민에 빠지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문제는 미우라 시온이 소개하는 에피소드에는 소통의 부재를 줄기로 한 고독이 배어 있다는 점이다. 고구레 씨의 섹스에 대한 갈구를 늙다리의 추잡한 욕망으로 치부해 버리고, 위층 남자의 훔쳐보기는 당연히 변태 짓이며, 새벽만 되면 집을 나가는 남편에 대한 의심의 밑바탕에는 도무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대화의 단절이라는 마물이 웅크리고 있다. 얼음장같이 차디찬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녹이는 건, 작가가 요상하게 빚어내는 “소동”이라는 키워드다. 그래서 아마 역자는 ‘모노가타리(이야기)’라는 원제목에서 ‘연애소동’이라는 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우리말 제목을 뽑아낸 게 아닐까?

어젯밤에 이 책을 읽느라 밤잠을 설쳐 버렸다. 너무 시간이 늦어서 고만 읽고 자자하고 가까스로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펼치게 됐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방증이리라. 때로는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사건의 연쇄적으로 발생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가가 그 소동을 매개로 일상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한 번 읽어 보시라,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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