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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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면 두 배로 갚아줘야지. (p55)”

 

사회생활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 못할 울분을 꾹꾹 참으며 부조리에 순응하며 산다. 거품 경제가 몰락한 후, 일본의 젊은이들은 누리지도 못한 윗대의 허물을 치우기 위해 힘겹게 살았다. 호황을 누린 거품 세대와 불황만을 누린 잃어버린 세대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인기리에 방영된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 소설 이케이도 준 작가의한자와 나오키그 세 번째 이야기는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부제로 삼았다.

 

도쿄중앙은행 영업 2부 차장이었던 한자와 나오키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자회사인 도쿄센트럴증권으로 좌천된다. 도쿄센트럴증권은 처음부터 증권에 입사한 증권파와 은행에서 파견된 은행파의 갈등이 극심한데, 모처럼 찾아온 대어 전뇌잡기집단M&A의뢰를 어이없게 날린다. 자회사의 기회를 모회사가 가로채는 사상초유의 사태에 의아함을 느낀 한자와 나오키는 정보통을 가동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분노한다. 한자와 나오키, 그는 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그만의 방식으로 맞서 싸운다.

 

아니, 월급쟁이만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그곳에서 활약하는 게 가장 행복하지. 회사가 크냐 작으냐는 관계없어. 지명도도 관계없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 간판이 아니라 알맹이니까. (p281)”

 

도쿄중앙은행의 기이한 행보는 인사이동에도 이어진다. 전뇌잡기집단의 M&A를 날린 일등공신들이 영전해 증권영업부로 발령받는다. 이에 비주류인 증권파이자 잃어버린 세대인 모리야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실망한다. 그는 특히 윗세대인 거품 세대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굉장히 편하게 취직하고, 아무런 특기도 없으면서 대기업에서 여유롭게 지낸다고(p191) 비난한다. 한자와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세대론이란 건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위쪽이 나쁘다고 화를 내봐야 자기 자신만 비참해진다며(p192) 그를 다독인다. 한자와는 일평생 자신의 신념을 위해 회사, 더 나아가 세상과 투쟁해왔다. 그는 어디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비록 그 결과가 좌천일지라도 내실을 쌓았다.

 

한편 도쿄중앙은행은 시간외거래라는 초강수로 전뇌잡기집단의 M&A를 밀어붙이고 그 먹잇감이 된 도쿄스파이럴은 궁지에 몰렸지만 자문사인 다이요증권의 대처는 신통치 않다. 동창 관계인 도쿄스파이럴의 세나 요스케 사장과 모리야마의 인연으로 한자와의 도쿄센트럴증권는 전뇌잡기집단의 M&A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는다. 도쿄중앙은행이 상대하는 것은 도쿄센트럴증권이라는 회사가 아니라 한자와 나오키라는 한 남자가 아닐까?(p356)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한자와의 인맥과 정보력 그리고 분석력은 빛을 발한다.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지금부터 시작될 거야. 하지만 세상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비판만 해서는 안 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대답이 필요해(p449).”

 

소설 속 한자와는 참 바보 같은 사람이다. 불나방처럼 제 몸을 던져 불길 속에 뛰어든다. 그렇기에 그는 제 자신에게 항상 당당할 수 있었다. 참 존경스럽지만 한자와처럼 살겠냐 묻는다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자와가 지적하듯 일은 고객을 위해 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위해 해야 하는데 그 대원칙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해 일을 하면 소극적이고 비굴해(p450) 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옳은 건 옳다고 말하는 것(p450)이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그렇지만 모리야마는 한자와의 조언처럼 살기위해 도전한다. 불평불만만 했던 것을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역습을 준비한다. 현실에서 이들의 결말이 해피엔딩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설 속에서만큼은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불편하지만 답답한 일상에 시원한 사이다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한자와처럼 저돌적으로 살 순 없어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에서만큼은 정의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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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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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그리는 그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고 궁구할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p81)

 

어촌마을 성포리 출신의 김홍도에게 시서화 삼절로 명망 높은 강세황이 지척에 기거한 것은 더 없는 행운이었을 것이다. 천년의 화가 김홍도의 이충렬 작가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주인공의 삶의 행적을 따라가는(p19) 전기로 규정해 단원 김홍도가 어떤 화가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중인 출신의 도화서 화원임에도 임금의 용안을 그리는 어용화사에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한 덕에 그에 대한 공식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김홍도는 매우 특이하게도 국가 기록과 양반을 통해 삶이 기록된 중인이었다(p19). 어용화사에 세 차례나 선발되어 그의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관직인 현감까지 지냈지만 그는 천상 화가였고,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했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굳건했던 시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환쟁이로 치부되며 그 대우가 형편없었다. 아버지의 바람인 무관이 길을 거부하고, 집안이 역모에 휩쓸려 초야에 묻힌 표암 강세황의 제자로 그림을 배웠다. 사람의 마음과 통할 수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거라 생각한(p81) 어린 김홍도에게 강세황은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것을 당부한다. 이후 현재 심사정에게 사사하고 도화서 화원이 된다. 도화서 화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김홍도는 어용화사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관직생활을 시작하지만 양반의 틈에서 중인으로 살아가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조선 땅 한구석에서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슬프고 서러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는 화사의 진정한 책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p181).

 

으레 그렇듯, 뒷배도 없는 신분의 한계로는 한직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종6품직에 제수되면 기본적인 학식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수령강을 치러야 했는데 김홍도는 삼책불통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둬 파면된다. 다행히 재시험에 합격한 그는 장원서 별제에 재직하다 울산의 감목관으로 한양을 떠난다.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목자들의 처지가 말보다도 못하고, 아무리 고기를 잡아도 수탈을 당해 배를 곪는 어부들의 억울함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하면서 이를 화폭에 담는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양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중인과 평민의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걸작(p223)으로 평받아 세인들의 관심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가 풍속화라 부르는 그의 그림은 백성들의 일상을 그렸다. 궁중화, 신선화만이 가치 있는 그림으로 취급받던 시대,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가치 있게 만든 건 김홍도의 붓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사람들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만이 이 엄혹한 신분 사회에서 김홍도가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았다(p242).

 

천년의 화가 김홍도를 읽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김홍도가 정조의 총애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전기지만 군데군데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잘 알기에 김홍도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을까? 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끝끝내 주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김홍도가 벼슬을 할 때 오히려 더 괴롭게 묘사되었다. 금수강산을 유람하며 세상을 종이에 담을 때 그는 자유로웠다. 말년에 아들의 선생에게 월사금조차 내지 못할 만큼 빈궁한 처지로 몰락한 그가,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걸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신분의 굴레로 인해 재능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조선 사회의 근간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김홍도하면 풍속화밖에 알지 못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굴곡졌는지, 그가 어떤 이상을 가지고 붓을 잡았을지 그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걷다보니, 일평생 고뇌했을 김홍도가 보였다. 그의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조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원 김홍도가 어떤 화가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김홍도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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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클래식 클라우드 14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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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에 얽매이지 않고 급변하는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바로 19세기 젊은 예술가들이 추구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네를 비롯하여 이후 인상주의자라고 불리게 되는 화가들이 있었다. (p52)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모네의 그림은 파스텔 톤 색감이 눈에 띄는 몽글몽글 몽환적인 예쁜 그림이다. 지금 우리는 모네의 그림을 보며 기이하다며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네의 이름이 들어가면 그의 그림을 한 순간이라도 더 보고자 애를 쓴다. 클래식 클라우드의 14번째 시리즈의 주인공 모네를 집필한 허나영 작가는 그의 작품을 그저 예쁜 그림으로 봐도 좋은가 화두를 던진다(p13). 그는 모네의 그림을 으로 이루어 낸 혁명이라 정의한다. 지금은 당당히 한 시대를 풍미한 사조로 인정받는 인상주의, 당시의 주류예술이었던 살롱에 대항할 때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인상주의 어원 자체가 모네와 그 친구들이 사진가 나다르의 작업실을 빌려 연 첫 전시회에서 비평가들의 혹평에서 비롯된 것이니. 살롱으로 대표되는 미술 제도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기성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버리는 것은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p114). 이때만 하더라도 그들 앞에 펼쳐진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특히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이들에게 미술로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들은 똘똘 뭉친다.

 

그러고 보면 모네가 붓을 놓은 시기는 거의 없었다. 인생에서 어떤 기쁘거나 슬픈 일이 닥쳐도 그는 당연한 듯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p128).

 

예술가들이 궁핍해야만 훌륭한 창작물을 낸다는 건 어찌 보면 편견에 가깝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예술가의 성공은 오히려 그의 사회적 인맥에서 비례한다고 한다(p86). 인상주의의 시작과 끝을 열었던 모네는,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도, 사회적으로 큰 명성을 얻은 시절도 두루 경험했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첫 아내를 잃고, 후원자였던 기혼의 알리스 부인과 기묘한 동거를 하며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화가로서의 모네는 굳건했다. 아내가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도 그림으로 남겼던 그에게 그림은 그의 일생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모네의 색감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가시적으로 느꼈다. 80년을 넘게 산 화가의 화풍이 일관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대게 화가의 대표작만을 기억하기에 대표작을 곧 그의 화풍으로 기억한다. 모네의 그림이 언제나 몽환적이기만 하진 않았다. 때론 거칠고, 어두운 것도 모네였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듯 모네가 간직했던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망은 언제 어디에서든 또 다른 예술로 떠오를 것이다(p256).

 

클로드 모네, 그는 새로운 예술을 이끈 선구자였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주류 예술계의 냉대에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들의 그림 속에 어떤 상징적 의미나 메시지는 없다(p119). 하지만 꼭 메시지가 있어야만 좋은 그림은 아니다. 사진기의 발달로 얼마나 정묘하게 그리는 지도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처럼 민감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나 대상의 물질성보다는 감각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p156) 모네는 아방가르드였다. 이 모든 것이 그 혼자 이뤄낸 성과는 아니다. 동료들이 있었고, 인상주의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미술상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인상주의는 하나의 화풍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로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떠나고 싶다는 강렬한 후유증을 겪는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에트르타, 모네가 죽기 직전까지 40여년을 머문 지베르니 등 모네의 발길이 닿는 곳이 곧 화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허나영 작가와 같은 길을 걸으며 모네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 오랑주리미술관에 대장식화 <수련>을 보며 그의 바람처럼 평화로움을 느낄 날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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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검찰수사관 - 대한민국 검찰의 오해를 풀고 진실을 찾아가는 그들의 진솔한 현장 이야기
김태욱 지음 / 새로운제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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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서 범죄 현장을 수색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검찰수사관인데, 왜 영화에서는 그 모든 것을 검사가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뭐 영화 속 검사는 슈퍼맨인 걸. 정말로 슈퍼맨인가?

 

검찰청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면 검사. 그런데 검사 혼자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당연 아니다, 검사, 수사관, 실무관은 모두 한방에서 같이 근무한다(p24). 미디어의 영향으로 실제가 아닐지라도 일반인들에게 어느 정도 검사에 대한 이미지 뚜렷하지만 검사와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김태욱 검찰수사관의 어쩌다, 검찰수사관은 지금까지 베일에 감춰졌던 검찰수사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상세히 알려준다. 27년을 검찰 공무원으로 재직한 그의 경험이 녹아든 이 책을 읽으며 영화와는 다른, 실제 현장을 상상해보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가 볼멘소리를 하는 게 이해가 될 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검찰수사관의 역할을 지대한데 비해 영화에서는 그 공이 온전히 검사의 몫으로만 가져간다. 이에 업무상 추가되는 비용은 검사가 부담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며, 포인트만은 검사에게 양보하는 미덕이 합리적인 결정임을 지지한다.

 

검사는 사건에 대한 최종 처분권과 지휘권을, 수사관은 검사의 수사지휘에 따른 수사 업무를 진행하면 된다(p193).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검사와 검찰수사관의 관계가 어떨까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특히나 나이 차이가 나는데 나지만 직급상 그 서열이 반대될 때, 서로 불편하지 않을까 의아했지만 김태욱 수사관은 프로였다. 검사와 수사관의 관계를 업무적 동료관계로 규정하여 모든 논란을 일축했다. 검찰청이란 곳이 보통 사람들에게 멀리하면 할수록 좋은 곳이다 보니 구태여 이들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영화 이상으로 알려고 하지 않기도 하다. 과거보다는 덜 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이들이 검찰수사관이란 걸, 책을 통해 인지했다. 심지어 검사도 넥타이를 맨 정장으로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하니 미디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왜곡된 정보를 주는지 알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생각보다 검찰청에 오면 우락부락한 조폭들도 온순해 진다는 내용이다. 대체, 영화를 얼마나 본 것일까. 우리가 걱정하는 것만큼 흉악범죄가 많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안도하면 좋은건가 나도 잘 모르겠다.

 

지구상에서 도망 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형 미집행자들은 도주할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다. 반드시 잡힌다. 제발 미리 자수하라 (p153).

 

이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cctv가 도처에 깔린 곳에서 열정 넘치는 검찰수사관의 매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비밀의 공간을 찾고, 머리 아픈 숫자와 통화내역과 씨름하며 끝끝내 사회정의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수사관들의 노고가 조금이라도 덜길 바라는 마음에 이 문장을 강조해본다. 반드시 잡힌다. 제발 미리 자수하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이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같은 고전 작품을 읽으며 나름대로 수사를 해보다니, 천상 수사관의 모습이 이런 건가 싶다. 수사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전의 묘미는 색다를 것 같다.

 

어쩌다, 검찰수사관을 통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검찰수사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검찰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유머가 더해서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여성에게도 장벽이 높지 않으며, 검경수사권 갈등과 무관하게 검찰수사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존재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검찰수사관에 대해 A to Z까지 모든 내용이 총 망라되어 있으니, 수사관을 지망한다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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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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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돈키호테 같은 분이었습니다. 구태의연한 걸 아주 싫어하셨고, 변화무쌍한 걸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늘 도전하면서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p11)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음악가 집안을 떠올린다면 금수현-금난새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는 국민가곡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 선생의 아들 금난새 지휘자가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을 출간했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처럼 잔잔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 담긴 이 책은 금수현 선생이 1962년 모 일간지에서 연재한 글들과 금난새 선생이 쓴 글을 엮어 부자의 교향곡으로 탄생했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는 금수현 선생의, 4악장은 금난새 지휘자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며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금수현 선생의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옛날 유머를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도 세상을 따사로이 바라보는 그 시선이 너무 좋아 읽는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음악계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는 두 부자의 글은 다른듯하면서도 참 많이 닮았다.

 

비웃지 않고 희망과 기대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상상한다는 것은 성공의 시작이다(p51).

 

만화 같은 상상력으로 모 장군에게 편지를 보낸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총을 낚는 비행기편은 돈키호테같은 금수현 선생의 생활신조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에 눈길이 갔다. 혹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비웃을 수 있는 허무맹랑한 말에도 성심성의껏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것, 어쩌면 금수현 선생이 걸어온 길이었을 것이다. 금수현 선생의 짧은 글에선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진 않는다. 그렇지만 곳곳에서 보통 사람들이 예술에 더 많이 공감하고 이를 통해 치유받길 원하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에 음악가들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인간의 가치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올라가는 법(p157) 이라던 그는 때를 기다리며 준비된 자가 되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한다. 3악장에 등장하는 유식하게 보이는 비결(148)’장로님 말씀이 옳습니다(p152)’ 편은 대단한 말을 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누구나 다 알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만고의 진리를 알려준다. 이 글을 쓸 당시 금수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꽤 명망 있었을 텐데 몸소 쓸데없는 인사치례를 타파하는 의도를 담은 글을 쓴 것도 놀라웠다. 문체는 분명 옛 것이나, 그 속에 담긴 삶의 철학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혀 구닥다리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끝끝내 꿈을 펼치지 못하고 눈을 감은 14살의 차장 이 양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움직임을 독려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제 나라의 케케묵은 예술이 최상의 것으로 보일 때는 발전 없는 마지막(p119)이라는 1960년을 살았던 그의 염려가 지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다.

 

제대로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만 멋지고 기막힌 작품이 탄생하는 게 아니다. 시작은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기나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얼마든지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나올 수 있다(p209).

 

금수현 선생의 아들 금난새 지휘가도 개척자의 길을 걸었다. 음악의 볼모지에서 지휘를 배우겠다고 머나먼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작금의 경직된 음악 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돈키호테같은 아버지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연주를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역시 천상 음악가라며 감탄하게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실내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에 꼭 가보고 싶다. 학생 개개인의 음악 실력보다는 서로가 하나 되어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음을 키우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지라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음악쟁이 부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선율을 느껴보고 싶다면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을 읽어보길 바란다. 1960년대가 썰렁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 투박한 매력에 점점 빠져들 것이다.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로 세상에 길이 남을 금수현 선생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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