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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그리는 그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고 궁구할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p81)
어촌마을
성포리 출신의 김홍도에게 시서화 삼절로 명망 높은 강세황이 지척에 기거한 것은 더 없는 행운이었을 것이다.
『천년의
화가 김홍도』의
이충렬 작가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주인공의
삶의 행적을 따라가는(p19)
‘전기’
로
규정해 단원 김홍도가 어떤 화가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중인
출신의 도화서 화원임에도 임금의 용안을 그리는 어용화사에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한 덕에 그에 대한 공식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김홍도는
매우 특이하게도 국가 기록과 양반을 통해 삶이 기록된 중인이었다(p19).
어용화사에
세 차례나 선발되어 그의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관직인 현감까지 지냈지만 그는 천상 화가였고,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했다.
사농공상의
질서가 굳건했던 시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환쟁이’로
치부되며 그 대우가 형편없었다.
아버지의
바람인 무관이 길을 거부하고,
집안이
역모에 휩쓸려 초야에 묻힌 표암 강세황의 제자로 그림을 배웠다.
사람의
마음과 통할 수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거라 생각한(p81)
어린
김홍도에게 강세황은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것을 당부한다.
이후
현재 심사정에게 사사하고 도화서 화원이 된다.
도화서
화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김홍도는 어용화사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관직생활을 시작하지만 양반의 틈에서 중인으로 살아가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조선
땅 한구석에서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슬프고 서러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는 화사의 진정한
책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p181).
으레
그렇듯,
뒷배도
없는 신분의 한계로는 한직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종6품직에
제수되면 기본적인 학식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수령강을 치러야 했는데 김홍도는 ‘삼책불통’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둬 파면된다.
다행히
재시험에 합격한 그는 장원서 별제에 재직하다 울산의 감목관으로 한양을 떠난다.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목자들의 처지가 말보다도 못하고,
아무리
고기를 잡아도 수탈을 당해 배를 곪는 어부들의 억울함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하면서 이를 화폭에
담는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양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중인과 평민의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걸작(p223)으로
평받아 세인들의 관심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가 ‘풍속화’라
부르는 그의 그림은 백성들의 일상을 그렸다.
궁중화,
신선화만이
가치 있는 그림으로 취급받던 시대,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가치 있게 만든 건 김홍도의 붓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사람들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만이 이 엄혹한 신분 사회에서 김홍도가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았다(p242).
『천년의
화가 김홍도』를
읽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김홍도가 정조의 총애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전기지만
군데군데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잘 알기에 김홍도가 정말 이렇게 생각했을까?
라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끝끝내 주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김홍도가 벼슬을 할 때 오히려 더 괴롭게 묘사되었다.
금수강산을
유람하며 세상을 종이에 담을 때 그는 자유로웠다.
말년에
아들의 선생에게 월사금조차 내지 못할 만큼 빈궁한 처지로 몰락한 그가,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걸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신분의
굴레로 인해 재능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조선 사회의 근간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김홍도하면 풍속화밖에 알지 못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굴곡졌는지,
그가
어떤 이상을 가지고 붓을 잡았을지 그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걷다보니,
일평생
고뇌했을 김홍도가 보였다.
그의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조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단원
김홍도가 어떤 화가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김홍도를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