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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ㅣ 클래식 클라우드 14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평점 :
옛
것에 얽매이지 않고 급변하는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바로 19세기
젊은 예술가들이 추구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네를 비롯하여 이후 인상주의자라고 불리게 되는 화가들이 있었다.
(p52)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모네의 그림은 파스텔 톤 색감이 눈에 띄는 몽글몽글 몽환적인 예쁜 그림이다.
지금
우리는 모네의 그림을 보며 기이하다며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네의 이름이 들어가면 그의 그림을 한 순간이라도 더 보고자 애를 쓴다.
클래식
클라우드의 14번째
시리즈의 주인공 『모네』를
집필한 허나영 작가는 그의
작품을 그저 ‘예쁜
그림’으로
봐도 좋은가 화두를 던진다(p13).
그는
모네의 그림을
‘빛’으로
이루어 낸 혁명이라
정의한다.
지금은
당당히 한 시대를 풍미한 사조로 인정받는 ‘인상주의’가,
당시의
주류예술이었던 ‘살롱’에
대항할 때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인상주의
어원 자체가 모네와 그 친구들이 사진가 나다르의 작업실을 빌려 연 첫 전시회에서 비평가들의 혹평에서 비롯된 것이니.
살롱으로
대표되는 미술 제도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기성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버리는 것은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p114).
이때만
하더라도 그들 앞에 펼쳐진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특히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이들에게 미술로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그들은
똘똘 뭉친다.
그러고
보면 모네가 붓을 놓은 시기는 거의 없었다.
인생에서
어떤 기쁘거나 슬픈 일이 닥쳐도 그는 당연한 듯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p128).
예술가들이
궁핍해야만 훌륭한 창작물을 낸다는 건 어찌 보면 편견에 가깝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예술가의
성공은 오히려 그의 사회적 인맥에서 비례한다고 한다(p86).
인상주의의
시작과 끝을 열었던 모네는,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도,
사회적으로
큰 명성을 얻은 시절도 두루 경험했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첫 아내를 잃고,
후원자였던
기혼의 알리스 부인과 기묘한 동거를 하며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화가로서의 모네는 굳건했다.
아내가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도 그림으로 남겼던 그에게 그림은 그의 일생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모네의
색감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가시적으로 느꼈다.
근
80년을
넘게 산 화가의 화풍이 일관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대게 화가의 대표작만을 기억하기에 대표작을 곧 그의 화풍으로 기억한다.
모네의
그림이 언제나 몽환적이기만 하진 않았다.
때론
거칠고,
어두운
것도 모네였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듯 모네가 간직했던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망은 언제 어디에서든 또 다른 예술로 떠오를 것이다(p256).
클로드
모네,
그는
새로운 예술을 이끈 선구자였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주류
예술계의 냉대에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들의
그림 속에 어떤 상징적 의미나 메시지는 없다(p119).
하지만
꼭 ‘메시지’가
있어야만 좋은 그림은 아니다.
사진기의
발달로 얼마나 정묘하게 그리는 지도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처럼
민감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나 대상의 물질성보다는 ‘감각’과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p156)
모네는
아방가르드였다.
이
모든 것이 그 혼자 이뤄낸 성과는 아니다.
동료들이
있었고,
인상주의
화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미술상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인상주의는 하나의 화풍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로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떠나고 싶다는 강렬한 후유증을 겪는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에트르타,
모네가
죽기 직전까지 40여년을
머문 지베르니 등 모네의 발길이 닿는 곳이 곧 화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허나영 작가와 같은 길을 걸으며 모네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
오랑주리미술관에
대장식화 <수련>을
보며 그의 바람처럼 평화로움을 느낄 날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