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는 돈키호테 같은 분이었습니다. 구태의연한 걸 아주 싫어하셨고, 변화무쌍한 걸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늘 도전하면서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p11)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음악가 집안을 떠올린다면 금수현-금난새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는 국민가곡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 선생의 아들 금난새 지휘자가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을 출간했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처럼 잔잔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 담긴 이 책은 금수현 선생이 1962년 모 일간지에서 연재한 글들과 금난새 선생이 쓴 글을 엮어 부자의 교향곡으로 탄생했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는 금수현 선생의, 4악장은 금난새 지휘자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며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금수현 선생의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옛날 유머를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도 세상을 따사로이 바라보는 그 시선이 너무 좋아 읽는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음악계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는 두 부자의 글은 다른듯하면서도 참 많이 닮았다.

 

비웃지 않고 희망과 기대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상상한다는 것은 성공의 시작이다(p51).

 

만화 같은 상상력으로 모 장군에게 편지를 보낸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총을 낚는 비행기편은 돈키호테같은 금수현 선생의 생활신조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에 눈길이 갔다. 혹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비웃을 수 있는 허무맹랑한 말에도 성심성의껏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것, 어쩌면 금수현 선생이 걸어온 길이었을 것이다. 금수현 선생의 짧은 글에선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진 않는다. 그렇지만 곳곳에서 보통 사람들이 예술에 더 많이 공감하고 이를 통해 치유받길 원하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에 음악가들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인간의 가치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올라가는 법(p157) 이라던 그는 때를 기다리며 준비된 자가 되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한다. 3악장에 등장하는 유식하게 보이는 비결(148)’장로님 말씀이 옳습니다(p152)’ 편은 대단한 말을 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누구나 다 알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만고의 진리를 알려준다. 이 글을 쓸 당시 금수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꽤 명망 있었을 텐데 몸소 쓸데없는 인사치례를 타파하는 의도를 담은 글을 쓴 것도 놀라웠다. 문체는 분명 옛 것이나, 그 속에 담긴 삶의 철학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혀 구닥다리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끝끝내 꿈을 펼치지 못하고 눈을 감은 14살의 차장 이 양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움직임을 독려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제 나라의 케케묵은 예술이 최상의 것으로 보일 때는 발전 없는 마지막(p119)이라는 1960년을 살았던 그의 염려가 지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다.

 

제대로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만 멋지고 기막힌 작품이 탄생하는 게 아니다. 시작은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기나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얼마든지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나올 수 있다(p209).

 

금수현 선생의 아들 금난새 지휘가도 개척자의 길을 걸었다. 음악의 볼모지에서 지휘를 배우겠다고 머나먼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작금의 경직된 음악 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돈키호테같은 아버지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연주를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역시 천상 음악가라며 감탄하게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실내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에 꼭 가보고 싶다. 학생 개개인의 음악 실력보다는 서로가 하나 되어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음을 키우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지라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음악쟁이 부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선율을 느껴보고 싶다면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을 읽어보길 바란다. 1960년대가 썰렁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 투박한 매력에 점점 빠져들 것이다.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로 세상에 길이 남을 금수현 선생을 기리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