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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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니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p15)

 

알베르 카뮈의이방인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첫 문장만큼은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담담한 아들 뫼르소, 그에게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오늘인지 어제인지는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엄마를 모셨던 양로원을 방문해 장례절차를 치루면서도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그의 태도에 독자들을 기이함을 느낀다. , 그는 엄마의 죽음에도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가? 오히려 피곤함을 호소하며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마저 생략한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엄마를 잃은 아들의 행동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뫼르소는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의 기행에 경악하게 된다. 여자를 만나고, 영화를 보며 엄마의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 보인다.

 

그가 나쁜 사람인 것인가,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건물 내 모두가 괄시하는 창고지기 레몽과도 기꺼이 친분을 유지한다. 뫼르소는 성실한 일꾼이자 살뜰한 이웃이며, 매력적인 남자다. 궁핍한 생활에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어야 했지만 그로인해 이웃의 비난을 받았을지언정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

 

요컨대, 그가 기소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입니까, 아니면 한 사내를 죽여서입니까?” (p133)

 

그는 사람을 죽였다. 레몽의 정부의 오빠를. 하늘이 온통 활짝 열리면서 불의 비가 쏟아지는 듯한(p87)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고 다섯 발의 총이 아랍 남자의 몸에 관통했다. 평범했던 그의 일상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자유를 박탈당했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p95).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적의를 보였고 그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검사는 엄마의 죽음 전후로 보인 뫼르소의 행실을 비난하며 그가 얼마나 사악한 인간인지를 배심원들에게 호소한다. 재판장에서 뫼르소는 자신의 사건임에도 정작 그 자신은 배재된 채 싸우는 이들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본다. 입을 열면 열수록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그의 언행에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할 뿐이다. 뫼르소는 어떤 잘못으로 재판정에 선 걸까. 그 이유조차 이젠 불분명해진다.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 그게 곧 번역일 테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번역에 대해 왈가불가한다는 것조차 대단히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욱, 이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 테다. (p233)

 

새움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출간한 카뮈의 이방인번역의 권위는 정확성에 있다 자신 있게 내세워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방인의 분량만큼 긴 번역노트를 수록해 우리가 알고 있던 이방인과 이정서 번역가가 한 번역의 차이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이방인을 읽어본 적은 없으나 확실히 새움 버전의 이방인은 쉽게 읽혔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기에 역자가 고민한 단어의 뜻이 정확한지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카뮈의 시선에서 앞 뒤 문맥을 이해해 가장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려는 역자의 노력은 확실히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카뮈의 뉘앙스를 독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려 애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이방인의 첫 문장만 하더라도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번역된 것이 익숙하다. 이렇게 번역한 표현이 시크해보이긴 하나 저 표현 하나가 뫼르소라는 인물의 성격을 규정하기에 원래의 의미를 살려 주는 게 마땅하다고(p172) 소신 있게 말하는 역자에게 신뢰가 간다. 한때 이방인의 번역 논쟁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었는데 나도 번역을 해본 입장에서 의역을 배제하고 직역으로 표현의 정확성을 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기에 자신의 번역에 확신을 가지는 역자의 자신감이 부럽기도 하다. 번역의 정확성에 대해 내가 코멘트를 더할 수는 없지만 역자노트를 읽으며 새움의 이방인이 매끄러운 것만큼은 자부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난해하다고 알려진 카뮈의 이방인을 정복하고 싶다면, 바른 번역을 표방하는 이 책으로 시작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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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오리지널 커버 에디션)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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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사요? 아저씨가 아직 저를 잘 몰라서 그래요.” (p143)

 

다섯 살짜리 제제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말썽꾸러기다. 실직한 아버지와 어렵게 가계를 꾸려가는 엄마와 누나들 틈에서 어린 동생까지 손수 돌본다. 꼬마 소년이 짊어지기에는 결코 녹록한 삶이 아니다. 누군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저 삶이 힘들어서, 그 누구도 어린 꼬마를 돌볼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초등학교때 필독서로 읽었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책이 이렇게 슬펐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내 눈가를 적셨다.

 

책의 주인공 제제는 다섯 살이지만 여섯 살이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글을 읽을 수 있는 영특함에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간다. 선생님의 비어있는 꽃병에 가슴아파하며 손수 꽃을 꽂아주는 착한아이며 모범적인 학생이다. 가족들은 제제가 말썽꾸러기라며 체벌을 가하지만 그의 본성은 여리고 여린 아이다. 용납하기 힘든 사고를 종종 치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다섯 살 때 무언가를 생각하며 행동하지 않았다. 사고뭉치 제제는 가장 그 나이다움인 것이다. 오히려 철이 들어야만 하는 제제는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건 제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망아지라면서도 제제가 원하는 걸 기꺼이 들어주는 에드문드 아저씨와 진지냐 할머니, 제제와 함께 악보를 팔았던 아리오발두 아저씨, 그리고 제제의 든든한 버팀목 뽀르뚜가! 그들은 제제에게 너무 철이 일찍 들었다 안타까워하며 그를 단순한 악동취급하지 않는다.

 

난 왜 그런지 알아요. 쓸모없는 애라서 그래요. 너무 너무 못돼서 크리스마스에도 착한 아기 예수처럼 되지 못하고, 못된 새끼 악마가 됐어요.” (p226)

 

세상에, 이게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의 입 속에서 나올 말인가! 세상에 찌들어 사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심각한 언어폭력을 가했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 나이에는 근심걱정 없이 사고나 치며 사는 게 당연하지만, 실직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그 누구도 제제를 온 마음을 다해 돌봐줄 수 없었다. 스스로 쓸모없다 생각하며, 못된 새끼악마라고 믿는 이 아이를 바라보며 뽀르뚜가는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비록 그들의 첫 만남도 제제의 악동적인 면모 때문에 얽힌 거지만 그 정도 장난은 유별나지 않은 것이다. 어른의 이기심 때문에 아이는 너무 훌쩍 커버렸다.

 

감수성이 풍부한 제제는 뒤뜰에 있는 자신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밍기뉴라 부르며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한다. 그는 밍기뉴를 타고 놀면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는다. 기분이 좋을 때면 밍기뉴를 슈르르까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의 차이를 한국어로 명확히 알 수 없는 게 조금은 아쉽다. 라임 오렌지나무 슈르르까와 뽀르뚜가 아저씨는 제제와 우정을 나누는 존재다.

 

 

착해질 필요 없어. 그냥 네가 늘 그랬듯이 어린애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뭐 어쩌게, 누나? 모두들 날 막 때리라고? 모든 사람들이 날 못살게 굴라고?” (p273)

 

세상 그 누구도 타인에게 맞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제제는 누가 봐도 어리다. 그렇기에 사회는 어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그런데 가르치는 과정에서 심각한 폭력이 자행된다면, 과연 정당한 훈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제의 언행은 아버지와 누나를 화나게 했다.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끔찍하게 맞는다.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으면서 집안에서 가장 약자인 어린 아이는 항상 표적이 된다. 아이는 자신이 온전한 관심을 받을 때면 사고를 치지 않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했으면서 왜 그 책임을 아이에게 가하는지, 너무 화가 났다. 자신이 어린애로 머문다면 이 폭력에 끝이 없으리란 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실감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어린 제제는 철이 들어간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 대가로, 그는 차차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묻는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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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숭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9
J. D. 바커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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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 원숭이라는 이름은 일본 닛코의 도쇼구 신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신사 입구 위에 원숭이상 세 개가 있는데, 첫 번째 원숭이는 귀를, 두 번째 원숭이는 눈을, 세 번째 원숭이는 입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들 원숭이상은 각각 악을 듣지 말고, 보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네 번째 원숭이는 악을 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p45)

 

네 마리 원숭이 킬러’, 속칭 4MK로 불리는 연쇄살인마가 죽었다. 끔찍했던 그의 명성에 비해 너무도 허무한 죽음. J.D 바커 작가의네 번째 원숭이는 악인의 가족을 잔혹하게 토막 살인하는 범인과 그를 쫓는 4MK 전담반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5년간 4MK를 추적해온 시카고 경찰국의 형사 샘 포터, 어느 날 아침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와 끈질긴 악연으로 얽힌 4MK가 다음 희생자의 귀가 든 상자를 우체통에 넣기 위해 길을 건너던 중 교통사고로 죽은 것, 그리고 발견 한 그의 작은 공책. 공책에 쓰인 범인의 과거와 긴박한 현재가 교차되며 이어진 이 소설은 참 오묘했다. 쫓고 쫓기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샘 포터의 다음 행동을 이미 예견한 듯 착착 맞아떨어지는 상황들, 범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까지.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었지만 엄청난 흡입력으로 내가 책 속에서 샘 포터와 동행해 사건을 수사하는 느낌이었다.

 

 

 

범인은 살인을 통해 가족의 범죄를 심판하고 있었어. 애초에 희생자 본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p125)

 

4MK의 우편에 적힌 주소는 지역 유지인 탤벗가, 시카고 시장의 친구이자 상당한 후원자인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탤벗씨 집에 찾아간 샘 포터 일행은 그의 아내와 딸이 모두 무사하다는 것만 확인했다. 탤벗씨를 만나 그에게 사생아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지금껏 감금과 같은 생활을 한 것, 그리고 이미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는 걸 알아챈다.

 

처음은 귀, 그리고 눈과 혀, 순차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도륙하는 4MK의 범행 특성상 아직 희생자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 새로운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시카고 전역을 뒤지는 샘 포터 일행, 과연 그들은 에머리를 구할 수 있을까?

 

범인의 과거 편을 읽으며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사이코패스 부모님 밑에서 자란 4MK, 무엇이 옳고 그른지 조차 분별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봤다. 그의 범행은 나름의 기준이 있다. “악을 행하지 말라 규율을 어긴 악독한 인사들의 가족을 납치해 살해하는 것, 부모의 죄를 자식이 대신해 받는 것이다. 왜 그들을 범행 타깃으로 정한 것일까? 그 누구도 간파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남자의 비밀을 파헤치며 소름이 돋았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않을 때 가장 평온하다.

 

처음부터 길을 알려 준거야.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 (p487)

 

세탁소 영수증

회중시계

다양한 동전으로 총 75센트

 

4MK의 소지품은 간단했다. 관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소지품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일까. 7명을 살해하면서 21개의 상자를 보냈다. 잔혹한 계획범죄를 꾸미는 4MK에게 우연이란 없을 것. 도대체 4MK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죽음조차 의도적인건지 아니면 정말 우연인건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세상이 4MK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어보였다. 모든 것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자신의 장기짝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쾌감을 느끼는 걸까.

 

진정한 악인은 누구이며, 악인을 악인이 단죄하는 것이 합당한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에서는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기묘한 과정을 함께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충격과 공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스릴러의 걸작! 이번에도 역시 내 머리는 돌로 만들어 졌다는 걸 인증했다. 시카고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4MK의 마지막 희생자를 찾는 네 번째 원숭이, 에미리는 그의 마지막 희생자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희생자가 대기하고 있을까.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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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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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과 변증학은 짝을 이룬다. (p11)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기술인 수사학과, 명제의 참, 거짓을 밝혀내는 변증학. 이 둘의 사용 목적은 다르지만 모든 학문에 통용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플라톤의 제자이자 서양 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손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인의 저서 수사학의 첫 문장으로 위 문장을 택했다. 2400년이란 긴 세월동안 후세에 길이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설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쉽게 읽히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 어떤 수사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총 망라한다. 한 줄 한 줄 꼭 꼭 씹어 먹으며 읽지 않으면 말장난인가? 싶을 만큼 대조되는 두 개념들을 정의하며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쁨을 분별한다. 주제에 따라 연설가가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들을 구분하고 조언과 연설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연설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신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2권은 청중에게 자신을 잘 인지시키기 위한 미덕을 소개한다. 사실 수사학과 심리학의 연관성을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 이 당시에 심리학이란 학문이 발전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사람을 연령대별로 세분화 시켜 성격에 따른 수사학을 논한다.

 

3권에서는 전달 방식의 효율에 대해 다룬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설가가 논리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며 시인을 모방하는 오늘날의 연설을 강하게 비판한다. 연설가가 마음에 새겨야 하는 요소들, 명료하고 정확하며 쉽고 간결해야 하는, 누구나 알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다시금 강조한다.

 

조금 아쉬운 점은 책이 생각만큼 친절하지 않다는 거다. 내 독해력의 문제겠지만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 한 줄만 더 부연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것들이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를 고스란히 따라가려면 내겐 한번 더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심지어 내 생각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2000년 전에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는데 현대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수사학을 현실에 적용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 하는지 수많은 고전을 인용해 쓰여서 그런지 글자만 겨우 읽는 수준이었는데도 똑똑해진 느낌이다. 요즘 보기 쉽게 설득의 기술을 나열한 책들이 많지만 고전 중의 고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통해 설득의 진수를 느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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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조선과 유럽의 운명적 만남, 난선제주도난파기 그리고 책 읽어드립니다
헨드릭 하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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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들의 나라에서 살았던 파란 눈의 외국인, 하멜

 

때는 1653, 의기양양하게 북벌론을 외치던 그 시대. 거친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된 36명의 외국인들이 있으니! 일본으로 가고자 했던 그들의 꿈은 좌절된 채 13년이나 발이 묶인 채 조선에서 살아야했다. 상상만하더라도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훤하다.

 

사실 우리에게는 조선에 대해 고운 소리보단 부정적인 면을 부각한 하멜표류기가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보니 미적미적 거리다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냥 내가 얼마나 조선에서 고생했는지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 산업재해보고서다. 풍문으로는 이 보고서로 인해 표류된 13년 치 임금을 모두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구구절절한 고생담을 고르고 골라 썼을 지를 감안하고 읽어야한다.

 

저희들은 우리가 이교도의 나라에 잡혀 온 불쌍한 포로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치단결하여 고난을 이겨 나갈 것을 다짐하며, 그리고 그들 이교도가 저희들을 살려 주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 먹여 주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p102)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상대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그 막막함이 오죽할까. 하멜표류기를 읽다보면 꽤 자주 그가 죽음의 위협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총독이 부임하냐에 따라 하멜 일행에 대한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조선인들의 호의도 받았지만, 자신을 고국으로 보내주지 않는 원망이 더 컸으리.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말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만을 보급해 준건가 팩트체크를 하고 싶어진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꾀한 동료들의 소식을 더 이상 듣지 못할 때, 그리고 동료들을 남겨두고 탈출해야 했던 그 심정은 얼마나 착잡했을까. 정말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외국인들을 왜 이리 잡아두었나 그 당시 조선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보고 싶다. 생전 해보지도 않는 일을 시킨다고 투덜투덜 거리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내쫓는다고 투덜거리고. 하긴 나도 하멜의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려 해도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인들을 이교도라고 칭하면서 스님들에게는 상당히 호의를 보였다는 거다.

 

우리도 지금껏 알지 못했던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 꽤 흥미로웠다. 남존여비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불합리함에 혀를 차게 된다. 노예수가 전 국민의 반 이상이며 국왕이 세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부끄러운 기록은 탄압과 착취가 일상이었던 17세기 시대상이라고 믿고 싶다. 조선이 이런 곳이었어? 조선이 이런 곳이었구나! 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조선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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