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오리지널 커버 에디션)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천사요?
아저씨가
아직 저를 잘 몰라서 그래요.”
(p143)
다섯
살짜리 제제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말썽꾸러기다.
실직한
아버지와 어렵게 가계를 꾸려가는 엄마와 누나들 틈에서 어린 동생까지 손수 돌본다.
꼬마
소년이 짊어지기에는 결코 녹록한 삶이 아니다.
누군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저
삶이 힘들어서,
그
누구도 어린 꼬마를 돌볼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초등학교때
필독서로 읽었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책이 이렇게 슬펐나?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내 눈가를 적셨다.
책의
주인공 제제는 다섯 살이지만 여섯 살이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글을 읽을 수 있는 영특함에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간다.
선생님의
비어있는 꽃병에 가슴아파하며 손수 꽃을 꽂아주는 착한아이며 모범적인 학생이다.
가족들은
제제가 말썽꾸러기라며 체벌을 가하지만 그의 본성은 여리고 여린 아이다.
용납하기
힘든 사고를 종종 치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다섯 살 때 무언가를 생각하며 행동하지 않았다.
사고뭉치
제제는 가장 그 나이다움인 것이다.
오히려
철이 들어야만 하는 제제는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건 제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망아지라면서도
제제가 원하는 걸 기꺼이 들어주는 에드문드 아저씨와 진지냐 할머니,
제제와
함께 악보를 팔았던 아리오발두 아저씨,
그리고
제제의 든든한 버팀목 뽀르뚜가!
그들은
제제에게 너무 철이 일찍 들었다 안타까워하며 그를 단순한 악동취급하지 않는다.
“난
왜 그런지 알아요.
쓸모없는
애라서 그래요.
너무
너무 못돼서 크리스마스에도 착한 아기 예수처럼 되지 못하고,
못된
새끼 악마가 됐어요.”
(p226)
세상에,
이게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의 입 속에서 나올 말인가!
세상에
찌들어 사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심각한 언어폭력을 가했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
나이에는 근심걱정 없이 사고나 치며 사는 게 당연하지만,
실직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그 누구도 제제를 온 마음을 다해 돌봐줄 수 없었다.
스스로
쓸모없다 생각하며,
못된
새끼악마라고 믿는 이 아이를 바라보며 뽀르뚜가는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비록
그들의 첫 만남도 제제의 악동적인 면모 때문에 얽힌 거지만 그 정도 장난은 유별나지 않은 것이다.
어른의
이기심 때문에 아이는 너무 훌쩍 커버렸다.
감수성이
풍부한 제제는 뒤뜰에 있는 자신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밍기뉴라 부르며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한다.
그는
밍기뉴를 타고 놀면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는다.
기분이
좋을 때면 밍기뉴를 슈르르까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의 차이를 한국어로 명확히 알 수 없는 게 조금은 아쉽다.
라임
오렌지나무 슈르르까와 뽀르뚜가 아저씨는 제제와 우정을 나누는 존재다.

“착해질
필요 없어.
그냥
네가 늘 그랬듯이 어린애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뭐 어쩌게,
누나?
모두들
날 막 때리라고?
모든
사람들이 날 못살게 굴라고?”
(p273)
세상
그 누구도 타인에게 맞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제제는
누가 봐도 어리다.
그렇기에
사회는 어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그런데
가르치는 과정에서 심각한 폭력이 자행된다면,
과연
정당한 훈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제의
언행은 아버지와 누나를 화나게 했다.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끔찍하게 맞는다.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으면서 집안에서 가장 약자인 어린 아이는 항상 표적이 된다.
아이는
자신이 온전한 관심을 받을 때면 사고를 치지 않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했으면서 왜 그 책임을 아이에게 가하는지,
너무
화가 났다.
자신이
어린애로 머문다면 이 폭력에 끝이 없으리란 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실감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어린
제제는 철이 들어간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 대가로,
그는
차차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묻는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