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표류기 - 조선과 유럽의 운명적 만남, 난선제주도난파기 그리고 책 읽어드립니다
헨드릭 하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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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들의 나라에서 살았던 파란 눈의 외국인, 하멜

 

때는 1653, 의기양양하게 북벌론을 외치던 그 시대. 거친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된 36명의 외국인들이 있으니! 일본으로 가고자 했던 그들의 꿈은 좌절된 채 13년이나 발이 묶인 채 조선에서 살아야했다. 상상만하더라도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훤하다.

 

사실 우리에게는 조선에 대해 고운 소리보단 부정적인 면을 부각한 하멜표류기가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보니 미적미적 거리다 지금껏 읽어보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냥 내가 얼마나 조선에서 고생했는지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 산업재해보고서다. 풍문으로는 이 보고서로 인해 표류된 13년 치 임금을 모두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구구절절한 고생담을 고르고 골라 썼을 지를 감안하고 읽어야한다.

 

저희들은 우리가 이교도의 나라에 잡혀 온 불쌍한 포로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치단결하여 고난을 이겨 나갈 것을 다짐하며, 그리고 그들 이교도가 저희들을 살려 주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 먹여 주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p102)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상대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그 막막함이 오죽할까. 하멜표류기를 읽다보면 꽤 자주 그가 죽음의 위협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총독이 부임하냐에 따라 하멜 일행에 대한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조선인들의 호의도 받았지만, 자신을 고국으로 보내주지 않는 원망이 더 컸으리.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말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만을 보급해 준건가 팩트체크를 하고 싶어진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꾀한 동료들의 소식을 더 이상 듣지 못할 때, 그리고 동료들을 남겨두고 탈출해야 했던 그 심정은 얼마나 착잡했을까. 정말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외국인들을 왜 이리 잡아두었나 그 당시 조선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보고 싶다. 생전 해보지도 않는 일을 시킨다고 투덜투덜 거리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내쫓는다고 투덜거리고. 하긴 나도 하멜의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려 해도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인들을 이교도라고 칭하면서 스님들에게는 상당히 호의를 보였다는 거다.

 

우리도 지금껏 알지 못했던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 꽤 흥미로웠다. 남존여비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불합리함에 혀를 차게 된다. 노예수가 전 국민의 반 이상이며 국왕이 세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부끄러운 기록은 탄압과 착취가 일상이었던 17세기 시대상이라고 믿고 싶다. 조선이 이런 곳이었어? 조선이 이런 곳이었구나! 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조선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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