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며칠 전 태풍으로 비가 쏟아지는 날 이사를 했다. 오기로 했던 포장이사 업체에서는 늦었고, 예정했던 인원보다 사람이 덜 왔으며, 그래서 그랬는지 일을 대충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책짐에는 신경을 써달라고 얘기했으나 책의 상당부분이 물에 젖고 말았다. 며칠동안 책의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정리하자니 짜증도 나고, 포장이사 업체 사람들에게 (속으로) 욕도 퍼부었는데, 계속 정리하면서 주섬주섬 책을 읽다보니 다 부질없는 화처럼 느껴진다. 책으로 인해 화가 나고, 책으로 인해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음은 가라앉았는데, 날씨는 여전히 흐릿하다. 날씨든 뭐든 흐릿한 날들이 지나야 맑은 날이 오는 법.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 한일 젊은 세대를 위한 서경식의 바른 역사 강의 / 서경식 / 반비

 

이 책은 그간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꾸준히 얘기해온 서경식 선생이 일제강점기 이후 재일 조선인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책은 먼저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부터 정확히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미지에는 우리가 흔히 가지는 어떤 편견들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문제, 친일과 극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득한 한일관계의 문제 외에도 조선족 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에도 다른 의미에서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서경식 선생의 책이라는 점에서도 닥추.

 

 

탐욕과 생존 - 영화, 분쟁을 말하다 / 김용성 / 책보세

 

영화는 작은 카메라로 오랫동안 거대한 것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 중 하나는 거대한 분쟁이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많은 전쟁영화들은 전쟁 그 자체의 스펙타클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 전쟁의 특정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폭력에 맞서서 자신과 주위사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으로써 모든 전쟁을 다루는 영화, 분쟁을 다루는 영화는 (편파적인) 특정의 관점을 담기 마련인데, 각 영화에 담긴 특정의 관점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도 흥미로울 것 같다.

 

 

20세기의 매체철학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 심혜련 / 그린비

 

20세기는 또한 '매체'의 시대이기도 했다. 마셜 맥루한이 말했듯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종말하며, 20세기에는 온갖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였으며, 21세기는 그보다 인간에게 밀착된 다른 매체들이 출현을 대기중이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의 최소 50% 이상이 타인이나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손안의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 때, 인간이 매체를 벗어날 수 있는가, 혹은 가상과 실재를 구분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은 거의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곧 새로운 매체들의 공습이 시작될 이 때, 지나간 20세기의 매체들을 둘러싼 질문들을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올 우리의 고민들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영화 이론 - 1945~1995년의 영화 이론 / 프란체스코 카세티 / 한국문화사

 

사실 지난 50년 동안의 영화에 대한 이론들을 한 권에 몰아넣는 것은 무모한 시도에 가깝다. (그 앞과 뒤를 충분히 덜어냈는데도 그렇다.) 영화는 흔히 얘기하듯이 종합예술로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예술과 그 예술의 이론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중예술로서 철학이나 심리학, 사회학 등과도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더 무모한 시도는 이 책을 추천도서에 집어넣는 것일 것이다.

 

 

오감으로 쉽게 찾는 우리 나무 / 이동혁 / 이비락

 

현대인의 삭막한 눈에는 사실 모든 나무가 그게 그걸로 보이기는 한다. 이 책은 사계절에 걸쳐 우리나라에 주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오감(五感)을 이용하여 구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도판과 함께 일별한 책이다. 저 멀리에 있는 자동차는 어디 회사의 몇년식인지 잘도 구분하고, 옷과 가방은 어디 메이커의 이월상품인지 아닌지도 잘도 찾아내면서 우리는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에 가깝다. 이제 가을이니 나무도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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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0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토요일에 대구미술관에 하는 서경식씨의 강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맨 처음 소개된 서경식 씨의 신간이 반갑네요. ^^

맥거핀 2012-09-04 16:39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저도 서경식 씨 책이 나오면 늘 읽었었는데(예전에 cyrus님께도 한 권 받았었죠..^^), 강연에 참석해보면 좋겠네요. 이제 cyrus님 개학이시니 또 바빠지시겠어요.

2012-09-0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 씨의 글은 서늘해서 좋아요. (<소년의 눈물>하고 <나의 서양미술 순례> 두권만 읽어봤지만..)이제 영화 관련 책 막 추천하는군요.ㅎㅎ 여튼 추천 책의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요~.
그나저나 책을 적시다니, 그거 포장이사 변상 대상이 아닌가요? ㅠ.ㅜ

맥거핀 2012-09-06 00:06   좋아요 0 | URL
네..얼마 안남았으니까 그냥 이것저것 재지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 막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뭐 문제가 생겨도 참 보상받을려고 해도 귀찮은 일이라..다만 사람이 덜 온 부분은 확실한 계약 위반이라, 그 부분만 조금 돈을 적게 주는 걸로 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프레이야 2012-09-0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태풍 온 날 이사하시게 됐군요. 일자가 정해져 있어 변경하기도 어려우셨을테고요.ㅠㅠ 책이 젖어 어째요.ㅠ 책을 제일 싫어하더라고요, 포장이사업체 사람들이요. 두 가지 책을 담아갑니다. ^^

맥거핀 2012-09-06 00:08   좋아요 0 | URL
이사라는 게 한 번 날짜가 정해지면 여러 가지가 걸려있어서 그냥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죠. 아마 이사업체 사람들로서도 비오는 날씨에 책도 많고 해서 여러모로 짜증이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러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죠.^^ (덕분에 재정리하면서 있는지도 몰랐던 책들을 다시 챙기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실 만한 책이 있다니 좋군요.

Shining 2012-09-0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님 말씀에 공감. 책이 젖으면 보상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음, 저는 그래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아마 그래야 할 것 같은데_- 책이 젖다니! 이건 재앙이잖아요!

눈이 오는 날 이사해본 적은 있는데 태풍이라니; 고생 많으셨습니다(꾸벅).

아, 맥거핀님. 저 영화책 좀 추천해주세요!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소개해주시는 마음으로 부탁드릴게요 :)

맥거핀 2012-09-06 00: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원래 일기예보에는 볼라벤이 지나가고 다음이라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태풍 하나가 따라올라 오더군요. 일이 뭐 안되려면 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죠. 암튼 위로 감사합니다.^^

영화책은 뭐 저도 많이 모르기는 한데, 요 옆에 '마이리스트' 눌러보시면 예전에 '씨네21'에서 영화책 추천한 것을 제가 리스트로 만들어둔게 있어요. 거기에 책을 저도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 같은 것은 필수적으로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책은 하스미 시게히코 외에 몇몇 사람들이 쓴 <나루세 미키오> 같은 것들 좋았구요. 이 책이 들어가 있는 '한나래 씨네마' 시리즈도 괜찮은데, 그 중에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는 정말 재미있고, 영화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을 상당히 길러주는 책이라고 봅니다. 정말 기존에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구요..(근데 문제는 이 책이 절판이고, 상당히 구하기 어렵다는 점..저도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최근에 봤던 책으로는 <필름메이커의 눈> 같은 책들이 여러 촬영기법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맥스무비에서인가 나온 씨네마톡 모아놓은 책도 재미있었고요. 근데 뭐 이미 이 책들 거의 보시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제가 괜히 쓸데없이 긴 말 늘어놓지 않았나 싶네요. 추천이라기 보다는 그냥 제가 재미있게 읽었다, 그 얘깁니다.^^;

Shining 2012-09-06 11:5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를 과대평가 하고 계시군요(후후후후후). 말씀하신 책은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자랑은 아닌데...) 영화책은 예전에만 좀 읽은데다 요새는 거의 특정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책만 읽은 것 같습니다. 마이리스트에 목록은 전에 본 적 있습니다. 말씀 안 드리고 몰래 컨닝했어요*-_-*

제가 다니는 도서관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예술분야 책이 너무 적어요. 수요가 없어서 공급도 없는 식인데 뭐, 수요가 없으니 책 상태만은 엄청 좋지만요^^

추천, 이라는 말은 좀 막연하고 짜증스러운 표현이라 사실 쓰고 좀 갸우뚱했는데(소심합니다 저) 좋았던 거, 골라주시니 좋군요. 또 생각나는 거 있음 말씀해주세요 :)

맥거핀 2012-09-06 22:00   좋아요 0 | URL
아..저는 이사오기 전에는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는 상당히 좋은 환경에서 살았었는데, 이사오고 난 후에는 상당히 도서관이 멀어서, 예전처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네요. 근데 서울의 큰 도서관의 책들은 대체로 상태가 그다지 좋지가 않아요. 말씀드렸던 <히치콕과의 대화> 그 책도, 특정 영화에 대한 부분이 다 누가 뜯어갔더군요.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책이 없으니, 생각나면 또 말씀드릴께요. 근데 사실 영화에 대해서는 고전에 대한 글들도 좋지만, 최신 영화잡지 같은 것에 실린 따끈따끈한 글들을 죽 읽는 것도 괜찮은 것 같기는 해요. 시간나시면 도서관 잡지 코너에서 <씨네21>이나 <무비위크>, 혹은 <영화평론>의 평론글들만 죽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키노>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아..매년 나오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시리즈도 있어요.^^;) 소설도 단행본으로 나온 것보다 계간지에 실린 소설들 중에 진짜 좋은 것들 많지 않나요..

아이리시스 2012-09-0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 저도 저거랑 저거..저는 그냥 제가 사서.. 서경식..맨날 들었다놨다 하다가 이젠 좀 읽어보려고요. 근데 이번 책은 시작하기에 뭔가 심하게 학술적인데.. 제가 하는 게 다 그렇죠 뭐.

p.s. 조만간 두 분 영화평론 등단하는 겁니까? (좋겠다 좋겠다)
그러면 저도 마이리스트 훔쳐보러-_-;;

맥거핀 2012-09-06 22:26   좋아요 0 | URL
열심히 훔쳐보고 계심? (저는 아니고, 아무래도 Shining님이 등단욕심이 있으신 모양...;;)

근데 서경식 선생님 책 저거는 제목만 저렇지 그렇게 학술적이지는 않을거에요. 아마도. 어렵고 무거운 얘기를 상당히 쉽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라,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생각합니다.

Shining 2012-09-07 01:16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아이님, 맥거핀님이 은근슬쩍 저한테 떠넘기고 계세요~(이른다ㅋ)

등단욕심, 가당치도 않으십니다-_ㅠ 필름 2.0폐간 후엔 가끔씩 씨네21만 읽는데 (이상하게) 성에 차진 않아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이 시리즈 재밌죠ㅋ 저도 도서관서 몰아서 읽었어요 :)

키노, 진짜 그리운 이름이네요.

맥거핀 2012-09-07 03:00   좋아요 0 | URL
네..자고로 뭐든지 일단 떠넘기는 게 진리라고, 어떤 직장선배가 몰래 가르쳐줘서 열심히 실천중입니다..; (물론 가르치면서 그가 나에게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기'라는 걸 떠넘기기는 했습니다만..)

뭐 사실 씨네21은 요새는 거의 문화잡지 비스무리하게 되버려서, 영화에 대한 좋은 글이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전영객잔은 그래도 쓸만해요. 김혜리 씨나 정한석 씨 글도 좋고..저는 사실 이상하게 필름 2.0에는 그다지 정을 못 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