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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영원히 살 것처럼 달려왔더라도 잠시 멈추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힘든 일, 기쁜 일을 다 제쳐두고 멈추어야 하는 순간은 바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다. 바쁘다는 이유로 때로는 게으름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 안 되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며 살고 있는지.
그들이 사람의 형태로, 기회의 형태로, 장소의 형태로, 기억의 형태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동안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한 채 매일 주어질 것처럼 일회성으로 낭비하고 버려버렸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야 깨닫게 되다니...그래서 인간은 그 무한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기 짝이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 정해진 틀에 맞춰사는 삶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사람들, 인생의 마지막 이별이 오기 전까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그들이 머무는 호스피스의 한 요리사는 오늘도 음식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만들고 있다.
삶이 허기진 나를 채워주는 따뜻한 깨달음...
로이히트포이어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흔히 호스피스라고 말하는 곳으로 배고픈 사람들이 아닌 시간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요리사라는 직함은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어디 쉐프 라고 말했을 때 우린 그가 만든 멋진 코스 요리를 떠올리게 되지만 호스피스의 요리사에게 멋진 레시피를 기대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레시피는 우리의 레시피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가슴 먹먹한 음식이 있듯 그들은 음식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음식 속에 담긴 사연과 추억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죽을 준비가 된 것과 진짜로 죽을 수 있는 것 사이에 종종 고통스러운 시간이 놓여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순간 내가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왔는지에 감사하게 되었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식사는 차려졌다...
영원히 살 것처럼 달려왔지만 딱 두시간만 당신을 멈추라고 책은 이야기했다. 너무나 간절한 외침이었기에 나는 딱 두시간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처음 약속되었던 두 시간은 그렇게 세 시간이 되고 네시간이 되어갔지만 나는 투덜거릴 수가 없었다. 호스피스에서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온 요리사가 전하는 성찰의 시간은 그의 시간을 넘어 나의 시간에도 성찰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읽을 때쯤, 책의 첫장에서 시작된 질문에 답을 내려야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마지막 저녁식사에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만들지 답변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이라면 기꺼이 초대에 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일뿐.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살아있는 교훈을 얻게 된다는 사실은 참 쓸쓸하고 서글픈 일이지만 그들의 삶이 남아 있는 이들에겐 삶의 거름이 되어 후대가 지켜진다는 사실은 커다란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