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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묻은 별 - 엄홍길의 인연 이야기
엄홍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산에 묻히는 일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요즘에야 납골당이다 수목장이다 해서 선택의 사항이 많아진 것 뿐이지 여전히 산에 묻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흙산이 아닌 언 산에 그것도 사고로 고국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묻히게 된 경우, 망자의 한은 얼마나 클지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평생을 함께 해 온, 특별히 아꼈던, 조금 전까지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산에서 잃고서도 또 산으로 향하는 산 사나이 엄홍길 대장이 그 가슴에 묻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절하게 털어놓았다.
희말라야는 왜 그를 살려준 것일까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산악인들이 지금 이 순간도 목숨을 잃고 있을지 모를 히말라야는 엄홍길 대장이 8000m급 16좌를 완등하는 동안 살려두었다. 물론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었고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 다시는 산에 오르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까지 들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산악인 엄대장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가슴에 묻힌 사람들의 열망을 함께 이루어내고자하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란 네팔어로 "사가르마타(눈의 여신)", 티베트 어로 "초모랑마(세계의 여신)"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이름보다는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바로 영국에서 히말라야 고봉들의 높이를 재면서 측량 국장인 조지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을 붙여 버렸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힘은 고유명사 하나에서도 그 힘을 발휘 하나보다. 누군가의 이름보다는 뜻이 예쁜 현지인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불려진다면 더 좋을텐데.....라는 아쉬움은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서 생긴 것이었다.
이미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유명한 엄홍길 대장의 [내 가슴에 묻은 별]은 결코 그의 지난 발자취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볼 수 없으나 여전히 그의 가슴에 살아있는 보고 싶은 후배들에 대한 추억담으로 가득했다. 그 역시도 그가 사람을 보는 시선이 잘 그려져 있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놓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그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프로필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의 평소 습관이나 그가 가졌던 꿈,함께 꾸었던 열망, 그래서 그들의 부재가 더 아쉬운 현재를 절절하게 그려놓고 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와인이나 양주같은 사람이 아니라 구수하게 사람냄새나는 막걸리 같은 사람들이라 읽는 순간 마음이 동화되어 함께 아파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사나이는 사람을 보는 시선조차 따뜻한 사람이었으니 무릎팍 도사에 나왔던 그 유머러스한 얼굴이 시커먼 그 분이 이 글을 쓴 저자분과 동일한 분인지 약간 미스매치가 되기도 했지만 책은 마지막까지 감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생의 절반을 희말라야에서 보낸 산 사나이의 고백...
그는 동료들을 잃었고 셰르파들도 잃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그들이 좋아할 일을 찾아나섰고 결국 16좌 완등 신화를 이룩해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일에 도전 중이다. 네팔에 학교를 세우고, 현지에서 포기한 소녀를 한국으로 초청해 수술받게 만들고 오지의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이런 사람내음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팬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얼마전 모프로그램에서 배우 최민식이 방송인 김제동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왜 올라가? 산은 보라고 있는 건데" 엄대장님이 들으면 펄쩍 뛸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올라가기 보다는 밑에서 바라보는 쪽이니까. 하지만 세상의 반대편엔 높은 산일수록 오르기 어려운 산일수록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귀영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요, 명예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목숨을 내어놓아야하는데도 그들은 오르고 또 오른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