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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휴고상','네뷸러상','잉크팟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작가 피터s 비글이 열 아홉에 쓴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는 제목부터
특이했다. 뭐지? 왜 공동묘지에서 사는 거야? 작가 이름은 왜 또 비글(3대 악마견이라 불리는 그 견종. 물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편견에서
비롯되어 붙여진 별명이지만) 인 거야? 싶었으나 문학수첩에서 발행한 작가 비글의 책은 블루빛 차분한 표지로 봄빛에 나가 읽기 좋을만큼 그립감이
좋은 적당두께의 서적이었다.
p13 공동 묘지에 화장실을 만드는 곳은 시인들의
도시야
1939년 미국 맨해튼에서 태어난 도시남자인 작가는 19년 간이나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는 한 남자, 리벡을 탄생 시켰다. 역시
'충만'보다는 '결핍'에 의해 쓰여졌을 이 소설 속 주인공 리벡은 오래된 영묘 속에서 잠을 자며 까마귀가 훔쳐다준 소시지 따위를 먹으며 산다.
왜? 언제부터? 라기 보다는 무엇 때문에?라고 묻고 싶어지는 이 남자의 속사정. 소설을 읽으며 그것을 발견하기를 기대했으나 글의 길은 그가 아닌
리벡이 묘지에서 만나게 된 영혼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길을 열어 나간다.
p77 죽음은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거에요.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사람을
위해서든
아내가 자신을 독살했다고 믿고 있는 34세의 영혼 마이클이 진실을 알게 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반면 약제사로 일하다가
파산하고 목욕가운 바람으로 공동묘지에서 살게 된 조너선 리벡의 경우엔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19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절대 공평하지 않았다. 두 경우만 보아도.
정상적인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서일까. 유령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들과 말을 나누고 음식을 물어다주는 까마귀와 대화가 가능하게 된 리벡이
유일하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남편 모리스를 추모하러 오는 클래퍼 부인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살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며 살지만
그래도 19년 전 도망쳐 왔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보니 리벡은 다시 살아있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에.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 속에서 늙은 도둑은 말년에 석방되지만 그에게는 오랫동안 익숙해져온 감옥이 고향 같은 곳이라 그만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고 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우리에게는 일상인 삶의 시간이 어쩌면 그 늙은 도둑이나 리벡같은 사람에게는 같이 맞물려
돌아가기 두려운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잠시 읽던 책의 페이지를 접어두고.
p392 이제 어떻게 할 거에요?
라는 평범한 이 질문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다니. 결국 시간이 걸렸을 분 리벡은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삶을 택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거트루드
클래퍼의 손을 잡고.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좋을까? !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소설이 작가가 19세에 쓴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했을때 인생을 충분히 산 사람의 그것이 아닌 10대의 인간이 어쩜 이토록 묵직한 화두를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싶어져 다시금 놀라고
말았다. 마치 스크루지 영감이 만난 마지막 크리스마스의 유령과 마주친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