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때 책장을 넘겼다가 살며시 다시 덮었던 이후 20년이 지나 다시 펼쳤다.
고등학교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사랑에 대한 해석을 지금과는 다르게 할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장이라고 표현 하기에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처절한 사랑, 끝없는 악은 어디까지인지, 사랑과 배신의 끝은 어디인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을 갈구하고 쟁취하고 질투하고 버리고 복수하고 그 끝엔 폭풍이 몰아치는 그 언덕에 그의 집이 있다.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삐뚫어짐의 광기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수 있다.

- 워더링 하이츠란 히스클리프 씨의 집 이름이다. ‘워더링‘ 이란 이 지방에서 쓰는 함축성 있는 형용사로, 폭풍이불면 위치상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정말 이 집 사람들은 줄곧 그 꼭대기에서 일 년 내내 그 맑고 상쾌한 바람을 쐬고 있을 것이다. 집 옆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전나무 몇 그루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이나, 태양으로부터 자비를 갈망하듯이모두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늘어선 앙상한 가시나무를보아도 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북풍이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그것을감안하여 튼튼히 지었다. 좁은 창들은 벽에 깊숙이 박혀있고 집 모서리는 크고 울퉁불퉁한 돌로 견고하게 되어 있 었다.

악몽같이 몸서리쳐지는 공포가 나를 엄습해 왔다. 나는팔을 도로 거두려 했다. 그러나 그 손이 붙들고 놓아주지않았다. 그리고 몹시 구슬프게 흐느끼는 듯한 어린아이의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게 해주세요. 들어가게 해줘요!"
"당신은 누구요?" 하고 나는 물으면서도 그 손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캐서린 린튼이에요." 그 소리는 떨면서 대답했다. (왜 린튼이라는 이름이 생각났을까? 린튼이라는 이름보다 언쇼라는이름을 스무 배는 더 많이 봤을 텐데, ) "제가 돌아왔어요. 저는 벌판에서 길을 잃었던 거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의 어떤 순간에도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한동일 교수님은 오마법 수업을 주비 하시면서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셨다고 한다. 없는 살림이었디만 끼니때마다 늘 새로 지은 밥과 반찬으로 상을 차리셨다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수업에 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 하신다고. 나도 이 책을 천천히 곱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고 맛있게 먹었다. 라틴어 수업 그리고 로마법 수업에서는 말한다. 시대가 변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걸 잊지 말고 인간답게 살자고.

로마법에는 인류가 시대를 초월하여 추구해왔던 보편적인 가게와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사회 구성원 간이합의와 소통이 간절히 요구되는 우리 사회에 제가 로마인들의 번과 원칙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입니다.

로마법은 숱한 압력 속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싶어했고, 끝내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의 아집과 편견을 넘어 너와의 소통과 상생을 꿈꾸었던 로마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돌탑과도 같습니다.
저의 로마법 수업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 사회에 큰 충격과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가슴에 작은 파동은 일으킬 수있기를,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찾아온 그 일렁거림이 ‘세계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길 소망해봅니다.

로마법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는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저의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늘 새로지은 밥과 반찬으로 상을 차리셨지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그게 수업에 임하는 선생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매번 새롭게 느껴지도록 강의를 준비하려는 노력, 그게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면에서는 로마시대와 오늘날에는 큰 차이가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골적인 신분제만 없다 뿐이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조건과 양상은 어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오늘날에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라고대놓고 묻거나 신원을 조회하는 일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는 소속과 경제력에 대한 교묘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사람을 가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당신은 전임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오늘날의 사회는 얼핏 평등하고 자유롭고 자기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저그렇게 보일 뿐 현실은 뼈저리게 불평등하고, 약자는 끊임없이 강자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약자들이 미약하게나마 움켜쥐고 있던 것마저 빼앗겨 저항과 울분의 목소리를 토해내면, 그 소리는 이내 더 큰 권력에 묻혀버리지요. 여성, 소수자, 장애인, 빈자들이 지금도 머리에 피가 맺히도록 두드리고 있는 저마다의 ‘유리천장은 또 얼마나 강고합니까? 차라리 로마시대처럼 눈에 선명하 게 보이는 신분제가 있었던 사회가, 지금처럼 내 머리 위에 드리운 것이 푸른 하늘인 줄 알았더니 개인의 노력으로는 절대 깨부술수 없는 무서운 유리천장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회보다 그 절망과 피로도는 덜하지 않았을까요?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거듭 묻습니다.
‘페르소나‘를 가진 인간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호미네스’ 중하나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진정 자유인인가, 아니면 스스로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인가.
이 수많은 제약들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 인간…… 참으로 신비하고 모순된 개념이여!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과연 이 헌법정신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명목상으로는 같은데 실질적으로 같지 않은 데서 인간은 더 큰 차별과 좌절감을 느낍니다. 자유인이지만 엄연히 다른 신분적 차이가 있었던 로마시대 두 자유인의 모습에서, 저는 겉으로는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한발 더 들어가보면 분명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불편부당과 갈등을 자주 확인합니다.

한편,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독일어의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 어딘가에 묶여 있지않음이 아니라 묶여 있어야 느끼는 ‘자유‘라는 말뜻을 통해, 이 지상 여정에서 순례자로서의 나‘ ‘단순 체류자로서의 나‘ ‘관광객으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유한한 인간의 삶, 언젠가는 죽음으로써 이곳을 떠나야 하는 삶, 결국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우리가 그나마의 자유를 찾을 길은, 사회의 일원으로 묶여 있다 할지라도 지위와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사창과 우정을 나누는 것뿐이 아닐는지요.

이마누엘 칸트는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것으로 부유해진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타자와의 구분을 통해 우월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게본능에 가깝다면, 반대로 타자와 구분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 묻어 있는 인격적 성숙이, 인간다운 품위를 갖춘 진정 우월한 사람으로 우리 각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예들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이다.Servi sunt: immo homines."

저는 아내가 없습니다.
당신에겐 누나나 여동생은 없어도 아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당신, 우리 모두에겐 어머니가 있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어머니 없이 이 세상에 올 수는 없습니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진 않지만,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여성 입니다.

우리 사회는 결혼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경제적,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나요?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 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과연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기 좋은 사회일까요? 문밖을 나가면 진정한 어른들을만날 수 있는 사회인가요?

법문이나 성서에 쓰인 한 줄의 격언과 잠언이 수많은 함의와 개 개인의 사연을 품고 있듯이, 오늘 내가 맞닥뜨린 사소한 사건과 사람들 속에도 우리가 무심히 흘려넘긴 수많은 이야기와 아픔이 숨어 있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이탈리아에 가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유명관광지 말고 경치 좋은 곳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장애인 시설이나 어린이 병원 같은 복지시설이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답니다. 이탈리아는 경치가 빼어난 곳에는 호텔도골프장도, 카페도 아닌 장애인 시설이나 어린이 병원을 짓습니다. 넉넉한 주차장은 덤이요, 수려한 자연경관이 보이는 곳에서 치료받고요양할 수 있으니까요. 장애인 시설 하나만 지으려 해도 그 지역주민이 온통 들고 일어나 설립 계획이 무산되거나 더딘 진행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한 사회가 어떤 철학에 기반해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문제라도 해결방식은 천차만별임결방식은 천차만별임을 느낌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1975년의 어느 춥고 흐린 겨울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나는 그날, 무너져가는 담장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얼어붙은 시내 가까이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여름 어느 날, 라힘 칸이 파키스탄에서 전화를 했다. 그는 나한테 그곳으로 와달라고 했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부엌에 서서 전화를 받던 나는 전화기 속에 있는게 라힘 칸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속죄하지 못한 죄들이 가득한 내 과걱가 그 속에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산책을 나가 골든게이트 공원의 북쪽 가장 자리에 있는 스프레클스 호수를 따라 걸었다. 이른 오푸의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몇 십 개의 모형 배들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기다란 남색 꼬리가 달린 두 개의 붉은 연이 떠 있었다. 두개의 연은 공원의 서쪽 끝에 있는 나무들과 풍차들 위에, 이제는 내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샌프란시스코를 내려다보며 두눈처럼 나한히 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귀에 하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남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언청이였던 하산.
나는 버드나무 가까이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라힘칸이 전화를 끊기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 나는 쌍둥이 연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하산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바를 떠올리고 알리와 카불을 떠올렸다. 나는 1975년 겨울이 되어 모든 것이 바뀔 때까지 내가 살았던 삶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되게 한 그 겨울을 떠올렸다. (7~8p)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자살테러로 110층이나 되는 세계무역센터가 허무하게 무너졌던 그날 이었던 것 같다. 무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빼았겼고, 온 세계가 무자비한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었다. 눈에눈 이에는 이 테러에는 테러라고 외치는 미국과 영국이 태러의 배후에 있다고 지목한 오사마빈 라덴이 있다는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극우세력, 테러, 반 사회적, 빈곤, 총, 무장 등 부정적인 단어만 떠올리게 된 나라로 기억 저편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이 책을 보며 그 동안 너무 큰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눈을 멀게 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미디어라는 것이 단편적인 것만 보는 것이 이리 무서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 가는 곳에는 이해할수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생길 수 있다.
단지 거기에 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도 여느 나라와 똑같다. 가족간의 돈독한 사랑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배풀며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갔던 그들이었다. 그런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여 있어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과거를 지우고 싶거나 후회가 남는 일을 마음속에 깊이 숨겨두고 있다면 책을 꼭 펼쳐보길 권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3-02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지 2020-03-02 12:17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감명 깊었어요 ^^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천개의 찬란한 태양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읽어보시면 만족 하실 것 같아요 ^^

2020-03-02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지 2020-03-02 21: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리고 산이 울렸다 읽을 책으로 대기 하고 있어요 ㅎㅎ 재미있게 읽으세요 ^^

2020-03-06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6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6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6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7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위로가 필요하다.
사회에서 부딪히는 수 많은 일들에 지쳤고 항상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숨통이 조여온다. 프로 같지 않은 내 모습을 자책하고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밤 잠을 설친다. 쳇바퀴처럼 회사 집을 무한 반복하며 어제가 오늘인제 오늘 일어난 일들이 오늘이 맞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왜 계속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거지?? 왜 계속 힘을 내야만 할까?? 왜 성실히 착하게 살아야만 하고 원만한 대인 관계를 이루려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해 어무나도 피로감을 느꼈었다.

순례자를 읽으며 내 마음속의 우울함 답답함을 백프로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그와 순례길을 함께 걸으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 대하여 많이 공감했고 안내자인 페트루스가 안내해주는 대로 치유하고 단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순례자는 그 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 그 길을 걸었다는 성취감이 삶의 용기를 붇돋아 주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 길을 걸으며 마침내 삶에 대한 통찰과 깊은 깨달음을 얻고마침내 검을 찾는다. 그리고 너무나도 큰 용기를 얻는다.
나고 함께 용기를 얻는다.

(p 326~327)
네 왼쪽에서 천 명이 쓰러지고 네 오른쪽에서 만명이 쓰러져도
너는 조금도 다치지 아니하리라,
야훼를 너의 피난처라 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요새로 삼았으니
어떤 불행도 너를 덮치치 못하리라.
어떤 재앙도 네 집을 가까이 못하리라.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네가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는 내 두 어깨에 차례로 칼날을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그대는 사자와 독사를 몰아낼 것이며
새끼 사자와 용을 발 밑에 두게 될 것이다.

깊은 깨달음은 결국 본인 스스로 찾았다. 스스로를 믿고 마음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스페인 문을 지나 성벽을 통과해 그 작은 도시를 떠났다. 그곳은 옛적에 로마의 침략자들에게 중요한 경로였고, 샤를마뉴와 나폴레옹의 군대가 지나갔던 길이기도 했다. 나는 멀리서 울리는팡파르 소리를 들으며 생장피에드포르와 가까운 한 마을의 폐허를 말없이 걷다가 갑자기 강렬한 마음의 동요에 사로잡혔다.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 폐허 한가운데서 내 발이 신비로운 산티아고 순례길을 밟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이 높다는 걸 알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암호였다. 뒤를 돌아보니 카키색 버뮤다 팬츠와 땀에 젖은 흰셔츠를 입은 마흔 살가량의 남자가 집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서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남자였 다. 아차 싶었다. 나는 성급한 마음에 가장 기본적인 보호의 규칙조차 잊어버린 채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선뜻 나 자신을 내맡겼던 것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암호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침낭에 들어가 누운 내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에는 우리가 앞으로 거쳐가야 할 광막한 길을 보여주는 은하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다른 상황에서였더라면, 그러한 광대함은 커다란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난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내 앞에 닥칠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엄청난 두려움 속으로 나를 빠뜨렸을 것이다. 그 광대함을 감당하기에는 내가 너무 작다는 걸 일깨워주니까. 그러나 오늘 나는 작은 씨앗이 되었다. 나는 새롭게다시 태어났다. 내가 빠져 있던 깊은 잠과 대지가 안락함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저 높은 곳‘ 의 삶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임을 발견했다. 난 내가 원하는 만큼 새롭게 또다시 태어날수 있었다. 내 팔이 충분히 자라나, 내가 태어난 대지를 넉넉하게감싸안을 수 있을 때까지.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성서 구절이었다.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또한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 재림의 요람이 있을것이다. 이 가리비껍데기들처럼, 산티아고의 순례자는 하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세속의 삶으로 가득 찬 껍데기가 부서지면, 아가페로 가득 찬 진정한 삶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가 손을 거두자 가리비껍데기에서 나오는 빛도 사라졌다. 그는 탁자 위에 있는 책 속에 내 이름을 적어넣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가 본 유일한 세 권의 책 속에 내 이름이 남아 있다. 사뱅 부인의 책, 호르디 신부의 책, 그리고 후에 나 자신이 직접 이름을 써넣은 권능의 책이었다.

인간은 결코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는 동안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실망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래도 꿈꾸기를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어버리고,
아가페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니까요. 아주 오랜 옛날, 지금 당신 앞에 펼쳐져 있는 들판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피가 흘러내렸고정복과 수복 사이에 잔혹한 전투들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편이 옳고 누가 진실을 쥐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편 모두 ‘선한 싸움‘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그들은 사실 선한 싸움‘을 벌일 자신이 없는 겁니다.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아가페는 소멸시키는 사랑입니다."
이 특별한 사랑에 관한 가장 적합한 정의인 양 그는 이 표현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언젠가 말했지요. 그리스도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을 때 그 사랑은 바로 아가페를 두고 한 말이라 !
고, 그에 의하면, 우리를 아프게 하고, 매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가페는 사랑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휩쓸고 온갖 틈으로 스며들어와 우리 안의 공격적 성향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당신과 나처럼 람의 의식을 행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다른 형태로 나타난 아가페를경험합니다. 열정이 그것이지요.
고대인들에게 열정은 접신했을 때의 무아지경이나 황홀경을의미했지요. 열정은 하나의 생각이나 대상을 향한 아가페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번씩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지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고 믿게 되면, 자신이 세상의그 누구보다 더 강하다고 느끼게 되며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념을 깨뜨리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 차 평온함을 맛보게 됩니다. 이런 특별한 힘은 적절한 순간에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죠.
목표를 이룬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에 놀라게 됩니다. 선한 싸움‘
을 이끄는 중에 다른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열정에 이끌려목표에 도달하게 된 덕분이죠.

인간은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유일한 종입니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이들을 굽어보소서, 자신들은 선하나 삶이 불공평하게 대우한다고 여기고 부당한 일만 일어난다고생각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들은 결코 ‘선한 싸움‘ 을이끌어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에게 잔인하며, 자신의행위에서 악한 것만을 발견하며, 세상의 부당함에 책임이 있다고여기는 이들도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그분은 너희의 머리카 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는 당신의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 - IT II.
남에게 명령하는 자와, 사방이 닫혀 있고 갈 곳 없는 일요일을맞바꿔 오랜 시간 일만 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도 굽어 살피소서. 또한 당신의 과업을 신성하게 하며, 당신의 끝간 데 없는 열정 너머로 가려다가 큰 빚을 지고 자신의 형제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고 마는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그들은 뱀같이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당신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세상을 정복했으나 자신 안의 선한 싸움‘을 이끌어본 적이 없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또한 ‘선한 싸움‘ 에서 승리했지만 세 상을 이기지 못했기에 삶의 갈림길에 머무르는 이들도 생각하소 서. 그들은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는 당신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펜과 붓과 악기와 도구를 들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자비를베푸소서. 그들은 이미 누군가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놀라운 예술의 세계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이다. 그러나 하찮은 것들 안에 영감을 쏟아넣기 위해 펜과 붓과 악기와 도구를 손에 들고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낫다고 믿는 이들을 더욱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들은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라는 당신의 말씀을 모르는 이 들입니다.

먹고 마시면서 포식하지만, 그런 풍요로움 속에서도 불행하고고독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지만 단식하고 비판하고 금욕하면서, 스스로를 성인이라 여기며 광장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설교하는 이들에게는 더 큰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그들은 나자 신의 일을 내 입으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된다‘는 당신의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자신들이 거쳐온 수많은 왕국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이미 수없이 경험한 죽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 람, 언젠가 세상이 끝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수없이죽음을 경험했음에도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들을 더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당신의 말씀을 모릅니다.

스스로를 끊어지기 쉬운 사랑의 끈으로 옭아매 누군가에게 예속되는 사람, 자신이 다른 이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 시기심을 느끼고 사랑에 중독되어 스스로를 망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들판에 부는 바람이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사랑또한 변한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더 높은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더 큰 자비를 베푸소서. 그들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는 당신의 말씀을모르는 자들입니다.

우주를 한마디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신은 신비한 물약 정도로, 인간은 충족되어야 하는 원초적 욕망만을 지닌 존재 정도로생각하는 이들을 측은히 여기소서. 그들은 천체의 음악을 결코 들어본적 없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맹신하는 자들, 실험실에서 수은을 금으로 변화시키려 하거나 타로카드의 비밀이나 피라미드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책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이들을 더욱더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와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당신의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리무진을 타고 거리를 지나갈 때 멀리 보이는 어렴풋한 풍경 정도로만 여기는 사람, 에어컨이 돌아가는 펜트하우스 사무실에 자신을가둬놓고 고독한 권력으로 조용히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히 굽어보소서. 하지만, 언제나 손을 벌린 채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오직사랑으로만 악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도 측은히 여기소서. 그들은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가지고 가거라는 당신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당신이 약속한 검을 찾 아 감히 손에 쥐고자 하는 자들이며, 신앙심 깊은 지상의 죄인입 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입니 다. 우리는 종종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벌거벗은 자들이며, 사실은 누군가를 구하면서도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사의 한 손과 악마의 한 손으로 동시에 검을 쥐고 있는 우리를 잊지 마시고 당신의 자비로 감싸주소서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며, 세상에 머무를 것이며,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너희를 보낼 때 돈주머니나 식량자루나 신발도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것이라도 있었느냐?‘는 당신의 말씀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