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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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떤 순간에도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한동일 교수님은 오마법 수업을 주비 하시면서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셨다고 한다. 없는 살림이었디만 끼니때마다 늘 새로 지은 밥과 반찬으로 상을 차리셨다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수업에 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 하신다고. 나도 이 책을 천천히 곱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고 맛있게 먹었다. 라틴어 수업 그리고 로마법 수업에서는 말한다. 시대가 변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걸 잊지 말고 인간답게 살자고.

로마법에는 인류가 시대를 초월하여 추구해왔던 보편적인 가게와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사회 구성원 간이합의와 소통이 간절히 요구되는 우리 사회에 제가 로마인들의 번과 원칙을 다시 소환하는 이유입니다.

로마법은 숱한 압력 속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싶어했고, 끝내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의 아집과 편견을 넘어 너와의 소통과 상생을 꿈꾸었던 로마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돌탑과도 같습니다.
저의 로마법 수업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 사회에 큰 충격과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가슴에 작은 파동은 일으킬 수있기를,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찾아온 그 일렁거림이 ‘세계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길 소망해봅니다.

로마법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는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저의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늘 새로지은 밥과 반찬으로 상을 차리셨지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그게 수업에 임하는 선생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매번 새롭게 느껴지도록 강의를 준비하려는 노력, 그게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면에서는 로마시대와 오늘날에는 큰 차이가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골적인 신분제만 없다 뿐이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조건과 양상은 어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오늘날에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라고대놓고 묻거나 신원을 조회하는 일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는 소속과 경제력에 대한 교묘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사람을 가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당신은 전임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오늘날의 사회는 얼핏 평등하고 자유롭고 자기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저그렇게 보일 뿐 현실은 뼈저리게 불평등하고, 약자는 끊임없이 강자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약자들이 미약하게나마 움켜쥐고 있던 것마저 빼앗겨 저항과 울분의 목소리를 토해내면, 그 소리는 이내 더 큰 권력에 묻혀버리지요. 여성, 소수자, 장애인, 빈자들이 지금도 머리에 피가 맺히도록 두드리고 있는 저마다의 ‘유리천장은 또 얼마나 강고합니까? 차라리 로마시대처럼 눈에 선명하 게 보이는 신분제가 있었던 사회가, 지금처럼 내 머리 위에 드리운 것이 푸른 하늘인 줄 알았더니 개인의 노력으로는 절대 깨부술수 없는 무서운 유리천장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회보다 그 절망과 피로도는 덜하지 않았을까요?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거듭 묻습니다.
‘페르소나‘를 가진 인간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호미네스’ 중하나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진정 자유인인가, 아니면 스스로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인가.
이 수많은 제약들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 인간…… 참으로 신비하고 모순된 개념이여!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과연 이 헌법정신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명목상으로는 같은데 실질적으로 같지 않은 데서 인간은 더 큰 차별과 좌절감을 느낍니다. 자유인이지만 엄연히 다른 신분적 차이가 있었던 로마시대 두 자유인의 모습에서, 저는 겉으로는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한발 더 들어가보면 분명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불편부당과 갈등을 자주 확인합니다.

한편,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독일어의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 어딘가에 묶여 있지않음이 아니라 묶여 있어야 느끼는 ‘자유‘라는 말뜻을 통해, 이 지상 여정에서 순례자로서의 나‘ ‘단순 체류자로서의 나‘ ‘관광객으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유한한 인간의 삶, 언젠가는 죽음으로써 이곳을 떠나야 하는 삶, 결국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우리가 그나마의 자유를 찾을 길은, 사회의 일원으로 묶여 있다 할지라도 지위와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사창과 우정을 나누는 것뿐이 아닐는지요.

이마누엘 칸트는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것으로 부유해진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타자와의 구분을 통해 우월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게본능에 가깝다면, 반대로 타자와 구분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 묻어 있는 인격적 성숙이, 인간다운 품위를 갖춘 진정 우월한 사람으로 우리 각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예들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이다.Servi sunt: immo homines."

저는 아내가 없습니다.
당신에겐 누나나 여동생은 없어도 아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당신, 우리 모두에겐 어머니가 있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어머니 없이 이 세상에 올 수는 없습니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진 않지만,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여성 입니다.

우리 사회는 결혼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경제적,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나요?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 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과연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기 좋은 사회일까요? 문밖을 나가면 진정한 어른들을만날 수 있는 사회인가요?

법문이나 성서에 쓰인 한 줄의 격언과 잠언이 수많은 함의와 개 개인의 사연을 품고 있듯이, 오늘 내가 맞닥뜨린 사소한 사건과 사람들 속에도 우리가 무심히 흘려넘긴 수많은 이야기와 아픔이 숨어 있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이탈리아에 가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유명관광지 말고 경치 좋은 곳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장애인 시설이나 어린이 병원 같은 복지시설이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답니다. 이탈리아는 경치가 빼어난 곳에는 호텔도골프장도, 카페도 아닌 장애인 시설이나 어린이 병원을 짓습니다. 넉넉한 주차장은 덤이요, 수려한 자연경관이 보이는 곳에서 치료받고요양할 수 있으니까요. 장애인 시설 하나만 지으려 해도 그 지역주민이 온통 들고 일어나 설립 계획이 무산되거나 더딘 진행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한 사회가 어떤 철학에 기반해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문제라도 해결방식은 천차만별임결방식은 천차만별임을 느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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