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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의 시간 - 장미의 채색 편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부럽고, 나와는 동떨어진 별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사과 한 알을 보며 엄청난 고민 속에 색깔을 정하고 명도를 판단해 가며 고통스럽게 채색했던 학창시절의 기억은, 미술에 소질이 없음을 타고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학교 미술 시간과는 달리 조금 흥미를 느꼈던 시기는 취미로 웹디자인을 배웠을 때이다. 포토샵 외 여러 툴을 다루고 싶어 수강한 강의의 커리큘럼엔 미술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색과 그리기에 대한 수업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색연필로 색칠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때였는데, 미술을 전공했던 수강생이 색연필로 동물을 쓱쓱 그리고 채색하는 걸 보니 자연스러운 색감과 터치감이 물감 저리 가라로 좋았었다. 집에 와서 얼른 아이의 그림책을 펴보고 나서야 틀림없이 색연필로 그렸음직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색연필로 작품을 채색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장미의 채색'편은 장미꽃의 여러 종류를 꽃과 잎, 줄기, 가시와 같은 부분으로 나눠 섬세하게 칠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채색을 할 때는 단계별로 나누어서 한다. 1단계에는 갈색, 회색 등의 한 색깔로 명암을 조절하고 그림자를 그려넣는 밑채색을 한다. 2단계에서 윤곽선을 그리고 물체의 색에 좀더 접근하며 입체감을 살려 채색하고, 마무리 채색은 풍부한 색감과 악센트를 살려 채색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처음부터 완성의 단계로 가기 위해 색을 칠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안되고 색깔만 탁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채색에도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책의 분량 중 반은 설명이고, 반은 직접 채색을 해볼 수 있게 밑그림을 제공한다. 설명을 보면 색연필 채색에 적당한 전문 용지라고 하는데, 일반 스케치북의 종이보다도 좋은 것 같다. '색연필화 쉽게 하기'란 책이 좀더 다양한 채색 기법을 소개하고, 사람, 풍경, 동물 등의 방대하고 폭넓은 대상에 대해 맛보기의 채색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책은 장미꽃의 여러 종류를 색깔만 바꾸어 같은 기법으로 색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 효과가 확실하다. 이 책을 마스터하고 나면 최소한 꽃 만큼은 자신있게 채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리라 기대한다. 로라, 마담 캐롤라인, 저스트 조이 등과 같은 장미의 구체적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보너스로 주어지는 재미이다.
꽃을 채색하는 것은 즐겁다. 언뜻 보면 붉은 계열의 꽃인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노랑과 갈색과 주황, 흰색 등의 다양한 색깔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 색을 조합하여 살아있는 듯한 꽃이 완성되고, 자신들이 마치 진짜 꽃인 양 화려하고 예쁜 모습을 자랑하고 있을 때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물통이며 파레트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깡통 재질의 통 안에 일렬로 누워있는 색연필로 종이에 색감을 불어넣을 때마다 창조의 기쁨이 마음 안에 새록새록 쌓이면서 무미건조한 삶을 조금씩 흔들어 놓을 것 같다. 기분좋은 흔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