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그 공존의 역사를 다시 쓴다, 비움과 나눔의 철학 3
이명권 지음 / 코나투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종교이건만, 종교로 인한 전쟁과 다툼은 오랜 역사 동안 계속되어 왔다. 종교의 참뜻에 부합되지 못하는 인간의 잘못으로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중동지방의 분쟁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등 종교로 인한 갈등은 심각하다. 

기독교, 불교와 같은 타 종교와는 다르게 이슬람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심지어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교의 알라신이 전혀 다른 신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한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사상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슬람교는 오직 알라신 한 분만 섬기며 예수 또한 무함마드와 같은 사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차이로 인해 반목과 다툼이 지속되고 있는 거라면,이는 종교를 권력 다툼에 잘못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이슬람교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무함마드가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와 꾸란에 나타난 여성상이다. 무함마드는 양자의 아내를 사랑하여 그가 이혼을 하자 그의 아내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비록 양자일지라도 아들의 아내를 다시 부인으로 삼은 셈인데, 이러한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꾸란에 양자의 아내가 이혼하면 결혼해도 무방하다는 문구를 삽입시켰다. 종교를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한 종교의 지도자로서 금해야 할 행동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서 도덕적 오점을 남긴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게다가 꾸란에서는 돈을 벌어주는 문제로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내용을 비롯하여 아내가 그녀의 남편에 복종할 때 원하는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 등 여성을 남성에 비해 열등한 관계로 보고 있다. 당시 아라비아의 사회적 풍속과 일부다처제 등을 감안하여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다. 아직까지도 히잡을 쓰고 다니는 무슬림 여성들을 생각할 때마다, 실로 하늘에 계신 유일신 하느님께서 이러한 행동을 원하시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꾸란과 성경은 귀중한 내용의 말씀이긴 하나, 때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전해지는 와중에 그 뜻이 잘못 해석된 부분이 있는 채로 전해내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예전에 그런 내용의 글을 종교 신문에서 읽었던 체험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거대한 건물을 지닌 종교집단에 대해선 살짝 거부감이 드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인지 판단하지 못함이다. 각 종교는 세력 확장에 전념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진정 종교인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지 인식하며 하느님과의 영적 만남을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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