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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 황희경의 차이나 에세이
황희경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 유학을 공부했던 필자가 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다듬어 펴낸 책이다. 중국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그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작과 정리가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한다. 저자는 '중국은 이렇다'라고 정의내리지 않은 채,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중국의 이모저모를 뜯어가며 살펴본다. 중국이란 나라의 일면을 보여주는 영화와 고전, 작가와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모든 내용들은 다 동원되어 중국 알아가기에 대한 작업에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여전히 깊은 관심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마오쩌둥 열기도 소개되었다. 공산당에서조차 '극좌적 오류'로 평가를 내린다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마오쩌둥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관심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어서 마오가 위대하다고 평가했던 작가 루쉰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큐정전'의 작가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중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너무나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큐정전'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포레스트 검프'란 영화를 보며 미국판 아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영화평을 읽으니, 이 영화를 비판없이 받아들였던 내게는 또다른 시각의 경험이 되었다. 물론, '포레스트 검프'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내용이긴 했다. 그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은 삶의 순기능으로서의 우연과 행운이라는 것에 대해 포기하기가 싫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영화=꿈'의 공식이 성립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중국의 상품이 값이 싼 이유는 농민공들의 덕분이란다. 1950년대 말, 호적상의 신분을 농민과 비농민으로 나누어 놓은 이해안되는 행정이 시행된 적이 있었고, 그때 농민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사회체제가 변함에 따라 공장에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많은 급여를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농민공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11억명의 중국인들을 먹여 살리는 셈인데, 그들의 저임금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런지 궁금해진다. 그들의 발언권이 세지면 세질수록 중국도 고임금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텐데, 그렇다면 지금처럼 저가격의 중국 상품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중국의 노인들의 얼굴이 우리에 비해 편해보인다고 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유가와 도가 사상이 지배하는 중국인의 사상에 둔다. 기독교에 바탕을 둔 사람들처럼 지상과 천상의 삶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한 세계인 그들은 삶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은 괴롭거나 기쁘거나 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달통한 모습을 보이며 사는 기술을 체득하고 있다는 시각이 그럴 듯하다.
새로운 이상과 열정을 꿈꿨던 80년대를 지나 경제의 시대에 돌입한 90년대의 흐름은 이제 되돌리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의 정신이 기저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홍콩대 연구원의 주장도 있었다.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그들이 겪어왔던 사회주의 정신과 개혁의 전통이 남아 흐르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양식을 가꿔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중국의 고전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그 영향으로 수호지, 서유기와 홍루몽, 영웅문이 두루두루 읽고 싶어진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을 읽는 것이 필독이라고 하니, 이 책에 연결되는 2차 독서로 중국 고전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