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히사이시 조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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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매니아층이 생기고 나서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아이에게 보여줄 애니메이션을 찾다가 디즈니와는 또다른 매력인 일본만화의 매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가 뒤늦게 우리나라에 '이웃집 토토로'가 처음 개봉되었던 즈음이었으니 늦은 만남을 한 셈이었다. 당시 '이웃집 토토로'를 보며 어쩌면 저렇게 동양적인 환상과 아이들의 세계를 따뜻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경쾌하고 맑은 음악이 귓전에 남아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이후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후엔 깊은 철학이 깃든 영화의 내용에도 반했을 뿐더러 은은한 선율이 아름다워 음을 따라 흥얼대곤 했었다.

몇 년 전  '웰컴 투 동막골'로 일본인이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받았을 때, 그 단순하면서도 정감가는 영화음악을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 사람이 미야자키 사단의 애니메이션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알고서야 어쩐지 입에  쩍쩍 붙는 멜로디와 고운 화음이 닮아있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작곡가가 바로 영화음악의 미다스손으로 불리는 히사이시 조이다. 

이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정신세계는 어떤 것일지, 어떤 영감을 받아 이런 음악을 창조하게 되는 것인지 많은 것들이 알고 싶었다.
누구나 무의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 진통을 겪는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이겨내고 직접 만든 창조물을 앞에 두었을 때의 기쁨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히사이시 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세계와 감독의 의향과 영화가 풍기는 이미지 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작업을 한다. 

성공한 지금도 계속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와 피아노 연주, 영화감독과 같은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 그의 도전은 다방면에서 성공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음악과 연계된 활동의 연장에서이다. 직접 만든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연주와 지휘를 하고, 감독의 입장에 서봄으로써 영화의 본질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음악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순수한 자신의 의사만으로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모든 경험은 음악을 하는 히사이시 조에게 플러스적인 영향을 미치며 변화와 발전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다.

히사이시 조는 전통음악을 어떻게 전수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하는 진실한 음악가이자 애국자로 보인다. 그러나, 배타적인 이기심에서의 애국이 아니라, 주변과의 공존 속에 일본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긍지를 느끼기도 하고 나쁜 점은 지적할 줄 아는 일본인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아시아인임을 자각하고 아시아를 주제로 한 앨범을 만들고 싶어한다.

음악의 길에서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음악가인 히사이시 조.
그의 마음과 철학과 창조의 기법을 차분하게 담아나간 책으로서 누가 읽어도 삶을 통찰하는 지혜로운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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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 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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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파리에 대하여 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담아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자유롭게 마음을 털어놓은 수필 같기도 하고, 어떤 면은 정보서 같기도 하다. 일반적 서술형으로 쓰다가 친구에게 얘기하듯, 일기를 쓰듯 색깔을 바꿔 써내려간 문체의 자유로움 만큼이나, 그 내용도 빵집 소개부터 파리의 사랑 이야기, 유학생활의 경험담 등 넓은 영역을 넘나든다.

책의 초반에 실려있던,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 퐁 데 자르에서 마음 속으로 쿠키 굽기 놀이를 하는 장면부터 살짝 비범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바람 한 스푼, 양떼구름 두 스푼, 가을 나뭇잎 빻은 가루 한 티스푼, 센 강물 한 스푼을 넣고 반죽한다. 물의 양을 주의하여 반죽의 되기를 조절하면서. 그런 다음, 다리의 가로등을 밀대 삼아 반죽을 알맞은 두께로 밀어 편다. 우뚝 솟은 에펠탑을 뽑아 그것을 틀 삼아 반죽을 찍는다. 손님들을 태우지 않고 정박해 있는 유람선을 들어올려 유람선 모양으로도 찍는다....중략...약 10분 후면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가는 노울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쿠키를 구워줄 것이다.(p21~22)--
유학가기 전에는 빵과 과자를 한번도 구워본 적이 없었던 저자가 낯선 파리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성공에 대한 의지와 미지의 두려움을 함께 불태웠을 장면이 연상되었다. 항상 마음 속에 골똘히 담아 두었던 생각은 역시 빵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빵집 소개는 지도가 함께 실려 있어 파리 방문시 유용할 것 같다. 물론, 단순 소개가 아니다. 장인정신으로 빵을 구워내는 가게의 주인과 함께 빵과 인생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이야기를 읽어보면, 자부심과 행복감으로 빵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 온다. 빵집 주인과 친분을 쌓아 주방에서 직접 한국의 간식인 호떡을 만들어 대접한 일화는 흐뭇하게 읽었던 내용이다. 

'파리를 닮은 사랑' 편의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의 특징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때로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제 사건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들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쿠키처럼 고소하다. 그러고 보니, 빵과 파리와 사랑은 참 잘 어울린다.
'빵빵빵 이야기 노트'에선 신부의 방귀란 뜻을 가진 페드논 도넛에 얽힌 이야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 이야기, 빵의 평등권 등 독특하거나 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읽는 재미를 주었다.

누드 토끼 토막내기 사건은 정말 인상깊었다. 귀여운 토끼들이 털이 몽땅 뽑힌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는 모습에, 토끼요리 실습 시간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녀. 하지만 쉐프와 조교들은 그런 그녀를 불러놓고 시범을 보이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상추 이파리로 토끼 얼굴을 살포시 가리고 토끼목 단번에 자르기에 도전하나, 상추 잎은 날아가고 토끼의 목은 잘리다 만 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도 통닭도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하지만 깡총깡총 섹시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하얀 토끼를 생각하면 도무지 칼을 들이댈 수가 없었다.(p86)--
대형 마트에 가면 동물 코너에서 귀여운 토끼를 구경하다 오곤 하는 나로서는, 이런 저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읽을 때마다 동물을 식용으로 삼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돌고 도는 먹이사슬 속에서 잡아먹고 먹힘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로하곤 하지만.

빵과 파리를 마구 헤집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무척 빨리 간 느낌이다. 책을 덮으며 가장 생각나고 먹고 싶은 빵은 마카롱이다. 저자가 호텔에서 일하며 몰래 꺼내먹다 들켰다던 딸기맛, 바닐라맛, 초콜릿맛, 메론맛의 동그란 마카롱이 먹고 싶다.
한국에서 마카롱이 맛있는 빵집은 어디 있을까? 달콤한 그 맛으로 온갖 빵의 향연으로 괴로웠던 심사를 조금이라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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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뉴욕을 담다 - 요리사 김은희의 뉴욕레스토랑 여행기
김은희 지음 / 그루비주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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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으며 넘치는 에너지와 다양성, 많은 볼거리에 꼭 가보고 싶은 도시가 되고 말았는데, 이곳에 또 하나의 복병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자연적인 반사작용으로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을 참아가면서 뉴욕 레스토랑의 맛 순례기와도 같은 이 책을 즐겼다.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뉴욕에 갈 계획도 없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어찌할까? 첫날엔 멋도 모르고 출출해진 밤에 책을 읽다가 계속 탄성의 소리를 내지르고야 말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둘째 날에 책을 볼 땐 든든한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읽었다. 정말 배고픈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이 책에는 저자가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친구를 사귀고, 셰프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힘들어 눈물을 쏟아가면서도 당당히 모든 과정을 거쳐낸 이야기들이 맛있는 요리의 사진들과 함께 전개된다.

뉴욕 레스토랑의 메뉴들은 참 다양했다. 고기 위에 얹은 소스, 샐러드면 80%는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확실히 기우였다. 소스의 다양함과 화려한 색깔은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고, 식재료들은 매우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거위의 간인 푸아그라는 기름기가 많아 느끼하다고는 하지만, 뉴욕에서는 흔한 메뉴인 것처럼 자주 등장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먹어볼 기회가 있다면 당장 포크를 휘두를 텐데.
식후에는 페티포라고 하는 과자나 케이크가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후에 과일을 먹는 것처럼 여기서는 꼭 달콤한 무엇인가로 끝내야 하나의 코스가 마무리되는가보다. 레스토랑마다의 페티포들은 앙증맞고 예뻐서 커피와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중간중간에 저자가 직접 작성해 놓은 레시피들은 욕심은 나지만,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이 많아서 만들어보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가 다녔던 학교를 졸업하려면 커리큘럼에 따라 빡빡한 수업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엑스턴십을 거쳐야 한다. 엑스턴십 기간에는 실제로 레스토랑에 나가 셰프의 밑에서 실습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요리란 것이 앉을 새도 없이 12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육체노동이기도 하다는 것, 또한 여러 명의 요리사가 마치 합주곡을 연주하듯이 주어진 일을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적당한 시간 내에 손님에게 훌륭한 맛의 요리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도 체험담을 읽으며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으로 어학에 대한 사전준비도 없이 용감하게 오른 유학길은 대단한 열정을 필요로 한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주방에만 들어서면 정신이 번쩍 난 것은 아마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이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저자를 뉴욕으로 이끌었을까? 손맛 뛰어난 어머니를 둔 것 외에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아 그 열정의 근원지를 파헤치진 못했다. 닮고 싶은, 부러운 열정이었는데.

뉴욕과 음식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보아도 좋지만, 책의 저자처럼 서양요리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참고서처럼 읽힐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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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 황희경의 차이나 에세이
황희경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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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을 공부했던 필자가 한겨레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다듬어 펴낸 책이다. 중국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그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작과 정리가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한다. 저자는 '중국은 이렇다'라고 정의내리지 않은 채,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중국의 이모저모를 뜯어가며 살펴본다. 중국이란 나라의 일면을 보여주는 영화와 고전, 작가와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모든 내용들은 다 동원되어 중국 알아가기에 대한 작업에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여전히 깊은 관심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마오쩌둥 열기도 소개되었다. 공산당에서조차 '극좌적 오류'로 평가를 내린다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마오쩌둥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관심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어서 마오가 위대하다고 평가했던 작가 루쉰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큐정전'의 작가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중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너무나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큐정전'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포레스트 검프'란 영화를 보며 미국판 아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영화평을 읽으니, 이 영화를 비판없이 받아들였던 내게는 또다른 시각의 경험이 되었다. 물론, '포레스트 검프'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내용이긴 했다. 그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은 삶의 순기능으로서의 우연과 행운이라는 것에 대해 포기하기가 싫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영화=꿈'의 공식이 성립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중국의 상품이 값이 싼 이유는 농민공들의 덕분이란다. 1950년대 말, 호적상의 신분을 농민과 비농민으로 나누어 놓은 이해안되는 행정이 시행된 적이 있었고, 그때 농민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사회체제가 변함에 따라 공장에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많은 급여를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농민공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11억명의 중국인들을 먹여 살리는 셈인데, 그들의 저임금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런지 궁금해진다. 그들의 발언권이 세지면 세질수록 중국도 고임금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텐데, 그렇다면  지금처럼 저가격의 중국 상품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중국의 노인들의 얼굴이 우리에 비해 편해보인다고 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유가와 도가 사상이 지배하는 중국인의 사상에 둔다. 기독교에 바탕을 둔 사람들처럼 지상과 천상의 삶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한 세계인 그들은 삶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은 괴롭거나 기쁘거나 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달통한 모습을 보이며 사는 기술을 체득하고 있다는 시각이 그럴 듯하다.

새로운 이상과 열정을 꿈꿨던 80년대를 지나 경제의 시대에 돌입한 90년대의 흐름은 이제 되돌리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의 정신이 기저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홍콩대 연구원의 주장도 있었다.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그들이 겪어왔던 사회주의 정신과 개혁의 전통이 남아 흐르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양식을 가꿔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중국의 고전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그 영향으로 수호지, 서유기와  홍루몽, 영웅문이 두루두루 읽고 싶어진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을 읽는 것이 필독이라고 하니, 이 책에 연결되는 2차 독서로 중국 고전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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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다이어리 - 뉴욕에 관한 가장 솔직한 이야기
제환정 지음 / 시공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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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란 도시.
최상과 최하가 공존하며 화려함과 지저분함이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은...그러면서도 사람을 잡아 이끄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뉴욕 관련 책이라면 또 어떤 얘기가 있을지 모르는 기대와 호기심에 슬며시 손을 뻗게 된다.

글쓴이는 무용 전공자이면서도 감칠맛 있는 문장력의 글솜씨를 갖추고 있어서인지 몇 권의 책을 더 내었었다. 이 책 역시 뉴욕의 풍경과 일상과 예술에 대해서 느낀 대로 본 대로 솔직하게 엮어져나간 이야기들이 상당히 흡입력있게 읽힌다. 책의 내용도 좋거니와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책의 편집인데, 중고등학교 공책을 형상화한 듯한 연한 줄칸과 왼쪽에 세로로 그어진 빨간 선, 흐릿하게 들어간 삽화들이 아기자기한 멋을 자랑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 중간에 책갈피처럼 들어가있는 얇고 작은 페이지는 뭔가? 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시도로 재미를 준다.

뉴욕의 악명높은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도 나온다. 그러나 정작 한참동안 생각하게 만든 얘기는 뉴욕의 지하철이 더럽고 사고날 것처럼 위태롭다는 내용이 아니고, 깨끗하고 시원한 우리나라 지하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노골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아저씨들과 당당하게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아주머니, 발을 밟고도 사과는 커녕 화를 내는 사람 등의 일상화된 무례함을 지적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환경이, 그 은근한 불쾌함이 뉴욕의 지하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는 것에 멍해지고야 말았다. 그랬었나? 어느덧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상이지만,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는 정도를 넘어서는 심각성으로 존재할 수도 있구나. 다른 곳과의 비교는 그래서 필요한 것인가보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단점과 문제점을 꼬집을 수 있으니.

책은 뉴욕의 자랑할 만한 공원과 박물관들을 알차게 소개하면서도 9.11의 상처와 흑인, 불법 이민자들의 현황을 체크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넓은 땅덩어리가 있어서인지 뉴욕이 쓰레기의 천국인 점도 부각시킨다. 이런, 분리수거와 일회용품 사용 제한에 있어서는 우리가 앞서나가고 있었다니. 미국이란 나라, 온실가스만 많이 내뿜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쓰레기에 대한 의식수준도 낮다는 것이 의외이다. 미국의 다른 주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뉴욕에 대한 환상을 품고 도착한 외부인들에게 뉴욕은 친절하지 않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뉴욕의 커리어우먼처럼 사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언어와 학력의 장벽을 뚫고 성공의 문을 들어서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냉철하게 짚어낸다. 꿈이 좌절로 변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곳, 그곳이 바로 뉴욕인 것 같다. 

책의 부제처럼 뉴욕에 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읽어도 상상 속의 뉴욕에 대한 매력지수가 마이너스 되지는 않는다. 되려 깨끗하고 정갈하기만 한 뉴욕이라면 생명력없는 정체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뉴욕의 매력을 한 곳에서 여러 인종과 다양한 모습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문화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라는 단편화된 이유로만 설명하기에는 왠지 모자란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며 차곡차곡 쌓인 뉴욕이란 도시의 이미지가 이미 친근해져버린 때문일까?
어쨌든 '뉴욕 다이어리'와 함께 한 시간은 솔직담백한 내용이 겉치레없는 편안함을 주어 뉴욕의 단골 카페에라도 앉아있는 듯, 좋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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