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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에도 여자의 인생은 짧다
김혜영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TV 프로그램 '비타민'에서 김혜영의 모습을 보고 도대체 김혜영이 맞는지 다른 사람인지 아리송해하다가 사회자가 부르는 호칭을 듣고 나서야 내가 알던 김혜영이 맞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은 보기 좋게 푸근해 보여 예전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 넉넉하게 살아오셨나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편하고 수더분한 모습을 보니, 살림도 잘할 뿐더러 언제나 가족이 최우선순위일 것 같은 이미지가 실제 모습 딱 그대로일 것 같았다. 그런 김혜영이 책을 냈다니, 꼭 읽고 싶어졌다. 아마도 삶의 지혜가 송글송글 맺혀 나오리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행복론, 성공론, 부자학, 자녀교육, 살림의 5장으로 나뉘어져 쓰여진 책의 내용은 역시 김혜영의 향이 물씬 풍겨난다. 연예인과 보통 사람의 길 중에서 후자를 선택한 그녀는 공중목욕탕 나들이와 아파트 반장 역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옆집 아줌마같은 친근한 겉모습에 알뜰살뜰 사는 모습은 보통 주부 뺨칠 지경이니 이 여자, 살림솜씨를 타고 나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돈을 벌어 직접 관리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결혼 초기에는 전자렌지에 돈을 무턱대고 보관하다 남편에게 경제권을 뺏기기도 했고, 관리비와 같은 고지서를 한쪽에 방치해 두었다가 독촉장을 받기도 했었단다. 와, 너무나 뜻밖이었다. 지금이야 교육이나 인생관에 있어서 알짜배기같은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찬 그녀이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어설픈 면도 있었다니! 경험과 노력이 뒤따르지 않은 분야는 누구든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해가는 것인가보다.

항상 웃는 얼굴인 지금의 얼굴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라기보다 웃으니 행복해지더라는 얘기는 긍정적 힘의 결과로 이해가 되는 바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항상 웃음짓는 실천이 쉽지는 않은 것이기에 그녀가 더 대단해 보인다. 어렸을 때의 가난한 살림, 신장병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등 보이지 않았던 뒤편에는 어려움의 시기가 한꺼플씩 쌓여 있었지만, 불만에 차있기보다는 그런 일들을 이기고 견디면서 성장해올 수 있었다는 걸 아는 현명한 여자이다. 

김혜영이 인생을 야무지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노력과 성실함이었던 것 같다. 일에 대한 프로정신으로 기나긴 세월동안 여전히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김혜영의 웃음 뒤에는 진행자로서 필요한 상식을 넓히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자식교육에 있어서도 자기의 행동이 아이들의 가치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가며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는 특별히 대단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과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현명한 여자의 사는 이야기와 그 생각에 귀기울여 보라. 봄이면 나물 캐러 들을 누비는 그녀가 소개해주는 웰빙 밥상의 메뉴처럼 건강하고 풋풋한 내용으로 미소와 행복이 전염되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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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교통사고로 반신불수, 이혼, 자폐증인 손자, 이중 하나만 닥쳐도 견디기 힘든 나날일 텐데, 이런 모든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을 지키고 사랑을 나눠주는 대니얼 고틀립이 쓴 책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 분은 어떤 경지 위에 올라선 채,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조하고 있을 거라는 짐작을 했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며 상처럼 받게 된 여유와 지혜를 나눠주면서 말이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자고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이런 고통을 몰아서 주셨을까?'
아마도 고통을 견디고 승화시켜 사랑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인 것을 아셨나보다. 이렇게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이 생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되리라는 것도.

목뼈가 부러져 두개골이 나사에 박혀 고정되어 있는 채로 병원에 누워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때, 그런 사람의 고충은 모른 채 자신의 사랑 실패담을 얘기하며 심리치료를 바라는 여자가 있었다. 얼핏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껴진 그 여자로 인해 대니얼 고틀립은 그녀의 고통만을 느끼고 걱정하며 도움이 되어준다. 그리고, 아직 자신은 세상에 쓸모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증오와 미움도 물론 있었다. 다신 두 발로 일어설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화를 냈다. 이런 자신을 버려두고 이혼하겠다는 부인 샌디에게 분노했고, 논문을 쓰며 골프치는 일을 즐기던 과거를 생각할수록 우울증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현명한 그는 좌절의 순간이 지나갈 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호랑이를 두려워하지만, 왔다 가는 것이란 걸 알기에 그 정도는 견디며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호랑이 또한 자신의 일부이므로 호랑이를 외면하지 말고 반갑게 맞이하여 귀기울이면 사실 별로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는 말이다.

수십 년 수행을 해온 스님조차 마음 풍경이 어떠하냐는 질문에 "어떨 때는 소란스레 흐르고 또 어떨 때는 잔잔하지요. 때로는 밝은 빛 같기도 하구요."라고 대답한다.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이며, 붙잡아 앉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다. 내 안의 호랑이도 그렇게 지나갈 뿐일 테니.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 불만이던 소녀를 상담하는 시간, 하필이면 그때 도뇨관이 새어 소변으로 대니얼 고틀립의 바지가 흥건하게 젖어 버린다. 잠시 당황하던 소녀는 일어나 저자를 꼭 안아준다.
서로 치료하고 치료받는 시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중에 발휘되는 위대한 힘의 존재를 진하게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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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산책 -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고경남 지음 / 북센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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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아과 의사로 일하다가 문득 남극으로 떠난 저자가 그곳의 사진과 일상의 감정들을 담아 펴낸 예쁜 책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에 글의 양도 많지 않아 금방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지만 읽고 나면 다시 펴서 또 보고 싶어진다. 

남극의 붉은 석양과 금빛 물결, 시리도록 차가운 느낌의 자연에 제일 먼저 감탄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동물 애호가인 내겐 펭귄의 사진이 가장 값지게 다가왔다. 일어서 있거나, 걸어가거나 점프하는 동작들이 사람과 비슷하여 더욱 귀여운 펭귄들, 두 마리의 어른 펭귄과 두 마리의 아기 펭귄이 어울려 찍은 가족사진은 사람의 가족 못지 않게 진한 애정이 배어나온다.  남극도둑갈매기인 스쿠아에게 생살을 쪼이며 죽음을 맞는 어린 펭귄의 안타까운 사진도 있었지만, 어쪄랴! 그것이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고 생태계의 한 부분인 것을.

-직립 보행하는 펭귄들의 모습은 꼭 사람처럼 보인다. 이 녀석들, 혹시 펭귄 의상을 몸에 걸친 놀이공원의 아르바이트생이 아닐까. (p76)-

이 부분을 아이에게 읽어줬더니,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란다. '왜 난 그런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하며 감동 어린 눈물 두 방울을 찍 흘려대어 '그건 네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라며 위로하기 바빠졌다.

남극에서 살고 있는 펭귄의 종류는 다섯 가지인데, 그중 황제펭귄의 암컷은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알을 낳고 먹이를 찾으러 간다고 한다. 수컷은 암컷이 없는 두 달간 바싹 마르며 오로지 알만 품는다. 다른 펭귄들과는 달리 따뜻한 봄에 알낳기를 거부한 황제펭귄들은 블루오션만이 살 길인 것처럼 경쟁자 없는 세상에서 그들만의 습성을 그토록 힘들게 유지해 나간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종족 번식의 가치가 힘든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일까? 겉보기엔 예쁘지만, 작은 몸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황제펭귄들의 뒷면의 삶이 안스럽다.

지구상에서 그나마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곳으로 남아있는 남극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자연의 신비함을 맛보게 해준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블리자드와 오랜 세월을 견딘 크레바스는 때론 인간에게 무심하기도 하다. 그 옛날 남극을 탐험하던 스콧과 동료들의 이상과 꿈을 잠재웠듯이, 자연은 그 자체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세종기지를 비롯한 각국의 탐험단은 철저한 관리하에 남극을 보존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름다운 남극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지금 그대로 청정한 환경에서 오래도록 보존되길 바란다.

-창밖의 블리자드를 바라보듯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슴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안절부절못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블리자드에 맞설 수는 없다.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블리자드를 바라보며 자신의 불가항력을 인정하는 순간 평화가 찾아온다. (p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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