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 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빵과 파리에 대하여 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담아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자유롭게 마음을 털어놓은 수필 같기도 하고, 어떤 면은 정보서 같기도 하다. 일반적 서술형으로 쓰다가 친구에게 얘기하듯, 일기를 쓰듯 색깔을 바꿔 써내려간 문체의 자유로움 만큼이나, 그 내용도 빵집 소개부터 파리의 사랑 이야기, 유학생활의 경험담 등 넓은 영역을 넘나든다.

책의 초반에 실려있던,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 퐁 데 자르에서 마음 속으로 쿠키 굽기 놀이를 하는 장면부터 살짝 비범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바람 한 스푼, 양떼구름 두 스푼, 가을 나뭇잎 빻은 가루 한 티스푼, 센 강물 한 스푼을 넣고 반죽한다. 물의 양을 주의하여 반죽의 되기를 조절하면서. 그런 다음, 다리의 가로등을 밀대 삼아 반죽을 알맞은 두께로 밀어 편다. 우뚝 솟은 에펠탑을 뽑아 그것을 틀 삼아 반죽을 찍는다. 손님들을 태우지 않고 정박해 있는 유람선을 들어올려 유람선 모양으로도 찍는다....중략...약 10분 후면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가는 노울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쿠키를 구워줄 것이다.(p21~22)--
유학가기 전에는 빵과 과자를 한번도 구워본 적이 없었던 저자가 낯선 파리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성공에 대한 의지와 미지의 두려움을 함께 불태웠을 장면이 연상되었다. 항상 마음 속에 골똘히 담아 두었던 생각은 역시 빵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빵집 소개는 지도가 함께 실려 있어 파리 방문시 유용할 것 같다. 물론, 단순 소개가 아니다. 장인정신으로 빵을 구워내는 가게의 주인과 함께 빵과 인생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이야기를 읽어보면, 자부심과 행복감으로 빵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 온다. 빵집 주인과 친분을 쌓아 주방에서 직접 한국의 간식인 호떡을 만들어 대접한 일화는 흐뭇하게 읽었던 내용이다. 

'파리를 닮은 사랑' 편의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의 특징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때로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제 사건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들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쿠키처럼 고소하다. 그러고 보니, 빵과 파리와 사랑은 참 잘 어울린다.
'빵빵빵 이야기 노트'에선 신부의 방귀란 뜻을 가진 페드논 도넛에 얽힌 이야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 이야기, 빵의 평등권 등 독특하거나 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읽는 재미를 주었다.

누드 토끼 토막내기 사건은 정말 인상깊었다. 귀여운 토끼들이 털이 몽땅 뽑힌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는 모습에, 토끼요리 실습 시간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녀. 하지만 쉐프와 조교들은 그런 그녀를 불러놓고 시범을 보이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상추 이파리로 토끼 얼굴을 살포시 가리고 토끼목 단번에 자르기에 도전하나, 상추 잎은 날아가고 토끼의 목은 잘리다 만 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도 통닭도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하지만 깡총깡총 섹시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하얀 토끼를 생각하면 도무지 칼을 들이댈 수가 없었다.(p86)--
대형 마트에 가면 동물 코너에서 귀여운 토끼를 구경하다 오곤 하는 나로서는, 이런 저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읽을 때마다 동물을 식용으로 삼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돌고 도는 먹이사슬 속에서 잡아먹고 먹힘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로하곤 하지만.

빵과 파리를 마구 헤집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무척 빨리 간 느낌이다. 책을 덮으며 가장 생각나고 먹고 싶은 빵은 마카롱이다. 저자가 호텔에서 일하며 몰래 꺼내먹다 들켰다던 딸기맛, 바닐라맛, 초콜릿맛, 메론맛의 동그란 마카롱이 먹고 싶다.
한국에서 마카롱이 맛있는 빵집은 어디 있을까? 달콤한 그 맛으로 온갖 빵의 향연으로 괴로웠던 심사를 조금이라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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