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지음, 장상환 옮김 / 이마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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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이라는 분야는 언제나 어려운 분야이다. 어려운 용어들, 많은 숫자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공식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언제나 경제라는 우리와 가장 밀접해 있는 분야와 거리를 두었다. 굳이 그것을 모르더라도 지금까지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장하준 교수의 책을 접하게 되면서 경제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은 아니더라도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될 것 같았다.

매일 신문, 뉴스를 보며 세상을 욕하고, 우리 같은 평민을 위한 정치인들 경제인들은 없다고 소리치지만, 막상 어떤 점이 그렇게 불만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리고 어떤 경제정책이 그렇게 당신에게 부당하게 여겨지며 그 이유가 뭔지 묻는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수준의. 수요, 공급이라는 용어를 겨우 이해하고 있어서는 설득력 있는 의견제시도 반론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 속에서 정치, 사회, 경제라는 분야들이 흘러간다. 당연히 경제라는 분야를 처음 접할 때도 그 역사를 먼저 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속의 철학자들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 : 인간의 사적인 이익과 욕망은 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 즉 경쟁에 의해서 스스로 규제되어 사회적 조화가 이루어진다. 수요가 늘어난 특정분야는 생산량을 늘려야 하므로 노동력의 필요성이 커진다. 이에 인건비는 올라가고 더 많은 노동자들, 더 많은 기업들이 그 분야에 몰두하게 된다. 자연히 공급이 급상승하게 되고 수요를 뛰어넘게 되면서 그 제품들의 가격하락을 가지고 온다. 반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었던 분야의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되고 그에 따라 공급부족이 일어난다. 이것은 그 제품에 대한 가격상승을 불러오고 다시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공급이 늘어나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경쟁에 의해 인간의 이익이 규제되고 수요와 공급의 시장기능 덕분에 사회의 부와 재산은 늘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보통 사람들에 대한 복지의 중요성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의 모든 노고와 소란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탐욕과 야망의 목표, 부와 권력과 명성을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 부와 영광을 쟁취하기 위한 모든 추악한 소동은 보통 사람들의 복지에 기여할 때 궁극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p.94”

 

2. 맬서스와 리카도 :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이라는 체재에 인간의 욕망과 이익에 대한 욕구로 말미암아 세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맬서스와 리카도는 앞으로의 세계는 절벽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자연 속에서 인구증가가 모든 가능한 생존수단의 증가를 앞지르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족의 증식 욕구로 말미암아 피할 수 없는 생존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인간들은 이상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스럽고 수가 증가하는 입과 아무리 뒤져봐도 항상 불충분한 자연이라는 식량창고 사이에서 영원히 절망적인 싸움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 p.102”

제한된 공간과 정해진 자원의 양. 그리고 종족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맞물려 절망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든다.

반면에 리카도는 오직 지주만이 이득을 얻는다. 노동자는 영원히 최저생활에 묶여 있어야 할 운명이다. 왜냐하면 임금이 상승해도 자식들이 늘어나 이득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한 자본가는 모든 수고의 대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 지급은 늘어나고 그의 이윤은 감소한다. 한편 지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대만 거둬들인다. 그는 편안히 앉아 지대가 증가하는 것을 관망한다. p.128”

 

3. 존 스튜어트 밀절대적인 규칙에 의해 돌아가는 자연처럼 인간이 모여 살아가는 경제체제 또한 비인격적이고 절대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경제행위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면 된다. p.169“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는 달리 밀은 사회, 즉 정부의 개입을 통한 분배를 이야기한다. 사회는 그 부를 몽땅 왕에게 바칠 수도 있지만 거대한 자선시설을 운영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부를 나누는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p.170“

 

4. 칼 마르크스 : 생산량의 증가로 인해 발생한 노동비의 증가는 노동절약형 기계를 도입함으로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노력한다. 너도나도 한시바삐 기계를 도입하다보니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사람들은 물품의 구매를 할 수 없게 되고 이것은 다시 공장의 수입 감소와 도산을 초래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을 하게 되고 자본가들은 도산한 회사의 기계를 더 싼 가격으로 사들여 다시 잉여가치를 회복한다. 하지만 다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때마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을 흡수하면서 더욱 더 몸집을 키워나간다. 그러다 결국 자본주의는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5.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 : 그의 책 유한 계급론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유한계급은 과시적 소비를 통해 우월성을 과시하며 유한계급의 품질증명에 해당하는 여가도 대중의 눈앞에서 과시함으로서 만족감을 배가시킨다고 말한다. p.302” ,

 

비록 이 유한계급이 생산적 봉사는 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부를 취하기만 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행위는 사회의 전적인 승인하에 이루어졌다..... 사회는 유한계급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낭비가 심한 자나 쓸모없는 자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강자나 능력을 가진 자로 우러러보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순수한 노동은 비천한 것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p.304-305”

 

거죽만 문명화된 야만인이라고 우리 인간을 파악한 베블런의 개념은 유한계급이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소비지출 기준으로서 과시가 왜 용인되는가를 설명하는 이상의 공헌의 했다.... 하층계급은 상층계급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상층계급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p. 307-308”

 

6. 케인스: “자본주의는 불황의 가능성 때문에 내재적으로 위협받는 존재였다. 우리 자손들을 위한 낙관적 전망은 실제로 정부의 적저한 지원에 달려 있다.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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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칸트 - 인간은 자연을 넘어선 자유의 존재다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14
김진.한자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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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이 인간사회의 중심이 되면서 모든 것들은 정확한 수치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체가 지배하게 되었다. 덕분에 과학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지금과 같은 육체적인 편안함과 안락함을 만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 외부의 것에 대한 관심은 늘지만 인간 자신에 대한 관심은 과학의 발달에 반비례해서 줄어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와 같은 방향을 정해주는 질문들의 부재는 딱딱한 물체들만 존재하는 세상, 물질적인 이득만을 취하는 세상, 배려와 정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을 줄 알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당연시 되며,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들이 흔한 과거에는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었음에도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지내야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되는지 부모로부터 동네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혔다. 그러나 지금처럼 학력이 높아지고 가진 것이 많아진 현대에는 역설적으로 마음의 빈곤으로 인한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누군가와 마주앉아서 가십거리가 아닌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언제인가? 심지어 가족과 같이 밥을 먹으며 서로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이야기하고 과거의 밥상머리 교육을 해 본 적이 언제인가?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서로를 더 가까이에 두도록 해주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발달은 오히려 물리적인 거리감은 줄어 주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 거리감은 그 어느 때보다 멀고 소원해지게 만들었다.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에게 편리한 물품의 공급을 제공해 주었지만 거기에 따르는 도덕적 책임감과 의무감에 대한 교육은 뒷받침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의 성능은 빠르게 향상되어가지만, 소프트웨어는 거기에 맞게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내가 철학을 배우고 싶은 이유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경험과 이성의 복합적 과정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경험은 바깥세상을 오감을 통해 인지하며 그것을 이성을 통해 인식한다. 그런 정보는 주관성을 통해 보편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 보편성이라는 것은 인간이 경험하는 현상계에서만 타당한 진리이며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현상계를 넘어서는 진리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인식형식을 구성하고 제약하는 인간자체는 절대적 가치(초월적 관념론)를 가진다.

현상계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성으로 움직이지만, 현상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자아에게는 인과성이 아닌 자유가 성립된다. 하지만 자유, 즉 인간의 선택은 현상계의 수단이 아닌 목적성을 근간으로 한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자유는 부자유한 악한 선택이다. 목적성을 따라 행동하는 인간은 또한 도덕적이다. 초월적 자아의 덕은 현상계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는데 칸트는 이것을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상계에 있기 때문에 현상계 너머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은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상계에는 여러 가지 유혹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교가 필요해진다.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인간은 최고의 선에 이르러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여기에 종교가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동안에는 최상선(덕을 추구)와 최고선(+행복)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죽음이후의 영혼세계에서 지속적으로 회상선과 최고선을 지향하게 된다.

 

  그럼 현상계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우리는 분명 자유로운 존재다. 하지만 그 자유가 칸트의 말처럼 목적성에 의해 제약을 받고 다시 도덕성을 부여받아 최상선과 최고선을 향해 가지 않는다면 지금의 박근혜 정부처럼 자유롭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된다. 목적성을 가진 자유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야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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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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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까? 작가 정유정은 7년의 밤, 28 등을 통해 인간의 악한 면들을 상세히 묘사해 왔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생기기전 인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기제로 폭력성을 가지고 있었다. 포식자로부터, 경쟁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것은 필요악과 같은 존재였다. 이런 유전자 특성을 현 인류 또한 지니고 있지만 사회적 규범과 도덕 법 등과 같은 요소에 의해 다듬어지고 억압되고 관리되어왔다. 지은이는 그런 인류의 타고난 DNA 정보를 풀어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여타의 주인공과는 다른 존재다. 기존의 7년의 밤과 28에서 등장하는 악인은 목적성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살기위해 가지게 된 인류의 폭력성처럼 영제, 동해의 폭력성과 악은 복수심에서 또는 과거의 잘못을 감추고자하는 것에서 등장한다. 분명 그들에게는 악해져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존재한다. 악을 수단으로 스스로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고 감정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한다.

 

반면 유진이라는 인물은 폭력=오락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무런 목적성이 없이 그저 사냥감이 놀라서 뒷걸음치는 모습, 공포가 그들의 온몸에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는 모습을 통해 희열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살인에서 전달되는 짜릿함과 코끝으로 전달되는 피 냄새는 그를 궁극적인 오르가즘으로 이끈다. 세끼 식사를 통해 굶주림을 충족시키듯 유진은 폭력과 살인을 통해 그의 굶주림을 해소한다. 궁극적인 악, 그것이 바로 유진이다.

 

인간의 이유 있는 폭력과 악을 중심으로 글을 써 온 그가 왜 유진이와 같은 궁극적인 악을 탄생시켰을까? 글을 읽는 내내 그의 탄생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그의 말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은 학습을 하는 동물이다. 긍정성과 부정성의 대립과 갈등은 인간에게 고민과 사색을 하게 만들며 그 과정에서 학습을 하게 된다. 이런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 행동은 예측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부정성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충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력도 빨라진다. 따라서 지은이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 DNA에 있는 내면적 어둠을, 부정성의 학습을 통해 배우고 이해함으로서 그 어둠에 잠식되지 않고 빛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둠에 있을 때만이 빛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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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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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닐 때 도덕, 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다. 거기서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되는지가 나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였다. 직업을 통해 한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가는 이들은 그 직업에 상관없이 귀중한 이들이며, 어떤 직업이든지 사회에 이바지 하는 바는 크다는 것일 진데.... 왜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가서 의사, 판사 등과 같은 직업을 가지길 원하며 귀천이 없는 직업이라고 가르치면서 왜 직업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는 걸까?

 

 

무리생활을 하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에서, 그 사회를 이끌고 가기 위해 필요해진 직업들에 분명히 높낮이는 없어야 함에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카스트를 만들어 사람을 분류하고 있다. 신에 의해 평등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왜 직업이라는 것에 의해 불평등하게 범주화되어야만 하는가? 직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부분에서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타자화 시킨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가? 그것이 이 책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에 끌린 이유이다. 우리의 진짜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도 교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내 아이에게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유교 : 인간은 천명 (하늘의 뜻을 말함)과 운명 (한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말함)을 가진다. 천명인 하늘의 뜻을 따를지 말지를 인간 스스로가 선택이 가능하지만, 운명은 이미 인간이 타고 났기 때문에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천명, 즉 하늘의 뜻인 덕을 쌓아야 한다. 그 덕을 쌓기 위해서는 인 (너그러움)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고전의 공부를 통해 예의를 배우고 나서야 인에 이르게 된다. 이 때 우리는 도덕적 완성 (즉 덕)을 이루게 된다.

    

 

힌두교 : 하나의 종교인 힌두교는 여러 종파와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 책에서는 상카라와 라마누자의 힌두교를 설명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상카라는 현실에서의 다양성과 거기에 연관된 모든 것은 환영이라고 말한다. ‘브라흐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적생활의 장애물인 현실세계와의 단절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라마누자는 궁극적 실재는 따로 존재하기 보다는 지금 현실 자체가 실재이다. 실재가 곧 궁극적 실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심을 갖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톤 : 인간의 본성(영혼)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성, 격정(기개, 감정등), 욕구 가 그것인데 이성은 수호자(철학자), 격정은 보조자(군인, 경찰 등), 욕구는 일꾼(농부, 장인, 상인)을 나타낸다. 각 개인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직업을 택한 이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때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 영혼은 살아있는 육체가 지닌 능력의 조합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성과 감성이 있다. 감성은 이성에게 순종적인데 그러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정치적 동물)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궁극적 목표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칸트 : 인간의 인식은 감성+오성(이성) 으로 이루어진다. 감성을 거쳐 이성을 통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행위자인 인간은 다시 가언적 명법 (자신의 욕망대로 하려는 것), 정언적 명법(욕망을 자제하고 해야 되는 것, 즉 도덕적 책임)으로 나뉜다. 우리의 행동은 실천적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감성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을 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마르크스 : 지금까지는 인간 객체를 중심으로 본성을 봐 왔다면 마르크스는 개체로서의 인간보다는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합이며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노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경영자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사회적 소외, 노동의 소외를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

  

 

프로이드 : 우리의 의식은 세가지, 즉 이드(본능), 자아(의식적인 정신상태), 초자아(도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드와 초자아는 서로 지속적으로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억압이 발생한다. 이것을 해소하고 조화롭고 균형잡힌 생활을 하게 해 주는 것이 자아이다. 이것이 무너지게 되었을 때 인간은 정신질환을 겪게 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는 이의 그릇이 충분하지 못하면 그것을 담아 낼 수 없다. 30년 넘게 스테디셀러 로서 인정받아 왔다고 하지만 그릇이 작은 나에게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자임에도 한 철학자의 많은 사상적 내용을 다루려고 하다보니 혼란이 자주 발생했다. 글의 흐름을 자주 잃고 헤매면서 글의 맥을 잡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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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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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상대를 겁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며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는 당연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 과감히(?) 도망을 가던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표시를 보낸다. 그런데 만약 그 강자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다면? 전쟁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아마 스스로 자신을 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 희망의 인문학은 이런 현실을 이야기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금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삼포를 넘어 오포세대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 우리 모두가 강자에 둘러싸여 있는 약자이다. 강자의 무력에 포위되어 그들에게 대항할 수 없으니 우리 스스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다. 나의 무능. 나의 노력부족. 나의 열정부족만을 탓한다. 결국 가난의 악순환만이 반복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된 클레멘트 코스 창립자인 지은이는 자율적 인간, 즉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이 그 답이라고 한다. 여기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성찰적 사고이다. 이것은 인문학을 통해 누구나 충분히 습득 가능하다. 결국 지은이는 약자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교육시키고 성찰적 사고능력을 함양하여 자율적 인간이 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인 그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이끈다. 사적세계중심의 삶에서 공적세계로의 참여, 즉 정치적 삶만이 사회적 약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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