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부터 시작된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은 10월 17일에 끝난다. 이번에는 개인 코스가 아니고 엄마와 둘이 가족으로 풀코스(42,195쪽 읽기)에 도전했다. 팀 이름은 '도서관을 꿈꾼다'로 했다.^^ 민경이는 4월엔 9권을 읽었고, 5월 25일 현재 5,313쪽을 달성했다. 600자로 제한된 감상평을 옮겨본다.

 
1. 4월 20일, 개밥바라기별

 첫날이라 기분좋게 시작하려 했는데 두 시간이나 로그인이 안 됐다. 황석영,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중3인 나에게는 그닥 와닿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별 감흥 없이 책을 열었는데 준이 하는 행동들, 말들에 집중을 하며 읽다보니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흡입력이 있는 소설도 오랜만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베트남 파견이 결정된 주인공 준이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펼쳐졌다. 영길,인호,미아처럼 준의 주변사람들이 한 장씩 나오고 다시 준의 얘기가 한 장 반복되는 형식이라 처음엔 살짝 헷갈렸었다. 준은 꼭, 나와 또래이거나 나보다 한 두 살 많은 고등학생 오빠같았다. 가장 생명력 넘치고, 자기 안의 수많은 꿈들과 제도의 충돌에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춘기 남학생. 그래서 어른처럼 진지하고 멋있어 보이다가 금세 서로 좋다고 낄낄대고 웃고 떠드는 그런 모습들이 자주 보였다. 전쟁 후가 배경인지라 내게는 낯선 모습들도 재미있어 보였다. 도시만 벗어나면 금방 나오는 논밭, 학생들의 무전여행, 모짤트 같은 학생들의 모임장소 등.. 작가가 젊었을 때 직접 체험한 일들이 녹아있으니 더 생생했다.  


2. 4월 21일, 엄마를 부탁해

 우리 엄마가 작년에 보고 펑펑 울었던 책이다. 학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보다가 빌려왔는데, 첫 장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 '너'와 '그', '당신'. 책에서 '너'로 지칭될 때마다 그게 꼭 나를 가리키는 듯 해 가슴이 쿡쿡 찔렸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점점,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이미 오래 전부터, 엄마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뜸해진 방문이나 거칠어진 말투, 서로에게 어색해진 행동들. 나 역시도 너무 '어머니'란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어 가슴이 묵직해졌다. 나는 어머니가 늦둥이로 나으셔서 또래의 다른 어머니들보다 나이가 많으신 편이다. 어릴때는 엄마가 늙었다는 얘기가 나올때마다 울곤 했었다. 효도는 '나중에', '언젠가'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발등이 패고 고름이 낀 상처에 파란슬리퍼를 신고 자식들의 흔적을 찾아 배회하던 어머니의 환영. 마지막에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안기면서 끝나는데, 우리의 어머니들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3. 4월 22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귀여운 표지와 '세상에서 가장 쉬운'이라는 말에 혹해 빌려왔는데, 음, 펼쳐 보니 정말 어린이용이었다.ㅋㅋㅋ 만화처럼 귀엽게 그려진 플라톤 할아버지, 데카르트 아저씨, 칸트 선생님, 마르크스 선배, 사르트르 형이 나와 쉽게 자신들의 사상을 설명한다. 일본식으로 간결하게 쓰여진 문장과 표현들이 초등 저학년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플라톤이 누군지, 데카르트가 누군지 아예 모르다가 그냥 가볍게 알게 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초등 저학년용이라고 쓰긴 했지만 나도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ㅋㅋ 철학에 관심 가질 일이 흔하지 않은 만큼 쉽게 풀이해 놓은 게 매력적이었다. 가끔 보면 '무슨 저런 쓸데 없는 걸 저렇게 깊이 생각하나'하는 때도 있지만, 역시나 그 안에 좀 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철학도 은근히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4. 4월 23일, 예능천재 클레멘타인 

클레멘타인,하면 솔직히 노래가 더 떠오르지만 이 클레멘타인은 살짝 말괄량이에 솔직한 여자아이였다. 잘 하는게 너무나 많아 고민인 단짝 마거릿에 비해 재능이 하나도 없는 클레멘타인은 곧 다가올 재능발표대회가 부담스럽다. 탭댄스도 해 보고, 동생 웃기기도 해 보려 하지만 결국 다 포기하고 만다. 그렇지만 클레멘타인을 이해하는 멋진 교장선생님은 클레멘타인이 감독역할에 누구보다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다. 다 읽고 나니까 솔직히 이 제목이 별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목이 '예능 천재 클레멘타인'이고,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웃기는 내용이 나오길래 장기 없는 클레멘타인이 장기대회에서 관객들을 웃기는가보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뜬금없는 감독. 그래도 클레멘타인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조정하고 장기가 있다 자랑하던 아이들이 저지른 사고에도 재치있게 대응하고 무대를 만들어 가는 게 멋있어 보였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숨겨진 재능이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잘난 체 하더니 무대에서 굳어버린 마거릿을 보고 아무리 잘 한다 해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5. 4월 24일~25일, 아파서 우는게 아닙니다 

학교 토론 동아리에서 선정한 책이라 읽게 되었는데, 이런 종류의 르포집은 처음 보는 거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파스인생이라는 일용직노동자들과 농민들, 덤프트럭 운전사들, 외국인불법노동자들 모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죽지 못해 한다’는 분위기가 풍겼다. 그 중에서도 농민들의 얘기가 눈에 띄었다. 막연히 농사짓는 사람들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의 뿌리를 책임지는 사람들이건만 제대로 된 대우는커녕 그들을 밀어내는 것 같다. 그들 스스로 ‘기타국민’이라고 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외국산 농산물을 값싸게 먹을 수 있고 그게 지금 당장은 경제에 기여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농토고 국민이다. 외국에 모든 걸 의존하다 보면 미래에는 식량을 무기로 어떤 요구를 해 올지도 모른다. 농사를 하면서 느는 건 한숨과 빚뿐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나날이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불안하다. 솔직히 나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농사 짓겠다는 얘기는 쑥 들어갈 것 같다. 우리의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을 우리가 떠나보내선 안 될 것이다.  

퀵서비스 라이더들은 죽음을 끌어안고 달리고 있었고 허리 굽은 노인들은 고물을 줍기 위해 새벽같이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파스인생이라는 일용직노동자들과 농민들, 덤프트럭 운전사들, 외국인불법노동자들 모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죽지 못 해 한다’라는 분위기가 풍기는 듯 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 그동안 미디어의 수치로만 표현되던 우리의 국민들.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까 씁쓸했다. 우리집도 폐지를 내 놓으면 고물 줍는 할머니가 와서 주워가시는데, 그 할머니도 이 책에 나온 고물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고생하실까 생각하니 살짝 맘이 아팠다. 덤프트럭 운전사도 길에서 다른 덤프트럭을 만나면 사고가 날까봐 길을 피한다는 살짝 무시무시한 얘기, 농사꾼들의 팍팍한 현실 등등...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사진과 함께 잘 소개시켜 줬다.

 

6, 4월 24일, 압록강은 흐른다(상) 

 독일 교과서에도 실린 이미륵님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드디어 읽게 됐다. '미륵'이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릴 적 미륵불상에게 기도하고 태어나서 아명으로 쓰던 이름을 필명으로 쓴 것이었다. 6학년 교과서에 이 '압록강은 흐른다' 중에 '옥계천에서'가 실렸었다. 그 때는 그걸 몰랐지만 나중에 엄마께 듣고 더 흥미가 생겼었다.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만큼, 책은 자신의 사촌 형인 수암과 함께 놀던 어린시절 얘기부터 시작한다. 뭐랄까, 독립운동도 하셨던 분이고 독일 교과서에도 실린 얘기니 좀 더 묵직하고, 어두울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천진했던 유년기에 대한 회상, 잔잔한 주변 환경의 묘사와 편한 문체가 평화로운 느낌이 들게 했다. 그냥 한 동양인 소년의 내면세계를 드러낸 책이었다. 서당에 가고, 아버지에게 술을 배우며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미륵의 모습은 완벽하게 조선의 어린이 모습이었다. 내가 아주 옛날이라고 느끼기만 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게 멀지 않다는 점이 조금 놀라웠다. 

 

7. 4월 25일, 비밀의 화원 

책을 다 읽고 몇 번이나 봐도 전혀 질리지 않을 책이다. 타샤 튜더가 그린 그림들은 예뻤고, 황무지의 온갖 풍경들과 우리말로 번역된 요크셔 사투리들이 책의 맛을 더 살려줬다. 게다가 언제 봐도 매력적인 이야기. 빼빼마르고 성격 나쁜 아이였던 메리가 점점 자연과 친해지며 건강도 좋아지고, 명랑하고 매력적인 아이가 되어 간다. 게다가 메리는 자기가 등에 혹이 나 죽을 줄만 알았던 콜린도 구하고, 콜린은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몇년이나 슬픔에 잠기며 여행만 하던 자기 아버지 또한 구제한다. 비밀의 화원이 가진 마법같은 힘인지, 자연이란 때때로 진짜 마법 같아서 놀랍다. 이 책에 나오는 요크셔의 황무지 같은 곳에 나도 가 보고 싶다. 봄이 오고, 온갖 생명들이 자라고, 신선한 바람이 부는 황무지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세계여행을 하면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 

 

 

8. 4월 27일, 압록강은 흐른다(하) 

국어교과서에서 실린 '옥계천에서'가 드디어 나왔다. 일본인들이 들이치고 세상이 조금씩 흉흉해질 무렵, 미륵은 아버지와 함께 어릴 때 그대로 변하지 않은 옥계천으로 나들이를 간다. 바둑을 두고 아버지와 함께 물에 들어가는데 차가운 물의 온도에 아버지는 잠깐 쓰러지시고 서둘러 집으로 모시지만 결국 돌아가시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 전체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시조를 가르쳐 주시며 존경의 대상이었을 아버지. 나의 아버지도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셔서 더 이상 내 곁에 안 계시다면, 나는 무슨 기분이 들까? 분명히 아주 무섭고, 서럽고, 눈물나게 슬플 것이다. 미륵은 슬픔을 뒤로 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소작인들이 사는 송림 마을로 간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서울로 올라가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고, 3·1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에 겁이 난 어머니를 위해 다른 곳으로 피난가게 되고, 독일에 정착하게 된다. 어린 시절 그렇게 동경과 미지의 대상이었던 유럽을 지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려웠던 시절, 조용하고 잔잔하게 한 소년의 성장을 그린 이 책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으면서 끝이 난다. 

 

9.  4월 30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로 개봉돼서 대충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그게 피츠제럴드의 작품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벤자민 버튼'과 '위대한 개츠비'가 하나로 묶여서 나온 번역본을 보고 살짝 놀랐다.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짧지만 그래서 더 강렬했다.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자민은 첫 탄생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어디에도 알릴 수 없어 쉬쉬하며 숨겨야 했던 가족의 짐덩이에, 예일 대학에 합격했다가도 늙어보이는 겉모습 때문에 비웃음만 당하고 쫓겨나야 했다. 그러나 50세의 모습에 미인인 힐데가르드와 결혼하고, 점점 젊어지면서 사람들에게서 인정과 호의를 받게 되는 모습이 씁쓸했다. 가장 젊고 자신감 있는 청년기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에게서 호의와 부러움을 받게 되는 벤자민. 그러나 계속되는 변화는 멈추지 않고 그는 점점 어려져간다.  아들에게서 무시당하고, 다시 전쟁에 참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진다. 끝내 갓 태어난 아기의 상태로 돌아가고, 그는 드디어 처음 태어났을 때 겪었어야 할 것들을 겪고 죽음으로 회귀한다. 그의 생애는 인간의 삶을 반대로 산다는 것에 있어서 기괴하고 또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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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3 막내, 제5회 빛고을독서마라톤 5월 기록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9-29 03:46 
    4월 19일부터 시작된 제5회 빛고을독서마라톤, 민경이는 지금 5,796쪽을 달성했다. 물론 가족 풀코스이기 때문에 엄마의 기록이랑 합쳐서 42,195쪽을 읽으면 된다. 5월에는 2~3일에 걸쳐 읽은 책이 많아, 교육청 사이트에 올린 600자평이 길어졌지만 옮겨 보면...   9. 5월 1일,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을 다 읽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서술자는 닉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그의 옆집에 사는 화려하지만 무언가 신비로
 
 
마녀고양이 2010-05-2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네요. 이 책들을 이 기간 내에 따님이 읽고 독서 감상문을 쓴거여염?
와...... 저도 책 빨리 읽는 편이지만, 도저히 엄두를 못 내겠어요.
오기 언니네 집안에는 그저 감탄 뿐 입니다.
저희 딸 코알라가 저렇게 하면 저는 아마 매일 받들고 살거 같애요.. 아하하.

순오기 2010-05-26 19:37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속독하니까 엄청 빨리 읽더라고요.^^
올리지 못하는 책-만화, 환타지-도 많이 읽어요.
우리 애들은 사교육 안하니까 학교 갔다오면 뒹굴거리고 놀아요.ㅋㅋ

꿈꾸는섬 2010-05-27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해요. 정말 열심히 읽고 있군요. 올해도 좋은 소식이 있겠어요.^^

순오기 2010-05-27 06:53   좋아요 0 | URL
썩~ 열심히 하는 건 아니고, 상금에 눈이 멀어서 욕심을 내봅니다.
풀코스 금상은 30만원이거든요.
물론 엄마랑 반땅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많지요.ㅋㅋ

같은하늘 2010-05-2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해요. 어찌 이리도 열심히 볼 수 있을까요?
올해도 화이팅~~~

순오기 2010-05-27 06:53   좋아요 0 | URL
문학에 치우치면 상타기 어려워서 다른 분야 책읽기에 신경써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