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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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부터 계획했던 이태리 여행이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고 마음놓고 외출하기도 힘든 요즘, 문장으로라도 이국의 향취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 집어든 책. 예전에 읽었던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여행할 권리>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기에 이 책도 꽤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뒤의 내 감정은 <여행할 권리> 보다 <지지 않는다는 말>에 더 가까웠다. 비록 <지지 않는다는 말>은 여행 산문집이 아닌 수필집이지만, <지지 않는다는 말>이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기에 그렇다는 거다. 내 마음 속에서 <원더 보이> 이전의 김연수는 더할 나위 없이 내 취향에 딱 맞는 작가였다. 20대 때 하루키를 탐독한 이후로 이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원더 보이>에서 ‘어?’하고 갸웃하고,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이 양반 왜 이리 하루키를 닮으려 하지’ 싶었는데, 김연수는 점점 하루키의 길을 뒤따라 가려는 것 같다. 감정의 동어반복, 신선함이 떨어지는 화법. 물론 이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라는 잡지에 연재한 칼럼을 묶어 펴낸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한정된 지면에 시간에 쫓겨 연재하려니 글의 밀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김연수라는 이름의 기대값에는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김연수 작가의 눈이 시리도록 치열했던 예전 문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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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해럴드 블룸 지음, 손태수 옮김 / 들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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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것이. 문장을 읽으면서도 대체 무슨 뜻인지 머릿 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기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에. 그 후 내내 책장에 머물러 있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 어떻게 난 건지. 아마 11년이나 지났으니 내가 조금은 더 똑똑해지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번엔 다 읽기는 읽었다. 그러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이 책은 너무너무 어렵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랬다간 내 생에 다시는 이 책을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오기로 겨우겨우 읽어갔다. 900 페이지나 되는 책을 뜻도 모르면서 머리에 쥐나도록 읽는 고행에 가까운 짓을 하면서.

저자 해럴드 블룸은 세계문학사에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작가 100명을 선정하여(소설가, 시인만 있는 건 아니다. 프로이트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들의 천재성을 성격에 따라 분류한다. 문제는 이 천재성의 분류가 유대교의 카발라를 따른다는 것이다. 평론가가 자기만의 분석틀을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나, 이 경우엔 억지로 짜맞춘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블룸은 이 문학의 천재들마다 챕터를 할애하여 분석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자는 천재성을 설명하는데 ‘다이몬’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다이몬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신에 가까운 존재 또는 신과 인간과의 중간적 존재를 뜻한다고 하며, 이 책에서는 - 내가 이해하기로는 - 천재성의 근원, 정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룸이 영지주의의 틀에서 이 책을 집필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천재들 대다수를 영지주의자로 보았으므로 다이몬은 블룸에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세계문학의 천재라고는 하나, 이 천재들 100명은 해럴드 블룸의 자의적인 기준에서 고른 것일 뿐이다. 미국/유럽 문학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고(동양 작가는 ‘겐지 이야기’를 지은 무라사키 시키부 단 한 명 뿐이다), 이 작가들 간의 우열을 굳이 가리려고 드는 게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건, 작가들의 천재성 분석이 그 작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과의 유사성과 영향까지 짚어낸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서구 문학의 계보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읽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번역이리라. 물론 고전문학에 대한 내 하찮은 소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고전을 읽어본 건 어릴 때 아동용 축약본 도서 전집 외엔 별로 없으니), 아무리 그래도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어나가기 힘든 건 번역의 탓이 크다고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구글링을 해보니 원서와 비교하며 이 책의 형편없는 번역을 성토하는 글이 보였다. 그제서야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좋은 핑곗감이 생겨 마음이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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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 우리 시대 지성인 218인의 생각 사전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최성일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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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평론가 최성일이 218명의 사상가들을 그들의 저서에 대한 서평을 통해 소개하는 책. 출판평론가라는 직함이 낯설지만, 독서와 출판에 대한 연구와 평론을 하는 사람, 즉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문학평론가가 문학 전반에 대해 평론을 하는 것처럼.
 
최성일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들과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사상가들을 그들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소개하겠다는 이 장대한 기획을 시장한 것은 1997년이다. 그 후 2010년까지 장장 13년 동안 그는 주로 해외 사상가들의 번역서를 중심으로 리뷰하는 다섯 권의 책을 냈고, 이 책들을 한 권으로 사전처럼 엮은 것이 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나다 순으로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각 사상가들에게 한 챕터 씩이 할애되며, 그들의 저서에 대한 짤막한 서평들이 줄을 잇는다. 그 와중에 같이 읽으면 좋은 다른 사상가들의 책도 곁들여 소개된다. 물론 서평이기 때문에 저자 최성일의 개인적 견해가 꽤 많이 들어간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신작이 엉망인 경우도 부지기수고, 잘 모르는 분야의 양서를 골라 읽어보려니 아는 게 없어 막막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신문사의 북 리뷰나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를 많이 참고하는데, 당연하지만 여기에도 출판사의 마케팅이 개입되니 정작 읽어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성일이 생태학에 관심이 많고 다분히 무정부주의적인 정치관을 갖고 있는지라 이 책에 소개된 사상가들이 조금은 편향된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그 중에서 내 취향에 맞을 법한 도서들을 꽤나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앞으로의 독서 생활이 더욱 윤택해질 것 같다.
 
최성일은 2011년 44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별세했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가 여직 있었다면 더 많은 사상가들과 책들을 세상에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안타까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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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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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을 몇 권 골라보라면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꼭 들어갈테다. 종교를 믿는 내 친구들 몇몇 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남은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고 내 안에 남은 비이성적 요소들(미신, 징크스, 운 등등)을 깡그리 날려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을 통해 인간의 비합리성, 즉 종교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무신론자로 분류되는데, 이 신무신론의 4대 기수로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가 꼽힌다.

이 중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대표 저서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이번에 읽었다. 책을 산 지는 몇 년 되었으나 책장 한 구석에 두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눈에 띈 김에 읽게 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도 종교를 격하게 비판하기로 유명한 책인데(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를 ‘전투적 무신론자’라고 흔히들 칭한다’), 이 책은 한 술 더 뜬다.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교, 유대교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종교의 색채가 옅은 불교나 힌두교, 하다 못해 영적 수련이나 명상 같은 행위도 그의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한다. 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오쇼 라즈니쉬의 사기와 협잡에 대해 까발리는 대목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종교가 기본적으로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고, 관용을 모르며, 인종차별주의, 부족주의, 편협성과 손을 잡고, 무지라는 옷을 입고, 자유로운 탐색을 적대시하고, 여성을 경멸하고, 아이들에게는 강압적인, 조직화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솜씨는 너무나 신랄한데,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인기를 끈 종말론적 통속소설에 대해 “오랑우탄 두 마리를 워드프로세서 앞에 풀어놓는 낡은 편의주의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평한다. 그가 이슬람교와 코란, 모하메드에 대해 기술한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다. 한마디로 그에게 성역 따위는 없다.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의 시복 절차 중에 교황청의 요청으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악마의 대변인이란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추대해도 될지를 비판적 시각으로 검증하는 인물을 말한다. 히친스는 다른 저서에서 아래의 예시를 들며 마더 테레사의 위선적 행적을 비판했다. 미국 역사에 남을 사기꾼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고, 아이티의 독재자를 칭송했다는 점. 그녀가 인도에서 운영한 ‘사랑의 선교회’가 재정을 충당할 목적으로 빈민과 환자들의 비참한 삶을 미디어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키고 방치했다는 점.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말년에 어마어마하게 비싼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연장했다는 점. 이처럼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인으로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인물에게도 히친스는 거침없다.

다른 세 명의 신무신론 4대 기수들이 주로 과학의 관점에서 종교를 비판한다면, 히친스는 종교 자체의 모순과 허점을 파헤치고 그로 인해 종교가 어떻게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미덕을 침해할 수 밖에 없는지를 논증한다. 간단히 말해 그는 ‘종교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가 아니라 ‘종교가 없어야만 모두가 잘 살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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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로버트 고든 지음, 유지연 옮김 / 펜타그램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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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 그 중에서도 특히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상에 지친 심신에 휴식을 주기 위해, 낯 선 장소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내 안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등등. LCC의 등장으로 항공 경비가 대폭 절감되고 해외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는 지금, 해외여행은 더 이상 사치의 상징이 아닌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해외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벗어나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학습하는 여행으로 발전하고 있다. 어쩌면 인류학자들의 현지 조사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주도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통해 뜻깊은 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겪는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 이 책의 주장대로 인류학자는 ‘지구 최강의 여행전문가 종족’이리라. 이 책은 인류학자인 저자가 인류학과 여행의 유사성을 증명하고 독자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하려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인류학적 관점에서의 여행과 해외 여행의 역사, 여행자와 현지인 간의 권력 관계와 이데올로기 등을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여행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현지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처법, 안전한 여행을 위해 명심해야 할 점, 여행의 경험을 기록하는 방법 등이 담겨 있다.

이렇게 보면 무척이나 재미있고 얻을 게 많은 책처럼 보이지만,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인류학적 연구 방법론을 여행과 너무 깊숙이 결합시키는 바람에 꽤 지루한 책이 되어버렸다. 물론 해외여행에서의 배변 문제나 입에 맞지 않는 현지 음식 맛있게 먹기, 짐을 가볍게 쌀 수 있는 방법 등등 다른 어떤 책에서도 접할 수 없는 실용적이고 흥미로운 내용들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 책이 인류학 연구 개론서인지 여행 안내서인지 잘 모를 정도라, 과연 이 책이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그닥 자신이 없다. 즐거운 여행을 위한 참고서적으로는 지나치게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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