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해럴드 블룸 지음, 손태수 옮김 / 들녘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것이. 문장을 읽으면서도 대체 무슨 뜻인지 머릿 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기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에. 그 후 내내 책장에 머물러 있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 어떻게 난 건지. 아마 11년이나 지났으니 내가 조금은 더 똑똑해지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번엔 다 읽기는 읽었다. 그러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이 책은 너무너무 어렵다.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랬다간 내 생에 다시는 이 책을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오기로 겨우겨우 읽어갔다. 900 페이지나 되는 책을 뜻도 모르면서 머리에 쥐나도록 읽는 고행에 가까운 짓을 하면서.

저자 해럴드 블룸은 세계문학사에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작가 100명을 선정하여(소설가, 시인만 있는 건 아니다. 프로이트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들의 천재성을 성격에 따라 분류한다. 문제는 이 천재성의 분류가 유대교의 카발라를 따른다는 것이다. 평론가가 자기만의 분석틀을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나, 이 경우엔 억지로 짜맞춘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블룸은 이 문학의 천재들마다 챕터를 할애하여 분석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자는 천재성을 설명하는데 ‘다이몬’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다이몬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신에 가까운 존재 또는 신과 인간과의 중간적 존재를 뜻한다고 하며, 이 책에서는 - 내가 이해하기로는 - 천재성의 근원, 정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룸이 영지주의의 틀에서 이 책을 집필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천재들 대다수를 영지주의자로 보았으므로 다이몬은 블룸에게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세계문학의 천재라고는 하나, 이 천재들 100명은 해럴드 블룸의 자의적인 기준에서 고른 것일 뿐이다. 미국/유럽 문학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고(동양 작가는 ‘겐지 이야기’를 지은 무라사키 시키부 단 한 명 뿐이다), 이 작가들 간의 우열을 굳이 가리려고 드는 게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건, 작가들의 천재성 분석이 그 작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과의 유사성과 영향까지 짚어낸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서구 문학의 계보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읽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번역이리라. 물론 고전문학에 대한 내 하찮은 소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고전을 읽어본 건 어릴 때 아동용 축약본 도서 전집 외엔 별로 없으니), 아무리 그래도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어나가기 힘든 건 번역의 탓이 크다고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구글링을 해보니 원서와 비교하며 이 책의 형편없는 번역을 성토하는 글이 보였다. 그제서야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좋은 핑곗감이 생겨 마음이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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