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지음 / 호밀밭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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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클라리넷이다.

흑단 나무의 검은 빛과 은빛의 밸브들이 햇살처럼 눈부시다.

겨울나무를 뚫고 대지에 새싹을 돋게 만드는 소리다.

클라리넷은 목관악기 중 음역이 넓은 편이다.

설레는 봄의 밝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봄밤의 서늘함도 그려낼 줄 아는 악기인 셈이다.

넓은 표현력 덕분에 클라리넷은 클래식 음악가뿐 아니라  재즈음악가들도 사랑했다.

그중 베니 굿맨(1909-1986) 같은 이들은 클래식과 재즈 양쪽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개나리꽃만큼 많은 클라리넷 곡들이 있지만 클래식 역사에서 분기점이 될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에게서 나왔다.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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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거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 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파블로 카잘스의 악기 이야기를 하나 하자.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곳을 1733년산 고프릴러 첼로로 연주했다.

우리가 음반으로 만날 수 있는 의 음악 대부분이 이 악기로 연주된 것이다.

하지만 둔탁한 녹음 탓에 첼로의 통울림을 거의 들을 수 없다.

요요마나 미샤 마이스키같은 날렵한 첼로와는 연주방식도 음색도 대척점에 서 있다.

대신 나무가 나무에 몸을 부딪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일하는 자의 걷은 소매 위로 드러난 굵은 힘줄 같은 연주다.

타협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진지하고 묵직한 첼로 소리가 심장에 더 깊숙이 박힌다.

 

 

 

"전 음악밖에 몰라요",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만 잘하면 되지"라는 식의 기술자들이 대단한 예술가인 양

대접받으며 주변의 환호에 취해서 어질거리는 세상에서 배일동이 전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세는 울림이 크다.

 

브람스의 <현악육중주 1번>은 치명적인 독(毒)이다.

예리하게 베인 상처가 아니라 바위에 얻어맞은 것 같은 둔중한 통증이 가슴을 누른다.

선율은 가슴 아래로 흘러 짙은 보랏빛 문신을 새실 지도 모른다.

슬픔은 슬픔을 통해 위로받는 법이다.

브람스의 깊은 한숨 소리를 상상하며 창밖을 내다보게 되면 뒷짐을 지고 외롭게 서성이는 덩치 큰 남자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의 뒷모습에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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