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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ㅣ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평점 :
희망버스를 처음으로 기획하고 진두지휘한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이다. 희망버스가 김진숙씨를 구원해 냈지만 송경동 자신에게는 희망고문이 되어 버렸다. 수감 중인 시인에게는 희망고문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송경동 시인을 알지 못했다. 희망버스가 이슈가 되고 보도가 되면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그대로 시인의 절규이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하나의 문제를 위해서 싸워왔지만 극과 극의 대통령을 거치며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앞뒤로 하늘 끝부터 땅 끝까지 완전히 막혀있는 구조를 깨부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절절한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은 불편하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지식인입네 하며 온갖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 허접한 ‘글’들 과는 차원이 다르다.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그대로 송경동이다.
삶에서 살아낸 흔적이 그대로 글자가 되어버렸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그것이 느껴지고 진심이 전달된다.
이것은 힘이다.
송경동 시인이 가진 힘일 것이다.
그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짓밟고 때리고 겁주고 빼앗았다.
그래도 그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홀로 사투를 벌이는 김진숙씨 옆에 유령도시가 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노조원들 옆에,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 바로 옆에 있었다.
TV시사 프로그램에 화장 떡칠하고 앉아서 개기름 섞인 자만으로 진보입네 하고 연결된 라디오 프로그램 전화통화에서 마치 시국을 혼자 관통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꼴이나 SNS를 통해 무지하고 몽매한 대중을 가르칠 대상으로만 인식해 오만방자한 칼을 휘두르는 먹물 잡배 놈들과는 다르다.
시인은 이 사회의 가장 끄트머리 건설현장 일용직 잡부로 일한다.
그러면서 글을 쓴다.
그러면서 늘 운동의 선두에 선다.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고 미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을 질책한다.
그래도 이 불편함과 미안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늘 현재 일어나는 불의와 폭력에 맞서지 않는다면 어떤 과거의 민주주의도 다 허상일 뿐이다.” (p.156)
체제가 바뀐다고 해서 정치주체가 바뀐다고 해서 노동자, 농민, 궁민( “그래서 그들은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다. 노래패 꽃다지의 노래에 나오는 ‘궁민’조차도 못 된다.”, p.104)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통해 확인한 바다.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역사의 분곡점마다 혁명, 전쟁, 봉기, 투쟁의 형태로 점 찍혀 있다. 분노하든 짱돌을 들든 무언가 해야 할 때란 말이다.
희망버스가 조직되고 부산으로 향하는 것을 알면서도 휴가를 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휴가를 내지 않았다. 괜한 호기를 부릴 용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냥 피해버렸다. ‘내가 아니어도 사람 많은데 뭐’
비겁한 변명이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스스로의 구차함을 자위했다.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태의 운동을 그렇게 축제로 만들고서는 조용히 감옥에 수감되었다. 희망버스도 결국 송경동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지는 싸움을 했다. 아니 싸움을 해보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냥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집단 린치를 당했을 뿐이다.
시인이 만들어 낸 희망버스가 자신에겐 희망고문이 되어 버린 것을 아닐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자발적 운동을 처음 경험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바뀌겠다.’ 핑크빛 환상을 꿈꾸게 한 건 아닐까. 해가 올라오면 급격하게 사그라지는 새벽안개처럼, 바람 빠져 방향 없이 휙휙 나부끼는 풍선처럼 ‘희망’고문을 가한 것은 아닐까.
시인은 자친출두했다.
마지막 자존감을 지킨 것이다.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미안하다.
“먼지바람이 휭하니 부는 낯선 객지 공사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띄엄띄엄, 쓸쓸하게 들리는 망치소리로나 만나요.” (p.79, 「노동자 전영관 잘 가시라」 중)
머릿속의 자맥질이 멈추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도 공사판 망치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굽히며 살았던 시인의 삶이 제발 시사 하는 바가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도 소리치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을 때 맨 앞에 서서 확성기에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조용히 그들 옆에 쭈그려 앉아 함께 눈물 흘린 시인의 삶이 아름답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써도 살아본 경험이 없는 자, 삶에 녹아있지 앉는 자의 그것은 거짓말이다. 제 자랑일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미안해 몸이 쪼그라드는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