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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 -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요코다 마스오 지음, 양영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살고 있는 대구의 번화가는 동성로이다. 몇 해 전 유니클로 매장이 생겼을 때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다. 지상 2층에 심플한 브랜드 로고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유니클로 옷이 가격도 싸고 디자인도 괜찮대~”
평소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좋아하던 나는 유니클로 매장을 방문했다. 듣던 대로 싼 가격에 심플한 디자인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플리스 제품이 한창 인기를 끌던 때라 플리스 제품과 형형색색의 양말 몇 켤레를 샀다. 나름 괜찮은 쇼핑이었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유니클로 매장 1층 쇼윈도 바깥 층계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미권 외국인들 말이다.(동남아권 외국인들이 모여 있으면 소문조차 나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외국의 카페 테라스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자유롭고 여유롭게 차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는 그 모습처럼 그 유니클로 쇼윈도 바깥 층계에 모여들었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알고 있는 외국인 지인 중 한명의 얘기로는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약속을 많이 잡는다고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니클로가 일본 브랜드인지 몰랐다. 올랜도 블룸과 평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샤를리즈 테른이 유니클로 전면광고의 모델로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영미권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광고효과가 있었나 보다’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국인 친구의 말로는 “싸고 품질로 괜찮아서 입는 거야”라고 했다.
어쨌든 지금도 대구 동성로의 유니클로 매장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그리고 큰 아울렛에 입점한 유니클로 매장도 꽤나 인기가 많다고 하니 한국에서도 유니클로의 인지도는 상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 책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는 처음의 책소개와 표지의 부제만 봐서는 유니클로에 대한 대단한 심층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원료 조달에서 제조 및 소매까지 한 회사가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인 SPA의 대표적 성공 사례인 GAP과 ZARA, H&M 모두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의 결과라 생각한다.
사실 소비자는 그렇게 질이 떨어지지 않는 제품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2만원짜리 셔츠와 3만원짜리 팬츠를 사며 중국과 동남아에서 착취 받는 노동자의 고단함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유니클로의 저렴한 셔츠와 팬츠를 구매하는 자신조차도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여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하도급 노동자 내지는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야나이 회장은 함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나이 회장의 방식은 함께 일하는 사람을 탈나게 만들죠” (p.112)
“매장에 나올 때는 사내 규정상 항상 유니클로 옷을 입었지만, 쉬는 날에는 유니클로 옷에 손도 대기 싫었어요” (p.175)
“중국에서는 경비가 오르고 있는데 유니클로의 매입 가격은 최근 수년간 내려가고 있다. 생산 현장을 효율화하는 것만으로 이를 채우기는 너무 어렵다.” (p.193)
그래서 이 책을 쓴 일본인 저널리스트의 유니클로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이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일본의 유니클로 매장에서 힘겹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이 우리 돈으로 만원 가까이나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편의점에서는 이보다 반도 안 되는 시급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그들의 고충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유니클로 제품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취재도 한국인인 내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의 내놓으라 하는 의류 브랜드 대부분의 제조 공장은 이미 제3세계 국가에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유니클로의 중국 현지 생산 공장에서의 불합리와 열악한 환경 보다는 나을 거라 기대하는 이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나 또한 추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이 책은 일본 독자들이 많이 봐야 한다.
그래야 더 피부에 와 닿을 내용이다.
비슷한 디자인과 품질의 티셔츠가 있다면 나는 고가의 한국 브랜드의 티셔츠나 미국 브랜드의 티셔츠가 아닌 유니클로의 저렴한 티셔츠를 구매하겠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물론 초고가의 외국 브랜드 티셔츠를 사 입을 수 있는 형편의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한 번씩 언론에서 “한국은 명품의 천국”, “명품 매장 장사진”, “외국보다 더 비싼 가격의 명품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불티나게 팔려”등의 보도를 보면 어이가 없다.
결국,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저런 현상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기 돈 주고 자기가 사 입는다는데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나. 언제는 앞 다투어 소비를 조장하고 입고 먹고 두르는 것의 값어치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값어치가 되는 현실을 수수방관 하던 자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그래서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가 어떻든지 간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유니클로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다.
예쁘고 질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아름다운 현실을 굳이 참아야 할 의무는 없지 않나.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은 유니클로 말고도 한국에도 수두룩하다.
이름을 거명하기에도 낯부끄러운 재벌들과 자동차, 조선회사들, 언론사들 등등
최소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고 이런 책을 쓰는 사람과 인터뷰를 한 유니클로 회장의 배짱과 아량 또한 한국의 현실과는 차이가 많다.
한국에서는 거의 금기시 되어 있고 성역과도 같은 존재들 아닌가.
특히 세 개의 별.
온갖 편법과 비리와 악행에도 여전히 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
세 개의 별. 그들.
그들에 비하면 차라리 유니클로는 양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