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오남매, 법률가를 만나다! - 법률가 편 열두 살 직업체험 시리즈
홍경의 지음, 송선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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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중 한 명의 장래희망을 물어본 적이 있다.

“저는 검사요”

당연히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평소 내가 검사와 검찰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지론을 쏟아 부었다. 내 말을 어안이 벙벙해져 듣고 있던 학생이 물었다.

“검사가 나쁜 거예요?”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국의 검사와 검찰 집단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쉼 없는 비판을 해댔다.

그 학생은 거의 울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편치 않아 다음에 만났을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해 택배로 온 이 책을 뜯지도 않고 먼저 보라고 권했다. 이 책 「독수리 오남매, 법률가를 만나다!」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보면 딱 좋은 정도의 수준이라 고등학생인 그 아이에게는 조금 쉬운 내용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중간 중간 삽입된 현직 변호사, 검사, 판사의 인터뷰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시골로 전학 간 의란이와 친구들이 겪는 불법 다운로드 문제와 학교 폭력, 마을의 환경오염 문제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소, 원고, 저작권법, 법률가, 위증죄 등 쉽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소개하고 있고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법학자, 변호사, 검사, 판사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각자의 어린 시절 꿈과 검사나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 어떤 자질이 필요하고 조언을 얘기한다.

 

“이송기”, “빅빵”, “언니시대” (p.41)

 

이송기 오빠의 노래를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아 검찰에 소환되는 내용이 소개되는 데 저작권법을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이송기, 빅빵, 언니시대라는 차용어가 귀엽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운로드 하는 음원과 영상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임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마을의 냇가에 폐수를 버려온 잉크공장 사장과의 단체소송은 결국 잉크공장 사장이 사과하고 직접 피해를 입은 오리 주인 할머니의 너그러운 용서와 소취하로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지만 사실 이렇게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소송이나 고발, 고소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소 의란이의 짝 주성이를 괴롭히던 동네 중학생 형 대칠이에 대한 판결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피고석에 앉게 된 여학생과 서울가정법원 아무개 부장판사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다.

언론에도 소개된 미담을 재구성한 것도 재미있었다.

 

“‘백 명의 범인보다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 죄를 지은 것으로 의

심되어 소송이 진행된다 해도 유죄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 돼.” (p.139)

 

책의 다른 모든 내용보다 위의 ‘무죄추정의 원칙’만이라도 제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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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나무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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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런던 디자인 산책」이라 디자인 쪽 전문용어가 많이 나올까봐 걱정을 했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저자가 런던에 체류하던 때 찍었던 사진과 경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런던과 디자인쪽 보다 산책 쪽에 더 무게가 실린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산책하듯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유럽’은 동경의 대상이고 그 중에서도 런던은 많은 이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이다.

 

평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를 애청하는 나로서는 정말 멋있고 간지나는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경기장을 꼭 가보고 싶다.

 

 

 

아내는 셜록 홈즈의 광팬이라 런던의 베이커가에 위치한 셜록홈즈 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어 한다.

재작년 여행 시에는 체코와 독일의 일부 도시만 다녀왔던 터라 더욱 영국과 런던에 대한 갈증이 크다.

이 책은 우리 부부의 그러한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해주기에 충분했다.

 

“기계 문명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오랫동안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다.” (p.67)

“눈만 뜨면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옛것은 한순간에 소멸되는 우리 사회와 달리 런던은 오래된 사물과 옛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실험에도 열려 있다.” (p.342)

 

 

산업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영국의 런던이지만 여전히 옛 것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켜 문화의 역량을 키워낸 그들의 노력을 책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또한 산업화의 격랑을 겪었다. 하지만 런던처럼 옛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허물고 부숴 신작로를 닦고 보기 흉한 초가집과 기와집을 헐어 반듯한 양옥집을 바둑판처럼 만들었다.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문화재에 대한 파괴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존하고 살려내기 위한 노력은 미미했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부르며 몸통만 키울 뿐이었다.

뒤늦게 옛 것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되찾으려 노력한들 이미 놓쳐버린 시간과 기회는 되돌릴 수 없다.

 

지난 주 몽골의 지인들과 함께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어릴 때 갔던 불국사를 정말 오랜만에 갔는데 다보탑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러 번 보수를 거친 탓인지 자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보수가 도대체 어땠기에 저 정도인지 깜짝 놀랐다.

 

 

 

 

 

“박물관은 간다고? 그냥 길거리로 내보내. 그 자체가 런던의 디자인 역사야. 봐, 지금 밟고 서 있는 이 건물! 건립시기가 언제인지 아니? 런던이 한 해에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쓰고 있는지 아냐고. 거리만 걸으면 몇 백 년 된 집들과 건축물들은 흔히 볼 수 있어. 런던의 디자인을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p.129)

 

 

그에 비해 런던은 길거리에 나뒹구는 것들이 모두 문화유산이라 큰소리치는 런던시민이 있을 정도다. 용도 폐기된 화력발전소를 박물관으로 꾸미고 수백 년 된 우체통을 소중히 유지하며 특정집단만이 향유하는 사치스런 디자인이 아닌 대중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효용성의 측면에 집중한 여러 시설물과 디자이너들의 제품과 상품들이 즐비하다.

참 부러웠다.

한국에서도 사용 중인 지하철 노선도의 도식의 최초가 런던이라는 사실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세세한 거리나 지형을 표현한 기존의 지도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 해리 벡은 직선과 사선의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하게 표현한 노선도를 만들었다.” (p.155)

 

100년이나 지난 런던지하철 표준체계가 전 세계의 표준이 되었고 지금도 여행자들은 낯선 외국의 도시를 방문하여 이 체계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자신들의 여행지를 쉽고 편리하게 찾아다닐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 (p.43)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른 과잉생산과 디자인의 지나친 물질화로 제품 수명이 단축되는 현상은 장난감 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p.49)

 

지속 가능한 디자인,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영속할 수 있는 대중적인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런던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도 수많은 곳의 산과 들이 파헤쳐져 도로가 만들어지고 멀쩡한 강에 보를 만들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한국의 현실이 답답하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대중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대중과 밀착한 현실의 효용을 중시하는 런던의 디자이너들처럼 한국에도 그런 추세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와~’하며 책의 사진들을 보고 나면 배가 아팠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현실의 내용들이 즐비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쓴 김지원씨의 필력이 런던의 디자인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전공하신 분이지만 인문학적인 소양도 굉장한 수준으로 가지고 계신 듯하다. 쉬운 단어와 문장이지만 생각을 요했다. 세대를 아우르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지원씨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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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숲이 있다 -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여자 인위쩐 이야기
이미애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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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하면 뭔가는 된다’ 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저 멀리 중국의 내몽고의 사막에서 인위쩐이라는 여인에 의해 이루어질 줄이야.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4년 전 몽골 여행을 갔었다. 울란바타르에서 엘승타슬라헤(작은 고비라는 몽골어)사막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밤새 달렸다. 엘승타슬라헤에 도착하니 막 일출이 펼쳐졌다. 내 고향이 바다가 있는 도시라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일출을 봤다. 남들은 몇 시간씩 차를 타고와 추위에 벌벌 떨며 일출을 기다리는데 나는 집베란다에서 동해의 일출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막에서 펼쳐지는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평선이 아닌 지평선 저 끝에서 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던 그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밤 내내 쉼 없이 달려오느라 보지 못했던 사막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일출의 장관도 금세 잊힐 정도로 황량하고 거친 사막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생애 처음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걸어본 사막이기에 감회는 남달랐지만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물 한 줌 없는 사막이 무섭기도 했다. 다행히 한 나절 정도 있었기 때문에 낙타를 대여하기 위해 들린 게르(몽골 유목민의 전통 집)에서 만난 몽골 유목민들의 고충은 털 끝 만큼도 알 수 없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막에서 숲을 만들어낸 여인의 이야기는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제목만으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황사의 발원지인 마오우쑤 사막, 그곳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인 징베이탕의 외딴 집에 사는 인위쩐과 남편 바이완샹.

내가 경험했던 몽골의 엘승타슬라헤 사막보다 훨씬 크고 더 척박한 마오우쑤 사막에 숲을 만들어낸 기적을 두 손으로 일구어낸 사람들이다.

 

“열 그루를 심으면 적어도 여덟 그루가 살아남은 것이다. 사막 생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 식 투쟁을 시작한 지 무려 7년 만의 일이다." (p.85)

 

“목수도 미장이도 없이 오직 두 사람만의 힘으로 집을 다 짓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p.91)

 

어느 날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인위쩐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와 ‘내가 처한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만들자’라는 말도 안 되는 다짐과 의지로 사막에 나무 묘목을 심는다.

 

7년 만에 제대로 된 나무군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정도로 갖은 고생과 역경을 온 몸으로 견뎌냈다. 아이를 유산하기도 하고 피땀 흘려 심은 묘목들이 한 순간의 모래바람에 모두 뽑혀나가고, 겨우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나무들은 흉악한 나무도둑들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토굴과도 같던 집을 흙집으로 만들고 흙집을 제대로 된 집으로 만들기까지 두 사람은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멀리 시내까지 나가 벽돌 한 장 한 장을 사모아 부부가 직접 만든 집이다.

 

“인위쩐은 나무를 자식처럼 위했다. 누가 나무 한 그루를 벤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p.66)

 

포기하려고 마음먹기를 수백 번. 하지만 인위쩐은 나무를 자식처럼 위하는 마음으로 이것들을 이겨낸다.

 

“인위쩐과 바이완샹이 그들의 두 손으로 심은 나무만 80만 그루! 총 1400만 평의 모래 언덕이 숲이 되었다.” (p.128)

 

 

결국 두 사람이 기적을 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80만 그루의 나무. 1400만 평의 숲. 1400만 평은 여의도공원의 200배 정도 되는 크기이다.(여의도 공원은 약 6만9천 평) 일부러 국가정책으로 특정한 산에 나무를 심는다 해도 여의도 공원의 200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숲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사막에서 해냈다. 적어도 내가 본 사막은 생명이 생존하기에 가장 열악하고 힘든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어내었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이다.

그러나 인위쩐, 바이완샹 두 사람은 해냈다.

 

곱디곱던 처녀였던 인위쩐의 얼굴과 손이 거칠어지고 갓난아이 젖 먹이러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까워 나무를 계속 심었던 인위쩐이라는 여성의 강건함과 위대함. 그리고 남편인 바이완샹은 인위쩐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을 때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위로해주고 함께 해주었다. 그래서 인위쩐이 사막의 황폐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다리 뻗고 쉰 날이 없었다. 잘 먹지도 못했다. 밥보다 모래를 더 많이 먹었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니 폐나 기관지가 멀쩡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p.64)

 

“숲의 규모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지금도 살충제는 쓰지 않는다. 여전히 차통과 나무젓가락을 들고 오늘은 이 언덕 내일은 저 언덕에서 한 마리씩 잡아 없애는 것이다.” (p.167)

 

 

 

 

책에 수록된 사진만 보면 이곳이 정말 사막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다. 사막에서 저런 초록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과 같은 일이 방송에 앞 다투어 보도되고 중국 정부로부터 상과 지원도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았다.

 

사실 책의 마지막 이 부분을 읽으며 걱정이 되었다. 어떠한 좋은 일이든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지면 꼭,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두 사람에 대한 큰 소식은 없었다. 내가 제대로 찾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탈 없이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책에서의 강인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전히 이 둘은, 여전히 숲보다 훨씬 더 넓은 사막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하루, 매 시간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나마 강인하고 위대하며 용기 있는 두 부부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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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고맙다 - 상담가 폴라 다시의 감성 에세이
폴라 다시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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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절친한 후배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평소 활발하고 늘 밝게 웃고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내어 식사하고 난 후 오랜 시간 대화했다.

그러나 대화를 한 시간만큼 그 후배의 진짜 어려움과 아픔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보다 뭔가 말을 돌리고 진실을 내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미 없는 대화의 종지부를 찍으며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을 때, 그 후배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형~! 형은 부모님이 이혼하신 그 느낌을 알아요? 모르잖아요! 그러면 소용없어요”

소리치지도 나를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그렇게 내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배는 체념하듯 말했다.

분명히 기억한다.

아무런 희망이나 낙관이 담기지 않은 공허한 단어와 단어의 조합이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두고 후배는 서둘러 버스를 타기 위해 내달렸다.

 

그 후론 어떠한 사람을 만나도 ‘내가 다 이해하고 있는 척’, ‘내가 다 아픔을 헤아리는 척’,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는 척’ 하지 않는다.

내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가진 철칙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과 상처 내지는 경험에 대해서 상담을 한다느니, 해결해 준다느니 하며 거들먹거리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에 다름 아닌 일이라 치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버지께서 6년 정도 대장암 투병을 하고 계신다. 지금은 다행히 90% 완치된 상태시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가 좋다고 해서 6년간의 투병생활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겪었던 가족들의 아픔과 상실감, 상처와 배신감 등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친척이나 주위 절친한 이웃들조차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투병생활을 오롯이 지켜보고 감내해 온 아버지와 가족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 의미 없는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말을 가볍게 받아 넘길 때가 많다. 물론, 그들도 아버지와 가족을 위로하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선의겠지만 종종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지는 그들의 말에 또 한 번 상처받고 마음 아파할 때가 있다.

 

폴라 다시의 책 「세상에 고맙다」를 최대한 아버지 투병생활을 생각하며 읽었다. 나와 작가의 아픔의 정도를 산수로 계산해 저울에 달아 누가 더 힘들고 아팠나를 따져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의 부재가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 중 가장 높은 수치라는 결과도 있듯이 작가는 최고의 상실과 절망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주 작은 렌즈를 통해 삶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며, 지금까지 굳게 믿어온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 그 메아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었다.” (p.80)

 

“‘본다는 것’은 대단히 불분명한 일이다. 우리는 사물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이미지를 창조한다. 우리의 추측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도 흐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신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미리 정해놓기 때문이다.” (p.89)

 

하지만 작가는 책을 통해 나의 외부를 둘러싼 불편하고 아프고 상처 되고 상실감이 느껴지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때로는 무시하기를 권유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방어하고 애써 반응하는데 쏟는 에너지를 완전히 나의 내부로 돌리기를 또한 권유한다.

 

특히 우리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인지 책의 곳곳에서 지적하는데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다.

 

 

‘나의 바깥’보다 ‘나의 안’을 집중하고 그 안에서 나와 너, 너와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 맺었을 때 경험한 놀라운 신비에 대해서 소개해 놓고 있다.

 

“그 순간 눈보라 속의 어떤 존재가 나에게 다가와 명령했다.”

“멈춰.” (p.164)

 

물론, 눈보라에 파묻혀 같이 가던 친구도 잃어버리고 죽음의 갈림길에 있을 때 작가가 들었다던 ‘멈춰~’라는 신비로운 음성 같은 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어떠한 역경과 곤란함 가운데에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잃지 않고 처한 외부적 환경에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름대로 해석해 이해했다.

 

바쁘기도 바쁘고 신경 쓸 것도 많은 현대를 살아가며 작가의 권면대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쓸데없고 배부른 소리 정도로 취급받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된다.

 

좀 천천히 살고 자세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아버지의 투병생활 중 겪은 여러 가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것들로부터 하나하나 나 자신을 구출해 내는 진지하고 솔직한 내면의 과정과 시간을 가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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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 -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요코다 마스오 지음, 양영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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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대구의 번화가는 동성로이다. 몇 해 전 유니클로 매장이 생겼을 때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다. 지상 2층에 심플한 브랜드 로고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유니클로 옷이 가격도 싸고 디자인도 괜찮대~”

평소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좋아하던 나는 유니클로 매장을 방문했다. 듣던 대로 싼 가격에 심플한 디자인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플리스 제품이 한창 인기를 끌던 때라 플리스 제품과 형형색색의 양말 몇 켤레를 샀다. 나름 괜찮은 쇼핑이었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유니클로 매장 1층 쇼윈도 바깥 층계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미권 외국인들 말이다.(동남아권 외국인들이 모여 있으면 소문조차 나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외국의 카페 테라스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자유롭고 여유롭게 차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는 그 모습처럼 그 유니클로 쇼윈도 바깥 층계에 모여들었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알고 있는 외국인 지인 중 한명의 얘기로는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약속을 많이 잡는다고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니클로가 일본 브랜드인지 몰랐다. 올랜도 블룸과 평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샤를리즈 테른이 유니클로 전면광고의 모델로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영미권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광고효과가 있었나 보다’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국인 친구의 말로는 “싸고 품질로 괜찮아서 입는 거야”라고 했다.

 

어쨌든 지금도 대구 동성로의 유니클로 매장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그리고 큰 아울렛에 입점한 유니클로 매장도 꽤나 인기가 많다고 하니 한국에서도 유니클로의 인지도는 상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 책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는 처음의 책소개와 표지의 부제만 봐서는 유니클로에 대한 대단한 심층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원료 조달에서 제조 및 소매까지 한 회사가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인 SPA의 대표적 성공 사례인 GAP과 ZARA, H&M 모두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의 결과라 생각한다.

사실 소비자는 그렇게 질이 떨어지지 않는 제품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2만원짜리 셔츠와 3만원짜리 팬츠를 사며 중국과 동남아에서 착취 받는 노동자의 고단함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유니클로의 저렴한 셔츠와 팬츠를 구매하는 자신조차도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여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하도급 노동자 내지는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야나이 회장은 함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나이 회장의 방식은 함께 일하는 사람을 탈나게 만들죠” (p.112)

 

“매장에 나올 때는 사내 규정상 항상 유니클로 옷을 입었지만, 쉬는 날에는 유니클로 옷에 손도 대기 싫었어요” (p.175)

 

“중국에서는 경비가 오르고 있는데 유니클로의 매입 가격은 최근 수년간 내려가고 있다. 생산 현장을 효율화하는 것만으로 이를 채우기는 너무 어렵다.” (p.193)

 

 

그래서 이 책을 쓴 일본인 저널리스트의 유니클로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이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일본의 유니클로 매장에서 힘겹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이 우리 돈으로 만원 가까이나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편의점에서는 이보다 반도 안 되는 시급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그들의 고충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유니클로 제품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취재도 한국인인 내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의 내놓으라 하는 의류 브랜드 대부분의 제조 공장은 이미 제3세계 국가에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유니클로의 중국 현지 생산 공장에서의 불합리와 열악한 환경 보다는 나을 거라 기대하는 이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나 또한 추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이 책은 일본 독자들이 많이 봐야 한다.

그래야 더 피부에 와 닿을 내용이다.

 

비슷한 디자인과 품질의 티셔츠가 있다면 나는 고가의 한국 브랜드의 티셔츠나 미국 브랜드의 티셔츠가 아닌 유니클로의 저렴한 티셔츠를 구매하겠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물론 초고가의 외국 브랜드 티셔츠를 사 입을 수 있는 형편의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한 번씩 언론에서 “한국은 명품의 천국”, “명품 매장 장사진”, “외국보다 더 비싼 가격의 명품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불티나게 팔려”등의 보도를 보면 어이가 없다.

결국,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저런 현상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기 돈 주고 자기가 사 입는다는데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나. 언제는 앞 다투어 소비를 조장하고 입고 먹고 두르는 것의 값어치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값어치가 되는 현실을 수수방관 하던 자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그래서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가 어떻든지 간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유니클로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다.

예쁘고 질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아름다운 현실을 굳이 참아야 할 의무는 없지 않나.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은 유니클로 말고도 한국에도 수두룩하다.

이름을 거명하기에도 낯부끄러운 재벌들과 자동차, 조선회사들, 언론사들 등등

 

최소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고 이런 책을 쓰는 사람과 인터뷰를 한 유니클로 회장의 배짱과 아량 또한 한국의 현실과는 차이가 많다.

 

한국에서는 거의 금기시 되어 있고 성역과도 같은 존재들 아닌가.

특히 세 개의 별.

온갖 편법과 비리와 악행에도 여전히 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

세 개의 별. 그들.

 

그들에 비하면 차라리 유니클로는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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