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인문고전 깊이읽기 20
권오숙 지음 / 한길사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장 유명한 말은 바로 토머스 칼라일의 이 말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도제국과도 바꾸지 않겠다.'

물론 인도 사람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지만, 그만큼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오직 그들만의 자부심과 애정은 아닌 듯싶다. 수많은 문학가와 학자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수많은 명문장을 남기고 있으니.
아마 나의 경우는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이 경우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즐길 수 없는 사람은 불쌍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셰익스피어는 '알아야 할 것 같은 작가'지만 그의 문장이 낯설어 접근이 쉽지 않은 그런 작가였다.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는 편이지만, 희곡은 낯설고 멀다. 더구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 이상한 어투의 희곡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들어만 본' 게 대부분이었다.

이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는 한길사의 인문고전 깊이 읽기 시리즈의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가 되어 줄 듯하다. 셰익스피어와 나 사이에 흐르는 깊고 긴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도록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각 작품을 그 시대적 배경과 함께 자세히 해설하고 있다. 엘리엇이 '문학계의 모나리자'라고 평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와 같은 요소가 많고 해석이 애매한 <햄릿>의 신비로움을  햄릿의 문장과 함께 여러 해석들을 알려주어 우리가 모나리자에 감동하듯 햄릿에 감동받게 한다.
우리는 흔히 희곡을 비극과 희극으로 분명히 나누곤 하는데, 새뮤얼 존슨의 평가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희극도 비극도 아닌 독특함이 있다. 새뮤얼 존슨은 이 세상이 그러하듯이 선도 악도 기쁨도 슬픔도 다 들어있어 세상의 이치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눈물이 줄줄 흐르게 만드는 상황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광대의 농담을 배치하는 '희극적 긴장완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종종 등장한다.

왜 지금도 여전히 셰익스피어는 읽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구했다. 셰익스피어의 생각처럼 이 세상은 모두가 연극 무대이며 절대 권력을 누리는 왕도 그 이면에는 인간적인 고뇌와 실수 운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면이 존재하며, 여성과 남성을 둘러싼 욕망과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성격적 결함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희극과 비극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셰익스피어는 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숱한 오해(베니스의 상인의 경우 반유대주의 신화를 강화한다거나, 절대왕정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거나)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신화가 된 데에는 이런 탐색이 있어서 일 것이다.

여성과 픽션에 대해 '자기만의 방'과 연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면서 셰익스피어의 누이를 상상하며 재능이 있는 여성이라도 그런 시대에 여성은 글을 쓰며 살 수 없었다고 강조하던 버지니아 울프도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렇게 감동한다.
'나는 글쓰기를 끝내자마자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실로 셰익스피어는 문학 전체를 뛰어넘었다.'

이제 나도 셰익스피어에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 날개 -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로렌스 옙 지음, 김연수 옮김 / 소년한길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로렌스 옙의 <용의 날개>는 쉽고 재미있었다.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들은 대로, 아는 대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만약 어른의 눈과 입으로 전달했다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 월영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양귀(바다를 건너온 귀신, 서양 사람)의 나라로 돈을 벌러 떠났다. 월영도 아버지를 만나러 양귀의 나라, 황금산의 나라 미국으로 떠난다. 무사히 만난 두 사람은 미국인들이 사는 곳과 떨어진 중국인 마을에서 살지만, 아버지가 일하는 세탁소 삼촌의 아들과 다툼으로 중국인 동료들의 배척을 받아 양귀들(미스 휘틀로와 조카 로빈)의 사회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연을 잘 만들었고, 바람을 타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풍기'로 불린다. 아버지 '풍기'는 자신이 전생에 '용'이었다고 생각하고 용처럼 나는 것을 꿈꾼다. 그러던 중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이들의 터전은 사라진다. 하지만 아버지 풍기와 월영은 아버지의 꿈, 용이 되어 나는 것, 이 책에서는 라이트  형제의 도움을 살짝 받으며 비행기를 만들어 날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이면에는 미국의 이민 배척 주의, 그 당시에는 '중국인 배척법'이 있다.  중국인들은 1840년대 캘리포니아 금 채굴과 1860년대 대륙 간 횡단철도 건설 때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 당시에는 중국인에 대해 우호적이던 미국은 금맥이 끊기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반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인들은 광산과 철도건설에서 쫓겨나 식당이나 세탁소에서 저임금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1882년 중국인 이민을 중단하고 중국인을 배척하는 중국인 배척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네이버 검색으로 )

이 책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나온다. 게다가 중국인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다. 아편과 도박, 그리고 자신들끼리 세력을 나눠 싸우는 일도 흔했다.

그 속에서 월영의 아버지 풍기는 독특한 인물이다. 적극적으로 양귀의 언어를 배우고 양귀의 사회로 뛰어들어가 동화된다. 하지만 또한 자신이 고향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연'에 대한 꿈은 더 커져서 '비행기'로 변한다.

황금산을 찾아서 고향을 떠나 양귀의 나라로 온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만의 '황금산'을 발견한다.

그제야 나는 나만의 황금산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황금으로 만든 산. 그건 황금처럼 값비싼 물건으로 이뤄진 산이 아니라 사람들로 이뤄진 산이었다. 가게 사람들이나 미스 휘틀로 같은 사람들로 이뤄진
산.
그 산을 떠나오고 나서야 나는 내가 머물렀던 곳이 바로 황금으로 만든 산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산동네에 살기 시작한 뒤에야 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면서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순수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날 날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이제 하찮고 사소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 좋은 삶을 향한 공공철학 논쟁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 옮김, 김선욱 해제 / 와이즈베리 / 2016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읽고 싶은 주제만 읽어도 좋다

국가의 복권사업
광고와 상업주의의 학교 점령
역사적 인물의 개인적인 물품이 매매되는 것에 대해
낙태와 동성애
롤스와 칸트의 철학

이번에 읽은 마이클 샌델의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는 마이클 샌델의 기고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논란거리를 다루며 정치와 도덕의 관계, 그 속에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가?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길지 않은 글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다. 특히 한 주제를 읽고 바로 다음의 글을 읽지 않고 관심이 가는 주제만 읽어도 좋은 책이다. 물론 모든 주제가 흥미롭기는 하다.

이 책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미국의 대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는 샌더스와 트럼프의 선전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대한 대중적 저항" 이라고 진단한다. 다른 이들은 이 현상을 좌경화다 우경화다 우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샌델은 양당이 기득권층이 수용하는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상류층만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이들의 삶은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 책의 66페이지에서 다시 언급된다.

최근 몇 십 년 사이 개인의 권리와 자격이 확대되고 참정권이 증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자신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선 비인간적인 권력구조 속에 갇혀 있음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 10년간의 인플레이션과 실질임금 하락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이런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샌델은 이 과정에서 정의가 정치에서 소멸되고 있음을 우려한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르자 국가 공화국은 소멸했다. 전쟁처럼 지극히 예외적인 순간을 제외하면 국가는 그 전반에 걸쳐 형성적 또는 구성적 공동체에 필수적인 공통적 자기이해를 배양하기에 너무 광대한 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행과 제도에서는 공동의 목적을 지향하는 공공철학에서 공정한 절차를 지향하는 공공철학으로, 선의 정치에서 권리의 정치로, 국가 공화국에서 절차적 공화국으로 옮아가는 점진적 변이가 일어났다.  절차적 공화정 관행에서 그 철학이 예시한 광범위한 경향 두 가지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밀어내는 경향이고, 두 번째는 그것이 의존하는 특정 공동체 형태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경향이다. 공공생활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많이 연루되어 있는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분리되어 있다. 자유롭기보다는 무력하고, 의지와 행동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관계와 의무의 그물에 뒤얽혀 있으며,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을 허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관대한 자기정의나 공통의 귀속 의식에 구애받지 않는 무연고적 자아 말이다.
무연고적 자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 연고가 없는 고립적이고 유리된 자아.

공적 문제와 관련된 도덕의 영역을 다루는 정치 의제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의 관심은 공무원의 개인적 악덕으로 옮겨가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의 이면을 살펴보려 하지도 않고(아니 어쩌면 살펴보고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서 못 보게 의도적으로 의제를 그렇게 설정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문제를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가 그 개인만을 처벌하고만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적 문제와 관련된 영역에서 '도덕'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답을 얻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많은 질문들이 이어진다. 과연 정치적인 의제로 '도덕'을 상기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여전히 개인의 '성공'만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공'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처음에만 크고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사그라지는 목소리가 되지는 않을까? 그저 말하기만 좋은, 행동으로 연결되기 힘든 주제가 되지는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그들이 이기는가 - 성공하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클로테르 라파이유.안드레스 로머 지음, 이경희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차이는?

<왜 그들이 이기는가>의 부제는 성공하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렇다면 성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성공은 '상향 이동을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p.195  이 책의 저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상향 이동을 할 기회를 갖기를 원한다고 전제한다. 이 책은 우선 이러한 전제에 동의할 때에 재미있게 술술 읽힐 것이다. 만약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본다. 그 근거로 생물학적 연구를 든다.

어떤 국가는 상향이동을 하고, 또 다른 국가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답은 바로 문화다. 어떤 문화가 그렇다는 걸까?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생존에 더 적합한 문화가 바로 답이다. 이것이 문화의 진화다. 성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생물학적 특성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파충류 뇌'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가 국가의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데,  저자들이 '진지하고 솔직하게 ' 말한다면 '파충류 뇌가 늘 승리하'며, '국가의 문화와 제도가 생물학적 특성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대혼란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화여야 하는가? 이들이 연구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모든 문화에서 문화적 집단 무의식 이면에 존재하는 파충류 뇌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문화가 성, 생존, 안전, 성공을 다루는 방식이 상향 이동성의 가능성을 미리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누구나 동등한 권한과 동등한 성장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 교육이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라는 신념, 섹스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라는 신념, 창의성을 고취하는 행위를 장려하는 신념이 있는 문화는 이동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 그 이동성 문제를 설명한다. 저자들이 주로 성공의 예로 드는 나라는 미국과 싱가포르, 중국이며 실패의 예로 드는 나라는 프랑스다.

파충류 뇌의 욕구를 강력하게 억압하는 일본 문화에서는 폭력성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프랑스는 더욱 비관주의적인 문화다. 프랑스인들은 늘 사고하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비평하지만 그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교육제도는 나폴레옹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없었다. 행동 지향적인 미국과 대조적으로 프랑스는 실용적인 것을 저속하게 여긴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은 상향 이동의 핵심이다.

일본인과 프랑스인이 본다면 무척 기분 나쁠 것이다. 하나의 기준 혹은 가치일 뿐이지 않을까? 일본인과 프랑스인으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해석일 수 있다.


기업의 세금을 낮추면 혁신과 독창성과 창의력이 발전하는 문화가 양성된다. p.224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 주장하는 논리다.
중국은 처참한 문화대혁명 이후 기업가 정신을 장려했다. 그 결과 불평등은 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한 중국 사람들은 살기가 더 좋아졌다. p.205
이 말도 역시 그렇다.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둔 이론이다.

저자들은 인류의 가장 큰 실수는 우리의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두려움, 성적 매력, 지위에 대한 관심, 감상의 욕구, 위험의 쾌락, 성공의 욕구, 놀라움의 쾌락, 소속감, 질투, 권세욕, 자유에 대한 애착, 사랑, 행복 등의 감정을 인식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정말 그럴까? 고민해 볼 문제다. 나는 이 저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데는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인간은 공감능력을 가진 '이타적' 존재라는 것도 믿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답다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문화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과학은 새로운 이론에 무너질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를 최대한 활용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상향이동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2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 이야기, 전2권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7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이사르의 생애를 써나기 위해서는 한가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이들의 생애를 살펴보는 동안, 두 영웅이 이룩해놓은 업적과 세상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그들의 발자취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하게 기록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가장 기념할 만한 부분들만을 정리하는 태도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의 공적에 대해 자세히 적지 않고 몇 가지를 빠뜨린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허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초상화를 그리듯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영웅전, 아니 비교 열전을 쓰면서 영웅들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그리는 정성을 보인다. 영웅들이 전쟁터에서 벌이는 싸움의 현장은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칼날이 스치는 것, 피가 튀는 것, 말발굽 소리, 환호성 소리 그리고 영웅의 얼굴이 스치는 미소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위대한 업적이나 전쟁보다 오히려 우연한 사건, 사소한 말 한마디, 농담이 영웅의 성격과 성향을 잘 드러내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리듯 사람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낼 수 있는 행동을 자세히 다루었다.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영웅들-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서로 다른 두 영웅을 비교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이런 비교에서 벗어난 영웅들의 전기도 들어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에는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피로스, 카이우스 마리우스가 있었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하>에는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 포키온과 소카토가 있다. 왜 이들은 비교 열전이라는 책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따로 독립된 장으로 되어 있을까? 다른 영웅들은 잘 모르겠지만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는 감히 비교할만한 영웅을 찾기 어려워서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해서 플루타르코스의 날카로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전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편지 대화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고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지만, 그분으로부터는 보람 있게 사는 방법을 배웠기에 친아버지와 같이 존경한다고 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에게 가르쳐 준 심오한 이치들을 책으로 펴냈다는 소식을 듣고 나무라는 편지를 썼다.

선생님께서 친히 구전으로 가르치셔야 할 이론들을 책으로 발표한 것은 잘못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받은 지식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공개해 버린다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그들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이나 영토로서가 아니라 지식으로서 뛰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욕심이 잔뜩 드러나는 편지다. 이런 편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이 더욱 걸작이다.

그 지식들은 사실 발표되었다고 말할 수 없소. 왜냐하면 형이상학에 대한 이 책은 내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읽어 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오.


영토와 권력 이외에도 지식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향갑판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잠자리에 들 때에도 언제나 칼과 함께 베개 밑에 두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하>에서도 역시 내가 알고 있던 위대한 인물 키케로는 잘 모르던 인물 데모스테네스에게 한 방 먹는다.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에는 꾸밈말이나 우스갯소리가 전혀 없고, 주제에 대해서만 집중되어 있는 무서울 정도의 진지함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피테아스가 비웃은 것과 같은 등잔 냄새가 아니라 그의 깊은 생각과 빈틈없는 기질에서 풍겨 나오는 그의 향기였다.
반면에 키케로의 연설은 농담이 너무 심해서, 자신의 품위까지 깎아내리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법정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를 변론할 때도 우스갯소리를 곧잘 했으며, 변론을 부탁한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체면이 깎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키케로에 대해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한다. 단지 박수를 받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친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하며 위대한 키케로에게 심하게 펀치를 날린다.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야

요즘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와 경제 부분이 더욱 그렇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을 읽으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인, 경제인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사람이 영웅전에 나온 인물들의 십분의 일이라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읽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6-05-0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전기 가운데 나무처럼 님께서 인용해 주신 `편지 내용`을 (천병희 번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인상깊게 읽었더랬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뿐 아니라 그리스 비극작품과 희극작품까지 `본국에서 전쟁터까지` 가져오도록 해서 탐독하는 모습도 감동적이었구요. 왜 숱한 사람들이 그토록 알렉산드로스를 칭송하는지를 비로소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비교 열전` 형식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자세히 알고 보니 그 구성이 꽤나 복잡하더군요. `필사본`에 따라 전기에 포함되는 인물도 서로 다르고 구성도 서로 다르기까지 하더군요. 현재 많은 인쇄 출판 편집본들이 따르고 있는 방식에 의하면, `비교 열전`에 담긴 영웅들의 숫자는 정확히 50명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좀 더 자세히 알고 보면 23쌍에 대해서는 인물들을 서로 비교하는 `비교열전`이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네 쌍에 대해서는 `짝`만 지어져 있고, `비교하는 내용` 자체가 없더군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는 서로 `짝`을 이루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두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은 정작 따로 없는 경우인 셈이지요.

필사본에 따른 자세한 차이점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내용을 알고 보면, 정작 일반 독자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자세히 알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그 가운데 그나마 기본적으로 알아둘 만한 대목 `두 가지`정도만 참고 삼아 여기에 `인용 형식`으로 덧붙여볼까 싶습니다.

* * *

플루타르코스의 시대에 가장 가까운 자료를 보자면 람프리아스의 목록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위에서 소개한 것과 순서와 목록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인물들이 모두 50명인 것은 같지만, 이들이 모두 25쌍으로 묶여 있다는 점은 다르다. 그리고 위의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두 인물인 에파미논다스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람프리아스의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갈바와 오토가 목록에서 빠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 *

23쌍 가운데 19번에는 두 명이 아니라 네 명의 인물(아기스, 클레메네스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그라쿠스)이 들어 있고, 23∼26번까지는 짝을 이루지 않고 한 사람씩이므로 모두 50명이 된다. 짝을 이루는 23쌍 가운데 네 쌍(테미스토클레스-카밀루스, 퓌로-가이우스 마리우스, 알렉산드로스-율리우스 카이사르, 포키온- 小 카토)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두 인물을 비교하는 내용이 끝에 간략하게 덧붙어 있다.

- 플루타르코스,『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작품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