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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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잉카인은 금과 은에 사로잡힌 유럽인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데스 산맥을 뒤덮은 눈이 온통 금으로 변한다 해도 이들은 만족을 모를 것이다.’ 잉카인들은 피사로와 그 일행에게 은이란 단순히 광택 나는 장식용 귀금속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니얼 퍼거슨)

잉카인들이 망나니 스페인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돈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돈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들은 금과 은이 화폐가 되고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 되며 원하는 무엇이든 가져다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의 골드러시는 스페인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스페인은 인디언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결코 지속적인 보상을 거두지 못했다. 금은 한쪽으로 들어와서 다른 한쪽으로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금이 대량으로 들어오기는 햇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생산보다는 소비에 더 능햇다.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은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함과 동시에 생산의욕을 떨어트렸다. 스페인은 도박판에서 커다란 횡재를 하고 난 다음 자신에게 그런 행운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늘 따를 거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16세기 말 스페인 의회는 ‘금이 더 많이 들어올수록 왕국이 보유하고 잇는 금이 더 적어진다. 우리 왕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 왕국이 (금과 은이) 적들의 왕국으로 가는 데 다리 역할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발표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인들이 모르는 돈의 위력을 알았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은 진정한 부란 금과 은이 아니라 금과 은을 얻는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피에 젖은 골드러시는 화폐공급량을 늘렸을 뿐이다. “화폐 공급량 증가는 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정부를 부유하게 해 줄지 몰라도 사회를 부유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통화 팽창은 단지 가격만 높일 뿐이다.” (퍼거슨)

화폐란 그리고 화폐로 통용되던 금과 은이란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고 무엇을 내줄 때 의미가 있다. 서구인들이 오랫동안 화폐를 금속과 동일시했던 것은 역사적 우연일 뿐이다. 화폐는 금속이 아니다. 화폐는 신뢰를 새겨놓은 대상이다.” (퍼거슨)

금과 은은 언제나 희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금과 은의 희귀성은 부의 상징이 되었고 부의 저장수단이 되었으며 지불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귀금속이 화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저자는 아시아의 사례를 들면서 금화와 은화의 역사적 우연을 설명한다.

“재산의 저장은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험처럼 금을 저장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이 쓸모없는 금속이 아무 것도 벌어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하는 재난에 대비해서 일종의 대비책을 마련해놓았다는 생각을 하면 좀더 편안하게 잘 수 있다.”

귀금속을 교환수단으로 더 주목했던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선 가치저장수단 또는 보험의 기능에 더 주목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금과 은은 아시아에서 과시의 수단이자 폭동과 전쟁에 대비한 보험으로서 무한한 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인의 이런 특성 때문에 금과 은은 “계속 동쪽으로만 흘러가고 향료와 비단 같은 유용한 소비재는 계속 서쪽으로만 흘러가던 이상한 평형상태”가 수천년동안 계속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경제사가인 얼 해밀턴은 ‘동양은 로마시대부터 유럽의 보물의 무덤이엇다’거 지적햇다. 오늘날에도 인도는 세계 최대의 금 구매자이며 인도에서 금은 ㅜ아직도 이동이 용이한 재산으로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인들은 자동차, 바퀴가 두개 달린 교통수단, 냉장고 등을 사는데 쓰는 돈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금을 사들이는데 쓴다.”

저자는 아시아인들은 서구인들과 달리 금을 돈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시아의 통치자들은 “금의 아름다움과 금이 상징하는 권력을 즐겼다는 점에서는 서구인들과 같았으나 더럽고 비천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화폐로 쓰기에는 금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중 사이에서 유통되도록 금을 방출하면 국가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중국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화폐 재료는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금을 주화로 만들어 “금을 민주화시켰다”고 저자는 말한다.

금의 민주화는 정치의 민주화와 마찬가지 논리에서 발전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이 화폐가 된 이유는 후버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가 (돈을 찍는) 정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들어낼 수 없는 귀금속을 화폐로 한다면 귀금속의 신용이 정부의 신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케인즈는 금본위제의 부활에 반대하면서 귀금속이 화폐로 쓰이는 것을 “금융과 신용의 진화과정에서 초보적이고 과도기적인 단계의 유물에 불과하다.”고 말햇다.

그러면 왜 은 대신 금이 화폐로서 지배적이 된 것일까? 금본위제로 압축된 것 역시 역사적인 우연이었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화폐제도는 금과 은을 모두 사용하는 복본위제였다. 그러나 복본위제의 문제는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과 은의 교환비는 나라에 따라 다르고 정부의 공시비율과 시장의 비율이 다르게 마련이다.

다른 비율은 차익거래의 기회를 만들어 싼 곳에서 비싼 곳으로 금이나 은을 흐르게 만든다. 그런 일이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다. 뉴튼이 조폐국장을 하던 시절 뉴튼이 계산한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우연하게 은값을 싸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금을 조폐국에 팔아 은을 사서 해외로 수출했고 은화가 영국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당시 금의 공급이 충분했고 경제규모가 금을 교환수단으로 해도 충분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고 영국은 복본위제에서 사실상 금본위제로 옮겨갔다. 참고로 19세기 초 미국에선 반대 현상이 일어나 미국은 사실상의 은본위제였다.

그리고 19세기 영국에서 금본위제는 은행제도와 결합하여 새로운 도약을 이룬다. “영국의 화폐ㅔ제도는 영국의 정치제도와 마찬가지로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해왔다. 영국에서는 공적인 화폐와 개인화폐가 함께 유통되면서 서로를 강화했다. 정부의 돈은 주화였으며 그중 대부분이 기니 금화였다. 그러나 1979년의 위기가 일어나기 100여 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발행된 지폐가 대규모 거래에서 주화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18세기 내내 은행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은행이 대출금을 약속어음의 형태로 지불하는 것이 관례엿다는 점이다. 이 은행권은 기업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돈처럼 유통되었다. 이처럼 계획 없이 성립된 구조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엇다. 많은 은행권이 정부가 발행한 주화를 대신하게 되자 돈의 공급량은 이제 은행의 신용대출금의 양과 직접 연결되었다.”

그러나 민간이 발행하는 지폐는 정부가 발행한 금화와 언제든 교환된다는 전제가 있기에 유통될 수 있었고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개인지폐-환어음, 금세공인의 영수증, 영국 전역의 은행들이 발행한 은행권-는 언제나 (사실상의 중앙은행이 되어버린) 잉글랜드 은행의 은행권과 교환될 수 있었으며 잉글랜드 은행의 은행권은 언제나 금, 즉 정화로 교환될 수 있었다.”

굳이 이 은행권을 금화로 바꾸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은행권과 금의 가치가 바뀔 때는 사정이 달라졌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금의 시장가격이 상승하거나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질 때면 기니 금화 200개는 시티의 시장에서 210 파운드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으며 해외의 금융시장에서도 201파운드 이상에 상당하는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ㅓ. 이럴 때는 금융시장에서도 201파운드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은행권 210파운드를 기니 금화 200개로 바꾼 다음 금융시장에서 기니 금화를 더 많은 액수의 돈과 바꾸면 더 높은 이윤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것은 비공식적이지만 강력한 통제 시스템이 되었다. 저자는 이것을 ‘금의 견제효과’라 부른다.

금의 견제효과 때문에 영국의회의 보고서는 금은 단순히 국내의 화폐만을 위한 기본이 아니라 선언한다. “금은 자국 화폐와 외환 환율의 가치를 모두 결정하는 진정한 조정자다.” 그렇기 때문에 “잉글랜드은행은 금값의 상승과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의 약세현상이 보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호에 반응해야 한다. 이런 신호가 나타나면 잉글랜드은행은 신용대출을 즐여서 화폐 공급량의 증가를 제한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본위제의 규칙에 따라 통화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란 말이다. “금값이 오르는 것은 돈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증거이다”

“금본위제의 근본은 자유시장이 금값의 변화를 통해 이 복잡한 작업을 정책 입안자들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엇다. 이런 구조 속에서 금은 통화량의 과잉이나 부족이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떠받치는 것이어야 햇다.”

“1800년대 초에 영국이 금본위제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후 금본위제가 점점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재산 축적을 위한 금의 수여는 엄청나게 늘었다. 그리고 이때 재산 축적용으로 금을 원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중앙은행들과 미국 재무부 등이었다. 금을 비축해 두는 것은 투자자본의 갑작스런 유입이나 다른 금융센터로의 갑작스러운 유출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한 방어수단이었다. 경제활동과 국제 무역 및 투자가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을 비축하는 것은 국가가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고 새로운 자본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데 필수적이었다. 창구에 와서 금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즉시 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은 ‘안전한 돈’과 ‘안전한 은행’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금을 벌어들이는 나라는 높은 평판을 얻은 반면 금을 잃는 나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곳으로 여겨졌다.”

금을 얻고 잃는 것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무역적자를 내는가 흑자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그 나라의 경제력과 신용의 척도로 여겨진 것이다. 금본위제는 영국이 만든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시행착오의 우연을 통해 창조되었다. 그러나 그 우연의 창조물은 일단 자리를 잡은 후엔 일종의 종교가 되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유럽의 정체성을 상징했듯이 금본위제는 유럽의 정체성이 되었으며 유럽의 번영을 보장하는 축복이며 번영을 위해선 지켜야만 하는 교리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금본위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일종의 친목회 같은 것으로 발전했다. 이 그룹은 회원들이 국경 너머에 있는 세상이 강요하는 위험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해주는 배타적이고도 부러운 집단이었다. 영국은 이 그룹에서 특권을 가진 회원이었다. 아니 이 그룹을 만든 나라였다.”

이 클럽이 만들어진 과정은 이런 식이엇다. “독일은 대영제국의 식민지로부터 수입하는 원자재 대금을 지불하는데 점점 더 많은 파운드화가 필요해지자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영국과 똑 같은 시스템을 채택하고 싶어햇다. ‘우리는 금을 선택햇다. 금이 금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이 영국이기 때문이다'”

“화페들은 특정 무게의 금에 붙여진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는 국경을 넘어 아무 문제없이 유통될 수 잇었고 화폐를 따라 상품과 사람이 자유롭게 어디든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말할 때 세계화란 말을 쓴다.

금은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경제를 관리했다. “정부가 아무런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체제 속에서 금본위제가 투기, 과잉투자,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위기의 확산을 막아주었다. 금의 유출은 위험 신호 역할을 해서 중앙은행들이 곧 금리를 올리는 방어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만약 이런 조치가 상황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면 중앙은행들이 개입해서 서로를 돕는 경우가 비일비재햇다. 신용에 대해선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전에 다른 나라들이 신용대출을 해주겠다고 나선다는 것을 의미햇다. 그 결과 위기가 완화되면 이러한 대출금을 되갚는 것이 가능해졋고 시스템 전체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앙은행들이 “서로 협조한 것은 고정된 교환율로 태환성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기초하는 전제 때문이었다. 이 전제 앞에서는 다른 모든 문제들이 일단 뒤로 물러나야 햇다. 금본위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신용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한 나라가 금본위제를 버리거나 금의 등가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믿음-와 그러한 신용도가 보증하는 협조에 대한 믿음이엇다.”

당시를 말하는 벨르 에포크(Belle Epoch)란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스템은 국가의 통화량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사람보다 금을 위에 놓은 것”이라 말한다.

“만약 한 나라의 금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외국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고 수입을 감소시키기 위해 국내경제를 억눌러야 한다.” 금이 유출된다는 것은 적자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IMF의 처방은 바로 적자를 보면서 흘러나가는 준비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금본위제 시대부터의 처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겪었듯이 “여기에는 어떤 안전망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윤이 급속하게 줄어든 기업은 물론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을 삭감당한 노동자들에게도 전혀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게임의 법칙이었다. 국내경제의 안정과 높은 고용률이라는 목적이 금 보유량을 방어한다는 목적보다 우위를 차지했더라면 금본위제 시스템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금본위제가 다시는 부활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이때가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 7세의 시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이라면 터져나왔을 법도 한 정치적 항의는 19세기 유럽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앗다. 비록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 정도에 불과햇다. 심지어 경제학자들 사이에ㅐ서도 거시경제학적인 견해와 경기순환 분석은 주류 이론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햇다. 이러한 관심을 표현한 것은 맑스 같은 재야의 인물들 뿐이었다.”

정치가들이 그런 재야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힘들어졌을 때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더 이상 재야에 머물지 않게 되었을 때 금본위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1차대전과 함께 금본위제의 조건들 대부분은 산산조각이 났다. “정치적 동맹, 정부의 재정, 대외채무, 세계금융에서 영국의 지도적인 위치, 산업 효율성의 상태 등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잇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금본위제는 마치 잃어버린 낙원의 추억처럼 과거 속에서 희미하게 반작이며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의 안정, 조화, 우아함에 대한 모든 향수를 상징하고 있다. 이 향수에 덧붙여진 광채는 과거에 대한 헛된 환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 현실이 바로 눈앞에 있던 과거의 영광이었기에 금본위제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1918년의 휴전 이후에도 금본위제는 너무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1차 대전이라는 피투성이 전쟁이 가져온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진에 의해 금본위제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렷다는 생각을 감히 입 밖에 낸 사람은 없었다. 아니 이런 사실을 눈치챈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나라가 금본위제를 회복하기 위해 엄청난 정치적 위험을 감수햇다.”

그러나 금본위제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재난을 낳았고 금본위제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지면서 벨르 에포크 시절의 첫번째 세계화는 막을 내린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1913년에 정점에 달했던 첫 번째 세계화의 종식을 가져왔다. (금본위제의 종말과 함께) 자본의 국제 이동은 사라졋고 국제무역을 위한 자금조달은 대단히 어려워졋으며 각국은 앞 다투어 보호주의 장벽을 구축햇다.” (아글리에타) 금본위제를 대체할 국제질서가 사라지면서 세계질서가 와해되었고 “다자주의는 종식되었으며 세계무역의 마비로 인해 금융위기로 초래된 경제위기는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독일은 나치당의 지권과 더불어 경제 전반의 국가화를 선택햇다. 게인스식 해법을 채택한 미국은 뉴딜을 시행하고 대외 관세장벽을 더 높여 오로지 자국의 규칙에만 따르는 금융 시스템을 다시 구축했다. 다른 한편 프랑스가 주도하던 금 블록의 가맹국들은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졌다. 1929년의 위기는 세계경제의 완벽한 파멸, 국제관계ㅔ의 붕괴 및 각국의 민족주의로의 복귀로 귀착되엇다.” (아글리에타)

저자는 디즈레일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금본위제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1895년 그는 글래스고 상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영국이 상업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리며 번영할 수 있는 것이 금본위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망상일 뿐이다. 금본위제는 우리가 이룩한 상업적 번영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여러가지 상황들이 한데 합쳐져서 세계적인 경제 시스템이 사람들의 기대대로 기능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바로 이 시기가 그런 시대였다.

금본위제로의 회귀를 위한 몸부림에 자극이 되엇던 것이 전쟁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화폐의 역사에서 그 단순함과 우아함이 단연 돋보이는 시스템에 대한 욕망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금이 모든 것을 제대로 된 모습으로 되돌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앞뒤가 바뀐 생각이엇다. 금이 모든 것을 제대로 된 모습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애당초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잇을 때만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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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지배 - 세계 금융사 이야기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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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초판은 꽤 전에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이책은 2008년에 쓰여진 개정판이다. 초판을 보지 못햇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겟지만 아마 글로벌 금융위기와 차이메리카를 반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저명한 금융사학자인 저자의 책인 만큼 이책은 상당히 잘 쓰여져 있다. 금융제도가 태어난 순서에 따라 은행, 채권, 주식, 보험, 부동산 그리고 세계금융시스템을 차례대로 다룬다. 이 모든 제도를 3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에 담는다고 하면 의아할 것이다. 너무 적지 않은가?

적기는 적다. 그러나 저자의 금융사 학부강의 역시 한학기에 그 제도들을 다 다루기에는 너무 잛은 것은 다를 것이 없다. 짧은 분량에 그 많은 내용을 담기 위해 저자는 그 제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경로를 거치면서 진화했는지를 압축적으로 요령있게 요약해 보여주면서 챕터의 끝에서는 오늘날 그 제도가 어떤 모습인가를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본 실제 사례를 들면서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끝난다.

말하자면 학부 금융사 강의 노트라 할 수 있다. 물론 학부 강의에서는 느끼기 힘든 생생함이 있고 역사학자인 만큼 재미있는 스토리들로 채워진다. 잘은 모르지만 저자의 다른 책들처럼 방송 다큐멘터리용 대본으로 만든 책으로 보인다. 이책의 분위기는 그러니까 강의록보다는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처럼 생생하고 장면 전환이 빠르다고 보면 된다.

강의록이든 방송대본이든 이책은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에필로그에는 금융사학자로서 행동경제학과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적기는 하지만 이책은 전문가를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저명한 학자가 이런 책을 쓸 이유가 있는가? 이유가 잇다. 다른 금융사 입문서들과 이책의 내용은 그리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중적으로 쉽게 쓰였기 때문에 이책의 내용이 더 소략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간략하게 줄여진 내용을 재미있게 만들고 그러면서 왠만한 금융사 서적들보다 깊이가 부족하지 않게 만드는 솜씨는 분명 거물의 솜씨이다.

예를 들어 금융사에 자주 거론되는 스페인 제국의 몰락,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미시시피 버블, 로스차일드 가문, 복지국가의 해체 등의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는 이 장르의 클리셰이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이책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재구성하면서 더해진 자신만의 해석은 쉬운 책일수록 쓰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킨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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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전후 유럽경제
찰스 페인스틴 & 피터 테민 외 1인 지음, 양동휴 외 2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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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1차대전의 충격 때문이엇다고 이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두 번의 대전 모두 전비지출이 GDP의 반 이상이었고 막대한 파괴가 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의 충격은 더 컸는데 왜 2차대전 이후엔 전무후무한 황금기가 왔고 1차대전 이후엔 대공황이라는 재앙이 왔는가? 이책의 질문이다. 저자들은 전쟁의 충격에 대한 대응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사상최초의 총력전이었던 1차대전의 결과 세계경제의 수요와 공급 질서가 교란되었다. 먼저 전쟁준비로 동원된 산업의 생산설비가 폭증된 상태였다. 그러나 전쟁수요가 사라지면서 전시에 증설된 설비는 과잉설비가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전쟁기간 동안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전장에서 비켜있던 나라들이 유럽의 시장을 잠식해들어가 전쟁이 끝났을 때는 시장 자체가 줄어 있었다.

그러나 전장에 대규모로 징집되었던 “남자들은 참호 속에서 전투하는 동안 전례 없던 다양한 종류의 대중선동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다수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을 습득햇다. 종전 후 지배계급들이 대중운동의 실체를 무시하고 과거의 안이한 엘리트 정치로 복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햇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과격화, 노동운동의 확대가 있었다. 줄어든 수요에 공급이 조정되기는 어려웠다는 말이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예산의 폭증이었다. 급진화된 요구에 따라 사회보장비, 실업수당이 예산에 더해진데다 전후복구비용이 얹혀졌지만 세입이 늘어날 길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전시예산으로 풀린 막대한 통화량에 적자예산이 더해졌다.

예를 들어 전후 독일을 초토화시킨 초인플레이션을 촉발한 것은 지폐의 과잉발행이엇고 그 이면에는 거액의 재정적자가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지출의 대폭 증가에 있었다. 그리고 정부지출 증가는 전쟁 기간 동안 차입에 크게 의존한 것과 전후 경제, 사회적 프로그램들이 커다란 규모의 지출을 필요로 한데서 비롯되었다. 정당들은 힘이 약했기 때문에 이러한 지출 압력을 막아낼 수 없었다. 양쪽 이해당사자들은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출에 필요한 세금 부담이 노동과 자본에 어떻게 할당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어떤 합의도 이룰 수 없었다. 따라서 지폐를 인쇄하는 것만이 그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적어도 처음에는 많은 대립적 사회집단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보다는 이익이 더 크다고 주장 할 수 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패전국의 초인플레이션은 극단적인 예이지만 당시 전쟁을 치룬 모든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본위제로 돌아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금본위제로 복귀한다는 결정은 통화를 안정시켜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환율도 안정시켜 전전처럼 무역질서를 회복하여 전전의 번영으로 돌아가려는 의도였다.

“19세기말은 금본위제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지불체계가 상대적으로 제 구실을 하던 시키였다. 런던은 안정화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필요한 경우 서로 협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노동과 자본이 대규모로 이동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생산요소는 국제적으로 거의 완전히 자유롭게 이동하였다. 이것이 19세기의 국제경제질서였다.”

금본위제로 인플레는 잡힌다. 문제는 금본위제가 전쟁의 충격을 증폭했다는 것이다. 20년대 전반기의 불황은 인플레 때문만이 아니라 전쟁의 충격으로 공급 초과상태인 시장상황 덕분이기도 했다. 금본위제는 공급초과로 인한 디플레이션 상태를 더 악화시켜 부족한 수요를 더 줄여버렸다.

“전전 평가 수준에서 금본위제로 조기 복귀하기 위해 디플레이션 조치를 위했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장이 제한되었다. 그러한 정책을 달성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높은 이자율은 투자를 위축시키고 생산확대를 방해했다. 그리고 통화의 과대평사로 수입품은 더욱 저렴해지고 수출품의 경쟁력은 약화되었다ㅓ. 물가 하락으로 전시와 전쟁 직후 정부와 민간 기업이 진 대규모 부채의 이자부담은 온전히 유지되었다.”

“1920년대 말부터 유럽과 세계 대부분 지역은 더욱 빠르게 대공황의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계속되는 은행위기, 팔리지 않는 식료품재고의 증가, 수출시장의 붕괴, 버려진 공장, 그리고 일자리나 구호자금을 절망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점점 길어지는 행렬 앞에서 은행가, 정치가, 기업인, 농민 모두 무기력하게만 보였다.”

저자들은 공황으로부터 탈출하려면 금본위제의 포기만이 유일했다고 말한다. 금본위제를 일찌기감치 포기한 영국은 가장 먼저 공황에서 탈출했다. 금본위제에서 어느정도 벗어났느냐에 따라 회복속도와 정도가 결정되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저자들은 전후의 디플레이션이 대공황으로 악화된 원인을 4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가장 근본적으로 전쟁의 충격이 세계시장에 구조적 불균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조적 불균형은 전전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시절에는 제대로 작동했던 금본위제와는 맞지 않는 환경을 만들었다.

둘째 금본위제는 본질적으로 국제시스템이다. 그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시스템의 지휘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후 “런던은 더 이상 아니며 워싱턴은 아직 멀었다.” 말처럼 영국은 전전과 같은 헤게몬의 역할을 맡을 능력이 없었고 그런 능력이 되는 미국은 그럴 의지가 없었다. “리더십 부족의 구체적인 경제적인 함의는 국제적 최종대부자로 행동함으로써 전세계 금융환경을 안정시킬 의사와 능력을 함께 갖춘 나라가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 양국, 프랑스, 독일이 국제적으로 협력하지도 않았고 그들간에 정책 조정에도 실패햇다. 서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며 제한된 양의 통화용 금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에 국제수지가 적자인 나라 뿐 아니라 흑자인 나라까지 통화긴축정책을 쓰게 만들었고 그 결과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었다. 이기적인 협력 부재는 대공황이 터지고 나서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국제통화체계를 해체시켰고 무역이 붕괴되면서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키고 장기화시켯다.

넷째 전후의 구조적 불균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금분위제에 집착한 금융 이데올로기를 지적한다.

그러면 왜 2차대전의 결과는 1차대전과 달랐는가? 저자들은 대공황의 교훈이 위에서 열거한 4가지 조건을 뒤집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2차대전의 전후 처리 가운데 국제적 부분은 전간기를 지배햇던 조건들을 뒤집으려는 미국과 영국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1930년대의 쓰라린 교훈이 생생히 기억되엇다. 이 때의 목표는 완전히 다른 국제경제관계의 틀, 즉 각국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상호 이익을 위해 협조적으로 무역과 투자활동을 하도록 함으로써 국내 경제활동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틀을 만드는 것이엇다. 그러한 협력으로 얻을 경제적 이익은 세계평화 증진에도 기여하리라는 믿음에 의해 증폭되엇다.”

“미국은 현명하게도 베르사이유 이후 자신들이 견지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번영에 이를 다리 역할을 할 책임을 스스로 인식햇다. 원조와 차관 제공 조건에 관한 협상에서 약간의 마찰은 불가피햇다. 그러나 전시채무와 배상금에 관해 1918년 이후에 겪었던 갈등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루었다.”

“20세기 유럽경제사에 관한 우리의 연구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는 성장과 번영은 다자간 무역, 조절된 호나율의 유연성, 국제금융협력의 환경이 존재하는 시기에 달성되지 반대로 관세장벽, 무역전쟁, 금융의 경직성, 갈등적 통화지역 등이 존재할 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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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 - 당신이 절대 모르는 경제기사의 비밀
김진철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A신문의 젊은 B. 아침 7시. 자명종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겨우 일어난다. 눈도 못뜨고 세수는 하는둥 마는둥 집을 나서니 7시 30분. 여의도 한국거래소 기자실에 도착하니 8시 30분. 30분 늦었다.

조간신문을 대충 흝어보고 증권사 리포트를 뒤져본다. 오늘은 무슨 기사를 써야 하나 고민이다. 어제는 준비해둔 기획기사로 때웠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보도자료 몇 건 처리해 보내야 할 것같다. 금감원 사이트에서 기업공시도 체크한다. 9시 30분까지 겨우 보도자료 2건 기사보고 올렸다. 팀장한테 잔소리 듣겠군. 10분도 안되었는데 팀장 전화다. 월말에 금융특집 건이 걸려 있다며 유행하는 펀드 중 기획기사로 쓸만한 것 없냐교 묻는다.

지난달에도 그거였는데 또? 전화받고 이것저것 취재좀 하니 11시다.

C증권사 홍보팀 과장 D와 점심 약속 장소가 좀 멀다. 11시 50분 복집에 도착. 어제 과음을 햇다는 D. 그래도 한잔 안 할구가 없다. 둘이서 한병을 비웠다. 마침 C증권의 새 상품을 취재해야 했다. D는 상품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몇가지를 더 묻고 이 상품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인기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

기자실에 앉으니 1시 30분. 기사마감은 늦어도 4시까지는 해야 하고 보통 3시에서 3시 30분까지는 보내야 한다. 졸리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 또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 것이지만 취재는 해야 한다. 전화를 돌린다. 좀더 구체화하고 전문가들의 코멘트도 땄다. 3시가 다 되어 기사 한 꽂지 보냈다. 두번째 기사는 그래픽거리를 뭘로 해야 하나? 표는 식상하고 다른건 없나? 3시다 주식시장이 마감했다. 마감 상황을 확인한다. 기사는 쓸 것이 없다. 그래픽거리. 보도자료 낸 곳에 전화를 건다. 아무래도 어렵겠다. 1-2시간만 더 여유가 있어도 생각이 날텐데. 표로 때우자. 보내니 4시가 넘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금융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기획기사거리가 없는지 찾아봐야 한다. 증권사 홍보팀에 전화를 돌린다. 내일까지 자료를 받기로 했다. 6시. 7시에 저녁 약속이 있다. 이것저것 자료를 잧아본다. 벌써 시간이 되었다.

시끄러운 고깃집. E 운용사 사람들은 와있다. 미안하다며 인사를 한다. 1차 시작, 오늘도 3차는 가겠군. 내일이 걱정된다. 모르겠다. 기사가 될만한 정보든 아니든 업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

이책이 보여주는 경제부 기자의 일상이다. 도무지 여유가 보이지 않는 하루이다. 빡빡한 일정은 갈수록 더 조여진다. 신문사의 경영악화로 인원충원은 되지 않으니 기자 한명이 커버해야 할 업무는 갈수록 늘 뿐이다.

그러다보니 심층취재 같은 것은 꿈도 못꾸는 일이다. 보도자료가 고마울 뿐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그러다 보니 보도자료나 앵무새처럼 옮기는 ‘발표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자포자기로 월급쟁이가 되어버리는 현실이라 저자는 말한다.

경제부 기자라면 경제에는 한가닥 하는 전문가일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물론 기자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다. 저자는 기자란 know what이 아니라 know who의 전문가라 말한다. 그 분야에서 누구에게 물으면 되는지 아는 사람이 기자이고 그런 전문가 네트웤을 꿰고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데 전문가 사회 자체도 부침이 심하다. 그런 기자 찾기가 쉽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기사를 왜 읽어야 하는가? 그나마 경제의 흐름을 따라가는 수단이고 다른 대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기자들이 쓰는 기사를 얼마나 믿을 수 잇느냐가 된다. 문제는 기사의 질만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편집회의가 아니라 광고전략회의”라는 경제기자들의 농담이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지가 핵심매체로 부상하고 종합지에서 경제면이 중요하게 된 것은 외환위기를 전후해서이다. 일본에서 그랬듯이 경제면이 중요해진 것은 재테크가 유행하면서 부터였다. 경제면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제면이 중요해진 것은 인터넷의 대두로 종이매체가 사양길로 들어서게된 시기와 일치한다.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영악화에 시달리는 신문사는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고 광고주인 기업을 대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최근 갤럭시S 관련 기사를 그 예로 든다. “기사와 광고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만한 일이 최근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벌어졌다. 아이폰에 상처 입은 대표적인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 삼성이 들고 나온 샐럭시S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이폰에 대해서 거의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기사들이 경제면에 도배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갤럭시S 출시와 함께 아이폰은 보안에 문제가 있다는 등 비판적인 기사가 주를 이뤘고 갤럭시S는 아이폰의 아성을 무너트릴만큼 강력하다는 내용이 주로 보도됐다. 하루아핌에 아이폰의 질이 떨어질 리도 없는데 갤럭시S 칭찬기사와 아이폰에 대한 비판기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걸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경제기사에서 제대로 된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고 서민들 입장에서 돈이 되는 정보는 더더욱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경제의 흐름을 알고 안목을 키우기 위해선 경제기사를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저자는 어떻게 경제기사를 읽을 것인가 알려면 기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논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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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시대 -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비즈니스와 마케팅
클라라 샤이 지음, 전성민 옮김, 유병준 감수 / 한빛미디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세상이 시끄럽다. 시끄러운 것은 비즈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이 등장햇을 때 우왕좌왕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불안하다. 소셜 네트웤에 대한 책도 쏟아진다. 그러면 정확히 소셜 네트웤으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TV에서만 보던 김주하 앵커는 ‘나 여기 못 있겠어요’하고 문 열고 나갔다가 ‘죄송, 실수였어요’하고 다시 문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모 그룹 회장님은 자주 농담을 하고, 김연아 선수는 한번 들어오긴 했는데 별로 말은 안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로봇은 계속 ;이.런.글.이.올.라.왔.습.니.다’하고 떠들고 한쪽에선 목소리 높이며 토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아요, 징징징’하면서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있고… 이것이 트위터다.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가서 노닥거릴 수 있는 4차원 카페. 사실 트위터의 팔로잉은 카페에 들어가 ‘아는 척’하는 것과 똑같다. 카페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팔로잉하면서 우리는 ‘아는 척’을 시작한다. 그러다 진짜 친해지기도 하고, 알기는 알아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게 된다. 사실 카페 바깥의 세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조금 더 좁혀졌다는 것 정도일까.” (이요훈)

아마 소셜 네트웤의 실상을 가장 잘 요약하지 않았나 싶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엿지만 소셜 네트웤도 역시 사람이 쓰는 도구일 뿐이고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소셜 네트웤은 기존의 오프라인 인간관계를 더 강화하는 연장선이라는 것이 정확한 평가이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인간관계의 양만 강조되고 질이 홰손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1세대 사이트들에선느 이런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용자들이 자신이 받아들이고 형성한 관계에 대해 더욱 세심해지면서 이와 같은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잇다. 이전의 서비스들과 다르게 페이스북이 성공한 이유는 온라인 관계만을 지향하지 않고 오프라인 관계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이 사람들이 소셜 네트웤에 기대하는 것에 잘 부응했기 때문에 소셜 네트웤의 대표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하며 트위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며 기존의 삶의 문맥에 잘 맞춰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 사는 모습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 비즈니스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인터넷이 비즈니스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소셜 네트웤 역시 지각변동을 일으킬 조짐이 보인다. 이책은 아직 초기단계인 소셜 네트웤으로 비즈니스 툴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다룬다.

가령 영업의 경우 영업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상대방의 인맥을 먼저 확인하고 추천을 받아 영업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이전의 영업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영업을 더 쉽게 해주는 도구로서 소셜 네트웤을 말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회사 자체를 영업한다고 할 수 있는 채용에서도 소셜 네트웤은 더 편리한 도구가 되어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마케팅은 영업과 채용과 달리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잇다. 가령 광고의 경우 사용자들의 공개 프로필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의 인터넷 광고보다 더 정밀한 타겟팅이 가능해졌으며 입소문 마케팅도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이책은 이런 내용들을 다룬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이책에서만 볼 수 잇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쏟아진 책들의 저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책의 내용들은 다른 책 어디에서 본 것일 것이다. 그럼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규모에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책들 중에서 이책이 다루는 범위는 가장 광범위하다. 소셜 마케팅에 관한 책을 한권 권하라면 이책을 권하고 싶다.

이책의 장점은 내용의 범위 만이 아니다. 실제 소셜 네트웤에 대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고 잇는 저자답게 실제 사례도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잇으며 실제 업무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를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책이 다루는 범위와 현실성으로 보자면 작은 글씨이지만 450페이지는 오히려 적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저자는 필요한 내용만 축약해 넣기 위해 요점만 간단하게 필요한 사항을 잘 우겨넣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책의 느낌은 교과서란 한 마디로 요약된다. 책의 구성도 경영대학원의 교재처럼 분야의 거의 모든 범위를 망라해서 요점만 적은 드라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잇다. 읽는 재미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책을 재미로 읽지는 않으니 그런 문제는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다른 약점도 역시 교과서적이다. 교과서가 그렇듯이 많은 범위의 내용을 우겨넣다보니 깊이가 부족해진다.

이책의 서술은 요점이 잘 짚어져 잇고 그 분야의 동향에 대한 개관을 얻는데 충분하게 잘 쓰여져 있다. 그러나 교과서들이 그렇듯이 개관에 그친다고 보면 된다. 실제 업무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잇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잇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분야의 어떤 책도 따라갈 수 없는 범위와 서술의 질을 갖추고 잇다는 점에서 추천할만한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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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3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