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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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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이다. 1935년 최초의 열차들이 모스크바 지하를 달렸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날 지하철이 가장 중요한 대중 교통 수단 중의 하나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9,287개의 열차로 900만 명의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계산상으로만 보면 도시 주민 누구나 하루 한 번은 지하철을 타는 셈이다. ‘인간은 죽어서만 지하에 속하는 법’이라는 러시아 정교회의 반대 논리는 기술과 인간 상상력의 결합이 가져다 준 무한한 가능성에 이제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삶이란 집이나 건물 등을 짓고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의 역사다. 장소와 시대에 따라 짓는 재료도 다르고 그곳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생각도 조금씩 다르다. 마당과 뒷간이 있던 옛집과 대규모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과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집은 여전히 고단한 육체를 누이고 따뜻한 위안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것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든 짚으로 만들어졌든.

200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승효상을 처음 만났다. 그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승효상 건축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로서는 건축전은 그때가 처음인지라 당연히 무언가 굉장한 인식적 경험을 기대했던 것 같다. 헌데 막상 견학온 학생들로 가득 찬 전시실을 어렵사리 돌고나니 손에는 몇 권의 책과, 건축이란 모형만으론 도저히 원래의 가치나 감정을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흔히 문외한들이 갖곤 하는 자기 합리화식의 이해 정도만을 들고 나오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의 그 책들은 영문도 모른 채 책꽂이에 오래도록 꽂혀 있어야만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승효상의 이름을 다시 만난 것은 순전히 광고 덕이었다. 여름 내내 한겨레신문 하단에서 끈질기게 내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인데 이 역시 도저히 정리가 안되는 책들 사이에 끼여 마냥 변덕스러운 주인의 마음이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단지 ‘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믿는다’는 저자의 신념이 그럴 듯해 보였다는 그 이유 때문에 용케 이런 운명을 면하게 되었다.

승효상은 건축가다. 건축하면 63빌딩이나 예술의 전당 혹은 외국의 파밀리에성당이나 퐁피두센터 등의 굉장한 것만을 떠올리기 십상인 일반인에게 건축가의 이름이란 시인의 이름과는 분명 다른 무엇이다. 뭐 건축은 현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이지만 안타깝게도 일반 대중은 여전히 관심을 갖지 못한다는 페터 베렌스(독일의 건축가, 베렌스 하우스, 회히스트 염색 공장 본부 건물, 바이센호프 주택단지의 주택 등 다수)의 한탄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지난 세기 지어진 대표적 건축물로 언론이 선정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의 집 ‘수졸당’과 ‘대학로의 문화공간’을 지었고 ‘파주출판도시’의 지휘를 맡았던 이가 승효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름다운 집을 보고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이 집을 누가 지었을까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가인 그가 일반인들을 위해 몇 년 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 엮어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믿는다. 짓는다는 것은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 속에 사는 사람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이 만든 건축이란 용어는 우리 삶을 지배하고 변화시키는 건축의 본래적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영어의 ‘architecture'의 ’arch'는 크다는, ‘tect'는 학문 혹은 기술이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니 직역하여 ’큰 기술‘이라는 뜻으로 오히려 건축의 중요성을 더 잘 드러낸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집에 대한 승효상의 생각 역시 단호하다. 동선이 길어 좀 걸어야 되고 대문도 나가서 열어줘야 하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를 훔치며 가족의 살내음을 맡을 수 있는 그런 집이다. 쉽게 말해 다소 불편한 집이다. 승효상은 이런 집에서라야 궁리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사유하게 되고, 사유를 통해 삶을 관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화려한 재료를 써 장식이 많고 화려한 집에서는 거주인은 왜소하게 되기 십상이고 삶의 모습은 그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옛 집이야말로 아름다운 집이 되기 위한 요소들이 그득했다. 그래서 승효상은 ‘달동네’를 자주 기웃거렸다. 그곳에서 우리 옛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집이 소유와 축재의 수단도 아니고 오로지 사용할 뿐이며 사는 사람들의 꿈을 담는 공간일 뿐이다.  

이 책은 승효상이 외국 여행을 통해 만난 건축물에 대한 사색의 고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러는 몰라서 더러는 이름은 들었지만 그저 그러려니 하는 무심함으로 지나친 건물들이 건축가 승효상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다. 비엔나 미카엘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 보았던 건물이 당대 비엔나시민들에게 그토록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로스 하우스였다니. 승효상은 종래의 건축 개념을 뒤집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도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정신에 주목한다. 땅의 서쪽편의 반을 경사진 광장으로 비워 고밀도의 도시 한가운데 도시의‘ 비움’을 만들어 낸 것이야말로 이 건물을 건축사의 빛나는 성취로 거듭나게 한 정신이라는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에서는 서양 문화사의 핵심을 이루는 ‘나’ 중심의 사고를 확인한다. 우리의 주거관이나 세계관과는 확실히 다른 전형적 서구 주택의 완성을 여기서 보았다.

건축사에서 로마인들이 발명한 콘크리트의 사용은 인간 삶을 풍요롭게 한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힌다. 재료의 사용이 장소에 구애되지 않으며 크기나 모양도 무한정이다. 오늘날 콘크리트는 건축의 필수 재료로서 콘크리트가 사용되지 않은 건축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수사학적으로 콘크리트는 도시의 황량함, 단절의 대명사다. 삶을 조직하고 담아내는 것이 건축이라면 이는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그 어떤 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년 365일이 공사중인 서울에서 건축은 그 속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기를 멈춘 지 오래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승효상, 이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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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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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를 방문한 지도 얼추 2년이 지났다. 비가 오는 11월이었고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다시 찾아가라고 하면 못 찾을 것 같다. 그곳에서 물매화를 처음 보았다. 층층이 쌓아 올린 검은색 현무암도 있었다. 씨네21의 김소희 편집장은 이 현무암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최근의 글에서 우연히 동행하게된 여행길이 삼달리였고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진작가 김영갑-20년 전 우연히 들렀던 제주도가 마음에 들어 그곳에 들어와 살고있고 최근 폐교를 개조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연 사람이다. 갤러리개조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자 문화관광부에서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김영갑은 갤러리가 살아남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것은 갤러리의 운명이라며 일축했다고 한다. 2년 전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갤러리 작업이 한창일 때였는데 사람은 없고 몹시 큰 개 한 마리가 부엌에 누워있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왔기 때문에 피아노 곡을 골라 틀었고 말을 아끼는 듯 조용한 주인은 그저 입구의 나무 벤치에 앉아서 우리가 하는 질문에 가끔씩 짧은 대답을 했다. 긴 나무 벤치 위에는 유용주 시인의 산문집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의 뒷표지에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구절이 있었다. 책의 주인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 의해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루게릭병은, 미국 뉴욕 양키즈의 야구선수 루 게릭이 이 병을 앓다가 서른 여덟의 나이로 죽은 뒤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진작가 김영갑이 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 병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궁금했다. 의학용어로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이고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섬유 및 세포의 진행성 변성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우주 여행에 대한 프로젝트까지 나오고 있는 이 마당에 여기 현실로 존재하는 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다니 인간의 지적 한계가 새삼스럽다.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인류가 우리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에 대해서조차 알고 있는 것은 10%가 채 안된다고 하는데 46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에서 상황이 그렇다면 아는 것이 너무 미미하다고 탓할 계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에 문외한이었던 빌 브라이슨이 3년에 걸쳐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인터뷰해서 쓴 글이다. 그는 서문에서 어느날 불현듯 우리가 살고 있는 유일한 행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고, 도대체 지구가 얼마나 무겁고, 바위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지구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충동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어떻게 과학자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가 궁금해하는 과학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체 6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 마지막 장은 499쪽에서 끝난다. 3년만에 세상에 나온 책이니 만큼 그 정도는 감수해 줄 법하다. 요는 시간을 들여 끝까지 읽을 만큼 내용적 가치가 있느냐일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라면 이 책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각 장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거대한 우주의 탄생부터 미세한 박테리아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방대한 영역이지만 놀랍도록 쉽고 재미있다. 시대별 과학사적으로 논쟁이 되었던 주제와 그것에 얽힌 사회적 배경뿐 아니라 고고학적 인류학적 발전사도 함께 아우르고 있어서 책을 덮고 나면 마치 지구 전체를 겉과 안으로 속속들이 여행하고 난 듯한 느낌이 든다.

제1부는 우주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 무에서 시작되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짧은 순간에 단 한번의 격동에 의해 팽창하여 오늘날과 같은 광대한 우주에 이르렀다. 이것은 대략 137억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약 46억 년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지름이 약 240억 킬로미터 정도인 거대한 기체와 먼지 덩어리의 소용돌이가 뭉쳐져 태양이 되었고 이어서 지구가 만들어졌다. 최초의 지구는 그 환경이 지독하게 혹독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화합물이 스스로 꿈틀거리고 뭉쳐져 생명이 탄생하고 오늘의 우리에 이르렀다. 오늘의 생명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위험이 있었는지는 말로 다할 수 없다. 빌 브라이슨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인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2장은 지구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이상한 천재 뉴턴에서부터 등고선을 발견한 허턴,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들고 중력을 측정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던 캐번디시, 지질학자 라이엘과 루드윅, 켈빈 등등의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구의 비밀에 접근한다. 제3부는 사물의 속성을 밝히려는 시도가 어떻게 화학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또 지구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연대측정법과 오늘날 지구의 대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판구조론 등 한편으로는 생소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위험한 행성이라는 제하의 제4부는 지구 내부에서 언젠가 분출될 화산과 지진의 위험에서 먼 우주로부터 온 소행성과의 충돌의 위험에 이르기까지 지구가 노정하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 다음 5부에서 다루는 것이 우리 생명의 기원과 신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40억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의 선조가 끊임없이 멸종의 위기를 겨우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 존재가 결과적으로 요행의 결과라는 사실을 수긍해야만 한다. 마지막 6부는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지구의 기후와 인류사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생물 멸종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인간이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고 그것이 순전히 무한히 많은 요행에 의해서일 뿐이라면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빌 브라이슨의 표현대로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곳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고 재미있게 서술한 책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책을 선정하는 출판사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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