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새로운 계절, 새로운 달의 시작이다.
새로운 것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자주, 그러나 가끔 아니기도 하다.
내가 인생에서 새로운 어떤 것에 마음이 들뜬 것은 몇 번 일까?
최초의 입학식 후 교실에서, 전학간 날, 새로 시작하게 될 생활 첫날.도시로 이사 간 첫날-생각보다 이사간 집이 후져서 실망했던 그날 대문을 들어설 때-, 중학교 첫 등교, 고등학교 첫 등교 그리고 대학 입학식...그날은 설렜다기보다 졸렸다..전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해서.., 유학간 나라에서의 첫날....그리고,,,또또..좋아하던 법대 선배와 단둘이 마주앉아 소개팅하던 날...물론 이후 다시는 안 만났지만..., 여튼,..직장 첫 출근날...그리고...어떤 아카데미 첫강의 참석 날...물론 그 아카데미가 나에게 무엇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 아카데미는 나에게 흔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이제 나이를 먹었고, 설레는 일은, 거의 없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기다리는 정도의 너무나 평범한 ...순간 빼곤, 이제 없다.
물론 늘 그랬듯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을 만나는 일은 설렌다. 이것만은 변함없다. 다행이다.
루시아 벌린은 모르는 사람이다.
이름은 뭔가 루시퍼...때문인지 알고 있을 법한 느낌인데, 역시나 나는 이 사람을 처음 만났다.
더운 날이었고, 짜증이 잦은 날이었고, 비까지 퍼붓기를 곧잘 하던 날이었다..
좋지 않은 때였다.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래서 처음 몇 편의 단편들은,화가 난 상태에서 읽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아무리 그래도 소설이라면 일정한 분량은 되어야 하는데..응? 이거 꽁트인가..하는 글이 몇 편.그리고 이건 자전이야..소설이야..싶은 글들...
그래서 덮어두었고,
중간이 지나서야 소설 맞네 하는...작품을 만났다고 여기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다 읽고 난 지금,...루시아 벌린은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썼구나..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아니, 주인공들은 모두 루시아 벌린의 어떤 부분이었구나..하는.
결국 다 읽고 나니, 루시아 벌린이라는 한 사람이 완성되었구나 하는 느낌ㅇ다.
엄마 아빠가 있었고, 칠레의 광산촌에서 살았으며 엄마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이 마음에 안들어 늘 힘겨워했고, 루시아를 사랑했는지조차 잘 모르겠고, 외삼촌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어린시절, 동생이 있었고, 외삼촌은 루시아를 아껴주었지만 외할머니는 동생만 사랑했던 듯싶고, 루시아는 일찍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아이들을 넷 낳았으며 ..그녀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스스로와 아이들을 부양했고, 마음이 따뜻했고, 죽음을 갈구하였으나 인생을 사랑했다...
그래서 짧거나 긴 소설 끝에 서면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 루시아 벌린이란 사람의 형체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소설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