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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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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축복받은 기억만큼이나 상실로 인한 상처는 한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닌다.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그림자처럼 삶을 졸졸 따라다니던 전쟁 전후 시대에, 삶보다는 죽음이 더 친숙했던 국민을 파멸로 이끈 통치자들의 폭력적 억압은 강간처럼 그늘진 시대의 초상이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군국주의를 우파, 혹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하고, 향수에 젖어 하이쿠를 읊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묵도한 어린 코기의 눈엔 그 죽음의 곁에 또다른 코기가 있었다. 큰물살을 헤치고 강물 깊은 곳으로 나아가던 아버지 곁에 있던 또다른 코기는 코기가 어릴 때부터 늘 함께 하던 친구지만, 그날 그 코기는 아버지와 함께 물살 속으로 뒤집혀 떠내려간 아버지의 배에 함께 타고 있다. 코기 자신이 본 건 무엇이고, 그걸 보고 있는 자신은 무엇이었을까. 전후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나 민주적인 교육을 받은, 주인공이자 오에 겐자브로 자신인듯한. 코기는 훗날 그 아버지의 죽음을 천황의 우상화에서 비롯된 바보같은 행동으로 간주하고 이를 희화하한 소설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을 펴내, 한동안 어머니, 누이와 냉전 상태로 지낸다. 그러나 코기는 물살을 헤치고 아버지에게로 다가가던 유년의 기억을 매일 꿈속에서 환기한다. 


그것은 마치 죽은 아버지와 문학적으로 성공한 아들 사이의 대립된 이념 속 깊은 곳에 내재된 상실과 상처, 그리고 죄의식에러 비롯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평생을 두고, 그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소설을 생각했고,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유년의  사건이고, 지워져버린 기억이기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에게 한 가지 믿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을 것으로 알고 있던 '붉은 가죽 트렁크'이다. 아버지는 그 트렁크에 그가 하는 일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리라. 그리고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의 거대한 진실 앞에 서게 될 것이리라, 그의 산속 집으로 향한 여정은 바로 그런 목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죽은지 10주년이 되기 전에는 그 붉은 가죽 트렁크를 코기에게 주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마침 10주기가 지난 상황에서 그의 동생 아사는 그것을 전해준다. 이 과정에서, 코기 즉 조코선생은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친다. 아내는 암 말기이고, 장애가 있는 작곡가 아들 아카리와는 사이가 틀어졌으며,  쓰려고 했던 익사 소설의 재료가 되어 줄 붉은 가죽 트렁크 속에는 아버지가 남긴 책 몇권 외에 모든 다른 재료는 불태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조코의 작품을 꾸준하게 연극으로 올린 '혈거인'이라는 극단이 직접 조코와 이 마지막 익사를 함께 기획하고 싶어하는 의지에 동참하게 되는 일들이다. 써놓고 보니 나름 이런 저런 일들이 책 속에서 사건으로 일어났구나 라고 느끼지만, 책을 읽을 때는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통해 알게 되거나, 대화의 긴 대사 속에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구나를 알게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는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소설의 문체와 방식이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답답하기도 하고, 뭔가 인내심을 필요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의 방식과 비교하자면 겉과 속이 바뀌어 뒤집혀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무슨 소리냐면, 일반적인 소설이 사람의 생각과 전체 서사적 흐름과 주제 같은 것은 지문으로 알 수 있고 그외 디테일들, 상호간의 관계나 인물의 성격 같은 걸 대화로 보충해준다면, 이 소설은 1인칭 나가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설의 굵직한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내가 만들어가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읽은 편지, 내가 들은 대화 속 인물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혼자서 읊고 있는 대사라는 것이다. 독자는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읽더라도 주인공이면서도 화자인 '나' 가 결코 무슨 말을 했는지 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다. 단지 '오빠가 동의하셨더군요... '와 같이 어떤 대사 속에서 나의 행동을 추측해야 한다. 


나와 어린 시절의 코기, 그리고 조코 선생은 모두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인물로 여겨지고, 소설 속에서 한 인물이지만 어쩐지 '나'와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말을 아끼기 때문에 생각을 도저히 알 수 없는 현재의 나, 그 상(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현실생활에 있어서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의 장애인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암에 걸린 아내가 그들의 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무능한 아버지이다. 조코 선생은 '혈거인' 극단이 동경해 마지않아 한 극단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의 작품세계가 한 극단의 전부가 되게까지 만든 위대한 문학가이고, 코기는 어릴적의 자신, 아버지의 익사를 묵도한 소년, 그리고 소설속의 내가 그 기억과 아버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쓰고 싶고,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시하여 환기하는 소년이다. 


시대에서 동떨어져 주위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떨어져 지내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는 거 아닐까 싶네. 내 소설은, 대개 그런 개인을 그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시대정신의 표현을 지향하고 있지 않나...그 때문에 독자가 거의 없어지더라도, 죽게 되면 자신은 시대정신을 따라 순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p136)


말을 아끼는 '나'가 혈거인 극단과의 대화 중에 하는 말은 대개, 조코 선생으로서의 자신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오에 겐자브로의 책이 만일 이 책의 주인공의 책처럼 정말 잘 안팔린다면 그것은 시대정신 뿐만 아니라 문학정신에도 있지 않을까 라는생각을  해본다. 인내해서 끝까지 읽으면 위대하다는 걸, 그가 이야기한 시대정신과 문학정신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는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일부러 없애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강간이라는 말을 썼는데, 익사소설을 포기하게 된 조코 선생은 결국 익사소설을 포기하는 대신 '죽은개를 던지다'라는 새로운 방식의 죽은개 인형을 상대편에게 마구 던지면서 토론 형식으로 관객 참여가 이루어지는 연극의 기획에 동참하게 된다. '죽은 개를 던지다'는 혈거인의 독립 여성 배우 우나이코가 중고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든 다른 극에서 차용해서 큰 호응을 이끌어낸 이후, 다른 연극에도 계속 도입하게 된다. 



익사소설 대신 동참하게 된 마을의 메이스케 봉기에 대한 연극에 집단 강간 장면이 등장하고, 우나이코는 18년 전 자신이 큰아버지에게 당한 강간과 연결하여 그것을 폭로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일본 교육계의 권위를 대표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극우파들은 우나이코와 대립끝에 그들을 납치하여, 강간을 없었던 일로 하라고 협박하고 여기에 살인사건까지 겹치면서 아루라장이 되는데. 강간장면을 직접적으로 연극에 묘사하고자 한 이유는, 조코가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가 맞닿아 있고 그것은 집단 강간과도 다름없는 폭력적 국가와 맞서는 저항이 아닐까 싶다. 


합법적 살인이 가능한 국가의 관습으로 전쟁과 낙태가 존재하지요. 아직 소녀였던 우나이코는 '국가'한테 강간당했고, '국가'한테 낙태를 강요당한 거잖아요?(p500)


"메이스케 어머니 역을 맡은 나 자신도... 내 경험은 현재도 이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391)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어떤 인생도 살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바람입니다. (399)


붉은 가죽 트렁크에 남은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태워 없앤 조코의 어머니는 그 아무것도 없는 붉은 가죽 트렁크를 10년동안 조코에게 넘겨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유언하였다. 그 속, 남겨진 책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그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사상, 목숨을 걸고 지킨 가치가 사실은 자신이 지향하고 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였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버리는 위안군문제, 마치 없었던 일들처럼 잊처저가는 세상의 모든 봉기들, 세상의 모든 '합법적' 폭력과 강간과 살인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러한 가치와 교훈들은 낡은 붉은 가죽 트렁크에 담겨 또 누군가의 익사를 담보하여 지켜질 것인가, 이대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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