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리미티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흑과 백, 어둠과 빛의 선명한 대조다.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어두운 노예생활을 해야했던 진실 속에는 검은 피부색이라는 내제된 상징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왜 하필이면 어둠과 같은 색깔인 흑인일까. 흑과 백이 코멕 매카시의 소설 속에서 이번에는 운명이 뒤바뀐 채로 만났다. 백은 이제 130Km로 달리는 선셋 리미티드(기차)에 몸을 던진 교수이고 흑은 그를 구한 목사이다. 죽고 싶은 사람은 백인이고 그를 살려 빛으로 이끌 사명감을 가진 목사는 흑인이다. 두 사람은 흑인들이 사는 허름한 아파트 좁은 공간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책이 시작해서 책이 끝날 때까지 오로지 대화만 한다. 마치 연극처럼 설정된 제한되고 답답한 공간 내에서 두 사람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개의 답밖에 없는 선택지 앞에서 논쟁한다. 그들의 대화는 선셋 리미티드가 달리는 두개의 선로처럼 평행하다.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까닭이 있고, 흑은 흑의 방식대로, 백은 백의 방식대로 삶과 죽음을 독자에게 납득시키지만 두 사람은 결코 섞이지 못한다.

 

코맥 매카시가 이러한 주제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너무 철학적이고 예리하다. 평범한 독자인 우리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가보자. 누군가가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죽으려 한다. 그를 덮쳐 죽음으로부터 그를 구했지만, 그것은 임시일 뿐이다. 그는 다시 또 몸을 던질 것이고, 그 때 자신이 없으면 그는 죽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 물론 평범한 우리는 그를 구하기 위해 그를 덮치는 행위부터 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그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도 죽음을 선택했던 그를 불안하게 감시하고,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특히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면 더 기를 쓰고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쓸 것이며, 만일 가까운 가족이라면 그가 받는 고통 못지 않게 그를 잃을 지 모를 불안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흑인 목사는 백인 교수를 선셋 리미티드에 뛰어들었던 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흑(인)은 백(인)에게 살아야 할 이유들을 설명하고 그의 영혼을 구해 하느님에게로 이끌고자 애를 쓴다. 그러나 흑이 백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여기서 독자는 오히려 백에게 흑이 납득당하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한다.

 

누군가 죽으려고 했다가 살았다면, 목숨을 걸고 구해준 사람에게 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게 순서다.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로 백이 흑에게 묻고 있다. 왜 죽음을 설명해야 할까. 아니 왜 독자는 죽으려고 하는 모든 자들에게 설명을 들얼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백은 흑에게 묻는다. 당신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 사람을 구해주었나. 왜 정작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영웅이 되려고 하느냐.  흑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감옥에서 책상 다리를 뽑아들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던 죄수 한명의 머리를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작살내던 일들을. 그리고 손발에 묶인 채 죄수 병실에서 그를 찾아왔던 하느님의 목소리에 대해서.


이제 흑이 뛰어 내린 이유에 대해 유도해 본다. 백이 설명하는 건 문화적인 것들, 책과 음악과 예술 그런 것들의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는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 흑은 백이 택한 선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백은 흑의 종교관에 대해 끝까지 조롱할 것이다. 두사람의 겉도는 술꾼의 비유를 보자.

 

흑  만일 선생이 술꾼한테 술을 주면서, 당신 사실 이걸 원하는 게 아니잖아 하고 말하면 술꾼이 뭐라고 할 것 같소?
.....
백  술꾼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요?

 

백은 이세상 모든 술꾼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술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흑은 하느님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고, 자신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선셋리미티드밖에 없다고, 술꾼에게는 위스키가, 백에게는 선셋 리미티드가 그들을 다루는 최후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때부터 나는 백의 죽음의 열망에 대해 납득되기 시작한다. 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겐 그만큼 어떤 결핍이 있는 것이지만, 흑은 그 결핍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하고, 그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결국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선셋 리미티드의 선로로 끝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대화중 나오는 다즌즈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둘이 서서 서로 욕을 하다가 먼저 열받는 쪽이 지는 거라고 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어차피 삶과 죽음처럼 동시에 양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팽팽하게 긴장된 말이 서로에게 날을 세우지만, 다즌즈 게임을 하듯 그 누구도 화를 낼 수 없다. 흑은 선셋 리미티드로부터 백을 구해내야 하고, 백은 흑에게 자신의 죽음을 납득시켜야 한다. 백은 흑에게 자신의 죽음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흑은 백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달할 수 있을까


희망은 헛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알라딘 신간평가단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