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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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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사람이 죽기전에 체결하지만 계약의 이행은 사람이 죽어야 이루어진다.  죽고 난 다음에 계약자가 그 계약을 이행했는지 안했는지는 죽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살아있는 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바랐던 죽음 후의 일을 위해, 죽기 전에 남겨 놓은, 삭제되기 바랐던 것들을 찾아 때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죽은 이는 죽은 후에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자신의 흔적들이 실제로 지워졌는지 안 지워졌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 후에 그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무의를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대가를 우선 지불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까. '왜'라는 질문은 필요없다. 누구나 남기고 싶은 것이 있고 지우고 싶은 것이 있다. 죽기 전에. 사람이 동물의 가죽 대신 남긴다는 이름 석 자에 따라다닐 불명예와 치욕과 수치의 흔적을 함께 남기고 가고 싶지 않다는 건 사후 세계를 믿던 안 믿던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사랑받고 싶은 것, 죽었을 때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것.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수치와 불명예 치욕, 그리고 탐욕스런 자신의 모습...

 

죽으면 없애야 할 물건이라면 살아있을 때 본인이 직접 없애는게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죽으면 없애야 할 치욕이 살아 있을 땐 마지막 숨을 쉴때까지 붙들고 싶은 욕망이다.  죽으면 없애고 싶은 무의미들이 살아 있을 땐 삶의 이유다. 영혼이 숨을 쉴 때 그 영혼 곁에 찰싹 붙어 자아가 되는 것이, 죽어서 영혼이 없어지면 이름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는 것들. 사라져야 하는 것들. 소중하면서도, 무용한 것. 애착이면서도 모욕인 것. 그것이 딜리팅의 타겟이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 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328

비밀의 가치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그 비밀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야 하겠지만, 구동치는 얼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비밀인가에 따라 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나서 구동치는 삭제하기로 약속한 죽은 사람의 비밀을 완전삭제하지 않고, 자신만의 깊은 우물 속에 숨겨 두었다. 그 우물 속 비밀은 현실의 세계속에서는 삭제되었지만, 구동치에겐 자신만의 비밀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들만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구동치 자신도 그 속에 침잠했다.  그가 삭제해야 할 물건들을 삭제하지 않고 혼자만 아는 장소에 깊숙히 보관했던 이유를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의 임무 수행이라는 것이 결국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는 허무 자체이다. 임무는 완수했으나, 일을 맡긴 고객은 이미 죽어 없다. 그를 잘했다 못했다고 평가해주거나 감사해할 고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야 일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때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데서 느꼈을 공허감을 구동치는 죽은 사람의 은밀함을 공유하는 데서 찾았을까.

 

나는 어쩌다 딜리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없애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찾았내야 할 때, 어렵게 찾아서 없앴지만   고마워 해줄 사람은 이미 죽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불현듯 딜리터로서의  환멸이 찾아 들었다. 손에 쥘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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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사람이 죽기전에 체결하지만 계약의 이행은 사람이 죽어야 이루어진다.  죽고 난 다음에 계약자가 그 계약을 이행했는지 안했는지는 죽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이미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바랐던 죽음 후의 일을 위해, 죽기 전에 남겨 놓은, 삭제되기 바랐던 것들을 찾아 살아있는 자는 때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죽은 후에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자신의 흔적들이 실제로 지워졌는지 안 지워졌는지 죽은 이는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 후에 그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무를 위해 살아있는 자는 살아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대가를  죽음 후를 위해 우선 지불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까. '왜'라는 질문은 필요없다. 누구나 남기고 싶은 것이 있고 지우고 싶은 것이 있다. 죽기 전에. 사람이 동물의 가죽 대신 남긴다는 이름 석 자에 따라다닐 불명예와 치욕과 수치의 흔적을 함께 남기고 가고 싶지 않다는 건 사후 세계를 믿던 안 믿던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사랑받고 싶은 것, 죽었을 때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것.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수치와 불명예 치욕, 그리고 탐욕스런 자신의 모습...

 

죽으면 없애야 할 물건이라면 살아있을 때 본인이 직접 없애는게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죽으면 없애야 할 치욕이 살아 있을 땐 마지막 숨을 쉴때까지 붙들고 싶은 욕망이다.  죽으면 없애고 싶은 무의미들이 살아 있을 땐 삶의 이유다. 영혼이 숨을 쉴 때 그 영혼 곁에 찰싹 붙어 자아가 되는 것이, 죽어서 영혼이 없어지면 이름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는 것들. 사라져야 하는 것들. 소중하면서도, 무용한 것. 애착이면서도 모욕인 것. 그것이 딜리팅의 타겟이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 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328

비밀의 가치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그 비밀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야 하겠지만, 구동치는 얼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비밀인가에 따라 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나서 구동치는 삭제하기로 약속한 죽은 사람의 비밀을 완전삭제하지 않고, 자신만의 깊은 우물 속에 숨겨 두었다. 그 우물 속 비밀은 현실의 세계속에서는 삭제되었지만, 구동치에겐 자신만의 비밀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들만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구동치 자신도 그 속에 침잠했다.  그가 삭제해야 할 물건들을 삭제하지 않고 혼자만 아는 장소에 깊숙히 보관했던 이유를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의 임무 수행이라는 것이 결국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는 허무 자체이다. 임무는 완수했으나, 일을 맡긴 고객은 이미 죽어 없다. 그를 잘했다 못했다고 평가해주거나 감사해할 고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야 일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때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데서 느꼈을 공허감을 구동치는 죽은 사람의 은밀함을 공유하는 데서 찾았을까.

 

나는 어쩌다 딜리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없애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찾았내야 할 때, 어렵게 찾아서 없앴지만   고마워 해줄 사람은 이미 죽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불현듯 딜리터로서의  환멸이 찾아 들었다. 손에 쥘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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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혁 작가는 소설가로서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는 이동진의 질문에 소설을 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초반부는 아직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힘이 들고 진도가 잘 안나가지만, 중반을 넘겨 캐릭터들이 각자의 개성을 갖추고 소설적 구도가 자리를 잡고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신나게 질주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독자로서 느낀 것도 작가와 같았다. 그의 고백은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야기 초반 거의 1/3 지점까지 작가가 갈피를 못 잡고 힘겹게 써내려 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어렵게 읽힐 일이 없는 평이한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비중 없는 인물들이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잡담들로 노닥거리는 초반부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조금 인내심이 필요로되었다.. B1F1에서 보여준 그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새롭고 신선하고 패기넘치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는 어디가고 소재에 목마른 진부하고 피곤한 전업 작가가 대신 앉아 있는 건가 싶었다. 중반부가 넘어가자 이야기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사후 딜리팅이라는 매력적 소재를 충분히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성찰과 사색적인 문장으로 이어갔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이 소설은 장르 소설에 가깝다. 조폭들이 활동하는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이야기 구조다. 전개가 자리를 잡아 가면서 캐랙터들과 친해지고 나면 이야기에도 속도가 붙고, 책장 넘기는 속도도 빨라지며, 흥미로와 지지만 내가 애초 김중혁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나보다. 마침, 소설의 초반부를 설명하기에 딱 알맞는 문장을 책 속에서 발견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섹스가 발단,전개,절정, 결말을 보여준다면 배우들간의 섹스는 전개와 결말 뿐이다. 수많은 전개들이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순간 끝이 난다. 208.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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