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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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길지도 않은데, 사자마자 읽기 시작했지만 어제밤에야 끝낼 수 있었던 건, 마음에 안드는 부분에서 덮어버린 후 잊었었기 때문이다. 사실 책 내용은 그림 빼면 굉장히 짧다. 그래도 그림이 간간히 있는 게 좋긴 한데, 망구엘의 명성에 비해 이런 종류의 인문학 책이 얇으면 상대적으로 내용도 빈약해 보일 수 있다. 종이책으로 192쪽인데 전자책에는 두께 개념이 없는지라, 읽으면서 긴지 짧은지를 대략적으로 느끼는데, 이 책은 갑자기 역자 후기가 나와서, 어디가 짤렸나  벌써 끝났나 의아했다. 



앞에서 마음에 안든 대목이 있어 읽다 내버려뒀었다고 말했는데, 그건 전자책에 대한 저자의 독단적인 견해였다. 내가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혹독하게 전자책 문화를 호도하다니, 알고 쓴 건가 그냥 적응하지 못함에 대한 불평을 지적으로 보이게 말한 건가. 내가 웬만하면 세계 최고의 독서가(출판사 소개)이자 대단한 지성인이 쓴 내용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프랑스의 전자공학 전공자가 한 논문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을 여행에 비교하여, '종이책을 읽는 독자는 해안을 바라보며 항해하는데 전자책을 보는 독자는 우주 여행을 떠나 까마득히 먼 곳에서 지구를 한 눈에 바라본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를 반박하는데, 핵심은 이렇다. 



나는 정반대로 생각하는데,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종이책을 들고 읽으면 물리적 특징과 물적 존재를 의식할 수 있으므로, 현재 읽고 있는 페이지를 다른 페이지, 심지어 다른 책과도 연관시킬 수 있다. 둘째, 논점과 캐릭터를 마음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다. 셋째, 광대한 정신 공간에서 아이디어와 이론들을 연결할 수 있다. 반면 전자책을 읽을 때 우리는 대체로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프랑스 '전자공학'자들이 어떤 컨텍스트 속에서 저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기에, 저 인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의향은 조금도 없지만, 저자의 견해는 저렇게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납득할만한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한 예로, '전자책 같은 기술장치 사용법이 엄격하고 세부적으로 마련되어 있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수시로 제한을 받거나 불편을 겪'는다고 하는데 대체 뭘 말하는 건지, 파워를 켜고 끄고 손가락을 눌러 페이지를 누르는 일이 그토록 불편하고 제한을 받는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여행자'라는 독자의 은유에서 여행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생각은 '은유가 된 독자'라는 주제를 다루는 인문적 성격의 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 답게 자유분방하게, 시대와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많은 책들의 내용을 인용하며, 책을 읽는 독자에게 쓰인 은유를 탐구한다. 그 첫번째 비유가 앞에서 말했듯이 여행자로서의 독자다.  책을 읽는 일은 정말로 인생길의 여행과 딱 들어맞는 비유다. 망구엘은 이 '여행자' 은유의 기원을 <길가메시 서사시>와 <단테의 신곡>, <일리아스> 등에서 찾는다. 



오, 작은 배를 탄 그대여,    

내 이야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풍악을 울리며 항해하는 내 배를 뒤따라왔구려.    

넓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고향의 해안으로 뱃머리를 돌리시오.    

자칫하면 나를 잃고 길도 잃을 수 있으니. (주 Dante Alighieri, Commedia, Paradiso II : 1-6)



독서가를 지칭하는 또다른 은유인 '상아탑'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혼재해 있는데, 이 은유의 유래를 초기 기독교 인들의 은둔적 명상과 고립에서 찾고 있으며, 이러한 상아탑 속의 지식이 현실과 조화 혹은 불화를 이루는 여러 종류의 문학을 탐험한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 그 중에서도 햄릿을 비중있게 재해석한다. 상아탑적 이미지의 은유는 책벌레와 책바보라는 은유로 심화 분화되고 <돈키호테><마담 보봐리><안나 카레리나>로 이어지며, 책과 현실을 경계를 넘나든 주인공들의 심리를 재해석한다. 특히 플로베르의 엠마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보다도 더욱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돈키호테는 또렷한 직관을 이용하여 현실과 환상의 차이를 절충하며, 때로 판타지가 의식을 압도하는 바람에 개고생을 하지만 때로는 판타지 속에서도 정신 줄을 놓지 않는 반면, 엠마는 책에 나오는 낭만적 플롯을 자신이 욕망을 불태우는 세계와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즉, 돈키호테가 현실과 픽션을 구분할 줄 알았던 것에 비해, 엠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이에 비해 안나 카레리나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언짢게 여기고, 자신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게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녀는 작은 손으로 책갈피를 연신 옮기며 독서에 열중한다.'



너무 많은 지식이 깊이 없이 나열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여러 작품들의 재해석 부분은 흥미를 느끼려고 할 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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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6-07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돈키호테가 일을 하지 않는 자의 낭만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요. 생각해보면 언급한 인물들이 독서에 탐닉하는 건 일을 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죠..

전자책 좋아합니다. 얼마나 편한대요.. 물론 여전히 종이책을 더 좋아하지만, 전자책만의 매력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ㅎㅎ

서평 잘 봤습니다^^

CREBBP 2018-06-12 07:44   좋아요 1 | URL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워낙 조용한 곳이라, 이제야 봤지 뭐에요. 꼬마요정님. 돈키호테도 그렇고,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들 독서에 탐닉하죠. 독서를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해요. 방문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