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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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 한번도 백화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한번도 나는 백화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새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세워진 공간이었다.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는 사이. 그러나 친하지도 않는 사이이기도 하다. 언젠가 여행을 하던중 일행을 따라 백화점을 만보하듯 걸어다니며 돌아보고 있었다. 크게 바겐세일이라고 적어놓았지만 세일한 가격을 계산기로 두드려보니 결코 만만찮은 가격이었다. 마음에 둔 가방을 잽싸게 내려놓고, 더이상 흥미가 없는 듯 스르르 그곳을 빠져나왔다.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지만 보통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기 보다는 아이쇼핑을 하거나 친구와 약속장소로 그곳을 이용한다.

백화점 그리고 사물 · 세계 · 사람은 백화점이라는 공간 아래서 쇼핑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가치를 이야기 한다. 없는 것이 없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예찬하고 탐미하듯 그곳에 둘러 사물을 들여다본다. 하나의 공간에서 만국기가 걸려있는 듯 다양한 세계가 공존해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부터 풍경처럼 지나치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곳에서 저자는 백화점의 역사와 욕망의 전시장이 된 그곳을 통찰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백화점의 역사와 탄생의 비화를 이야기 하다가 중간중간 그녀가 탐했던 사물에 대한 추억을 털어 놓는다.

물건들이 정말 우리를 말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로 물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 p.43

그녀는 탐미하듯 백화점을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소비를 하고, 사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백화점은 다양한 패턴으로 그들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 어쩜 이렇게 백화점에 대해서 투시하듯 설명해 놓았을까 할 만큼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은 한 권의 책이 곧 백화점의 사물과 세계와 사람을 옮겨다 놓았다. 책 제목에 맞게 백화점에 온 듯한 본문 표지 또한 센스가 돋보인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미식가를 흉내내듯 음식을 음미하거나, 보는 것의 기쁨과 고통에 대한 찬미 그리고 그곳의 물건을 통해 가치를 통해 느끼고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존재해있던 백화점의 역사가, 세계의 백화점들이 차용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한 원동력들이 백화점을 만들면서 만들어진 매뉴얼이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에 놀라웠다. 찬미하고, 음미하며, 써내려간 은밀한 즐거움과 고통의 산물인 그곳에서 나는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만보하듯 다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왔지만 백화점처럼 쇼핑의 기쁨처럼 그녀가 들려주는 은밀한 이야기는 즐거웠다. 이제부터 백화점하면 아마도 경란 작가의 이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올려질 것 같다. 더불어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자주가던 시장에 관한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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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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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수식어를 많이 보게 된다. 다른 사람보다 으뜸이 되는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프리미엄'을 붙여 주는 우리식의 언어. 때로는 언론에서 주구장창 엄친아를 외치고 있으니 엄마 친구의 아들(딸)이 벗어 난 사람들은 현실에서 외면 받기 일쑤다. 어쩌면 현실이라는 링안에 우리 스스로가 한계를 집어 넣어 불량품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설명서'를 집어 넣는 걸지도.

전석순 작가의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는 2011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목과 표지에 나오는 뿜어 나오는 포스 그대로 '철수' 라는 아바타가 턱 하고 등장하더니 그를 사용하려면 제품 규격과 사양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사용모드는 총 4가지로 구분된다. 취업모드, 학습모드, 연애모드, 가족모드. 친절하게도 철수를 써봤던 사람들의 후기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부주의로 철수의 기능을 알지 못하고 썼다가 낭패를 봤다는 한숨섞인 글도 올라온다.

4가지 사용모드에서 철수는 남들보다 부족한, 현실의 세계에서 동떨어진 먼 별에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세계를 규격하기 이전에 자신이 걸어왔던, 아니 오래전부터 규격해왔던 사양을 그대로 대입시키고 있다. 텔레비젼, 세탁기가 컨벨트를 타고 똑같은 모습, 똑같은 사양으로 나오는 것처럼 철수의 모습조차도 그들과 같아야 한다. 학생 일때는 공부를 잘해야 하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직장을 잘 잡아야 하고, 직장을 잘 잡은 후에는 결혼을 때에 맞춰 해야 하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아이를 잘 낳아 기르는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길, 인생이라고 말한다. 우스개 소리로 친천들을 만나면 내 나이는 모르는데 나이를 말하고 나면 바로 들려오는 인사말들. 이를테면 취직했니? 결혼해야지? 남자 친구는 있어? 애, 빨리 낳아야지.....나이에 맞는(?) 인사말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주고 받는다.

시기에 따른 버튼이 재깍 바뀌는 틈바구니 속에서 다른모드로 전환되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빗겨난다. 모난돌처럼 삐죽 튀어나오는 돌맹이가 되어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동적으로 내려온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비애감, 불량품같이 느껴지는 압박감. 현재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시대보다 가방끈도 길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하나의 버튼이라도 전환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결격사유'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룰'이다.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컨벨트를 타고 전자제품들이 일렬로 출하되는 모습과도 흡사하게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다. 출하된 동시에 시기에 따른 버튼의 전환과 업그레이드가 충족하게 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모난돌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요즘은 사양높은 모델들이 넘쳐나 이런 현상이 결코 철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청춘이 겪는 하나의 사회문제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철수인가?

작가가 그리는 주인공 철수는 이시대의 홍길동이다.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은 그 시대의 병폐와 한계, 이상향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판서의 서자다. 조선시대 홍길동처럼 양반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온전한 양반이 아닌 '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비애감, 한계가 느껴지곤 하는데 이 시대의 홍길동인 철수 역시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여자는 영희다.), 이 시대의 한계와 남들과 같은 길을 걷기 위해 스펙을 높이려는 젊은이의 분투 혹은 좌절기를 그린 것이 묘하게 닮아있다.

다만, <홍길동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정말 사용 설명서처럼 철수라는 제품에 대한 사양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는데 말 그대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점만을 그리고 있다. 철수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회상은 있을 뿐, 앞으로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백수로서의 삶은 탈피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에 대한 대안의 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읽은 <철수 사용 설명서>의 한계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인간이라는 삶이 완제품으로 나오는 가전제품과 동일시되어 규격화되는 삶의 이야기를 전환하여 그리는 그의 이야기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의 표지를 벗기면 아바타처럼 클릭하면 바로 '모드 변환'이 되는 것처럼 안의 표지는 깜찍하다. 속지는 그야말로 아이디어가 센스돋는 아이템이다. 철수 사용 설명서는 화려한 사양만큼이나 신선하고, 핫한 아이템이지만 실질적으로 제품을 썼을 때 그 신선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 그럴까라는 물음표어린 시선으로 던져보면 평이한 문장이 계속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는 이미 이런 일상을 책으로나마 또 맛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심적 박탈감이랄까. 오히려 지금 힘겹게 사투하는 청춘이 아닌 이 모든 것을 겪고 지나온 어른들에게 이 설명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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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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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뫼비우스 띠 같다. 아니, 마그리트 그림을 연상시키는 고리들이 보이는 것처럼 독립된 퍼즐 조각 같으면서도 조각을 하나둘씩 연결하면 더 큰 그림들이 완성된다. 열일곱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소년 소녀와 열일곱살에 가장 어린 부모를 둔 아름이야기다. 두근두근, 엄마의 뱃속에서 부터 들려오는 하나의 신호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존확인' 과 동시에 살아있다는 증거의 목소리. 엄마의 배가 둥근 우주로 온 몸을 감싸 나를 보호한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와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두근두근, 가슴을 쿵쿵 때리며 불완전한 존재를 온전한 하나의 존재로 키워 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소리들.

허락을 받은 소녀들이 하나둘 어머니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곤 저희들끼리 무슨 내밀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끈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어머니의 둥근 배 위로 총 다섯 개의 손이 올려졌다. 모두 희고 고운 게 불가사리처럼 앙증맞은 손이었다. 다섯 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나 역시 내 머리 위에 얹어진 다섯 소녀의 온기를 느끼며 꼼짝 않고 있었다. 아주 짧은 고요가 그들과 나 사이를 지나갔다. 어머니의 배는 둥근 우주가 되어 내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아득한 천구(天球) 위로 각각의  점과 선으로 이어진 별자리 다섯 개가 띄엄띄엄 펼쳐졌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살아 있는 성좌들이었다. -p.40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미온수처럼 따뜻하고, 아늑하다. 철없는 열일곱살의 소년 소녀가 갑작스레 아이를 갖고, 또래의 친구들보다 일찍 어른의 길로 들어서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어린 부모와 이제 열일곱살이 된 소년은 나이와 관계없이 가장 늙은 모습의 청춘을 마주 대하는 아름이의 모습이 대칭처럼 늘어져 있다. 사람을 꽃으로 비유할 때 가장 싱싱하고, 청초한 모습의 열일곱의 나이를 대수, 미라, 아름의 모습은 인생의 테두리 속에서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처럼 반짝 거린다.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한 생명을 책임지는 부모의 모습을 그리는 것 또한 작가는 잊지 않는다. 극과 극의 상황을 잘 대치시키면서도 어린부모의 비애와 나이든 모습으로 어린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슬픔은 가슴을 짓누르듯 아릿하게 다가온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비극과 희극사이에서 유머와 비애가 적절하게 섞여져 나와 나도 모르게 바람소리를 내며 웃어 버렸다. 아름이의 가족과 대칭되는 장씨 할아버지 이야기. 자식이 이미 나이가 많은 어른이지만 큰 장씨 할아버지에게는 늘, 아이같은 모습이 베어져 나온다. 아름이의 가족과 비교가 되면서도 또다른 부모와 자식간의 이야기다.

김애란 작가의 첫 장편은 반짝거리는 낱말 카드와 문장들이 한꺼번에 회오리친다. 소설을 볼 때 문장 보다 이야기의 축을 생각하며 책을 읽곤 했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문장 하나하나가 다 보석같다. 얼마나 포스트잇을 많이 붙였는지 페이지가 쉴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운명적인 인생을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환한 스포트라이트와 어둡고 습한 그림자에 대해 말한다. 아름다운 낱말을 엮어 문장을 만들고, 문장으로 하나의 인생을 엮어나가는 그녀의 글솜씨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문장이 아름다운 것에 반해 호흡이 길게 느껴졌지만 통속적이지 않는 결말과 가슴터지듯 느껴지는 두근거림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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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민음사 모던 클래식 47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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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철 커스크의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원제(The Bradshaw Variations) 보다 번역된 제목이 훨씬 더 근사하다. 문학적인 느낌과 더불어 이 소설의 주제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제목을 표기 했다면 '브래드쇼 변주들'쯤 되었을까. 제목이 근사해 한참 책을 어루만지다가 작가의 이름을 읊조려보니 웬지 그녀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프로필을 읽고나서야 그녀가 쓴 작품중 여섯번째 로 쓴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민음사, 2008) 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가로 판형으로 된 표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책장에 표지를 앞으로 보이게 꽂아 두었다.

아이의 책 속 에선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음을 그는 발견한다. 사랑, 생존, 투쟁과 즐거움, 행복과 슬픔, 믿음, 삶 자체의 모양새와 궤적이 모두 설명된다. 절대 설명되지 않는 하나는 현실이다. - p.17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의 삶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다. 필터로 거르지 않는 날 것을 쓰다보니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다른 세계로의 접목이 아닌 환상을 꿈꾸지 않는 지금의 나, 앞으로 살아갈 나의 모습. 혹은 엄마의 삶이, 할머니의 삶,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도 같을 것이라는 것도. 아이였을 때 느끼지 못한 것도 세상의 나이를 한 살씩 더하다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삶의 궤적들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마음이 쓸쓸했던 어느날, 집 계단에 걸터앉아 보았던 아파트의 수많은 불빛들을 보며 그들의 삶에 동경을 품은 적이 있었다. '저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몹시도 부러운 눈으로 한참을 환하게 켜진 아파트의 불빛을 내려보다가 많은 상념을 내려놓고 방안에 들어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한 사람일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시린 모습으로 불빛을 바라봤는지.

처음부터, 토머스는 생각한다, 하워드는 장조였고, 레오는 단조였다. 비록 그들의 삶은 그들 자신의 것이지만, 토머스가 보기에, 그 삶은 늘 화음 안에서 그것이 해야 할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건 아마, 형과 동생에게 비친 사진의 삶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 p.41~42

전작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에서는 여자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이번엔 구체적으로 브래드쇼의 가족들을 실험대에 올려 놓았다. 성역할을 바꿔 생활 하는 것. 아내의 삶을 사는 남자, 남편의 삶을 사는 여자. 살림과 아이를 맡아보는 토머스와 남자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토니의 생활은 처음에는 순조롭게 풀려간다. 차츰 톱니바퀴는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더니 점차 어그러진다. 레이철 커스크는 토머스와 토니의 가족 뿐 아니라 토머스의 형 하워드와 클로디어 부부의 삶, 동생 레오와 수지 부부의 이야기 그리고 그 밖의 집안 구성원들에 대해 심층적이면서도 다각도로 그들의 삶을 파헤친다. 작가는 평범했던 두 사람에게만 포커스를 두지 않고 부와 명예,나이에 관계없이 가족의 구성원의 위치와 고민을 함께 다루고 있다.

토머스와 토니는 자신의 화음 속에서 변주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일탈에 지나지 않았다. 자리를 바꾸면 우린 행복해질까?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들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쓸쓸한 결론만을 얻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일지라도, 그 일을 내가 하면 결코 녹녹치 않음을 온몸으로 느꼈던 두 사람. 쓸쓸한 결론을 남기며 역할 바꾸기에는 실패 했지만 살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들이 도출한 결론이 작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하기에 분명 역할을 바꿔 아내와 남편의 삶을 선택한 부부 중에서도 잘 해내고 있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문학 작품에서 인물을 통해 고민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상황적인 한계 또한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레이철 커스크의 작품은 일정한 시선과 온기를 품지 않는 단호함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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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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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동안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땀방울이 흐르는 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식 샤워를 하고, 찬 물을 들이켜도 계속 되는 더위와 갈증은 가시질 않았다. 비가 오려고 그렇게 더웠을까, 어제부터 비가 내렸다.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빗줄기는 시원스럽게 쏟아졌고, 주변의 소음도 함께 묻어져 내려왔다. 어느 여름날의 풍경, 반복되는 일상들. 그럼에도 뜨거운 햇살아래 차가운 비가 단비처럼 내리는 것을 보며 반가워하는 것처럼 유디트 헤르만의 <알리스>는 '죽음' 이라는 무거운 이별을 늘, 있었던 일처럼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할 때면 으레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어야 하고, 아스러져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울 텐데도 그녀는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늘 있는 일 처럼. 체념을 하는 것인지, 그녀만의 이별 방식으로 남자들을 떠나보내는 것인지, 떠나보낸 이의 어제와 같은 오늘의 일상을 흔들림없이 흘려 보낸다. 감정의 과잉없이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하는 알리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곡선을 유지하며 막을 내린다. 건조하면서도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내뱉는다.

넓은 교차로를 바라보면서 알리스는 잠시 세상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모든 것이 해체되어 다르게 조합되고, 새로운 의미를 찾은 것 같았다. 알아볼 수 없는 글씨. 머릿속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흘려 쓴 필체의 문구들이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알리스는 왼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 느낌은 사라졌다. - p.96

인연을 맺었던 다섯 남자를 떠나 보내는 길. 다섯 번의 이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하고 전조를 알리며 찾아오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일이나 예고편을 던져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나 이별은 언제나 서럽다. 한 사람의 죽음을 보내는 것 조차도 마음도 몸도 피폐해 지거늘 그녀의 여정은 차분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조로 그들을 보내고 그녀는 또 그녀의 삶을 살아간다. 산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온몸이 부서지듯 크게 울어도, 가슴이 미어지도록 눈물을 감추어도 결국은 사는 사람은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저자는 <알리스>를 통해 인간이라면 겪어야 할 이별에 대해 상황적으로 서술하면서도, 또 인간이기에 꿋꿋하게 살아가는 강인함을 그려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몸속에 숨겨진 장기가 떨어져 내려가는 것처럼 상실감이 휘몰아 쳐도, 그들이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한다.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의 대사처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제' 하는 대사처럼 알리스는 안녕이라는 인사없이 삶을 다한 사람들을 떠나 보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처럼 그녀는 묵묵히 '특별할 것도 없이' 죽음도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인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선을 나누지 않고 담담히 그려나가는 것이 자못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시종일관 감정이 흘러내리지 않는 담담함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스크린을 쳐다보다 음소거를 해놓고 아무런 소리 없이 인물의 움직임을 쫓아 가는 것처럼 살며시 바람에 나붓기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일과 같은 느낌으로 작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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